문예창작과를 나온 종수는 택배 아르바이트를 하다 쇼핑센터 오픈식에서 홍보 아르바이트를 하는 고향 친구인 해미를 만난다. “종수야, 나 해미야”라는 영화의 첫 장면에서 두 주인공의 이름을 관객에게 알려줌과 동시에 ‘삼포세대’니 ‘흙수저’니 그저 세대로만 불려지는 20대 청춘들의 이름을 호명한다. 그리고 해미는 군중 속에 섞여 있는 종수의 이름을 부르는 주체가 된다. 아프리카 여행을 떠나면서 고양이를 맡긴 해미의 집에 드나들면서 종수는 보이지 않는 고양이의 밥을 꼬박꼬박 챙겨준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온 해미는 이번에는 종수에게 벤을 소개한다. 이로써 종수-해미-벤의 삼각관계가 성립된다. 해미를 사이에 둔 종수의 일방적인 욕망과 집착, 해미와 종수에게 영향을 미치는 벤, 그리고 종수의 각성으로 삼각관계는 영화에서 서스펜스를 불러일으킨다. 작가를 꿈꾸지만 어떤 소설을 써야할지 모르겠다는 종수와 고양이를 키운다고 하지만 진짜 고양이가 있는지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 해미, 그리고 반포에서 살면서도 어떤 일을 하는지 말하지 않는 벤, 이 세 사람이 보여주는 미스터리는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해질 무렵과 같다. 한편으로 종수가 달리기를 하는 새벽 시간은 어둠이 사라지고 있지
웨스 앤더스 감독의 모든 영화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단 하나도 없으며 단 한 장면만을 봐도 이 감독의 영화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특징이 있다. 그의 영화에 나타는 시각적인 요소들은 그만큼 강하며 화려한 색감의 대비, 독특한 화면 구성으로 특정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미디어문화센터 목요상영회에서 상영하는 <문 라이즈 킹덤>은 10대 소녀소년의 사랑이야기다. 교회 연극에서 첫 눈에 서로에게 반한 10대 소녀소년 수지와 샘은 그로부터 딱 1년 후 둘만의 세상을 찾아 집을 떠난다. 부모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위탁가정을 전전하는 샘과 집에서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수지는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돼 자신들만의 안식처인 ‘문 라이즈 킹덤’을 찾는다. 영화는 겉으로 그저 평범하고 별 문제 없이 지내는 것 같지만 그 내부에 많은 모순과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의 엉뚱해 보이는 사랑의 도피 행각으로 드러난다. 화려한 캐스팅으로 유명했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년 개봉)의 카메라가 위아래로 움직이는 틸트 기법으로 영화의 화면을 구성했다면 <문 라이즈 킹덤>은 반대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패닝을 많이 사
어떤 일이든지 10년을 하면 일가(一家)를 이룬다고 하는데 이번에 개봉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마블 가(家)를 완성한 것 같다. 10년을 지켜온 마블 팬들에게는 선물이었고 팬이 아닌 이들에게도 꽤 준수하게 다가왔다. 이번 영화는 지구에서 활동하는 어벤져스 멤버들 뿐 아니라 우주에서 활동하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 그리고 마법사인 닥터 스트레인지, 천둥의 신 토르까지 출연했다. 어림잡아 15명이나 되는 캐릭터들의 분량을 적절히 배분하고 우주 최고의 빌런인 타노스에 맞서는 각자의 역할과 관계도 잘 엮어 영화는 대중적이면서도 무게 있게 이야기를 풀었다. 특히, 마블 히어로에서 살짝 비껴나 있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캐릭터들이 어벤져스 멤버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부분이 감각적이었고 이들 캐릭터의 키치적인 유머와 귀여움이 튀지 않게 구현된 점도 좋았다. 전작인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 드러낸 ‘공리주의’가 가지는 논리적 모순을 이번 작품에서는 타노스를 통해 더욱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타노스는 우주의 균형과 영속성을 위해서 우주 생명의 절반을 날려버려야 한다면서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자는 것이 얼마나 잔혹하고
뭘 해도 허무하고 되는 일 없는 스무 살 청춘들의 이야기를 맛깔 나는 대사와 캐릭터 묘사로 인기를 끌었던 <스물>의 이병헌 감독이 이번에는 결혼도 한 ‘어른’들의 연애이야기를 들고 왔다. 롤러코스터 디자이너인 석근은 20년 동안 부인 몰래 숱한 바람을 피웠고 심지어 바람피우는 상상이라도 해보라며 매제인 봉수에게 제니를 소개해준다. 봉수의 아내인 미영은 아이를 갖기 위한 목적으로밖에 봉수를 보지 않고 제니와 봉수가 본격적으로 ‘바람’을 피우게 되면서 평범한 일상으로 보이던 모든 것들이 꼬이기 시작한다. <바람바람바람>은 이병헌 감독 특유의 ‘척’하지 않는 캐릭터들의 ‘말빨’대사는 웃기다 끝에 가서는 울게 만드는 신파코미디를 과감히 버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롤러코스터 같은 아슬아슬한 재미를 보여준 점이 좋았다. 바람이 많고 여자가 많다고 하는 제주 봄바람에 설레는 불륜 남녀들의 막장코미디는 제목만큼 불륜을 미화하지도 조장하지 않는다. 영화는 또 다른 연애를 선택한 어른들의 몸 고생(몸 개그)을 보여줘 오히려 한 발짝 떨어져 맘껏 웃게 만든다. 그러나 각자가 안고 있는 사랑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외로움을 웃음의 끝에서 살짝 느끼게 하는 게 이
<지금 만나러갑니다>는 일본 원작 영화의 유명세 탓도 있지만 오랜만에 극장에서 만나는 멜로드라마 장르여서 반가운 영화다. 7살 어린 아들과 남편을 두고 세상을 떠난 수아는 아들에게 남긴 그림책의 결말처럼 1년 뒤 장마가 시작된 날 기억을 잃은 채 나타난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수아는 모든 순간 자신만을 그리워한 아들과 남편을 통해 다시 첫사랑을 시작한다. <지금 만나러갑니다>는 얼핏 허구의 이야기로 보이지만 그 허구 속에 개연성이 있다. 간절한 그리움을 억지스런 설정으로 설명하지 않고 어쩌면 인연이란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시작과 끝이 서로 연결돼 있는 그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설득력을 가진다. 장마가 시작된 날 기억을 잃은 채 돌아온 수아를 본 관객들은 아마도 이승의 기억을 잃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화는 애틋함과 그리움을 켜켜이 쌓아가면서 다시 사랑을 하는 그 가족들의 모습에 흐뭇함을 느낀다. 그리고 장마가 끝나고 다시 구름 나라로 돌아간 수아를 그리워한 남편이 꺼내 든 그녀의 일기장에는 예상하지 못한 그녀의 이야기를 알게 된다. 그녀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영화의 첫 장면부터 흩어졌던 조각들이 짜 맞
미국 애리조나 주 일대에서 역사상 최악의 산불로 기록되는 초대형 산불이 발생한다. 19명으로 구성된 최정예 산불 진압 대원인 일명 그래닛 마운틴‘핫샷’팀은 산불 초기 진화에 나서지만 급속하게 번지는 불길에 일촉즉발의 위기를 겪는다. <온리 더 브레이브>는 순식간에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산불에 맞서는 ‘핫샷’ 소방관들의 뜨거운 동료애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가슴 먹먹하게 담았다. 이 영화는 단지 소방대원들의 영웅담만 그리지는 않는다. 영화 속 ‘핫샷’팀은 까다로운 자격심사를 통과한 최정예 엘리트 소방관으로 산불시즌이 있을 만큼 빈번하게 발생하는 미국 내 전체 산불을 초기에 진화해야만 한다. 영화는 팀원들의 훈련 과정을 통해 산불의 위험성을 보여주면서 팀원들 간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동료애와 산불이 항상 먼저인 아버지, 아들을 둔 가족들의 이야기를 먹먹하고 뭉클하게 그리고 있다. 팀의 리더인 에릭 마쉬는 팀원들에게 아름다운 숲의 풍광이 이제 곧 땔감으로 보이게 될 것이라며 산불의 무서움을 일깨워준다. 영화 첫 장면에서 등장한 산불 속에서 뛰쳐나온 불붙은 곰의 모습은 에릭 마쉬가 말하는 가장 아름다우면서 잔혹한 장면으로 산불 진화 소방대원의 숙명을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