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장동혁(국민의힘/보령시·서천군) 의원은 오는 17일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전국 5개 시·도(충남·인천·강원·전남·경남)와 함께 ‘석탄화력발전소 폐지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 입법토론회’를 개최한다. 이번 토론회는 ‘석탄화력발전소 폐지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의 제정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특별법 제정 방향에 대한 각계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기 위해 준비되었다. 토론회에는 김태흠 충남도지사가 참석해 석탄화력발전소가 소재한 5개 시·도를 대표해서 환영사를 할 예정이다. 또한 김동일 보령시장이 화력발전소 시·군 행정협의회(보령·태안·동해·삼척·고성·하동·당진·옹진) 명의의 ‘특별법 제정 촉구 공동건의문’을 국회 산업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 측에 전달해 특별법 제정에 힘을 실을 예정이다. 국회미래연구원 소속 정훈 연구위원이 주제 발표를 맡았으며 △정남철 숙명여대 교수, △김종천 한국법제연구원 규제법제연구센터장, △김진수 한양대학교 교수, △김인수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 △양용현 KDI 규제연구센터장, △남태섭 전력연맹 사무처장, △문양택 산업통상자원부 전력산업정책과장 등이 토론자로 나선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지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은 지난 6월에 장동혁 의원의 대표 발의로 국회에 제출되었으며 여·야 국회의원 34명이 공동발의자로 참여했다. 정부는 탄소중립 2050 계획에 따라 전국의 석탄화력발전소 59기 중 28기를 2036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쇄할 예정이다. 이로 인한 직간접적인 경제적 손실은 전국적으로 약 75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해당 발전소가 소재한 지역은 경기침체와 실업, 인구감소 등의 위기를 겪을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장동혁 의원은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따라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지되는 지역에 대한 지원은 선택이 아닌 국가적 책무이다”라며 “토론회를 통해 특별법 제정을 위한 많은 지혜가 모아져 위기 지역에 대한 효과적인 지원법이 만들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꼭 나가봐야 하나요? 입주 업체들 민원 제기에 담당자가 나갔으면 된 것 아니냐.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는 서천군청 경제진흥과 담당 팀장이 지난 21일 <sbn서해신문> 취재진에게 전한 서천특화시장 먹거리동 업체들이 에어컨 고장에 따른 민원 제기에 대한 답변이다. 서천특화시장 먹거리 동 업주들은 이날 “에어컨 고장으로 방문 손님들 발길 돌렸다”라며 “가뜩이나 식당에 손님도 없는 사정에 그나마 온 손님도 너무 덥다고 발길을 돌렸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또 먹거리 동에 입주한 한 식당 업주는 “오죽하면 군수 비서실에 전화를 걸어 이 같은 상황으로 어려움이 있으니 조속히 처리해 달라고 했다”라며 “무더위 날씨에 선풍기 바람 앞에 식사하는 손님들에게 정말 미안하다”라고 고개를 떨궜다. 먹거리 동 관리사무실과 상인회에 따르면 먹거리 동은 시스템 에어컨 2대가 운영되고 있으며 이날 2층과 1층에 입주한 업체 2곳에 가동되는 1대를 제외한 나머지 1대가 운영하는 업체 5곳은 고장으로 에어컨 가동이 멈춘 상태였다. 이에 따라 1층 먹거리 동에 입주한 업체 2곳을 제외한 업체 5곳은 앞뒤 현관문을 활짝 열어 놓은 채 선풍기 가동으로 손님들을 반겼다. 에어컨이 정상적으로 가동되는 2곳의 업체 역시 앞뒤 현관문을 활짝 열려 시원한 바람 대신 뜨거운 바람 속에 손님을 맞이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경제진흥과 담당 팀장은 민원 현장 방문은 고사하고 <sbn서해신문> 취재진에게 에어컨 고장 수리 부품을 기다리고 있다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 담당 직원이 나갔으면 된 것이 아니냐 식의 안하무인으로 일관했다. 게다가 먹거리 동 업주들에게 에어컨 고장 수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조차 알리지 않아 먹거리 동 업주들의 공분을 샀다. 또한, 비서실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군수에게 보고하는 대신 경제진흥과 담당자에게 알리는 등 민원 제기를 안일하게 대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비서실 관계자는 “먹거리 동 업체들의 민원 제기가 생각보다 심각한 줄 몰랐다”라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군수님에게 보고하기 어려워 해당 부서에만 민원 처리를 요구했다”라고 밝혔다. 이날 <sbn서해신문>의 취재진의 본격적인 취재가 이뤄지자 경제진흥과 담당팀 직원들은 민원 현장을 방문해 에어컨 수리 부품을 가지고 현장에 도착한 AS 업체 기사의 수리를 지켜보고 업주들에게는 에어컨 고장 수리 진행을 알렸다. 이 상황이 공직사회에 알려지자 자성의 목소리가 거세졌다. 한 팀장급 공무원은 “폭우와 폭염 등으로 내수경제 불황이 지속돼 업체들의 어려움을 겪는 시점에서 해당 부서의 안일한 민원 처리 행정서비스가 불만만 키우는 꼴이 됐다”라며 “이를 계기로 공무원 스스로 반성하는 기회를 삼아 양질의 행정서비스 제공에 나서야 한다”라고 전했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서천지회(이하 서천예총)와 서천군이 공동으로 주관하는 ‘문화가 있는 날’이 지역민 문화 향유를 향한 항해를 시작했다. 서천예총은 지난달 27일 문예의 전당 대강당에서 500여 명의 문화인이 참석한 가운데 ‘문화가 있는 날’ 발대식을 개최했다. 이날 발대식에서 김기웅 군수는 “지역의 발전과 문화예술의 번영은 역사적으로 늘 함께했듯이 서천군민이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문화도시로 자리매김하여 서천군민의 삶이 한층 더 풍요로워지길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서천예총에 따르면 ‘문화가 있는 날’은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고 서천군과 함께 주관하는 2023 문화가 있는 날 지역특화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서천의 문화‧역사‧지리적 특징과 자연의 소재를 이용한 ‘서천은 유(YOU) 문화애(愛) 유(YOU)’라는 대주제와‘에코(Eco) 서천애(愛)’라는 연관주제를 가지고 지역 특징에 어울리는 콘텐츠로 기획됐다. 이에 서천예총은 이날 ‘서천별곡’이라는 소주제로 서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서천군립전통무용단을 통해 서천의 대표적인 명소 9곳을 연주와 춤과 영상 등을 펼쳤다. 또 박해미 외 3인이 출연한 맘마미아 뮤지컬 갈라콘서트를 개최했다. 이어 지난달 29일 ‘서천갯벌’의 소주제로 202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서천갯벌의 소중한 자산에 대해 조도순 국립생태원 원장과 다하다협동조합의 렉쳐 콘서트가 진행됐다. 아울러 서천갯벌에서 서식하는 동물들의 모습을 김수곤 사진작가의 작품 전시를 통해 생태원 관람객에게 서천갯벌의 모습을 알렸다. 한편 ‘문화가 있는 날’은 오는 26일 ▲‘맥문동 꽃밭에서’로 연결되어 ▲한산 모시꽃 피다 ▲생활문화동호회 축제 ▲제2의 청춘 내 나이가 어때서 ▲문·날 돋보기의 교육, 체험, 전시,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충남 서천지역 문화예술 공연장의 시설 노후와 함께 구조적 한계점으로 그동안 전문 예술인과 군민이 겪었던 문화예술 향유의 문제가 해소될 전망이다. 군은 지난 20일 김기웅 군수를 비롯해 군 관계자, 건축설계사, 무대 기계, 음향, 구조 등 30여 명의 관련 분야 전문기술인이 참석한 가운데, 서천 문화예술회관 건립을 위한 건축 설계용역 착수보고회를 개최했다. 이날 착수보고회는 최근 개청한 신청사와의 연계를 통해 피부에 와닿는 군민의 문화예술 향유와 풍요로운 삶터·쉼터·일터로 변화하는 새로운 서천의 미래를 위한 발판을 만들기 위한 논의가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김기웅 군수는 “문화예술회관 건립은 서천의 문화 발전과 예술 활성화를 위한 핵심 프로젝트로, 앞으로 지역 예술가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군민의 문화적 삶의 질을 높이는 랜드마크로 조성하겠다”라고 밝혔다. 군에 따르면 회관 건립 추진은 지난 2021년부터 5년간 충남도 균형발전 사업을 통해 예산을 확보하면서 시작됐다. 지난 2021년 12월 문화예술회관 건립 부지 선정 및 타당성 조사 연구 용역을 완료한 군은 지난해 7월 문화예술회관 건립사업 기본계획 수립에 이어 지방재정투자심사 완료 및 주민설명회를 개최했다. 지난해 말 군은 문화예술회관 건립 기획설계 및 공공건축 사업계획 사전검토 완료하고 지난 6월 일반 설계 공모 후 기본 및 실시설계용역을 착수했다. 이에 군은 내년 4월 문화예술회관 설계를 완료하고 각종 인허가를 마친 후 6월경 본격적인 착공에 들어가 오는 2025년 12월에 준공 및 시범운영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풀어야 할 몇 가지 문제점들이 남아있다. 우선 문화예술회관 건립에 따른 당초 사업비 202억 원보다 증가한 297억 원의 재원과 부족한 주차장 확보가 가장 큰 관건으로 보인다. 또 전문 기획사들이 공연을 통한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에는 대공연장 관람석이 너무 적다는 것도 문제다. 이는 재정적으로 부실한 서천군청의 입장에 볼 때 막대한 예산 투입으로 인지도가 높거나 규모가 큰 공연 개최는 사실상 어려워 고수익을 노리는 전문 기획사들의 참여로 문화예술 보급을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은 656석, 소공연장은 210석으로 구성돼 조성된다. 이에 따라 대공연장 좌석이 1,000석 이상으로 조성되지 않는 한 수익성을 생각하는 전문 기획사들의 공연 개최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 지역 출신 한 기획사 대표는 <sbn서해신문>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 “고향에 전문공연장이 조성된다는 소식에 기뻤지만, 막상 건립계획을 접하고 보니 아쉽다”라며 “그나마 우리 같은 전문 기획사의 공연으로 군민에게 문화예술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려고 했지만, 공연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우선 사업비 및 주차장 확보에 대한 문제는 군 내부적으로 해결 방안 찾는데 여러 가지 대안을 갖고 논의하는 중”이라며 “관람석 증가는 현재 건폐율 제한 등으로 사실상 어려울 실정이지만, 내부적으로 다시 한번 검토해 보겠다”라고 전했다.
상식이 통하는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무엇보다 소통을 잘하는 공무원이 필요하다. 소통은 내가 먼저 하는 것이지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대면을 기회로 삼아 자기과시를 한다거나 소아적 적개심을 공공연하게 표출하는 막장 노릇을 해서는 더욱 안 된다. 자기주장과 관철을 꾀하기 전에 이미 돼 있는 대의명분을 성취하는 공동적 노력을 앞세울 때 진정한 소통의 참모습이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가 있다. 공무원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함에 있어 봉사와 친절을 생명으로 국민의 재산을 보호하고 안전을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공무원은 본인만이 가진 아주 고약한 성품, 독특한 가치관을 숨기고 민원인과의 소통에 나서야 한다. 이런 책무에도 최근 서천특화시장 먹거리 동의 에어컨 고장 수리에 대한 민원 제기에 임한 담당 공무원의 자세를 볼 때 과연 책무를 다한 공무원인가 싶을 정도로 의문스럽기까지 했다. 이는 일련의 사태의 가장 큰 원인우로 서천특화시장, 장항전통시장이 ‘건물주가 없는 시장’으로 변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다. 명백히 서천특화시장과 장항전통시장의 건물주는 서천군청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주인이 없는 상태로 변해버린 것 같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시장에 입주한 업주들의 몫이 되고 있다. 만약 담당팀 직원들이 특화시장 건물주였다면 세입자들에게 과연 그렇게 했을지 궁금하다. 삼복더위에 에어컨 고장은 식당을 운영하는 업주로서 손님맞이에 매우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이는 무더운 기온 속에 뜨거운 국밥을 먹는다는 것이 손님으로서도 특별히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날 해당 식당 업주는 점심 손님 중 상당수가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선풍기 앞에 식사하기 부담스러워 오던 발길을 돌렸다고 했다. 그나마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몇몇 지인들이 이런 상황을 알고 식당을 찾아 뜨거운 국밥을 주문해 먹는 등 해당 식당 업주를 위로했다고 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에어컨 고장 원인과 수리 기간 안내는 고사하고 해당 부서 담당 팀장은 민원 현장조차 방문하지 않고 ‘담당 직원이 나갔는데 꼭 나가 봐야 하느냐’식의 자세를 고수했다. 바로 민원인과의 소통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진실을 말하고 옳고 그름에 대해 규명하려고 하지만, 진실과 옳고 그름보다 더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은 서로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이해하는 소통의 자세다. 특히 공무원은 더욱 그렇다. 당장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면 진실과 옳음을 잠깐 묻어두고 서로를 생각하고 이해하는 소통하는 공무원의 참모습이 먼저 선행돼야 한다. 공무원은 군민을 위해 봉사하는 정신을 가지고 소통하는 넓은 가슴을 지닌 채 지역사회를 더욱더 아름답게 하고 따뜻하게 만들어야 할 책무가 있다. 또 법과 제도도 반드시 지켜져야 하고 쟁점의 심각성이 제도적 인위 위주로 편견이 돼서도 안 된다. 군민에 대한 정직과 봉사, 직무에 대한 창의와 책임을 다하는 공무원의 자세가 바로 군민이 원하는 모습이다. 또한, 책임의 자세와 창의적인 발상을 갖고 민원을 제기하는 군민에게 먼저 다가가 생각하고 이해하는 소통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소통하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기계적 인정을 베푸는 수준으로 끝나서는 더욱 안 된다. 이해하지 못할 것이 있어서도 안 된다. 이는 민원 제기를 시인하고 벗어나는 길도 오직 공무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서천 공직사회가 변한다. 그래야 서천군청 행정서비스가 바뀐다. 무엇을 수행하고 있는지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처리되는지 확실하게 보여주는 올바른 서천군청의 행정서비스를 군민은 기대하기 때문이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2025년 12월에 완공될 충남 서천군 문화예술회관이 지역의 랜드마크로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공연장 외 전시·휴게·예술단체 사무실 등 조성과 회관 외부에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이 가능한 ‘워터플로우가든’과 어린이를 위한 ‘다이나믹힐 그라운드’ 조성 등으로 군민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군은 지난 1988년에 건립된 현 문예의 전당이 시설 노후와 구조적 한계로 그동안 전문 예술인과 지역민에게 충분한 문화예술의 공간과 환경을 제공하지 못해 다목적 활용이 가능한 전문공연장인 문화예술회관을 신청사 문화공원 내에 조성할 계획이라고 28일 밝혔다. 군에 따르면 문화예술회관은 2025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내년 6월 착공에 들어간다. 총사업비 297억 원을 투입되는 문화예술회관은 1만2,135㎡ 용지에 지하 1층 지상 3층 건축물로 대공연장(656석), 소공연장 (210석), 각종 사무실 등이 조성된다. 문화예술회관은 서천의 자랑인 한산모시, 산, 금강의 흐름을 의미하는 부드러운 선형의 상징 입면을 디자인화했다. 건물 구조는 철골 콘크리트조, 철근콘크리트조, 트러스 지붕 등으로 외부 마감은 로이복층유리, 금속패널, 금속 루버 등으로 마무리되며 주차장은 총 101대가 주차할 수 있게 조성된다. 건물 외부 공간은 계절별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활용이 가능한 수 공간으로 ‘워터플로우가든’과 숲속 휴게공간인 ‘커뮤니티 광장’, 어린이들을 위한 모험형 지형 놀이터인 ‘다이나믹힐 그라운드’ 등이 마련된다. 지상 1층에는 뮤지컬·연극·음악회·무용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가능한 다목적 공연장인 ‘대공연장’과 강연회·패션쇼·전통 공연 등 다양한 공연이 가능한 가변적 무대인 ‘소공연장’ 등이 조성된다. 또 공연·전시·휴게가 가능한 다목적 문화예술 공간인 ‘서천정원’과 효율적 유지관리를 고려한 통합로비인 ‘서천홀’, 파노라마 뷰를 감상할 수 있는 관람객들의 휴게공간인 ‘오픈라운지/카페’ 등도 마련된다. 지상 2층에는 지역 예술단체가 상시 이용이 가능한 ‘통합 사무실’과 입주단체를 위한 전용 휴게공간인 ‘휴게라운지’, 서천의 평야를 담은 발코니인 ‘오브제 계단’ 등이 설치된다. 지상 3층에는 서천의 들판과 자연환경을 전망할 수 있는 ‘서천들판’과 다양한 종류의 전시가 가능한 ‘전시실’, 오케스트라·무용·합창 등을 연습할 수 있는 ‘리허설룸’ 등이 조성된다. 또 연습 중 휴식을 위한 야외 공간인 ‘휴게 데크’와 가족 단위의 관람객을 위한 사적인 공연관람석인 ‘가족실’ 등이 마련된다. 지하 1층에는 관람객 동선과 분리된 연기자 및 직원들의 보안과 휴식을 고려한 ‘선큰 가든’과 분장실 내 화장실 및 스텝 회의실 등 있는 ‘연기자 대기실’, 지역 행사·축제 홍보 및 특산물을 소개하는 ‘서천기념홀’ 등이 설치된다. 대공연장은 연극, 뮤지컬, 오페라, 오케스트라 연주회 등 다양한 공연목적에 최적화된 건축음향 환경으로 구성하고 음향적 친밀도, 발코니 하부 객석 음질 확보, 흡음 및 확산 전략 수립으로 건축 음향적 최적화된 음질을 확보하는 데 역점을 뒀다. 특히, 단형 그리드·3D 픽셀 맵핑 조명 등 최신기술 적용으로 운영자, 감독, 연출자 등에게 만족도 높은 공연환경과 백업시스템을 갖춘 음향 콘솔 및 라인어레이 스피커 적용으로 디지털 환경 무대 음향시설 등이 조성된다. 소공연장은 무대, 객석 구조 변화로 연주회, 합창뿐만 아니라 패션쇼, 강연 등 행사 시에도 유연한 공연환경을 구성하는데 주안점을 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노현배 문화예술팀장은 “문화예술회관이 지역 내 산재해 있는 문화·역사 관광지를 공유하면서 방문객과 군민의 축제장으로 서천읍성, 서천향교길과 연결된 문화 벨트 도시 재생의 구심적 역할을 하는 랜드마크로 또 문화·도시·자연을 잇는 문화 벨트 등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전했다.
국민의힘 소속 일부 시도 지사들의 잇따른 수해 관련 언행에 ‘오만함의 극치’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충청권·영남권에 많게는 1주일 넘는 이번 집중 폭우 때, 일부 지사의 언행은 여러 날이 지났으나 비판받기에 충분해서다. 사과도 했고, 유감도 표명했지만, 수재민과 국민은 여전히 분노하고 있다. 지난해 집중 폭우 수재민 위로차, 현장을 찾은 국민의힘 김모 국회의원이 ‘사진이 잘 나와야 할 텐데’라고 했다가 중징계받았다. 올봄 잇단 대형산불 때도, 일부 지사들의 골프 연습이나 골프 회식설로 구설수에 이어 이번 역시 공분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이런저런 구실을 둘러대고 사과하고 변명하지만, 국민의 분노는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물난리에 가족을 잃고, 삶의 터전과 생계를 하루아침에 씻겨버린 수재민의 망연자실한 눈물과 한숨을 생각해 보라. 그 수재민이 내 형제요, 이웃인데 내 가족이 아니라고 그런 언행을 할 수 있나. 김영환 충북지사 발언이 우선 도마 위에 올랐다. 그는 지난 20일 충북 도청 합동분향소를 찾아 유족에게 사과는 했으나, “거기(오송 지하차도 참사)에 (내가) 갔다고 해서 상황이 바뀔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이에 유족들과 시민단체들은 ‘김영환이 우리 유족을 두 번 울렸다’라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왜냐면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충북도·청주시 등의 무능과 무책임이 드러나 국민의 분노와 실망감이 크기 때문이다. 김 지사는 누가 뭐래도 재난 지휘 본부 역할을 했어야 하는 책임자인데도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골든 타임이 짧은 상황에서 사고가 전개됐고, 임시 제방이 붕괴하는 상황에서는 어떠한 조처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생명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할 말을 잃게 하는 것은 또 있다. 그는 그러면서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밝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했다. 김 지사 본인이 가장 큰 책임자인데, 참사 책임을 누구에게 또 하급자에게 지우겠단 말인지 되묻고 싶다. 거듭 말하지만, 참변을 막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도 ‘관할 떠넘기기’와 무대응으로 아까운 시민의 죽음을 방치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김 지사는 참사 당일인 지난 15일 사고 발생 1시간 뒤에 보고받았는데도 오송 현장이 아닌 괴산댐으로 출발했다. 그가 참사 현장에 왔을 때는 참사 후 몇 시간이 지난 오후 1시가 넘어서였다. 이범석 청주시장 역시 김 지사보다 더 늦게 현장에 도착했다. 그런 그가 지난 21일 충북 도청 홈페이지에 “참으로 슬프고 참담한 심정"이며 "도지사로서 깊은 애도와 함께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사과했다. 그뿐만 아니다. ‘수해 골프’ 논란을 일으킨 홍준표 대구시장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가 대선주자급 홍 시장에 대한 홍 시장에 대한 징계 절차 개시를 시작한 상태다. 홍 시장은 집중호우 탓에 경북지역에 산사태가 났던 지난 15일 대구의 한 골프장에서 골프 라운딩했다. 물론 홍 시장의 말마따나 경북 예천 등에서 참사가 났지 골프를 친 그날 대구에는 이렇다 할 큰 피해는 없었다. 비판이 들끓자, 그는 인터뷰 및 페이스북 게시글에서 항변했다. 그는 “주말에 골프를 하면 안 된다는 규정이 공직사회에 어디 있나!”, “공직자의 주말은 비상근무 외에는 자유”라며 되받아쳤다. 국민적 비판 여론이 더 커지자 지난 19일 “수해로 상처 입은 국민과 당원 동지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고 했다. 국민의힘 윤리강령은 ‘자연재해나 대형사건·사고’가 벌어졌을 때 당직자와 당 소속 공직자는 “골프 등 국민 정서에 반하는 행위를 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국민의힘 소속 일부 시도지사의 언행은 곧 오만이 아니고서는 뭐냐 말이다. 작년 6월 지방선거 당시 시·도정 잘 이끌 테니 표를 달라며 겸손한 듯한 그 말투들은 대체 다 어디 갔나. 이들도 과거 여느 정치인들처럼 이제 화장실을 다녀왔으니, ‘내가 누군데?’하는 건가. 우스운 일은 이들 중에 사실 보도, 비판 보도, 지방의원들의 지적에 대해 자숙할 생각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 못된 정치인들이 목에 힘을 주고 걸핏하면 법적 대응이니, 강경 대응이니 하며 소인배 같은 꼴을 연출하는 모습과도 흡사하다. 과거 정권부터, 3.9 대선을 통해 갈라진 편 가르기, 선출직들의 배신감, 여야 정쟁, 하루하루 팍팍한 삶에 지친 국민을 다독이고 섬겨야 한다. 당당함이야 나무랄 수 없지만, 국민 앞에 더 겸손해야 옳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충남 서천지역 대표성이 있는 특화시장 내 주차장 등 부수 시설에 대한 정비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삼중고를 겪고 있는 특화시장 상인들을 위한 것과 시장을 방문한 관광객들의 편의·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정비사업이 추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제보자와 군에 따르면 특화시장 우측에 설치된 주차장 출입로에는 차량 주차를 관리하기 위한 CCTV가 설치된 기둥이 도로 한가운데에 방치돼 시장을 처음 방문한 차량이 불편함을 겪고 있다. 이 기둥은 지난해 11월 주차장 정비사업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8개월째 도로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다. 지난 25일 <sbn서해신문> 취재진이 주차장 출입로 한가운데 설치된 이 기둥을 살펴본 결과, 기둥에는 CCTV 3대가 설치돼 있었지만, 주차 차량을 관리하기 위해 마련된 폐쇄회로 선은 절단돼 있었다. 게다가 이곳을 지나가던 차량의 접촉사고로 인해 기둥 이곳저곳이 찌그러진 흔적이 남아있는 등 이곳을 지나가던 상당수 방문객 차량 일부가 파손된 것으로 보였다. 또 특화시장 조성 당시 마련된 화장실의 경우 출입구에는 홍보지 등이 붙어있어 지저분하게 보였고 외벽은 커다란 균열로 인해 흉물스럽게 비쳤다. 여기에 장애인 주차장의 표지판 대다수는 이곳 저쪽으로 기울어 있는 등 서천을 대표하는 전통시장 이미지가 훼손돼 있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군청 해당 부서 직원은 책임을 떠넘기는 식의 자세를 보이는 등 미온적인 민원 처리 행정서비스를 보였다. 군청 해당 부서 한 관계자는 <sbn서해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CCTV가 설치된 기둥은 올 1월에 인사로 인해 자세히 모른다”라며 “이 업무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주무관이 알고 있는 사안”이라고 답변해 CCTV가 설치된 기둥의 이전에 대한 계획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었다. 또 “화장실 입구에 균열이 발생한 올해 초 시설 담당 주무관과 안전 점검을 시행해 내부 균열이 없다고 하여 올 추경 내지는 내년도 예산을 마련해 외부 균열만 정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장애인 주차 표지판은 매번 곧게 세우는 정비를 시행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활어 배송 차량의 접촉으로 인해 기울어지고 있다”라며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를 제보한 한 군민은 “서천에 대표 전통시장이 이렇게까지 부실하게 관리되고 있는 점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라며 “최근 비수기·핵 오염처리 수·경제불황 등 삼중고를 겪고 있는 시장 상인들은 생각한다면 건축 주로써 민원 처리 행정기관으로써 마땅히 신속하게 처리해야 하는 것인데 답답하기만 하다”고 성토했다.
우리 고장 비인면 남당리 청절사에 송당 유홍 선생이 배향되어 있다. 조선을 건국한 이씨조선의 종계(宗系)의 역사가 명나라에 잘못 전달로 명나라 법전이 잘못되어 200여 년간 고쳐지지 않고 있어 조정에서 유홍을 사은사(謝恩使)로 삼아 종계변무를 관철시켰다. 이로 인해 광국일등공신에 책록된 유홍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비인면 남당리(통박골) 청절사(淸節祠)에 배향된 인물 중에 종계변무(宗系辨誣) 일등공신인 유홍(俞泓)이 있다. 유홍은 조선 중기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와 충청, 전라, 경상, 함경, 평안도 관찰사를 역임하였으며, 우의정 등을 지냈다. 기성부원군(杞城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충목(忠穆)이다. 자는 지숙(止叔)이고, 호는 송당(松塘) 또는 퇴우당(退憂堂)이다. 본관은 기계(杞溪)이고, 아버지는 생원 유관(兪綰)이며, 어머니 의령남씨(宜寧南氏)는 사복시(司僕寺) 정(正)으로 추증된 남충세(南忠世)의 딸이다. 비인 남당리 입향조(入鄕祖)인 중추부(中樞府) 첨지사(僉知事)유기창(兪起昌)의 증손자이고, 예조 판서(判書) 유여림(兪汝霖)의 손자이다. 유홍(俞泓)은 조부 경안공 유여림(俞汝霖)이 김안로(金安老)의 탄액을 받고 부친 유관(兪綰)과 함께 비인(庇仁) 남당리(통박골)8세때 이사를 와서 가난한 삶을 살았다. 유홍(俞泓) 둘째 부인 김광열(金光烈)의 강릉김씨의 딸을 신독재 김집(金集)이 부인으로 맞이하였다. 그러나 후사가 없어 율곡 이이(李珥)의 서녀(庶女)를 둘째 부인으로 하여금 후사를 이었다. 둘째 부인은 김익형(金益炯)과 김익련(金益鍊)을 두었는데, 김익련은 서녀의 자녀로 과거를 볼 수 없었기에 음직으로 찰방을 역임했다. 또한 둘째 부인의 부친 율곡 이이(李珥)는 과거시험에 장원으로 합격하였는데도 젊은 시절 한때 사찰에서 참선(參禪)의 공부를 하였던 사실을 거론하며 문제를 제시하였으나, 고시관(考試官) 유홍(俞泓)은 “처음 배우는 과정에서 과오를 범했던 것은 주자(朱子)도 면하지 못했던 일이다. 지금은 이미 유학으로 돌아왔는데 문제 삼을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하며 논의를 거쳐 장원으로 합격 선발한 사례를 두고 많은 사람이 이 일을 옳게 여겼다고 하였다. 신독재 김집은 율곡 이이(李珥)의 부친 사계 김장생(金長生)과 아들 신독재 김집(金集)으로 학문이 이어진 제자이기도 하다. 유홍(俞泓)과 율곡 이이(李珥)는 과거시험장에서의 인연과 또한 두 사람의 딸로 인하여 사위 신독재 김집(金集)을 사위를 두게 되는 인연으로도 이어졌다. 1673년 우암 송시열(宋時烈)의 김집(金集)의 묘지명에 기록되어 있다. 종계변무(宗系辨誣)란 조선 건국 초기부터 선조 때까지 200여 년간 명나라 대명회전(大明會典-명나라 종합법전)에 잘못 기록된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세계(世系)를 시정해 달라고 주청했던 사건이다. 고려 말 1390년(공양왕2) 이성계의 정적이던 윤이(尹彛)·이초(李初)가 명나라로 도망가서 이성계를 타도하려는 목적으로, 공양왕이 고려 왕실의 후손이 아니고 이성계의 인척이라 한 적이 있다. 이때 윤이 등은 이들이 공모해 명나라를 치려고 한다면서, 이성계의 가계에 관해 고려의 권신 이인임(李仁任)의 후손이라고 한 일이 있었다. 그 뒤 명나라는 이 이야기를 믿고, 그 내용을 명나라의 ‘태조실록’과 ‘대명회전 大明會典’에 그대로 기록하였다. 조선에서 이러한 종계(宗系)의 기록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1394년(태조 3) 4월이었다. 건국 직후의 조선으로서는 왕통의 합법성이나 왕권 확립에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명나라에서는 종계 문제를 계기로 이성계를 무시하고 의심하였다. 뿐만 아니라, 종계오기를 빌미로 조선을 복속시키려고까지 하였다. 더구나 이인임은 우왕 때의 권신으로 이성계의 정적이었다. 그런데 이성계가 그의 후사라는 것은 가장 모욕적인 말로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사항이었다. 그리하여 이 문제는 이후 양국 간에 매우 심각한 외교 문제가 되었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유홍(俞泓)은 1587년(선조20) 10월 사은사(謝恩使)로 명(明)나라 북경(北京)에 갔는데, 이때 조선에서는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잘못된 종계(宗系)를 시정해달라는 <종계변무(宗系辨誣)>를 요청하였다. 이전부터 조선에서는 13차례에 사신을 보내 명나라에 종계변무를 요청하였으나, 명나라에서는 명나라 태조의 유훈(遺訓)이라며 정정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결국 사은사 유홍(俞泓)은 종계를 바로 잡아주겠다는 명나라의 허락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대명회전(大明會典)’이 아직 반사(頒賜-황제가 내려줌)되지 않고 있었으므로 선조는 유홍에게 명나라 조정에 청해서 거의 완성된 ‘대명회전’을 얻어오게 하였다. 유홍(俞泓)이 예부(禮部)를 찾아가 이를 청하였는데, 예부에서는 아직 황제의 어람(御覽)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먼저 주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그러나 유홍(俞泓)은 머리를 땅에 쪼아 피를 흘리며 간청해 명나라를 감동시켰다. 유홍(俞泓)이 거듭 요청한 끝에 예부 상서(尙書) 심이(沈鯉)가 그 정성에 감동하여 제본(題本)을 갖춰 순부(順付-내려줌)할 것을 주청하였다. 이에 황제가 허락하여 대명회전(大明會典)이 특별히 하사되고 칙서까지 내려졌다. 1588년(선조21) 조선의 숙원 사업이었던 종계변무를 이루고 ‘대명회전’을 가지고 돌아온 유홍(俞泓)은 종계변무(宗系辨誣) 일등공신(一等功臣)에 책록되고 예조판서에 임명되었다가 의정부 좌찬성(左贊成)으로 승진하였으며, 의금부 판사(判事)를 겸직하였다. 당시 ‘대명회전’의 한 질을 받아온 유홍의 소식에 대해 선조가 얼마나 기뻐하였는가는 ‘선조실록’ 선조21년 3월 28일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다. “수백 년 마음 아팠던 응어리가 깨끗이 씻기어, 조상으로 하여금 아버지가 없다가 아버지가 있게 되었고, 임금이 없다가 임금이 있게 함으로써, 우리나라 수천리가 비로소 인류(人類)를 되찾았다. 나는 이제야 할 말이 있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당시 국왕 선조(宣祖)는 1587년 9월 13일 중국 황제에게 보내는 조공품(朝貢品)인 방물(方物)을 도둑맞고, 자금성 동남쪽으로 흐르는 개울인 옥하에 지었던 사신들의 전용 객관인 옥하관(玉河館)이 불에 탄 것 때문에 이유(理由)를 말하고 사죄(謝罪)하는 진사사(陳謝使)로 배삼익(裵三益)을 차임하여 북경에 보냈는데, 명국(明國) 황제 신종(神宗) 만력제(萬曆帝)가 우리나라에서 지성으로 사대(事大)한다 하여 귀국하는 유홍(俞泓)에게 칙서를 내려 표창하고, 또 망룡의(蟒龍衣)를 하사하였다.” 1588년 5월 2일 선조는 모화관(慕華館)에 나가 칙서와 망룡의(蟒龍衣) 받았다. 선조는 사은사 유홍(兪泓)에게는 차례를 건너뛰어 오르는 가자(加資)인 초자(超資)에 전(田) 30결(結)과 노비(奴婢) 5구(口)와 가사(家舍), 무명베인 정목(正木) 30동(同)을 하사하였다. 그 후 1592년(선조25) 4월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선조가 관서방면으로 파천(播遷-도성을 떠남)하려고 하니, 유홍(俞泓)이 서울을 고수하여 사직(社稷)과 함께 죽을 것을 상소하였다. 그해 5월에 우의정에 임명되어 신성군(信成君)과 정원군(定遠君)을 모시고 평안도로 갔으며, 선조가 평양을 떠나 영변부로 향할 때 선조를 수행하였다. 그런 가운데 그해 6월 유홍(俞泓)은 선조에게 자신은 노쇠하여 요동으로 갈 수 없으니 세자에게 보내달라고 청하였고, 선조의 재가를 받았다. 이후 서울에 거주하며 우의정(右議政)의 업무를 보던 유홍(俞泓)은 수성대장(守城大將)이 되어 불타 버린 도성을 소제(掃除)하고 민심을 수습하였다. 그런 가운데 선조가 서울로 돌아온 후 사헌부에서는 유홍(俞泓)이 도체찰사를 역임하던 당시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다며 탄핵하였고, 선조는 어려운 시기를 함께 헤쳐나간 신하라며 그를 옹호하였다. 이듬해인 1594년(선조27) 1월 유홍(俞泓)은 해주(海州)에서 중전(中殿)을 모셨으며, 그해 11월 좌의정(左議政)에 임명되었는데, 이때 사헌부로부터 정승의 지위에 오르고는 자신의 재산을 증식하는 것에만 급급할 뿐 백성들을 돌보지 않는다며 체차 해달라는 논핵을 받았다. 선조는 대신을 가볍게 체차할 수 없다며 거절하였으나, 사간원과 홍문관 등에서도 거듭 탄핵을 하는 바람에 유홍(俞泓)은 좌의정 자리에서 물러났고 그해 12월 25일 해주 우사(寓舍-임시거처하는집)에서 병으로 졸하니, 향년(享年) 71세였다. 원래의 묘소는 임진왜란 중인 1595년(선조28) 2월 고양에 임시로 조성하였으나 전쟁이 끝난 후 1612년(광해군4) 12월 현재의 경기도 하남시 하산곡동 261번지로 이장하였다. 두 명의 부인과 합장되어 있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충남 서천지역이 지난 13일부터 18일까지 내린 폭우로 인해 농경지가 물바다로 변했다. 특히 장항읍은 지난 14일 내린 310㎜의 폭우로 솔리천의 물 빠짐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아 일부 구간이 범람하는 등 시가지를 제외한 농경지 대부분이 침수됐다. 또한, 화양면도 이날 306㎜의 폭우가 내린 가운데 금강물의 배수가 해수 수위 밀물 때를 피해 배수가 되면서 농경지 대부분이 침수 피해를 봤다. 군에 따르면 지난 13일부터 18일까지 집중호우 피해는 2,237㏊ 농경지 침수, 6㏊ 과수 낙과, 마을안길 사면 유실, 토사유출로 축대 및 옹벽 붕괴, 일부 주택 손실 등이다. 다행히 전파되거나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이 기간에 내린 누적 강수량 평균 457㎜를 나타내면서 7월 한 달 평균으로는 521㎜의 강우량을 기록했다. 이는 최근 10년간 평균 강우량의 약 491㎜를 반기 만에 이미 넘어서는 수치다. 이 기간 서천지역에서 가장 많은 강수량을 기록한 곳은 판교면으로 509㎜로 나타났으며 뒤를 이어 장항읍이 505㎜를 기록했고 가장 적은 강수량을 보인 곳은 마서면 399.5㎜로 조사됐다. 이밖에 화양면(497㎜), 서면(465.5㎜), 서천읍(463㎜), 마산·시초면(456.5㎜), 한산면(452.5㎜), 문산면(436㎜), 종천면(430.5㎜), 기산면(428㎜), 비인면(411.5㎜) 등 순으로 누적 강수량을 보였다. 농경지 침수는 서면이 450㏊로 가장 많았고 종천면이 340㏊로 뒤를 이었으며 서천읍이 2㏊로 가장 적은 농경지 침수 피해를 봤다. 또 화양면이 300㏊를, 장항읍이 250㏊를, 시초면 210㏊를, 기산·한산면이 200㏊를, 마서면이 125㏊를, 마산면이 100㏊를, 문산면이 15㏊를, 판교면이 706㏊를, 비인면이 5㏊ 등 순으로 농경지가 침수됐다. 작물 침수 및 도복 피해는 총 32.74㏊로 조사됐다. 작물 침수 피해로는 서면 콩 재배지 30㏊가 침수 피해를 봤으며 마산면 블루베리·고추·방울토마토·콩·참깨 재배지 21㏊가 침수됐다. 이밖에 장항읍이 고추·고구마·콩·참깨·기타 채소 재배지 4.5㏊를, 문산면이 쪽파·부추·콩 재배지 2.8㏊를, 판교면이 사과·복숭아·고추 재배지 침수 1.14㏊와 콩·옥수수·들깨 0.7㏊가 도복 피해를, 서천읍이 포도·콩·기타 채소 재배지 1.4㏊가 침수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군은 이날 지속적인 폭우로 인해 장항읍 원수삼거리에서 동백대교 진입로 구간이 침수돼 차량 통행을 막았으며 수위가 높아진 서면 ‘주항저수지’ 인근 주민의 대피 대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또한, 장항읍 장암리 365-1번지 도로 사면 유실에 따름 토사를 정리했으며 서천읍 화성리와 군사리에 있는 주택이 반파 및 일부 파손해 거주 주민을 인근 경로당으로 대피시키고 구호 물품을 지급했다. 아울러 남당~성산 간 도로 사면이 유실돼 도로를 차단하고 도로 토사와 암석을 정리했으며 비인면 남당리에 있는 빈집 옆 옹벽이 붕괴해 출입을 통제했다. 이밖에 장항읍 원수농공단지 사면이 붕괴해 임시배수로를 신설하고 통행 차단 및 추가 붕괴 우려를 위해 방수포를 설치했으며 문산면 신농리 도로 주변 사면 유실에 대한 조치와 문산면 구동리 지반침하로 인한 도로옹벽 파손으로 인한 차량 및 통행 접근 차단을 조치했다. 특히 군은 폭우로 인한 위험지역 8개 읍면 23개소의 총 42명의 주민을 인근 경로당 및 친인척 집 등으로 대피시키기도 했다. 또한, 군은 지난 16일 13개 읍면에 걸쳐 우선 예비비를 2억2,000만 원을 배정하고 응급 복구에 신속히 대응했으며 필요시 추가 예산을 지원에 나섰다. 아울러, 지난 17일부터 관내 97여단 1대대의 병력을 지원받아 장비 투입이 어려운 주택 옆 토사를 제거하고 있으며, 주민들의 일상 회복을 돕기 위한 다각적 지원을 펼치고 있다. 이와 관련 김기웅 군수는 “주민 생활과 밀접한 피해들이 많은 만큼 조속히 응급 복구하여 군민들의 호우로 인한 불편을 최소화하도록 전 행정력을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후쿠시마 원전 오염처리 수 해양 방류와 관련한 각종 괴담이 난무하면서 수산물 소비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수산업의 경제 비중이 큰 서천지역의 내수경제에도 타격이 오고 있다. 정부가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처리 수를 해양 방류하는 것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일본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입증을 근거로 원전 오염처리 수를 해양에 방출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는 한, 정부로서는 마땅히 대응할 방도가 없다. IAEA의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 오염처리 수의 해양 방출은 과학적으로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는 IAEA의 ‘과학적 안전’을 의미하는 것이지 ‘사회적 안전’까지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과학적 안전’을 입증한다고 하더라도 사회가 끌어안아야 할 심리적 우려를 떨치기에는 원전 오염처리 수 해양 방류라는 주제는 너무 무겁다. 정부나 서천군이 나서서 아무리 “우리 수산물은 안전하다”라고 설명해도 국민이 느끼는 일말의 불안감은 수산물 소비 심리 위축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여기에 일부 정치권에서 정치적 이해득실만 계산한 나머지 근거 없는 각종 괴담을 퍼트리고 일부 정치인들마저 이에 부화뇌동하고 있어, 수산물의 소비 심리는 더욱 위축되어 가고 있다. 수산물 소비의 비수기 탓도 있겠지만, 아직 원전 오염처리 수 해양 방류하기 전부터 이미 서천지역 수산물 시장 등 수산물 유통업계는 손님의 발길이 끊겼다고 아우성친다. 이에 정부와 서천군은 우리 수산물이 방사능 오염으로부터 안전한 관리로 소비자들에게 입증해야 할 의무가 있다. 서천군은 서천 산 수산물에 대해 수산물 방사성 안전성 검사를 지속해서 시행하고 있으며 관내 대표 위판장 4곳에서 방사능 안전성 검사 등을 정기적으로 시행할 방침도 밝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서천산 수산물의 안전성을 알리는 전방위적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서천산 수산물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는 신뢰를 얻기 위해 수산물 유통 현장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휴대용 방사능 검사기기를 지원해야 한다. 즉 민관 합동으로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 ‘사회적 안전’ 심리 회복을 통해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자는 것이다. 국제원자력기구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처리 수 해양 방류로 인한 방사능은 인체에 유해가 없다고 과학적으로 입증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대부분은 근거 없는 괴담에 현혹되어 수산물 소비를 외면하고 있다. 지난날 수입 소고기 괴담, 사드 괴담 등으로 끊임없이 사회불안을 일으켰던 일부 정치 세력들이 다시 근거 없는 괴담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유포함으로써 수산업계를 고사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이와 관련 정부의 대응이 미약했던 점도 지적하고 싶다. 괴담이 사회적으로 통용되었기 때문에 괴담은 재차 확대 재생산되는 것이다. 괴담은 해일과 같아서 이미 우리 사회 저변을 훑고 지나가면 그때는 수습하기 곤란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괴담이 괴담에서 끝날 수 있도록 그리고 더 이상 수산물에 대한 소비 심리가 위축되기 전에 정부와 서천군은 수산물 소비 촉진을 위한 전국적인 캠페인을 통해 소비자들의 우려를 종식해야 한다. IAEA의 이해하기 힘든 과학적 설명은 일반 소비자들의 우려 해소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서천지역 수산업계가 돌이키기 어려운 혼란에 빠지기 전에 사회 지도층부터 솔선수범해 수산물 소비 촉진 운동을 전 군민 상대로 전개해야 한다. 8월 중 후쿠시마 원전 오염처리 수 해양 방류에 앞서 서천산 수산물의 안전성을 홍보하는 대대적인 수산물 소비 촉진 캠페인이 이뤄지길 바란다.
주말 내내, 그리고 지난 18일 오전에도 내 고향 충청을 비롯해 전국에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폭우로 많은 분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습니다. 특히 오송 지하차도 사고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는 매년 이런 일을 겪습니다. 이를 겪을 때마다 참 무력감을 느낍니다. 저는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고 여러 번 읽었던 책 한 권을 펼쳐 들었습니다. 로마의 귀족 보에티우스가 쓴 ‘철학의 위안’입니다. 평생을 화려하게 살다가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사형 판결을 받고 옥사한 사람입니다. 이 책은 그가 옥중에서 자신의 급전직하한 삶을 돌아보며 쓴 책입니다. 보에티우스는 운명의 속성에 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를 슬픔과 절망의 수렁 속에 던져 넣은 것은 무엇인가? 운명의 여신이 너를 배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변하는 것이야말로 운명의 정상적인 행위이며 그녀의 참된 본성이다.’ ‘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부유한 자가 억제할 수 없는 황금 욕으로 인해 부를 아무리 많이 거두어들인다 할지라도 그는 날마다 마음을 갉아먹는 근심과 더불어 살 것이며, 그가 죽게 되면 변덕스러운 그의 재물은 그를 저버릴 것이다.’ ‘높은 지위’에 대해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면 그 지위가 그를 명예와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사실은 그 반대이다. 높은 지위는 그들의 사악함을 제거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드러낸다. 만일 그들이 높은 지위에 올라 유명해지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저열함은 덜 드러날 것이다.’ 보에티우스는 ‘권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시라쿠스의 왕 디오니시우스는 부하 한 사람이 그에게 왕좌의 부유함과 행복에 대해 과장되게 말하자 화려한 향연에서 머리카락 한 올로 칼을 매달아 놓은 다음 그를 그 밑에 앉아 있게 함으로써 왕좌의 두려움을 일깨워 주었다. 왕들은 근심으로부터 해방되어 살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권력을 탐하는 것이다.’ 그는 ‘명성’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이렇게 설명합니다. ‘어떤 사람이 큰 명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웃 지역의 사람들은 그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대중으로부터 평판을 얻는 것은 우연한 일이며 그 평판은 언제라도 잃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육체적 쾌락’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육체적 쾌락을 즐거움의 원천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육체적 쾌락은 종종 큰 질병과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다. 쾌락의 끝이 슬픔이라는 것은 방탕함을 회상하는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보에티우스는 이 모든 것을 ‘거짓 행복’이라고 규정하고 ‘진정한 행복’은 철학자들이 추구하는 최고선(Supreme good)이라고 결론짓습니다. 최고선은 소크라테스가 주창한 이래 그리스, 로마 철학자들의 지향점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 지점에 도달한 사람이 없습니다. 저는 보에티우스의 결론에 대해 답답함을 느낍니다. 옥중에 갇힌 보에티우스에게는 아무런 선택지가 없었을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그는 정신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최고선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정신적 승리의 도피처로 삼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지적인 최고선을 강요하는 것은 불가능을 강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결론을 대단히 높이 존중하지만, 우리가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낍니다. 또 저는 뮤지엄산에서 현재 전시 중인 ‘안도 타다오의 청춘’전이 생각났습니다. 전시장 초입에는 모형 푸른 사과 2개와 함께 사무엘 울만의 시가 적혀 있었습니다. 제목은 ‘안도 타다오의 청춘’ 2019년 작입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열정을 말한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한 정신이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는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어가나니’ 익히 아는 시지만 오늘 아침 이 시를 읽어 보니 다시 용기가 생깁니다. 제가 요즘 의지, 상상력, 열정이 식어가고 있었는데 내면에서 다시 불길이 서서히 타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가 딛고 있는 발판이 허물어 내릴 때도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한 정신’을 부여잡고 있으면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옛 서천군의 진산은 천방산이다. 백제 때 서천군의 치소는 천방산 자락 문산면 신농리(왜멀)로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하여 멸망하고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처 조선시대에는 남산에서 금년도 신청사로 이전하기까지 서천읍 군사리에 500여년의 치소로 자리하여 왔다. 천방산이 남기 문화유산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우리고장 천방산은 서천군의 명산으로 백제시대 때 서천군(설림군-舌林郡)의 진산(鎭山)이었다. 진산이란? 난리를 진압하고 국가(고을)를 지킨다는 뜻이 담겨있다. 그래서 그 고을의 주된 산을 진산이라 한다. 또는 진호(鎭護)라고 하였다. 진산을 배경으로 그 고을에서 훌륭한 인물이 태어나고 고을이 발전하면서 문화가 형성되며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을 남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옛 문헌에는 천방사(千方寺)로, 현재는 천방사(千房寺)로 표기하고 있다. 서천군 판교면, 문산면, 시초면 등 3개 면에 걸칠 만큼 산자락이 넓고 큰 서천 제일의 산이다. 천방산은 동·서·남 방향으로 7개의 봉우리가 둘러쳐 있고 동·남·북 방향이 훤히 트여 시원한 풍광을 자랑하는 영산(靈山)이다. 좌청룡 우백호인 듯 천방산 정상을 중심으로 좌우로 서 있는 봉우리들은 남으로 가면서 5개의 봉우리가 마치 병풍인 듯 둘러쳐진 모습이 있어 아늑한 천방산은 서북에 동북 방향으로 펼쳐진 시원한 풍광이 함께하고 있어 좋은 곳이다. 그렇다면 우리 고장 명산이며 옛 서천군의 진산인 천방산은 오늘에 무엇을 남겨 놓았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1. 천방산에 천 칸의 큰 사찰인 천방사(千房寺)를 짓고 하늘에 제사 지냈다. 천방사(千房寺)는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전설에 의하면 백제 사비성을 향하던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흐린 날씨와 풍랑으로 인해 사비성으로 진격하지 못하고 발이 묶이게 되었을 때, 그 앞을 지나던 도승이 “이 산에 천 칸의 집을 짓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군사들이 무사할 것”이라 예언하였다고 한다. 그에 따라 소정방은 산에 천 칸의 집을 짓고 날씨가 맑아져 사비성으로 진격해 백제를 멸망시켰다고 한다. 그 뒤에 소정방은 천 칸의 사찰을 짓고 천방사라 하였고, 산 이름 또한 그에 따라 ‘천방산’이 되었다고 한다. 2. 천방산 신농리(왜멀-옛 왕야리)는 백제시대 때 서천군의 옛 고을 치소(治所-다스리던 곳) 천방산 아래 음적사(陰寂寺)로 가는 길목에 있는 신농리는 백제시대 때 설림군(舌林郡)의 치소였다. 조선시대에는 왕야리(旺野里)로 불렀고. 그곳은 설림군의 치소로, 뒷산이 바로 설림군의 진산(鎭山)이 천방산이다. 660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한 후 통일신라시대 때 설림군의 치소는 오늘날 문산면 문장리 화리(禾里) 마을로 이전하고 서림군(西林郡)으로 치소를 이전하기도 하였다. 3. 천방산 옛 대둔사(大芚寺)에서 목은 이색(李穡) 선생이 공부하던 곳 천방산 자락 음적사(陰寂寺)는 대둔산(大芚山)으로 불렀다. 목은 이색(李穡) 선생의 독서처가서(讀書處歌書)에 고려 충목왕 원년(1345년) 선생의 나이 18세 때 대둔사(大芚寺)에서 공부하였다고 한다. 가정 이곡(李穀)의 가정집(稼亭集)의 기록을 보면, 목은 이색(李穡) 선생의 부친이신 가정 이곡 선생께서 원나라에서 벼슬을 하고 있을 때 아들인 목은 이색(李穡) 선생한테 글 읽기를 부지런히 해야 한다는 시(詩)를 보내왔다. 시(詩)에 이르기를, “남아가 벼슬을 하려면 제왕도에서 해야 될 것이고/ 출세를 하려면 두루 노력 해야만 할 것이다/ 네가 공자님 말씀에 천하가 적다함을 알겠느냐/ 오직 몸은 태산같이 높은데 있어야 함을 말함이다/ 30세 전에 글 읽기를 게을리 하여 / 늙은 뒤에 탄식한들 무엇하랴/ 너는 이제 분초를 아껴 공부해야 하느니/ 그렇지 않으면 부귀는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함과 같으니라” 했다. 이로 인하여 부친의 뜻을 받들어 글 읽는데 부지런히 하였다. 4. 서림 이씨 중시조 이언충(李彦忠)의 묘소가 자리한 천방산 서림 이씨의 중시조 이언충(李彦忠)의 묘소는 음적사(陰寂寺) 바로 뒷산에 자리하고 있다. 서림 이씨(西林李氏)의 시조는 문충공(文忠公) 이익존(李益存)이다. 시조로부터 20세손인 이언충(李彦忠)이 서림 이씨 중시조(中始祖) 이다. 이언충(李彦忠)은 서림(西林-옛 서천군) 사람으로 충선왕(忠宣王)이 원나라에 인질로 있는 동안 국정에 공이 있어 당시 서림군(西林郡-옛 서천군)을 지서주사(知西州事)로 지명을 승격시킨 인물이다. 또한 충숙왕(忠肅王)도 한때 원나라에 불모로 5년간 볼모로 잡혀갔지만, 조정을 안정시키고 원(元)에 대한 오해와 불신을 풀고 충숙왕(忠肅王)을 환국시키는 공로가 있어 공신에 오르면서 서림군(西林君)으로 봉했다. 5. 천방산의 봉림산은 혹심한 가뭄이 있을 때 기우제를 지낸 영험(靈驗)의 산 옛날에는 혹심한 가뭄으로 농작물관리 등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는 서천군수가 천방산(봉림) 아래 용좌암(龍座岩)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한곳이다. 몇 년 전에도 문산면에서는 천방산에서 비를 내려줄 것 염원하는 기우제를 지낸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곧바로 잠시나마 많은 비를 내려주었다. 6. 천방산 아래 북산리는 송석후(宋錫後)를 모신 향현사가 있었다. 북산리는 진천송씨(鎭川宋氏)가 대대로 세거하는 마을이다. 명산을 배경으로 많은 인재를 배출한 마을이다. 송석후(宋錫後)는 지방에서 후학을 길러내며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향선생(鄕先生-지역의 선생)이라 부르면서 향현사(鄕賢祠)를 세워 배향하였으나 나라에서 금지해 훼철되었다. 송석후(宋錫後)의 5명의 아들이 과거에 합격하여 5자등과(5子登科) 집안으로 널리 알려졌다. 송석후의 선조 묘소가 북산리 뒷산 봉림산 아래에 있는데 명당자리로 알려져 있다. 집안의 일화로 5명의 아들이 과거시험을 보면 소식이 오기 전에 미리 산소가 소리를 내어 울어 합격 소식을 전해 주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송석후(宋錫後)의 장남인 송도함(宋道涵)이 병조좌랑(兵曹佐郎)으로 있을 때 장희빈으로 인하여 인현왕후가 폐위가 되던 날 교문(敎文-교지의글) 작성을 명하자 붓을 던지고 경색하며 말하길 “내 손을 끊을지언정 글을 쓸 수 없다”하고 조의를 찢고 그날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 이곳 천방산 아래 북산리로 돌아왔다. 7. 천방산의 천방사(千房寺)는 국가의 왕족들이 운영하던 사찰 천방사의 유래는 백제 때 당나라 소정방의 전설로 내려오지만 언제 창건되었는지 정확한 문헌이나 기록은 없다, 조선시대는 유교 국가로 불교를 배척하는 억불정책을 하였다. 그러나 일부 왕족들의 궁가(宮家)에서는 별도로 원당(願堂)인 사찰을 운영하였다. 우리 지방 서천군 지역 천방산에 있는 천방사(千房寺)도 궁가의 원당(願堂)인 사찰로 운영하고 있었다. 이러한 궁가의 원당의 사찰은 관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 지방을 다스리는데 어려운 대상이었다. 조선 효종 3년(1652) 12월 7일 서천군수 이무(李袤)의 조정에 올린 상소를 보면, “궁가에서 떼어 받은 땅은 일찍이 임자가 있던 땅이니, 어리석은 백성이 어찌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중략) 또 고을 경내에 천방사(千方寺)가 있는데 이 또한 궁가의 원당(願堂)이 되었으므로 승려들이 기세를 부려 사람들이 감히 가까이 가지 못하니, 밝은 세상에서 어찌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생략)”라고 당시 천방사 중들의 피폐상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천방사에 승려들의 변란 사건이 발생하였다. 현종 5년(1664) 12월 13일 서천 천방사(千方寺)의 승려들이 관의 명령을 따르지 않자 충청감사(忠淸監司) 이익한이 한산군수 신숭구로 하여금 우두머리 승려를 잡아들이게 하자, 승려 수백 명이 조총을 갖거나 활을 지니고서 지형이 험한 곳에 웅거하여 저항하였다. 또한, 화약으로 천방사를 불태우고 또 침노한 벼슬아치의 집을 불 질러 그 분을 풀기도 하였다. 영장 양일한은 승려 3명을 잡아 혹독히 형문을 가하여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게 하였다. 이러한 사건이 일어나 문제가 되자 조정에서는 병사를 동원하는데 조정에 보고하지도 않고 병사를 징발한 죄를 물어 감사와 영장을 잡아들이고 한산군수 신숭구는 파직하였다. 천방사가 빈대가 많아 중들이 사찰을 떠났다는 구전의 일화들은 당시 서천 사람들이 이 사건을 보는 민중 의식이었고, 그것이 전설로 우리에게 남겨져 있다고 생각해 보면 참으로 의미 있는 역사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천방사는 승려들의 변란이라는 이러한 사건의 계기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8. 복설되지 못한 건암서원 우리 고장 문산면 건암리(建巖里)에 명곡(鳴谷) 이산보(李山甫), 중봉(重峯) 조헌(趙憲), 그리고 풍옥헌(風玉軒) 조수륜(趙守倫), 그의 아들 창강(滄江) 조속(趙涑)을 배향하기 위해 세웠던 건암서원이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한산의 문헌서원(文獻書院)과 함께 강제로 훼철되었으나 한산의 문헌서원은 1969년 복설되었고 건암서원은 아직까지 복설되지 못했다. 건암서원의 현종 3년(1662년)에 지방의 유림의 공의로 명곡 이산보, 의병대장 중봉 조헌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금의 문산면 명곡리(鳴谷里)에 창건되었다. 서원은 공식적인 사액서원(賜額書院-인가된 서원)은 아닌 사우(祠宇)성격인 서원이었다. 이러한 관계로 건암서원(建巖書院) 또는 명곡서원(鳴谷書院)이라는 두 개의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건암서원은 문산면 건암리로 이건하고 국왕으로부터 사액된 이후에는 건암서원이란 서원명이 따랐다. 명곡리에 자리 잡았던 사당인 명곡서원은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당시는 명곡정사(鳴谷精舍)로 기록하고 있다. 명곡정사 즉 명곡서원(사당)이 자리하게 된 것은 이곳은 명곡(鳴谷) 이산보(李山甫)가 양모(養母)조씨(趙氏)가 1578년 12월 19일 사망하자 여막(廬幕)을 짓고 3년간 시묘살이 하였던 장소였다. 그 여막의 자리 옆에 명곡 이산보 양모(養母) 조씨와 양부(養父) 이지영(李之英)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1579년에 세워진 양부모(養父母) 묘비의 기록을 보면, 양모 조씨가 선조 11년(1578년) 사망하자 당시 벼슬이 정랑(正郞)이었던 이산보(李山甫)가 상복(喪服)을 입고 서천 문산 명곡으로 돌아가서 묘 곁에 여막을 짓고 시묘를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 19년(1586년) 기록을 보면 중봉(重峯) 조헌(趙憲)은 붕당의 시비와 학정의 폐단을 논한 상소문을 올렸는데, “신(臣-조헌)의 관하인 공주(公州)에 공암정사(孔巖精舍)가 있고, 서천에는 명곡정사가 있습니다. 공암정사에는 양인 서기(徐起)라는 자가 있는데 후학들을 가르쳐 생원, 진사에 합격한 사람이 많습니다… (중략) … 그러나 서천의 명곡정사는 특별히 주장하는 스승이 없는데 지난해 신(臣-조헌)이 한번 지나다가 그곳 생도들이 매우 영특하여 가르칠만한 자들이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신(臣)의 생각으로 대학자인 송익필(宋翼弼)을 찾아 명곡정사 산장(鳴谷精舍 山長)으로 삼았으면 합니다”라고 하고 있다. 송익필은 서인으로 정치가이자 예학, 성리학에 능하였고,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과 신독제(愼獨齋) 김집(金集) 등을 문하에서 길러냈다. 또한 조헌과 동연배로 절친한 친구이기도 하였다. 이를 보면 명곡정사에서도 대학자를 모셔와 지방의 자제를 교육하려 한 곳이였음을 알 수 있다. 명곡정사 즉 명곡서원은 미인가 상태에서도 교육을 담당하였기에 서원이라고도 불렀다. 고종 1년(1864년)에 제작된 대동지지(大東地誌)의 기록을 보면, 일명 명곡서원은 이산보가 거쳐하던 여막(廬幕)자리에 현종 3년(1662년)에 사우(祠宇)를 세우고 후에 조헌이 일찍이 명곡정사에 왕래하며 강의 하였기에 함께 종향(從享)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조수륜 그의 아들 조속을 함께 배향하고 숙종 39년(1713년)에 건암리로 이건하면서 공식적인 조정의 인가서원인 건암서원(建巖書院)이 되었다. 서천의 인재를 육성하였던 학문의 도장인 우리 고장 문화유산 건암서원을 다시 복원하게 되면 서천의 역사적 가치의 보존과 우리 군민 모두가 자긍심과 역사의식을 한층 높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러하니 우리 군의 문화유산인 건암서원(建巖書院)의 복원 사업(復元 事業)은 당연한 것 아닌가?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충남 김기웅 서천군수의 몽골과의 외국인 계절근로자 도입 업무협약 및 국제교류 협력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나선 순방길이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6일 군에 따르면 김 군수 몽골 순방길은 옥탈채담군 등과 외국인 계절근로자 업무협약(MOU)과 경제·문화 등의 공동 발전을 위한 것과 몽골과의 우호 증진 및 교류 확대를 위한 국제 우호 협력을 추진하고자 마련됐다. 이번 순방길은 지난 4일부터 8일까지 진행되며 사업비는 항공운임 및 체재비 등 약 1,800만 원가 소요된다. 방문단 구성은 김 군수를 비롯해 이진희 자치행정과장, 신동순 수산자원과장, 홍두표 대외협력팀장, 노현배 문화예술팀장, 박수범 수행비서, 장현기 기업인협의회장, 나승철 서천군수협 상임이사, 김대기 국립무용단장. 백유영 군립무용단 감독 등 총 10명이다. 방문단 주요 일정은 지난 4일 몽골 도착해 문화교류 협약, 5일 옥탈채담군 간 계절근로자 업무협약 체결, 6일 몽골 간 국제교류 및 협력사업 협의, 7일 특산품 김, 멸치 등 수출 관련 기업인 면담, 8일 입국 등이다. 군은 지난 5일 보도자료를 통해 몽골 정부와 상호우호 증진을 위한 문화교류 협력을 더욱 강화하기로 했다며 김 군수의 순방길에 앞서 대대적으로 몽골 방문에 대한 당위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 순방길은 결국 실익이 많지 않은 해외 출장으로 보여지는 대목들이 <sbn서해신문> 취재한 결과 확인돼 씁쓸함을 더했다. 군은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4일 몽골 정부와 국빈관에서 상호우호 증진 및 문화예술교류 협약식을 했다지만, 협약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도 없이 다만, 몽골문화예술부로부터 그간 공로 인정해 감사패만 받았다고 했다. 이와 관련 협약을 위해 몽골 방문에 나선 노현배 문화예술팀장 역시 감사패를 받은 후 실질적인 문화예술 교류는 현지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답해 사전 협의 없었던 것으로 드러나 결국, 정형적인 보여주기식 행정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또한, 지난 5일 옥탈채담군 간 계절근로자 업무협약 체결에도 문제가 도출됐다. 군은 코로나19, 구청장 변경 등으로 인해 기존 몽골 바양골구와의 계절근로자 교류가 단절돼 신규 계절근로자 인력을 수급하기 위해 옥탈채담 군과의 업무협약 체결을 통해 지역 내 고용 문제 해결에 나섰다고 밝혔다. 하지만, 서천지역은 멸치, 김 등 선별 작업에 필요한 인력 수급보다는 쪽파, 수박 등 시설재배 농가에도 인력 수급이 시급한 상황에다가 현재 수십 곳에 달하는 마른 김 가공공장에는 이미 동남아 노동자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군은 계절근로자 업무협약 체결을 통해 지역 내 고용 문제를 해결한다고 밝혀 효율성에 매우 떨어지는 순방길 행보로 탁상행정의 표상이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군은 우호 관계 성립을 통한 김·멸치 등 지역특산품 판로개척에 나선다지만, 이에 따른 경제진흥과 담당자 없이 기업인협의회장과 서천군수협 인사가 수출에 따른 법적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의문스럽다. 특히 몽골 인구 약 350만 명을 상대로 소요되는 김·멸치 등 지역특산품 수출량이 주목되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전국 48개 시군 중 외국인 계절근로자는 대다수 필리핀으로 몽골은 서천군을 포함해 4곳만이 업무협약이 체결돼 일각에서는 과연 실적인 인력 수급을 위한 것이 맞는 것이냐는 지적도 나왔다. 이는 6일 몽골 투브도 옥탈채담군과 우호 교류 협약서 안에 몽골에 진출하는 서천기업에 대한 토지 제공 등의 각종 협력을 요구하는 항목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A 시민단체는 “결국, 장현기 기업인협의회장인 특정인을 위한 것으로 특혜성이 매우 짙어 보인다는 의혹과 원예·특작 농업기술 보급 및 교류 등 농업 발전 역시 서천군도 제대로 된 사업 성과도 올리지 못하면서 이게 가능할지 의심스럽다”라고 꼬집었다. 또한, 복수의 주민은 “과연 경제 군수라 자칭하는 김기웅 군수의 몽골 순방길이 서천지역 경제 활성화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기대가 된다”라고 비꼬면서 “경제 군수답게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는 해답을 반드시 가져와야 한다”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서천군의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할 것이다” 이는 김기웅 군수가 취임 100일 맞아 군민에게 약속한 말이다. 김 군수는 지난해 10월 문예의 전당에서 열린 민선8기 비전 선포식을 통해 ‘잘사는 군민 살고 싶은 서천’ 슬로건 아래 ‘풍요로운 미래, 성장도시 서천’을 군정 비전으로 제시했다. 그는 위축된 지역경제와 인구 감소, 지방 소멸론 등 위기에 당면해 있어 이를 기회로 삼아 도약의 발판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 군수’을 부각하는 김 군수는 경쟁력 있는 서해안 관광·스포츠의 메카로 거듭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종천면 대규모 복합 리조트 조성, 전국해양스포츠제전 유치, 장항송림맥문동축제 개최 등에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길산천과 판교천을 연결하는 다목적 농수로를 개설해 서천군의 농업과 수산업, 관광산업에 이르기까지 서천 경제의 심장부를 관통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난 3일 취임 1주년 되는 시점에서 과연 지난해 취임 100일째 군민에게 약속했던 서천군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구축이 마련됐는지 묻고 싶다. 김 군수가 구상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마치 취임 1주년을 기념하듯 몽골 순방길에 나선 김 군수의 행보가 군민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보일까. 지난 3일 대전·충남지역 대다수 시장·군수들이 취임 1주년을 맞이해 이른 새벽에 나와 미화원들과 함께 생활폐기물 수거, 취약계층을 찾아 위로하는 등 지역 곳곳을 누비며 지역민과 함께 시간을 가졌다. 또한, 취임 동안 추진한 사업들의 성과를 보고하며 앞으로 추진하는 주요 사업들은 발표하는 등 지역 민의를 위한 비전을 제시했다. 이런 가운데 1주년 맞아 실익이 없는 몽골 순방길에 오른 김 군수가 경제 군수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대목이다. 우선 서천읍 시가지에 있는 점포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아 건물주가 임대 안내판을 붙이는 등 이달 들어 8개 점포가 새로운 입주를 기다리고 있다. 한 식당 종사자는 ‘사람이 너무 없다’라며 ‘코로나 정국에도 이러지 않았다’라고 걱정 어린 한숨을 내뱉고 있다. 김 군수가 약속한 서해안 관광·스포츠의 메카로 거듭나겠다는 성과물은 어디에 있는가. 이렇듯 김 군수가 약속한 ‘새로운 패러다임’ 언제쯤 보일런지 기다리는 군민은 답답하기만 하다. 조직개편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이겠다고 밝힌 김 군수의 최근 행보는 마치 서천군의 수장으로써 자기만족에 취해있는 것만 같아 씁쓸함만 더하고 있다. 물론 그간 물들어 왔던 군청 공무원들의 안일한 행정 처리로 ‘새로운 패러다임’의 구상이 늦어져 수도 있다. 그렇다고 취임 1주년이 어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1년 전 선거운동을 통해 경제 군수를 자청하며 군민의 지지를 호소한 외침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 이제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잘사는 군민 살고 싶은 서천’ 조성에 앞장서야 한다. 특정인에게 특혜성 협약이 이뤄졌다는 의혹 제기와 실익이 없는 마치 외유성으로 보이는 해외 출장은 경제 군수를 자청한 김 군수에게는 치명적인 결합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기를 바란다. 더 늦기 전에 지역 내수 경제 활성화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등 군민과 약속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야 한다. 일각에서 주문하듯이 이번 몽골 순방길이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는 성과물을 들고 떳떳하게 군민에게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명실공히 김 군수가 경제 군수라 군민은 신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