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충남 서천군 장항읍 송림산림욕장에서 오는 25일 개막할 제1회 장항 ‘맥문동꽃 축제’의 막바지 공사가 이뤄지는 가운데 축제장이 주변 정리 미흡 등으로 아쉬움을 보이고 있다. 군에 따르면 올해 첫 회를 맞는 ‘맥문동꽃 축제’는 오는 25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29일까지 5일간 장항읍 송림산림욕장 일원에서 개최된다. 이에 김기웅 군수는 지난 7일 8월 중 확대간부회의를 통해 “오는 25일 개최될 ‘맥문동꽃 축제’와 관련, 안전하고 볼거리 풍성한 축제를 위해 철저한 준비에 유기적으로 대응해달라”라며 주문했다. 그러면서 “축제장을 찾는 군민과 관광객들이 교통·주차의 편리성과 불편이 없도록 부서별 유기적인 협조와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축제는 공연, 경연, 체험 등 크게 3가지 테마와 사진전, 특산물, 전시·판매 및 소곡주·맥주가 있는 재즈 페스티벌이 열릴 예정이다. 하지만, 지난 15일 sbn서해신문이 축제가 열릴 송림산림욕장 일원을 점검한 결과, 일주일 가까이 다가온 축제장의 준비상태는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이날 군은 축제를 만끽하기 위해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위한 가설 주차장 조성과 함께 축제장 주 무대가 설치될 공간의 용지에 건설장비를 투입해 공사가 한창 진행하고 있었다. 또 조성된 주차장 부지는 비가 많이 내린 탓인지 물러 자갈을 투입하는 등 단단한 기반을 조성하는 공사로 여념이 없었다. 자칫 축제가 끝나기 전에 비라도 내린다면 주차장은 물론 축제장 주 무대 일원이 진흙탕으로 변할 수 있는 우려를 낳고 있었다. 게다가 축제장 인근 해안가에는 폭우로 밀려온 해안 쓰레기가 수십 톤이나 쌓여 있는 등 축제 개최에 따른 준비에 미숙한 모습을 보여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해안 쓰레기에는 폐타이어를 포함한 플라스틱 재질의 생활용품 등 각종 쓰레기가 뒤섞어 쌓여 있어 마치 쓰레기장을 연상케 하는 등 지나가는방문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또한, 갈대와 억새 등과 생활 쓰레기가 뒤섞인 채 뜨거운 태양 아래 썩고 있어 악취 등을 풍겼으며 일부 맥문동꽃 길과 해안가를 연결한 백사장 길 역시 고인 물로 질퍽거리는 등 안전사고에 노출된 형태를 보였다. 이날 축제장 인근에 만난 한 군민은 “현재 축제장을 보면, 제2의 새만금 잼버리 사태를 불러올 수 있는 상황”이라며 “개막이 일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지금이라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라고 주문했다. 또 한 군민은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해양쓰레기며 질퍽거리는 백사장 인도 등의 정비가이뤄지지 않으면 방문객들의 불편이 속출할 것은 물론 안전사고에 노출되는 등의 위험성으로 성공적 개최는 물 건너갈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 군 관계자는 “축제 방문객을 위한 가설 주차장과 주 무대 부지에 대한 공사는 늦어도 다음 주 월요일이면 마무리된다”라며 “송림산림욕장 인근 조성된 주차장과 주 무대 부지는 그나마 물 빠짐이 수월해 폭우가 쏟아지지 않는 한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만,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인근에 조성되는 가설 주차장은 물 빠짐이 수월하지 못해 우천 시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다소 거리가 있지만, 인근에 확보된 대체 주차장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또한, “백사장에 야적된 해양쓰레기 역시 금일 내 마무리할 예정이며 지속해서 백사장에 밀려오는 잡다한 쓰레기도 가용 인원을 투입해 정리하는 등으로 축제장 주변을 쾌적하게 조성하겠다”라고 말했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충남 강경모 신임 서천사랑장학회 이사장이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장학사업을 개발해 추진하는 등 새롭게 변신하는 장학회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강 신임 이사장은 지난 14일 sbn서해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투명하고 공정한 장학생 선발은 물론 관내 학생들이 원하는 사업을 개발하는 등 혁신을 통해 서천 발전의 초석이 되는 인재 육성에 나서겠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군민이 참여하는 군민을 위한 군민이 중심이 되는 더 큰 장학회 나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한편 역대 이사장님들의 업적에 누가 되지 않도록 야심 찬 목표를 세워 실천하고 성공 체험의 신화를 이루겠다”라고 약속했다. 또한, 강 신임 이사장은 지역 학생을 위한 맞춤형 장학사업 추진에 대한 세부 계획도 내놓았다. 그는 “각 학교 학생 대표·학부모 대표·교사 대표 등이 참여하는 간담회를 열어 진정 학생들이 원하는 사업이 무엇인지 의견 등을 토대로 다양한 장학사업의 추진 방안을 마련하겠다”라고 밝혔다. 또 “기존의 획일적인 장학금 지급에서 벗어나 취약계층 학생, 다자녀 가정 학생, 조손가정 학생 등 좀 더 다양한 계층의 장학생을 선발하는 장학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성적순으로 선정하는 장학생 선발뿐만 아니라 예체능 학생들을 포함한 지역 기여도가 높은 학생들을 위한 신규 선발 기준을 마련하는 등의 혁신적인 장학사업을 펼치겠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서림학당 원장 및 교사들과 소통의 자리를 마련해 관내 학생들을 위한 맞춤형 학습 방법과 이에 따른 애로사항 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이에 걸맞은 대책을 마련하겠다”라고 덧붙였다. 강 신임 이사장은 지난달 28일 문예의 전당 소강당에서 가진 서천사랑장학회 이사장이·취임식을 통해 이사장 직무에 돌입, 4년간 책무를 수행하게 된다. 그는 이날 취임사를 통해 “오늘의 시간이 조금은 두렵고 어설프지만, 회원 여러분의 열렬한 호응과 서천 군민의 지지만 있다면 두려울 것도 어려울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또 “서천사랑장학회는 군민이 참여하는 군민을 위한 군민이 중심이 되는 장학회로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와 저의 힘을 합쳐 새로운 내일을 여는 행복한 서천을 만들어 보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인재 육성을 위한 장학사업은 물론 학교에서 필요로 하는 장학사업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며 마지막으로 “그동안 장학회를 잘 이끌어 주신 구창환 이사장께 감사하다”라고 전했다.
충남 서천군 ‘제1회 장항 맥문동꽃 축제’가 개막일까지 이제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지난주 김기웅 군수는 확대간부회의를 통해 ‘맥문동꽃 축제’ 관련해 각 부서장에게 안전하고 볼거리 풍성한 축제를 위한 준비에 유기적인 대응을 하라고 주문했다. 김 군수 역시 하루가 멀다 하고 맥문동꽃 축제장을 찾아 축제 담당 부서장에게 미흡한 부분에 대한 보완을 요구하는 등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축제는 김 군수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탓도 있지만, 아마도 김 군수의 지역발전에 대한 평가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라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이 때문일까. 지난주부터 군은 축제장에 필요한 주차장을 비롯해 주 무대가 들어설 용지에 대한 막바지 공사에 행정력을 총동원하는 등 전력을 다하고 있다. 지역의 고유문화를 상품화한 축제는 군민의 자신감을 키우고 지역 경제발전 도약의 기반을 다지는 것으로 반드시 성공적으로 치러내야 한다. 사실상 축제 의미는 나름 지역의 문화를 창달하고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고전적 기능에서 시작되는 것은 물론 나름의 돈벌이가 되는 지역발전의 수단으로 무게중심이 이동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래서 김 군수가 각별한 애정을 쏟아붓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김 군수의 애정 어린 행보에도 축제의 성공적 개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는 최우선이 안전이라는 생각아래 많은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축제장의 일부 가설 주차장이 들어설 용지가 그동안 내린 폭우로 인해 젖어 있는 데다가 매립토마저 메마른 토질이 아니어서 현재 매립된 가설 주차장 일원의 부지 상태는 스펀지 같은 형국이다. 여기에다 자칫 많은 비가 내린다면 축제장의 주차장과 주 무대 일원은 말 그대로 진흙탕으로 변해 안전사고에 고스란히 노출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축제 담당 부서 직원들도 이를 아는지 축제가 끝날 때까지 많은 비가 내리지 말기를 빌며 축제 준비에 여념이 없다. 말 그대로 축제의 성공 여부를 하늘에 맡겨야 하는 모양새다. 혹여 제2의 새만금 잼버리 대회 사태가 벌어질까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이는 송림산림욕장 인근 용지는 폭우로 인해 아직 젖어 있는 상태인데다 이곳을 이용하는 방문객들이 물이 고여 있는 곳을 피해 뛰어다니며 맥문동꽃을 관람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이맘때면 맥문동꽃을 보기 위해 평상시보다 많은 인파가 몰리는 시점에서 볼 때 젖은 용지에 발을 디뎠다 미끄러져 넘어져 자칫 대형 사고까지 불러올 수 있는 것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주차장 역시 이런 우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갈을 이용해 주차장 겉 용지를 덮고 다졌다지만, 이 역시 많은 비가 내리면 결국, 무용지물로 변해 차량 바퀴가 빠지는 등 진흙탕에서 허우적거릴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또한, 해양쓰레기로 인한 축제장 경관 이미지 개선도 급선무다. 올해 잦은 폭우로 인해 금강에서 떠밀려 내려온 해양쓰레기는 대다수 수거해 한 곳에 모은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모습은 축제장의 경관을 매우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물을 먹은 갈대, 억새 등과 함께 생활 쓰레기까지 뒤섞여 썩는 냄새가 진동해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어 이곳을 지나는 방문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여기에 선택과 집중이 아닌 백화점식 축제로 변할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는 개성을 살려 특성화된 프로그램을 발굴, 육성하는 데 주력해야 하고 지역주민의 절대적인 참여가 관건이지만, 생각보다 그다지 과감히 선택했다고 보기에 부족한 부분이 많아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인근 지자체와 비슷한 축제를 따라 할 것이 아니라 차별화된 전략으로 행사성을 줄이고 방문객들의 참여가 많은 축제로 방향을 잡는 것 또한 잊어서는 안 되는 가장 핵심 사항이다. 어쨌든 야심 차게 준비한 제1회 장항 맥문동꽃 축제는 반드시 성공적으로 치러내야 한다. 이는 지역사회와 군민과의 약속이고, 우리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sbn뉴스=서천] 나종학 기자 = “싸가지 없다”라는 막말 파문 논란에 “그런 일 없다”라고 하던 이강선 서천군의회 의원이 결국 이해당사자에게 사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희 서면의용소방대장은 지난 15일 sbn서해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오늘 오후 3시 춘장대해수욕장에서 만난 이강선 의원으로부터 ‘싸가지 없다’ 말한 부분에 대한 사과를 받았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저 역시 이 의원에게 이번 사태로 인해 소란을 피워 미안하다고 화답했다”라고 전했다. 앞서 이 대장은 지난 14일 서천군청 앞에 집회 신고를 내고 이 의원의 무조건적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 진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지난 16일 서면지역 청년들과 함께 김경제 서천군의회 의장 면담 요구하는 등 이 의원의 사과를 받기 위한 본격적인 실력행사에 나설 방침이었다. 이와 관련 이희 대장은 “이 의원의 사과로 인해 준비한 모든 집회와 의장 면담 등을 철회한다”라며 “이번 일로 인해 군민께 심려 끼쳐 죄송하다”라고 말했다. 이번 이 의원의 막말 파문이 일단락된 배경에는 서면지역 내 일부 주민들이 나선 후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난 11일 이 의원을 만나 이 대장에게 사과할 것을 권유하는 등 이해 당사 간의 화해를 주선했으며 특히 서면 지역의 현안 해결방안 논의 등으로 원만한 합의점을 도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부사호의 태양광발전소 건립을 반대하는 이 의원과 주민들 간의 소통에 따른 결과가 아니었겠냐는 것이 일각의 해석이다. 이에 따라 이 의원의 막말 파문 사태는 이 대장이 정식적인 사과를 받음으로써 종지부를 찍게 됐다. 앞서 지난 5일 이희 대장은 이강선 의원이 지난 8일 춘장대해수욕장 특정 인명구조 안전요원을 향해 “싸가지가 없다”라는 욕설로 보이는 막말을 했다고 주장하며 무조건적 사과를 요구한 바 있다. 반면 이 의원은 “그런 일 없다. 정당한 의정활동을 폄훼하다면 법적 조치하겠다” 등으로 이 대장의 주장과 달리 상반된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최근 무분별하게 게시되는 정치인·정당 현수막에 대한 철퇴가 내려지고 있다. 지난해 국회가 옥외광고물법을 개정하면서 정치인이나 정당의 현수막에 대한 규제를 풀면서, 정당 현수막들이 국민의 공분을 산 바 있다. 이에 국회가 에둘러 법령개정에 나선다고는 했지만, 법령개정이 만사는 아니고, 정치인들이나 정당의 특권의식이 더욱더 문제다. 법령에서는 정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한 홍보목적 현수막으로 제한하고 있고, 표시기간도 15일로 정해져 있지만, 그동안 우리 정치인들은 정책보다는 낯 뜨거운 비방 문구로 현수막을 도배하고, 규정된 표시기간을 준수하지도 않고 있다. 우리 지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내년 총선에 출마가 예정된 특정 정치인이 정당 현수막임을 빙자하여 도배하다시피 현수막을 내붙여 놓고, 표시기간을 준수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정치인들의 특권의식 발로이다. 최근에는 모 정당 출신 정치인이 커피숍을 개점하면서 인도 한가운데 광고물을 설치하여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인도라면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예민하게 대응했던 같은 당 소속 정치인은 ‘나 몰라라’하며 방치하고 있는 가운데, 힘 있는 정치인의 특권이 아니냐는 군민들의 목소리만 커지고 있다. 군청 신청사의 지하 주차장은 군의회 주차장이라고 표시해 놓고, 정작 서천군의 주인인 군민은 주차장 사용이 꺼림직하게 해놓고 있다. 누가 주인인지 모르는 정치인들의 특권의식 발로이다. 공공청사의 가장 편리한 주차 공간은 민원인 주차장이어야 한다. 그것이 주인의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군사정부의 못된 권위주의와 특권의식을 스스로 답습하려는 정치인들의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정치인들이 자발적으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말은 교과서에만 나오는 이야기이다. 선거철만 되면 유권자들을 향해 90도로 폴더인사를 하며 주민의 머슴이 되겠다고 부르짖던 사람들이 막상 당선만 되고 나면 완장의 힘을 발휘하려 한다. 남이 하면 안 되고 내가 하면 어쩌랴? 하는 식의 전형적인 내로남불을 서슴없이 자행하며 온갖 불법을 특권 안에 포장하려 하는 태도가 대한민국 정치를 2류로 만들어 가고 있다. 정치가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태도가 과연 민주주의인지 묻고 싶다. 인도 한가운데 불법 광고물을 설치하는 배짱은 어디서 온 것인지 묻고 싶다. 법령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표시기간은 현수막에만 표기하면 되고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사고는 어디에서 발상하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서천군청 신청사의 지하 주차장은 의전용 필수차량을 제외하고 모두 민원인에게 돌려줘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평등한 가운데 정치인들만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국민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찌는듯한 삼복더위에 시원한 신청사 지하 주차장에 의회 주차라며 텅 비어 있는 주차장을 보는 군민들의 마음은 어떠하겠는가? 대한민국 어느 관공서에 아직도 군사독재정권의 잔해가 남아 있는 곳이 있는가? 도대체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발상이었으며 누구를 위한 의회 전용 주차장인지 돌이켜 생각해 보기 바란다. 남들이 뭐라고 손가락질해도 얼굴에 철면피를 깔고 나만 편하면 된다는 식의 생각을 가졌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모두 자중해야 한다. 정치인들 스스로가 각성하고, 정치인들의 특권의식을 매려 놓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정치는 영원히 2류를 벗어나기 힘들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충남 서천군 춘장대해수욕장을 이용하는 피서객들이 안심하고 편안한 휴가를 보낼 수 있도록 하는 범죄예방 시스템 구축에 따른 대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군에 따르면 춘장대해수욕장은 지난달 8일부터 지난 13일까지 37일간 운영에 들어가 개장 기간에 안전관리통합지원센터를 가동, 바가지요금 단속 등 물가안정을 위한 대책과 피서객의 안전과 편의를 제공했다. 개장 기간 누적 방문객 수는 약 20만 명으로 일일 평균 5,000여 명이 방문해 피서를 즐겼으며 다행히 이 기간에 주요 강력범죄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천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8일부터 지난 2일까지 112신고는 총 48건으로 일일 평균 1.6건이 발생했으며 사망사고 및 폭력 등 강력범죄 발생은 없었다. 하지만, 화장실 불법 촬영 등 여성 범죄 발생에는 여전히 허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천경찰서 생활안전계와 여성청소년계는 지난 3일 춘장대해수욕장 내 남·여 공중화장실 18개소, 공중샤워장 1개소에 불법 촬영 카메라 탐지 및 비상벨 작동 여부를 점검했다. 그 결과, 남·여 화장실 18개소에 불법 촬영 카메라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여성 화장실 1개소에는 비상벨이 고장 난 상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게다가 여성 화장실 대변기 양옆 칸막이의 빈 곳을 차단해 불법 촬영 방지하는 시설물인 안심 가림막(스크린)은 여성 화장실 7개소에 설치되지 않아 여성 범죄 피해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었다. 이에 서천경찰서는 서천군청 관련 부서에 이날 점검 결과를 통보하고 여성 범죄예방 시스템 구축을 요구했다. 이와 관련 서천군은 올해 여성 화장실 비상벨 고장 수리, 안심 가림막 설치 등의 사업비 집행은 예산 부족으로 어렵다며 내년도 사업비 확보로 범죄예방 시스템 구축에 나서겠다는 뜻을 보였다. 하지만, 사계절 동안 방문하는 이용객들의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 화장실이 범죄 피해에 노출된 채 운영되는 것이 옳은 것이냐는 지적이다. 춘장대해수욕장 운영협의회 한 관계자는 “여름 피서철 이외에도 춘장대에 힐링을 위한 방문객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 시점에서 예산이 없어 내년에 한다는 게 말이 되는 것”이라며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그러면서 “수천만 원이 들어가는 사업도 아닌 여성 범죄예방 시스템 구축사업이 예산 부족으로 내년까지 미루는 것이 과연 옳은 행정 처리인지 되묻고 싶다”라고 꼬집으면서 “기본적인 시스템 구축도 없이 어찌 사계절 이용할 수 있는 해수욕장 개발을 이루겠냐”라고 지적했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충남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천여객지회가 서천여객이 계약직 노조 인원을 늘려 정규직 노조를 와해시키려 하는 등 정규직 노조 탄압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임채순 민주노총 서천여객지회장은 지난 15일 sbn서해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서천여객이 계약직 기사를 지속해서 채용하고 노조를 결성해 인원수를 늘리는 등으로 정규직 노조 탄압이 이뤄지고 있다”라고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서천여객 사무실 직원은 전문직이라는 핑계로 임금을 인상하는 대신 정규직 기사들의 각종 수당을 폐지하는 등 부당한 처우로 근로자의 권익을 침해받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계약직 노조 위원장은 영업소장으로 발령을 내는 인사로 정규직 노조 기사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행태를 보이는 등 지속해서 정규직 노조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서천여객지회 측은 지난 8일부터 서천버스정류장에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현수막을 게시하는 등 본격적인 실력행사에 돌입했다. 이들은 민주노총을 탈퇴한 정년 퇴직자에게 계약직 채용을 보장해주는 반면 탈퇴하지 않은 퇴직자는 계약직 채용을 거부하는 등 차별을 일삼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서천여객이 서천군에서 보조금을 받아 운영하는 공익사업체에서 3개월, 6개월 등의 단기 계약서로 갑질하고 있다며 서천군은 보조금 지급 시 운전기사에 대해 관·항·목을 변경해 사용할 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반면 서천여객 측은 민주노총 서천여객지회의 주장과 달리 상반된 입장이다. 서천여객 측은 “민주노총 지회를 와해시킨다는 주장은 노동법에 위법한 사항이 아닌 합법적 사항이며 수당 및 임금 지급에 대한 건은 민주노총 지회 이외의 다른 노조와 합의된 사항이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국·도·군비 보조금 집행에 따른 감사는 충남도에서 외부 회계전문가를 통해 매년 시행되고 있어 범법 행위가 발견됐다면 당연히 법적 처벌을 받았을 것”이라며 “보조금 관련한 민주노총 지회의 주장은 틀린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계약직 고용도 회사 경영에 따른 운영 방침에 따라 시행하고 있는 점으로 오히려 민주노총 지회가 월권행위를 하는 것”이라며 “만약 범법행위가 있다면 마땅히 그에 따르는 법의 심판을 받겠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충남 서천군 문산면 은곡리(한실)에 400여 년 전에 대곡서당을 설치, 지역인재를 육성하였고 구한말 민종식이 홍주의병 창의로 봉기하였을 때 구암 구병대 선생께서 의병에 참여하고 군수품 조달에 앞장서며, 대곡서당을 제공하여 의병의 숙영지로서 역할을 제공하였던 대곡서당에 대하여 역사적 가치를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서천군 문산면 은곡리 마을회관에서 대곡(大谷-한실)마을 뒷산 450m 지점 원통산(遠通山) 중턱에 옛 대곡서당 자리에 1954년에 복원된 운포서당(雲圃書堂)이 자리하고 있다. 은곡리(한실)은 평해구씨 구맹전(丘孟傳)이 1506년 중종사화를 피해 서천으로 낙향 세거하면서 살았던 서천 평해구씨의 입향조의 제2의 고향이기도 하다. 1507년(중종 2)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했으나 당시 어지러운 시기에 사화를 피해 이곳으로 정착하여 세거하여 하면서 후손들이 번성하였다. 이곳에 400여 년 전부터 설치 운영되었던 대곡서당(大谷書堂)이 각종 역사 자료에 기록이 없어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대곡서당의 설치와 운영과정에 대한 역사적 가치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창건역사(創建歷史) 가. 창건자(創建者) : 양촌(陽村) 구희로(丘希魯1514~1574) 대곡서당(大谷書堂)의 최초 창건은 평해구씨(平海丘氏) 안장공 구종직(丘從直1404〜1477) 후손 양촌(陽村) 구희로(丘希魯1514〜1574) 선생의 강학장소로 사용하였다. 구희로 선생이 졸한 지 300여 년이 지난 1939년도 양주조씨(楊州趙氏) 송암(松庵) 조익순(趙翊淳)이 찬(撰)한 구희로 선생의 묘지명에 대곡서당에 인근 사방에서 배움을 청하는 자가 참으로 많았다고 기록한 것을 보면 선생의 서재뿐만 아니라 후학들에게도 학문을 강학하였던 서당으로 것으로 여겨진다. 57세의 나이로 졸한 후에는 강학서당으로써의 기능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 중수자(重修者) : 운포(雲圃) 구경천(丘擎天1783~1854) 구경천은 약관의 나이(20세) 1803년 낙향 당시의 혼탁한 세상을 개탄하고 세상을 등지고 고향 집에서 두문불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왕래하는 것을 하지 않고, 병풍을 두르고 학문에 전념하며 뜻을 두고 구경천은 을해년(乙亥年 1815년) 봄에 대곡서당을 건축하고 후학을 가르쳐 온 지 50년을 운영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1875년 장태현(張台鉉)의 대곡서당기(大谷書堂記)에서 밝히고 있다. 또한 후 학자 장태현의 대곡서당기의 기록을 보면 본인도 본 대곡서당을 왕래하면서 운포(雲圃) 구경천 선생으로부터 수년간의 학업을 받아 다소 학문을 익힐 수 있었다고 회고하였다. 대곡서당이 운영된 지도 50년이 지난 을해년(1875년)에 훼손되어 대곡서당을 운영할 수 없어서 운포 구경천 선생의 뜻을 이어 갈 수 있도록 당초의 서당 규모보다 더 확장하여 다시 세웠다고 기술하였다. 그 후 운포(雲圃) 선생께서 서당을 이어가면서 자신의 호(號)를 따서 운포서당(雲圃書堂)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2. 구한말 대곡서당은 민종식 홍주의병 숙영지로 제공 의병장 지산(志山) 김복한(金福漢1860〜1924)이 1917년 찬(撰)한 구암(龜巖) 구병대(丘秉大 1858~1916) 선생 묘지명의 기록과 조선환여승람(朝鮮寰與勝覽)에 조부(祖父)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구석붕(丘錫朋)이고, 구병대는 진사에 합격하였다. 1906년 민종식이 창의한 제2차 홍주의병 군사(軍師)책임을 맡았던 위관(韋觀) 김상덕(金商悳 1852~1924)의 찬장(撰狀)에서 말하길, 구병대의 행실을 보면 근면하고 부모에 대한 효(孝)뿐만 아니라, 아랫사람에게도 자애로우며 의로운 일을 위하여 일어나는 용기가 있는 자이며, 또한 후학을 강학(講學)하는 교사(敎師)로 활동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구병대(丘秉大) 선생은 일찍이 순국지사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1836~1905) 선생이 우리 고장 풍옥헌 조수륜 선생이 사시던 구택(舊宅)에서 뵙고 가르침을 청하여 송병선의 문하생이 되었고 지산(志山) 김복한(金福漢)이 찬(撰)한 묘지명에 기록되어 있다. 특히 묘비명에 1906년 4월 19일 민종식(閔宗植) 의병대장이 봉기한 홍주의병 창의 때 민종식이 이끄는 의병에 들어가 군수품을 모집하는 일을 앞장섰다. 100명의 의병이 홍산현을 함락한 후 문산면 구변동(九邊洞)에서 숙영할 때 대곡서당(大谷書堂)의 강학교사로 있었기에 대곡서당을 숙영지로 제공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것들은 구병대가 민종식의 의병에 가담한 사실을 비추어 볼 때 가능하다. 대곡서당에서 야숙하면서 스승인 구병대를 따르는 백성을 규합하였을 것이다. 홍주의병실록을 보면 구변동에서 300여 명, 그리고 문장리(文章里)에서 1박 하면서 300명을 더하여 다음날 1,000여 명의 의병이 서천읍성을 함락하고 서천군수 이종석(李種奭)을 감금하고 인장과 관청의 돈, 모슬포총, 탄환 등 무기를 탈취하고 여세를 몰아 비인, 판교, 남포를 거처 홍주성을 함락한 사실을 홍주의병록에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대곡서당(大谷書堂)은 민종식이 이끄는 제2차 홍주의병의 숙영지로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강학교사(講學敎師)를 비롯하여 주변의 백성들이 의병에 가담하는 용기를 일으키게 할 수 있도록 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대곡서당이 아닐 수 없다. 구암 구병대 묘지는 시초면 신곡리에 있고 묘지명은 지산(志山) 김복한(金福漢)이 짓고, 윤용구(尹用求) 썼다. 3. 일제 강점기 대곡서당(大谷書堂) 1910년 일제가 강제 병합하고 강점기 이후에는 대곡서당(大谷書堂)에서 지역선각자들이 구국운동의 일환으로 청년들에 대한 계몽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문산면 은곡리 평해구씨 종중에서 간직하고 있던 대곡서당(大谷書堂)에서 소화 17년(1942) 9월 26일 문산면 대곡부락(大谷部落) 국어강습회(國語講習會) 기념 촬영을 한 사진이 최근에 발견되었다. 강습대상자들은 대부분 젊은 여성들과 일부 남성 청년들이 함께 기념 촬영하였다. 강습 대상 조직은 영흥회(永興會) 조직 단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영흥회(永興會)는 동아일보 1927년 10월 4일 자 기사에, 신간영흥지회설치대회(新幹永興設置大會)를 개최하였다고 보도하였다. 1927년 11월 1일에 설치한 신간회 소속으로 신간영흥회(新幹永興會)가 각 지역에 지부를 두고 운영하였던 계몽단체일 것이라 생각된다. 신간회(新幹會)는 1927년 2월 15일에 서울YMCA 회관에서 창립한 단체로 초대 회장에 조선일보 사장 우리 고장 한산 출신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 선생이 선출되었다. 신간회는 1931년 5월 15일 전국대회를 끝으로 해산되었다. 대곡부락에 영흥회(永興會) 단체가 조직된 것은 아마 월남 이상재 선생이 신간 회장으로 연관성도 있지 아니할까 여겨진다. 4. 현재의 건물 운포당(雲圃堂) 현재의 건축물(운포당)은 1875년에 확장하여 중수한 대곡서당이 70년이 지난 1954년 2월 7일에 재건축하여(현 건물 상량문 甲午년 2월 7일) 현손(玄孫) 구병도(丘秉度1883〜1958) 선생께서 정해년(丁亥年 1947) 11월에 대곡서당기(大谷書堂記) 현판의 글씨를 썼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5. 향후 문화유산 보존관리 현재의 건물은 당시 대곡서당의 위치에 그대로 복원하였으나 운영 내지는 관리가 되지 않고 무성한 잡초만 자라고 있어 옛 선각자들이 뜻을 두고 설치하여 인재를 길러냈고 나라가 어려울 때 분연히 일어났던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대곡서당의 문화유적이 방치되어 있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늦게나마 다시 역사적 가치를 재인식하고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일이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당연한 책무가 아닌가?
[sbn뉴스=서천] 나종학 기자 = 충남 이강선 서천군의회 의원(사진)이 춘장대해수욕장 특정 인명구조 안전요원을 향해 “싸가지가 없다”라는 욕설로 보이는 막말했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다. 특히 이로 인해 상처받은 인명구조 안전요원들이 집단 사직 의사를 밝히는 등의 거센 항의와 함께 무조건적 사과를 요구하고 있어 막말 파문이 쉽게 진화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올 상반기 공무원·시민단체·동료 의원에게 갑질했다는 의혹 제기에 ‘그런 일 없다’라고 일관한 이 의원이 또다시 막말 파문을 일으키는 등 도가 지나친 직관적 의정활동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막말을 했다’라는 주장과 달리 ‘그런 일 없다’라는 상반된 입장이 나오면서 이번 사태가 쉽게 봉합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희 의용소방대장과 복수의 제보자는 이 의원이 지난 5일 춘장대해수욕장의 바나나보트 사업장과 해상안전요원 근무지를 대상으로 근무상태 등을 확인한다며 신분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허락 없이 무단으로 사진 촬영을 했다고 지난 8일 밝혔다. 이어 이들은 이 의원이 바나나보트 운영자를 향해 “바나나 보트 영업허가권이 있느냐. 불법 영업을 하는 것 아니냐”라며 따져 묻는 등 운영자 및 안전요원들과 적잖은 언쟁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의원이 특정 안전관리 요원을 향해 “싸가지가 없다”라며 욕설로 보이는 막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또 인명구조 안전요원들을 향해서는 “망루에 서 있지 않고 왜 앉아서 다리를 펴고 있냐”라며 지적했다고 전했다. 이에 춘장대해수욕장 종합안내소에서 이 의원을 만난 이희 대장은 이 의원을 향해 특정 안전관리 요원에게 ‘싸가지 없다’라 한 사실이 있느냐고 따져 물었지만, 이 의원에게 아무런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그는 특정 안전관리 요원을 향해 “안전요원 티셔츠를 벗어라. 이런 소리까지 들으며 안전요원을 할 이유가 있는냐”라며 사직을 주문했다. 이를 지켜본 다른 인명구조 안전요원 20여 명도 “이런 대접을 받고 근무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라며 “군의회가 안전요원을 다시 뽑아 운영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라며 집단으로 사직 의사를 밝혔다. 이에 춘장대해수욕장 운영관계자들이 안전요원들을 상대로 이해를 구하고 간곡히 설득하는 등으로 간신히 집단 사직 사태는 진정 국면을 맞았다. 하지만, 이 의원의 무조건적 사과가 남아 있어 막말 파문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다. 이와 관련 이희 서면의용소방대장은 “폭염에 고생하는 안전요원들에게 수고한다는 말 한마디는 고사하고 욕설로 보이는 막말로 이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이 의원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는 “더욱이 군민의 대변자라는 직분을 망각하고 군의원이라는 직책을 이용, 본인의 직관적인 판단으로 의정활동이라는 명분 아래 객관적이지 못한 마치 본인이 윗사람인 양 아랫사람을 부리듯이 고압적인 자세로 군민을 대하고 있다”라고 격분했다. 그는 이어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도 하지 않고 불법을 운운하는가 하면 인명구조 근무자에게 욕설로 치부되는 막말을 하는 등의 갑질 행위는 이번 사태의 잘잘못을 떠나 무조건 사과해야 할 것이다”라며 집단 사직의 여지를 남겼다. 반면 이강선 의원은 이희 의용소방대장이 주장하는 사실과 달리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이 의원은 지난 8일 sbn뉴스와의 서면질의를 통해 “지난 5~6일 해안 쓰레기 관련해 현장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군 해당 부서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진 촬영을 하는 등 정당한 의정활동을 한 것뿐이다”라며 “바나나보트 사업장 근무자와 안전요원을 상대로 일절 언쟁은 없었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또 “문제가 있는 해안을 상대로 지속해서 사진 촬영을 진행하는 가운데 누구냐는 질문에 ‘이강선 의원’의 신분을 밝혔고 특정 안전요원에게 ‘싸가지 없다’고 말한 그런 일은 없었다”라며 “다만 ‘예의가 없다’라고 한 적은 있고 다른 안전요원에게 업무적으로 지시나 지적을 한 것도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희 씨가 SNS(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대부분 허위사실이고 이 허위사실을 반복적으로 게시해 정당한 의정활동을 폄훼한다면 법적 조치를 통해 책임을 물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역대 충남 서천군의회 의원들의 의정활동에 비해 유난히 제9대 서천군의회 의원들의 의정활동에 대한 말들이 많다. 서천군의회 구성원인 의원들은 군민을 대신하라고 선거를 통해 뽑아준 대변자로 서천군 행정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하고 아울러 군민이 불편을 겪는 민원을 앞장서서 해결하는 책무가 있다. 다만, 군의회 의원들은 서천군 집행부의 정책을 의결하지만, 그 집행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즉, 집행부 행정의 감시와 견제만 할 수 있을 뿐 행정 집행에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천군 집행부 역시 군의회가 의결한 정책을 집행하지만, 그 의결에 관여하면 안 된다. 그래서 현행 지방자치법에 의회(의결기관)와 지방자치단체의 장(집행기관)을 분립해 상호 대등한 위치에 놓은 것이다. 하지만, 제9대 서천군의회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놓고 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9대 첫 행정사무감사 회기 기간에 이지혜 의원이 감사권을 활용, 방대한 서류제출을 요구하는 등 갑질 논란으로 뭇매를 맞았다. 이에 서천군의회와 서천군 집행부는 올해 초 의회의 서류제출 요구를 놓고 회기 중 이외 폐회 중에도 군의회 의장의 결재하에 정식 공문을 통해 서류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것에 합의했다. 합의한 결과, 현재 상황을 보면, 일부 군의회 의원들의 사무실 앞에는 서류제출과 정책 집행 설명을 위해 대기하는 공무원들도 늘어나고 대기하는 시간 역시 최소 2~30분씩 기다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최근 이강선 의원은 집행부의 정책 집행에 문제가 있다며 담당 팀장에게 마치 집행부의 수장인 군수인 양 질타를 하는 등의 의정활동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군청 A 팀장은 지난 7일 공무원 내부 통신망을 통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제목 아래 선을 너무 많이 넘은 것이 아니냐는 식의 의미심장한 글로 이 의원의 왕성한 의정활동을 비판했다. 그는 “이 의원이 35도가 넘은 폭염에 온열질환으로 3명의 사망자가 발생, 이를 예방하기 위해 드론을 투입해 예찰에 나선다는 보도기사를 보이며 ‘업무 효율성·행정력 낭비’라 질타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잘못된 행정이라는 답변 받기를 원하듯 고압적인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라면서 “혹여 사업이나 운영계획서의 결재란에 의원님을 추가해 주기를 바라시는 건지요”라고 비꼬았다. 이어 “의원님의 왕성한 의정활동에 수많은 자료 제출과 보고하기 위해 문 앞에서 2~30분씩 대기하는 직원들의 고충 또한 행정력 낭비가 아닌지 살펴봐 주시기 바란다”라고 꼬집었다. 게다가 이 의원은 지난 5일 춘장대해수욕장에서 해안 쓰레기 관련 현장 방문 시 안전요원들에게 막말했다는 의혹 제기로 물의를 빚고 있다. 이 의원은 ‘그런 일 없다. 정당한 의정활동이었다’라며 ‘정치 공세’라고 반박하고 있지만, 당시 이 의원이 먼저 묻기 전에 서천군의회 의원이라고 신분을 밝히고 낮은 자세로 임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사뭇 궁금하다. 혹여 내가 서천군의회 의원이라는 ‘특권’ 의식에 사로잡혀 아랫사람 대하듯 군민을 상대한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말이 나온 김에 서천군의회의 ‘특권’ 의식에 대한 민낯을 보자. 이달 들어 군청 신청사 지하 주차장에 의회 주차장 8면이 등장했다. 말인즉슨 의원들의 왕성한 의정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지만, 민원인 또한 이용해도 문제가 없다고 했다. 군민의 대변자로 군민을 위해 머슴처럼 일하겠다는 군의원들이 결국, ‘특권’을 누리겠다는 의식에 갇혀 나온 발상으로 볼 수밖에 없다. 대다수 군민은 지하 주차장에 민원인을 위한 주차 공간이 조성된 줄도 몰라 체감온도 35도가 웃도는 폭염 속 땡볕이 내리쬐는 외부 주차장을 이용하고 있다. 하물며 의회 사무과 한 직원은 ‘개인 생각으로는 민원인이 1층 외부 주차장을 이용하면 더 편리할 것 같다’라고 말해 더욱 끔찍했다. 과연 군의회가 군민을 대변하는 대의기관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그 직원 말대로 편리성을 말한다면, 군의원들이 군의회 방문에 수월하고 편리한 1층 외부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맞지 않는가. 군민은 땡볕에 주차해야 하고 정작 본인들은 그늘진 지하 주차장에 주차하는 것이 과연 옳은 처사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 이제라도 군의회는 ‘특권’ 의식을 버리고 군민만을 바라보며 더 낮은 자세를 갖길 바란다. 또한, 집행부 정책의 감시와 견제를 철저히 해야 하는 책무를 수행해야지만, 집행부의 정책 집행에 무리하게 관여하거나 고압적인 월권행위 역시 범하지 않길 바란다. 이를 바라보는 군민의 눈은 날카롭고 더욱 매섭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기 때문이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충남 서천군민의 머슴이라던 서천군의회 의원들이 군민 위에 군림한 것이냐는 지적이 나와 논란이다. 특히 군청 신청사를 방문한 민원인들이 30도가 웃도는 땡볕인 외부 주차장을 이용하는 불편을 겪고 있는데도 사실상 군의회 의원들의 차량 주차를 위해 8개 면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빈축을 사는 등 지역사회가 시끄럽다. 군에 따르면 신청사 지하 주차장은 장애인, 경차 등 총 42면으로 조성됐으며 이 중 최근 군의회 청사 입구 인근 8면에 의회 주차 알림판을 설치하는 등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주차장 8면에 의회 주차 알림판을 바라본 군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sbn뉴스에 제보한 한 군민은 “연일 이어지는 폭염 속에서 민원인은 땡볕이 내리쬐는 외부 주차장을 이용해야 하고 군의회 의원들은 그늘진 지하 주차장에 주차하는 것 자체가 과연 정당한 것이 묻고 싶다”라고 지적했다. 또 한 군민은 “지방선거 당시 군민을 대신해 머슴처럼 일하겠다고 외쳤던 군의원들이 군민 위에 군림하는 행태를 보니 결국, 군민이 머슴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라며 “서천경찰서 민원인 주차장 조성 공간을 보고 배우라”고 꼬집었다. 이에 군의회 사무과 관계자는 “신청사 이전 후 군의회 의원들의 출근이 매일 있고 민원들의 방문도 자주 발생해 군 집행부와 협의를 통해 의회 주차 8면을 조성하게 된 것”이라며 “꼭 의원님들을 위한 주차 공간이 아닌 민원인들도 이곳을 이용할 수 있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개인적으로는 민원인이 지하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보다는 1층 외부 주차장 이용하는 것이 민원 업무를 보시기에 더욱 수월할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또 군의회 일부 의원은 주차장 이용 시 시행하고 있는 차량 5부제를 무시한 모습도 보였다. 군은 신청사 주차장의 혼잡을 막기 위해 차량 5부제를 통해 요일별로 차량 끝 번호가 ▲월요일 1, 6번 ▲화요일 2, 7번 ▲수요일 3, 8번 ▲목요일 4, 9번 ▲금요일 5, 0번 등으로 주차장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sbn뉴스가 지난 8일 지하 주차장 현장을 취재할 당시, 김경제 의장 차량이 해당 주차 공간에 주차됐고 주차된 김 의장의 차량 끝 번호는 화요일에 출입이 제한된 7번인 것으로 나타나 씁쓸함을 남겼다. 게다가 민원인이 이용하는 주차 공간은 이미 차량으로 채워져 빈 곳을 찾아 개구리 주차를 하는 한편 의회 주차 알림판이 부착된 공간에는 의장 의전차량과 의장 소유 차량, 홍성희 의원 차량 등을 제외한 5곳은 텅 빈 곳으로 남아 있었다. 이와 관련 김경제 군의회 의장은 “군의회 의원뿐만 아니라 민원인들 역시도 해당 공간에 주차할 수 있다”라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에 대해 내부적으로 다시 한번 검토해 보겠다”라고 밝혔다.
[sbn뉴스=서천] 나종학 기자 = 막말 파문 논란에 휩싸인 이강선 충남 서천군의회 의원을 상대로 이희 서면의용소방대장이 주민소환 추진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역 정치권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이희 대장은 지난 8일 sbn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기초의원 주민소환제 관련한 서류 및 처리 절차에 대한 문의를 마치고 이강선 의원의 주민소환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의사를 밝혔다. 이는 지난 5일 춘장대해수욕장에 의정활동의 일환으로 방문한 이 의원이 해수욕장 인명구조 안전요원에게 ‘싸가지 없다’라고 막말 파문에서 비롯된 것으로, 진정한 사과도 없이 ‘정치적 타격을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라는 이 의원의 일부 언론사 인터뷰를 통한 2차 가해로 생각이 든 이 대장의 화를 더 키운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대장은 지난 6일 SNS(페이스북)를 통해 “진짜 궁금해서 여쭤보는 건데요. 서천군의회 더불어민주당은 공천할 때 뭐 보고 공천합니까. 도대체 주민들 고발하고 신고 잘하는 사람 공천하는 겁니까. 궁금합니다”라며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 같은 내용의 글을 인지했다는 나소열 전 정무 부지사가 이 대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제가 공천했다’라며 ‘정말 미안하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이번 사태가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총선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나온 나 전 부지사의 정치적 행보로 해석된다. 이에 이 대장은 나 전 부지사의 진정 어린 사과에 맞춰 이번 사태를 조용히 덮고 지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 의원이 일부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진정 어린 사과 대신 ‘정치 공세’라고 반박에 나선 것이 알려지면서 2차 가해로 판단, 이를 묵과할 사안이 아닌 그 책임을 묻고 싶은 것이 이 대장의 숙고 끝에 내린 행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장은 지난 6일을 기점으로 SNS(페이스북)를 통해 이 의원의 막말 파문과 의정활동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맹비난을 쏟았다. 그는 또 지난 7일 SNS(페이스북)를 통해 “올린 글 중 하나라도 거짓이 있다면 처벌받겠지만, 올린 글이 모두 사실이라면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 의원을 향해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여기저기 다니며 캐묻고 공무원들을 괴롭히고 있다”라며 “군의원 연봉 3,500만 원이 아깝다”라고 비난했다. 이어 “주민에게 봉사하라고 완장 채워주니 보이는 게 없냐. 어떤 세상인데 주민들에게 ‘싸가지가 없네. 영업허가가 있네 없네 하냐”라면서 “이제 와서 그런 사실이 없다는 이가 어떻게 군민을 대변할 수 있냐”라며 주민소환 추진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이에 부응하듯 일부 동조자들은 줄지어 더불어민주당 탈당 의사를 밝히면서 신청서를 제출하겠다는 등으로 이 대장의 행보를 응원하고 나섰다. 또한 한 네티즌은 “의원이 되면 다 그런가 봐요. 도대체 뭐가 그리 만들까요? 세상 사람은 다 똑같은데 진짜 잘못한 사람한테는 말 한마디 못 하면서 힘없는 사람한테만 큰소리치는 제일 못난 사람들~~~”라며 이 대장이 올린 글에 화답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 8일 sbn뉴스와의 서면질의에서 이강선 의원은 이희 의용소방대장이 주장하는 사실과 달리 상반된 입장을 내놓으며 허위사실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힌 바 있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충남 서천지역 외국인들의 안정적인 지역사회 정착과 범죄예방 활동을 위한 외국인 자율방범대 지원 대책이 마련됐다. 서천경찰서에 따르면 외국인 자율방범대는 지난 2016년 5월 남다른 주인의식 속에 범죄예방 활동 참여하고자 다문화가족 등 외국인 주민 22명의 구성원으로 출범했다. 이 방범대는 ‘내가 사는 지역에서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직접 참여해 안전하고 살기 좋은 곳을 만든다’라는 목적 아래 주 2회 외국인 밀집 지역 중심으로 범죄예방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방범대 운영에 따른 예산 부족 등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그동안 체계적인 방범대 활동에 제한받아왔다. 이에 서천경찰서는 서천군과 서천군의회를 방문, 외국인 자율방범대 운영의 활성화를 위한 예산지원의 필요성을 어필하고 이에 따른 제도적 장치 마련을 요구했다. 그 결과, 지난 1일 서천군의회가 지역사회에 민간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판단 ‘서천군 자율방범대 지원에 관한 조례’를 개정했다. 서천군 집행부 역시 이에 따라 외국인 자율방범대에 예산지원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지난 6월 기준, 서천지역에 등록된 외국인은 총 1,531명이다. 특히 등록 외국인 중 서면 660명(43%), 장항읍 439명(28%), 서천읍 104명(6.7%)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례 개정안으로 외국인들의 자발적인 자율방범대 활동이 지역주민의 다문화 인식 개선 등과 함께 치안공동체 사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서천경찰서는 기대했다. 또 외국인들의 많이 분포되어있는 지역의 치안 불안 해소가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경찰서 관계자는 “인구감소와 고령화 등으로 인한 농어촌현장의 일손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외국인 계절근로자가 입국할 것으로 전망된다”라며 “외국인 자율방범대를 가동해 맞춤형 순찰을 시행하는 등 내·외국인 주민 간 소통의 기회를 확대하겠다”라고 전했다. 한편 2020년부터 올 7월까지 서천군 외국인 범죄 발생은 총 104건으로 이중 사기 범죄가 43건으로 가장 많았고 교통 범죄가 32건으로 뒤를 이었으며 폭력 범죄가 18건, 절도 범죄가 7건, 기타 범죄 4건 등으로 나타났다.
[sbn뉴스=서천] 권주영 기자 = 최근 충남 서천지역 주택에서 침입 절도 사건이 자주 발생하는 가운데 서천경찰서가 특단의 조처를 강구하는 등 범죄예방에 나섰다. 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5~6월 서천읍에 있는 한 주택 안방 침대 밑에 보관 중인 금반지, 금목걸이, 은 40돈, 진주목걸이 등을 침입 절도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6월 마서면에서는 집을 비운 사이 절도범이 집안으로 침입해 현금 200만 원을 훔쳐 달아났으며 장항읍에서는 빈집 방충망을 뜯고 침입한 절도범에 의해 금반지, 금목걸이 등 총 580만 원 상당을 도난당했다. 또한, 서천지역에서 최근 3년간 92건의 침입 절도가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여름 휴가철(7~8월)에는 40건(36.8%)이, 연말(11~12월)에는 36건(33.1%) 등이 집중적으로 발생하였으며, 주간 시간대에는 55건(59.8%)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경찰서는 침입 절도로 강도·성폭력 등의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지역치안협의회와 함께 사업비 약 700만 원을 투입해 침입 감지시설(HOUSE-GUARD)을 본격적으로 설치할 방침이다. 이 침입 감지시설은 주민들의 범죄 불안감 증폭을 막기 위한 것으로 여성 안심 귀갓길, 외국인 밀집 지역, 침입 절도 상습 발생 지점 등 취약 지점 50개소를 선별해 설치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경찰서는 침입 감지시설 설치 희망자를 모집한다. 경찰서 관계자는 “오는 21일까지 서천경찰서 생활안전계 또는 가까운 지구대·파출소에 방문해 신청할 수 있다”라며 “신청 완료 후 범죄예방 진단 등 필요성 여부를 판단해 설치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편 침입 감지시설은 건물 외부(2층 높이)에 설치하여 태양광으로 상시 충전되고 고성능 센서가 부착되어 있어 사람 등의 물체를 센서가 인식하는 경우 LED 불빛이 점등된다. 또 ‘무단출입 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라는 음성이 송출되어 사전 경고를 하게 되며, 시인성이 좋은 설치 안내판도 추가로 설치할 수 있다.
충남 서천군 기산면 광암리 삼거리에서 화양면 추동리 방향으로 420m 지점에서 활동리를 지나 1㎞쯤에 대등리(옛 숭문북동)마을이 있다. 이곳 마을은 17세기 한집안에서 8 문장가를 배출한 고령신씨(高靈申氏) 석북 신광수(申光洙1712~1775) 4남매와 자녀들이 청빈하게 살았던 숭문동의 선대와 가족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골짜기 어귀에는 복사꽃 피어/앞마을 이웃들은 눈이 부시네./시인은 내키는 대로 길을 가노니/봄새는 제철 만나 지저귀누나./세상 길이 한 해 한 해 바뀌어 가도/천기(天機)는 하루하루 다시 살아나네/저녁 바람 흰 머리에 불어오는데/냇가에서 마음을 가누지 못하네.” 이 시는 영조 때의 저명한 시인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1712~1775)가 고향 한산의 숭문동(崇文洞-지금 화양면 대등리)에 머물 때 썼던 시(詩)이다. 복사꽃 활짝 피어 눈부신 세상이 되면 누군들 들로 산으로 꽃구경 가고 싶지 않으랴? 당시의 숭문동은 복사꽃이 만발하였을 것 같다. 1. 숭문동 입향조 순창공 신영원 고령신씨(高靈申氏) 석북 신광수의 6대조 순창공 신영원(申永源1496∽1572)이 전남 순창에서 한산 숭문동으로 정착하면서 목은 이색(李穡)의 후손 이윤수(李允秀)의 딸과 결혼하여 숭문동(활동리) 처가에서 살았다. 신영원은 아들이 어성 신담(申湛 1519∽1595)으로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하였고, 임진왜란 때 의병대장이었다. 그 후손 신호(申澔)와 성산이씨는 석북 신광수(申光洙), 신광연(申光淵)을 낳고 일찍 돌아가셨다. 보령 청라 이천령(李千齡)의 딸인 둘째 부인 전주이씨는 진택 신광하(申光河)와 여류시인 부용당신씨(芙蓉堂申氏)를 낳았다. 신광수는 아들 5명을 두었고 숭문동에서 4남매 등 조선의 8 문장가를 배출하였다. 신광수의 7대손이 신석초(申石艸-본명 應植 1909~1975)도 1950년대 한국의 대표 시인이기도 하다. 2. 석북 신광수의 생애 및 활동 석북 신광수는 영조 때 남인으로 영의정을 역임한 채제공(蔡濟恭)과 교우하였으나 벼슬길은 순탄치 못했다. 남인을 철저히 배척하는 노론들 때문에 17년간 과거를 포기하고 찌든 삶을 살았다. 모친께서 한 번만이라도 과거를 보라는 부탁 때문에 늦은 나이 61세에 기로과(耆老科)에 장원급제하여 병조참의와 영월부사를, 1775년 64세에 우부승지를 역임하였다가 그 해 파주 장릉(長陵-인조릉)의 제관으로 가던 중 찬비를 맞고 감기로 4일 만인 1775년 4월 26일 사망하였다. 그 후 장례는 6월 15일에 한산 숭문동인 신광수의 옛집 남쪽 100m 지점 장사를 지냈다. 3. 석북 신광수 새집 신축 과정 그동안 신광수의 집터에 대하여 알 수 없었다. 필자가 석북집(石北集)에서 1749년도 2월 15일자 숭문동에 신광수의 새집을 짓는 토지 축문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집의 위치와 방향 주변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때는 1749년 2월 15일에 고령 신광하(申光河)는 감히 토지의 신령께 고하나이다. 집터는 뒤로 큰 산이 등지고 동북 방향입니다. 집터의 자리는 신비스럽게 빛나며, 드높고 충만합니다, 좌우에 청룡과 백호가 자리하고 그 원기는 극에 달았습니다. 실로 이러함에 나의 집터로 열고자 하나니 새로 짓는 집이 후손들로 하여금 선조(석북 신광수)의 집이라 하게 하소서”--이하생략-- 【維太歲己巳二月己卯朔十五日癸巳。高靈申光河。敢昭告于土地之神。維嶽艮位。赫靈磅礴。爲虎爲龍。元氣所極。實開我基。先祖是宅--】 집의 방향은 뒷산 어성산(漁城山)의 높은 산을 동북방향을 등지고 남서쪽을 향하고 좌청룡(左靑龍)과 우백호(右白虎)을 갖춘 명당임을 밝히고 있다. 토지신축문은 석북 신광수가 짓고 동생 광하가 고하였다. 4. 석북 신광수 학문을 계승한 한산지역 유학자들 석북 신광수는 당대의 쟁쟁한 문인, 정치가인 채제공(蔡濟恭), 이헌경(李獻慶), 이동운(李東運)과 만년에는 정범조(丁範祖), 목만중(睦萬中) 등과도 많은 교류를 하였다. 그러나 제자로 가르친 문인들은 있었지만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한산지역인 화양면 숭문동(활동, 대등)을 비롯하여 대하리, 추동리, 육원리, 봉명리 등에 석북 신광수의 정신과 학문을 이어받은 제자들이 있었다. 추동 덕수이씨 이안진(李安眞-한산군수역임) 6세손 두실 이환모(李煥模1735∽1821), 대하리 나주정씨의 서천 입향조 정휘신(丁徽愼)의 아들 동은(東隱) 정지묵(1748∽1829), 두실 이환모의 학문은 봉명리의 굴재(掘齋) 이방규(李方珪1862∽1947)로 이어졌다. 두실 이환모는 평생 학문에 전념하였고 부친 이유의 셋째 아들로 많은 글을 남겼다. 이환모는 양죽헌 이송년(李松年-초명 이초만) 양죽헌 유고집(養竹軒 遺稿集)의 서문을, 또한 석북 신광수 아들 신석상(申奭相 1737∽1816 정산 현감 시절:1800년)도 서문을 썼고, 봉명리 굴재 이방규는 발문을 썼다. 이방규는 동강중학교를 설립한 청암 이하복(李夏馥)선생을 가르친 스승이다. 두실 이환모(李煥模)는 문집 두실오언(斗室寤言)의 문집 6권을 남겼지만, 발간되지 못했다. 나주정씨인 동은 정지묵(1748∽1829)은 신광수 제자로 평생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말년에 정지묵은 한산 고촌리 문헌서원(文獻書院)의 원장을 역임하였다. 묘소는 영모리 숭정산 선산에 자리하고 있다. 그 후손들은 대하리, 기복리에 정착하여 세거하고 있다. 5. 석북 신광수(申光洙) 진사(進士) 합격과 숭문동 문희안(聞喜宴) “도홍선(桃紅扇)은 한삼소매 툭 쳐서 날리고/ 우조영산(羽調靈山)은 당세 독보적이라네./ 작별할 때 춘면곡(春眠曲) 다시 한 가락 부르고/ 꽃 떨어지는 시절에 강을 건너 돌아가네” 이 시는 우리 고장 숭문동 고령신씨 8문장가를 배출한 사람 중 당대 최고의 문장가인 석북 신광수(石北 申光洙 1712∽1775)가 1750년 2월 늦은 나이인 39세에 진사과시(進士科試)에 합격하여 고향 숭문동(화양면 대등리)에서 과거에 급제한 자신이 자기 집으로 친구와 친척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 때 당대 최고의 명창이었던 원창(遠昌)의 부채에 써준 석북 신광수의 시(詩)이다. 당시에는 노론이 집권하고 있었기에 남인은 정계에 진출하기 어려웠다.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노론계의 인사가 아니면 과시에 합격할 수 없었다. 과거에 급제하면 삼일유가(三日遊街)를 즐겼다. 과거에 급제한 석북 신광수도 어사화를 꽂고 사흘 동안 시관과 선배, 친척을 방문하며 인사를 드리고 고향에서 문희연(聞喜宴)도 벌였다. 석북 신광수 주변에는 장안의 가객(歌客) 이세춘(李世春) 등 음악인들이 많았다. 뒤늦게 진사에 합격한 석북의 삼일유가에 친구들이 동원되었다. 노래를 좋아하는 석북에게 노래를 들려주기 위해 동원된 음악인들, 석북이 지은 시를 노래한 음악인들, 이들 각각이 이루는 교유의 방식과 내용은 달랐다. 그 현장 가운데 가객인 판소리 광대 원창(遠昌)은 석북이 노래를 좋아하였기에 39세 늦게 과거급제하고 숭문동에서 축하연을 베풀었던 것이다. 아마 이 때에 가객(歌客) 이세춘도 참석하지 않았을까. 석북은 생활이 궁핍하였기에 공연을 마치고 돌아가는 광대 원창에게 출연료를 지급할 수 없었다. 석북 신광수는 보답으로 출연료 대신 복숭아꽃이 활짝 핀 합죽선에 시 한 수를 지어 주었다. 그 시가 석북집에 남아 있다. 광대 원창은 그것을 받아 귀한 보물로 여기고 돌아갔다. 일화로는 석북이 시를 써준 부채를 가지고 궁중의 공연 때도 자랑하고 다녔다고 전한다. 석북집에 남아 있는 당시 삼일유가의 모습을 그린 시에 “복사꽃은 취한 듯 버들은 조는 듯/ 쌍적(雙笛-2개의 피리) 소리 봄바람에 말 앞에 서네/ 서른아홉 살 신진사(申進士)를 길가에서 사라들이 가리키며 자신에게 신선(神仙)이라 하네”라고 남겼다. 또한 공연장에서는 나이어린 광대도 출연하여 검무와 줄타기 공연도 함께하였다. “연화검무(蓮花劍舞) 작은 홍의(紅衣)/ 칠보(七步-줄타기)로 아슬아슬/ 돌아서며 번쩍 줄 위에서 나네/ 문득 평지로 떨어진 몸은 요지(瑤池-신선이 사는 곳)에서/ 잔치 파하고 돌아온 양”이라고 시로 당시의 모습을 남겼다. 판소리 광대 원창은 노비 신분 이였다. 영암군(靈巖郡) 종면(終面) 무덕정리(茂德亭里) 사는 남평문씨(南平文氏) 문재주(文在主)의 소유 노비로 외지에서 주인의 토지재산을 관리하는 외거노비(外居奴婢)였다. 외거노비는 생활에 자유로웠다. 이로 인하여 전국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문재주의 호적부를 보면 모친도 노비로 이름은 취매(翠梅)로 5번째 낳은 노비인 원창(遠昌-1695년생)으로 확인되었다. 당시의 거주지는 경상도 남해였으며 석북 고향에서 축하공연 당시 나이는 55세였다. 6. 석북 신광수는 청백리로 살았다 석북 신광수는 진사에 합격하였는데 영조 임금이 군을 집경당으로 불러 만나 어머니 나이가 몇인지 물어보고 하교하며 이르길 --중략-- “도정 아무개에게 장차 어머니를 모시고 오도록 하려고 하는데, 들으니 집이 없다고 하여 내가 무척이나 가련히 생각한다. 가히 중조(中朝)의 고사를 따라서 호부에 주택 1구를 사주도록 명하고, 그 어미에게 노비 각 1구씩 내릴 것이다.”라고 하였다. 군은 황공하여 상소를 올려 죽어도 감히 받지 못하겠다고 하였으나 임금이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들이 아뢰어 이르길 “신광수가 감히 받지 못하겠다는 말이 맞사오니, 일읍(一邑: 한 고을)을 주어 어미를 봉양하도록 하는 편이 낫겠사옵니다.” 하였다. 그 아룀을 옳게 여겨 즉시 순천부사를 제수하였다가 다시 영월부사로 제수하였다. 이렇듯 석북 신광수는 청백리로 살았다고 번암 채제공의 묘지명에서 기록하고 있다. 7. 장사지낸 후 10년 후 다시 개장 합장 10년 후 1785년에 번암 채제공(蔡濟恭)이 신광수 부인 묘와 합장하는 장례식에 참여한 기록이 남아있다. “내 눈물을 흘리며 이곳 묘에서 맹세한 지 십년(1785년) 눈물이 줄줄 흐른다./ 밤 상량위에 달이 뜨면 그대 얼굴이 보이네./ 어찌하여 석북(石北)은 이와 같이 오는가?/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와 황홀하게 놀았으면 하네./그대의 훌륭한 문장은 상자에 남겨두고/ 뽕나무 가래나무(고향이란 표현)의 봄 그늘 옛 산에 개장을 맞네./그대 아득하고 먼 그곳 천상의 깊은 궁궐에 모여/ 천상음악의 궁궐에서 옥황상제 가까이 하리라/” 【盟壇老淚十年 潸樑月中宵每見顔 何以得來如石北 怳然遊戲復人間 文章異氣留陳篋 桑梓春陰葬故山 遙想蘂珠宮裏會 塤箎幾許動仙班】라고 개장만사를 남겨놓았다. 개장만사를 보면 채제공이 이곳을 찾았을 때는 관직에서 물러나 서울 근교 명덕산에서 8년간의 은거 생활 시기이다. 개장식에 참석하기 위해 숭문동 재실에서 개장만사를 지은 것이다. 지금 석북 신광수의 집터 바로 아래에 1775년도 8월 4일에 터를 잡고 8월 10일에 상량문을 기록한 옛 고택이 공가로 남아 있다. 6일 만에 상량할 수 있었던 것은 신광수의 옛집을 헐어다가 재실로 급조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건물 자재를 보면 새로운 목재가 아닌 헌 집의 자재로 사용한 것으로 확인이 된다. 새로 밝혀진 문화유적에 대하여 중요한 유적인 만큼 백비(白碑)와 석북 신광수 생가지 및 재실 건물을 보존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8. 철저히 글씨 지워진 석북 신광수의 백비(白碑) 발견 숭문동 묘역에는 하얀 백비가 있다. 70여 년 전에 주변에 묻었던 백비를 2014년 시조명칭 유래비 건립 및 석북 문학제를 하면서 발굴하여 세웠다. 그동안 종중과 많은 사람이 찾아와 백비에 대하여 비석에 글씨가 없는 청백리인 신광수의 백비로 여겨왔다. 필자가 지난 2022년 9월 28일 신광수 묘역에 세워진 백비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백비가 아닌 비석에 새겨진 비문의 글씨가 철저히 지워진 사실을 발견하였다. 일부 지워지지 않은 글씨가 남아 있었다. 서울 종중에 알렸고 지워진 글씨를 판독하기 위해 충남역사문화연구원에 의뢰하여 판독작업을 의뢰하였으나 철저히 지웠기에 판독 불가로 확인한 바 있다. 비문에 새겨진 비문은 석북 신광수와 절친하였던 번암 채제공(蔡濟恭)의 문집에 석북 신광수 묘지명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문중이 족보상에도 번암 채제공의 묘비명의 비석을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음을 확인을 할 수 있었다. 글자의 수는 무려 1,900여 글자로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왜 비석의 글씨를 철저히 지웠을까? 채제공이 쓴 비문 내용에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중략—“석북 신광수가 일찍이 벼슬하지 않은 선비로 관서(함경도)의 비류강에서 배를 타고 놀았다. 하루는 맑은 물이 흐르는 절벽 아래에 정박하였는데, 관서지방 인사들이 찾아와 자리가 비는 날이 없었다. 당시 관서(關西-평안도)의 관찰사인 정휘량(鄭翬良)이 신광수의 이름을 흠모하여 객사에서 만나 교유하고자 하였다. 신광수는 끝내 가지 않았으니 그 자중함이 이와 같았다.--”라며 정휘량의 자질을 논하였다. 정휘량은 정조의 부친 사도세자를 죽이는데 앞장선 인물이다. 또한 정휘량의 조카 정치달(鄭致達)의 숙부로 정치달은 영조의 딸 화완옹주(和緩翁主)와 결혼하여 부마가 된 집안이다. 당대에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집안이었다. 그 후손들이 비석에 대하여 문제 삼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로 인하여 권력의 압박에 견디지 못하고 비문을 갈아내 훼손한 것으로 보여진다. 신광수의 장례의 상황에 대하여도 묘지명에서 밝히고 있다. 특히 동생 진택 신광하(申光河)의 행장에 묘역 옆에는 부인의 작은 묘가 좌측에 있으며, 그 해는 합장해서는 아니 되는 해로운 해가 되어 부득이 쌍분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후에도 고령신씨 집안에서는 비문을 지워버린 사연을 숨긴 채 지내오다가 70여 년 전에 땅속에 묻어버렸다가 2014년에 내용을 모른 채 청백리의 표상인 백비로 알고 다시 세웠던 것이다. 비석을 묻은 사실을 알고 있던 종중에서 다행히 알려주었기에 세상에 들어내고 사실이 밝혀지게 되어 천만다행이다. 영원이 묻혀버릴 석북 신광수의 묘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