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라. 언제까지 젊을 줄 아는가.클레오파트라 아니라 그 할애비가 살아 돌아온들 세월 앞에 장사는 없다.제아무리 잘난 여자도 결혼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희망이 없다.남은 것이라곤 딱. 하나. 독거노인 이 되는 길. 물론 지금은 아니라고 나만큼은 그럴리 없다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우기겠지만 그럴 리 없다고 철썩 같이 믿었던 그럴 리가 결국에 가서는 그랬다면. 그 인생은 문밖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는 예수의 말처럼 될 수밖에 없다. 죽어도 인정하기 싫겠지만 세상사가 어찌 골드미스 따위의 인정하고 안하고에 좌지우지되랴. 명종 때 청풍군수를 지낸 고성固城이씨李氏 무금정無禁亭 이고李股는 안동 명절名節 임청각臨淸閣 이명의 다섯째 아들로 無子다. 다만 여식이 하나있는데 앞을 못 본다. 아비는 여식이 맹인이라는 사실을 쉬쉬하며 멀리서 훈장을 모셔다가 비밀 아닌 비밀을 지켜달라는 부탁과 함께 귀동냥으로 문리를 나게 한다.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 만이다. 누가 앞 못 보는 여식한테 혼처를 내줄리 만무했고 그렇다고 선 듯 혼처를 부탁할 처지도 못됐다.그럴지라도 아비가 자식을 처녀귀신으로 죽게 놔둘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아비는 고민 끝에 퇴계를 찾아가 자
삶이란 누군가에게는 살아남기 위해서 못할 짓도 없고 누군가에게는 차마 죽지 못해 안할 짓도 없는 그 중심에 어려서 동문수학했던 두 사내가 있다. 문종이 즉위 2년 만에 죽자 세종 23년1441년에 태어난 그의 아들 단종 이홍위李弘暐가 보위에 오르는데 그는 태어 난지 3일 만에 자모慈母 현덕왕후 권씨를 잃고 1452년 12세에 아버지 문종마저 떠나보내고 제위2년 남짓 삼촌 수양대군에게 폐위되고 1455년 15세에 상왕이 되고 1457년 6월 세조3년 17세에 이르러 노산군으로 강등 후 영월로 유폐되고 그해 10월에 서인으로 재차 강등되어 사사된 어린 소년군주 조선6대왕 단종. 이때 사약을 들고 간 사내는 금부도사禁府都事로 유배 길을 호송했던 왕방연王邦衍이다. 그의 시 천만리 머나먼 길 고운님 여의옵고. 로 시작되는 단장곡斷腸曲일수一首는 절창이 되어 듣는 이의 가슴을 후벼 판다. 유교적 명분을 송두리 채 흔든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사건은 당시 삼각산에서 청운의 꿈을 안고 과거를 준비하던 21세의 열혈남아 법명을 설잠雪岑 청간공淸簡公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과 36세의 문충공文忠公서거정徐居正으로 하여금 명분名分과 명리名利로 갈라서게 했다. 김시습의 이름은 논어 학이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