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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골드미스가 그토록 가고자 했던 신세계 독거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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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라. 언제까지 젊을 줄 아는가. 클레오파트라 아니라 그 할애비가 살아 돌아온들 세월 앞에 장사는 없다. 제아무리 잘난 여자도 결혼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희망이 없다. 남은 것이라곤 딱. 하나. 독거노인 이 되는 길. 

물론 지금은 아니라고 나만큼은 그럴리 없다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우기겠지만 그럴 리 없다고 철썩 같이 믿었던 그럴 리가 결국에 가서는 그랬다면. 그 인생은 문밖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는 예수의 말처럼 될 수밖에 없다. 

죽어도 인정하기 싫겠지만 세상사가 어찌 골드미스 따위의 인정하고 안하고에 좌지우지되랴.  
명종 때 청풍군수를 지낸 고성固城이씨李氏 무금정無禁亭 이고李股는 안동 명절名節 임청각臨淸閣 이명의 다섯째 아들로 無子다. 

다만 여식이 하나있는데 앞을 못 본다. 아비는 여식이 맹인이라는 사실을 쉬쉬하며 멀리서 훈장을 모셔다가 비밀 아닌 비밀을 지켜달라는 부탁과 함께 귀동냥으로 문리를 나게 한다.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 만이다. 

누가 앞 못 보는 여식한테 혼처를 내줄리 만무했고 그렇다고 선 듯 혼처를 부탁할 처지도 못됐다. 
그럴지라도 아비가 자식을 처녀귀신으로 죽게 놔둘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아비는 고민 끝에 퇴계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하니 퇴계 왈. 앞 못 보는 규수를 아내로 맞이할 선비가 있으랴 마는 사실을 말하지는 말고 혼처만 먼저 넣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겨봅시다. 

그렇게 해서 퇴계이황은 어려서 양친을 다 잃고 자신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있는 18문도 중의 한사람 예조참의를 지낸 서고徐固의 아들 서해를 소개한다. 

서해는 고성 이씨녀와 혼인을 했고 그날 밤 이씨녀가 맹인인 것을 알게 된다. 청천벽력보다 더 무거운 돌덩이를 가슴에 안게 된 서해는 생각이 많아졌다. 

이를 모르지 않는 이씨녀는 서해에게 말한다. 첫 새벽 닭이 울기 전에 저 문을 열고 가시면 됩니다. 

저의 부모께서 소녀가 처녀귀신으로 죽는 것이 부모로서 차마 못 할 짓이라 여겨 감히 선비님을 속여 혼인에 이르게 했사오니 그 죄가 있다면 앞 못 보는 소녀에게 있는 것이지 어찌 부모의 잘못이 되리이까. 

이제 소녀 훌륭한 선비님 만나서 혼인도 하여 처녀귀신으로 죽는 것도 면했사오니 부디 소녀의 부모 마음을 헤아리시어 용서하여주소서. 

그리고 가실 때 소녀가 모처에 부모님 모르게 선비님을 위해 얼마간의 재물을 준비해 두었으니 평생 공부하고 등과하시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옵니다. 

부디 안녕히 가셔서 등과하시어 나라에 훌륭한 동량지재가 되소서. 

그러고는 다소곳이 일어서서 큰절을 올린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인지人之는 상정常情이라 서해는 차마 눈먼 여인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부부의 연은 맺었으나 평생을 맹인과 함께 살아야한다는 중압감 때문이었을까? 
일 년 남짓 살고는 명종 14년 1559년 23세 나이로 함재涵齋 서해徐는 죽는다. 

그런데 거기서 태어난 아들이 있었으니 그가 훗날 조선 중기 후기의 문명文名을 떨칠 명문거족 약봉藥峯 서성徐일줄 누가 알았으랴. 

서성은 광주목사廣州牧使를 지낸 송영宋寧의 여식과 혼인해 7남 4녀를 두었는데 큰아들 서경우가 우의정에 오른 것을 필두로 직계 자손 중에는 문과 급제자만 123명에 이른다. 

친박親朴 좌장 서청원의원이 그의 12대손이라 전한다. 여자가 위대한 것은 생명을 잉태할 수 있어서다. 

골드미스가 결혼을 못하는 이유는 별개 아니다. 

털끝만큼도 손해 볼 수 없다는 오만함 때문이다. 상대방 남자보다 연봉도 많고 학벌도 월등하고 거기다가 외모까지 한 몫 하니 눈에 뵈는 게 없을 밖에. 

남자보다 모든 게 월등한데 남자가 눈에 차기나 할까. 그렇게 저 잘난 맛에 취해서 살다보니 어느 날 세월이 훌쩍... 아차 하고 느꼈을 때는 이미 얼굴에 세월의 때가 찌든 뒤라. 

우리네 부모들이 서로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서 기르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은 저들이 못나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이 사람살이의 인륜지대사이기 때문이다. 

당부하노니 이 땅의 골드미스 들이여 너무 그렇게 재지 마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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