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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탐방】서천 이하복 고택(舒川 李夏馥 古宅)을 찾아서(하)...시인 구재기와 함께하는 '舒川山河(서천산하)' 46편


046. 서천 이하복 고택(舒川 李夏馥 古宅)을 찾아서(하)
- 국가 민속문화재 제197호 [이하복 고택]
- 충남 서천군 기산면 신막로 57번길 32-3 

발걸음을 뒤로하여 다시 사랑채 밖으로 나오는데 들어갈 때 예사로 보았던 향나무의 빛깔이 한결 푸르러 보인다. 아니 향나무 가지 사이로 슬그머니 일어나는 바람 한 줄기가 땀에 젖은 이마를 스쳐 지나가자, 있는 듯 없는 듯 스멀스멀 향기가 피어오른다.

향나무는 이미 퍽이나 나이에 들었음이 분명한데,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온몸으로 긴 세월의 풍상을 견디어온 오면서도 잃지 않은 향기의 빛을 엿보이고 있다. 아마 가목재(稼牧齋)의 주인인 청암 이하복 선생이 이 세상에 남겨놓으신 삶의 철학과 그 삶의 향기가 오늘날까지 여전히 전해지고 있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이하복 고택 전시관>을 빠져나오니 밖의 날씨는 여전히 짙은 무더위가 서려있다.

금세 절로 흐르는 땀을 억제할 수 없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이하복고택>으로 향한다. 발자국마다 햇살이 내리쪼이면서 더위를 가득 채워 넣는다. 그러나 아래채와 사랑채 사이로 놓인 돌계단 바로 곁에 서 있는 우람한 향나무 한 그루는 짙은 그늘과 함께 향기까지 흩뿌리고 있다. 그것을 바라보니 이내 무더위도 사라질 것만 같다. 돌계단 밑으로는 안내글이 우리말과 영어로 병기되어 있다.

서천 이하복 고택 : 국가 민속문화재 제197호. 서천 이하복 고택은 교육사업가인 청암 이하복이 살았던 집으로 19세기 후반에 안채가, 20세기 초에 사랑채와 광채가 지어졌다. 안마당을 중심으로 ‘ㄱ’자형의 안채와 ‘ㅡ’자형의 사랑채, 안채 왼쪽의 광채가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사랑채 오른쪽으로  ‘ㅡ’자형의 아래채가 자리 잡고 있다. 안채는 원래 부엌과 방 2개로 구성된 3칸 집이었으나, 후대에 왼쪽의 부엌을 늘리고 오른쪽으로 대청과 부엌, 헛간을 겸하여 사용한 ‘헛청’을 덧달았다. 사랑채는 왼쪽에 대문이 있으며, 부엌과 사랑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래채는 부엌과 방 2개, 광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따로 살림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고택은 중부 지방의 전통적인 농가로, 전통 기법에 따라 안채의 앞쪽 지붕이 뒤쪽보다 긴 점이 흥미롭다.

이와는 달리 다른 하나의 안내에는 중요 민속자료 제197호로 1984년 12월 26일 지정되었다는 것과 목조 초가집으로 조선시대 후기에 지은 1곽의 건축물이라는 것, 그리고 서천군 기산면 신산리 120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는 등 보다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반복된 내용이라서 ‘고방채(庫房-)’란 낯선 단어의 의미가 ‘광이 있는 집채’라는 것을 새롭게 알아차리고는 안내문 하나를 그대로 옮긴다.

안내자의 말에 의하면 이 <서천 이하복 고택>은 우리나라 중부지방의 전통농가(큰집) 형태를 그대로 간직한 채 보존되고 있는 대표적인 가옥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84년 12월 24일 국가민속자료 제 197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특히 이 집은 한산이씨 중시조인 목은 이색 선생의 18대손인 병식씨(중추원의관)가 19세기말(조선말엽)에 안채 3칸을 짓고 그 후 아들이 20세기 초에 사랑채, 아래채, 위채 등을 새로 지으면서 안채도 크게 증축해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단다. 한편으로는 1천여 평의 대지 위에 안채, 사랑채, 아래채, 고방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집은 옛 선조들이 불문율로 지켜왔던 풍수지리상으로 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가 잘 둘러싸인 곳에 터를 잡아 형성된 자리라는 점을 뒷받침하듯 멀리 화양산을 바라보면서 트인 곳을 향해 나란히 배열한 집인데, 수구(水口. 풍수지리에서 득이 흘러간 곳)가 조금 벌어진 것을 막아주기 위해 향나무, 벽오동 사철나무 등을 가즈런히 심어 영역감을 한층 강화한 느낌을 준단다.

이 가옥은 전통민가의 마지막 시기인 조선시대에 충청, 전라지역 등지에서 널리 이용되던 ‘ㅡ’자형 '외통형식'으로 솟을동자(방문, 대청문중방밑에 모양을 더해주기 위해 치장한 부분)와 같은 필요 이상의 재료나 멋을 전혀 부리지 않은 채 전형적인 민간기법을 사용, 매우 검소하고 소박하게 지어진 것으로 유명하다.


안내문 곁에는 평생 교육가로서 검소한 삶을 이어온 청암 이하복 선생의 삶 철학을 보여준 “왔다, 사랑했다, 그리고 갔다”는 말씀이 돌에 새겨져 있다. 짐짓 선생이 살아오면서 보여준 사랑하는 가족과 나라, 그리고 교육과 전통을 얼마나 철저하게 준수하여 왔는지 여실하게 보여주는 것만 같아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돌계단을 오르면서 사랑채와 아래채의 모습을 살펴다가 문득 대문 앞에서 또 한 번 발걸음을 멈춘다. 전 재산이 8만 평의 땅을 가지고 있었다는 부농의 집 대문이 솟을대문은 고사하고, 부잣집 대문으로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솟을 대문이라면 행랑채의 지붕보다 높이 세운 대문을 일컫고 있지만 높기는커녕 낮으막하고 그 폭 또한 좁다랗기만 하여 겨우 한 사람만의 품만으로도 그리 넉넉지 않은 출입을 허용되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 위에는 여초 김응현(如初 金膺顯)의 글씨로 새겨진 당호(堂號) <稼牧齋(가목재)>가 새겨져 걸려있다.

여초 김응현은 ‘추사 이후 여초’라는 말을 들을 만큼 중국에서 전해온 모든 서예의 장점을 흡수하고 해서·행서·초서·예서·전서와 같은 모든 서체들을 연습해 그 정화를 흡수한 뒤 마음과 손의 조화를 이룬 글씨체로 유명하다.

추사 김정희의 맥을 이은 소전 손재형(素荃 孫在馨), 검여 유희강(劍如 柳熙綱) 이후 형인 일중 김충현(一中 金忠顯)과 함께 한국 서예계의 양대 산맥으로 나뉘어져 일컬어지고 있다. 특히 ‘가목재(稼牧齋)’는 가정 이곡(稼亭 李穀)과 그의 아들인 목은 이색(牧隱 李穡)의 호(號)에서 한 글자씩 따와 지은 당호라고 안내자가 귀띔해 준다.


사랑채와 아래채 사이로 ‘가목재(稼牧齋)’라는 당호가 걸린 대문을 가운데로 하여 사랑채와 아래채가 일자로 이어져 있다. 그러나 사랑채가 밖으로 향하고 있는 반면에 아래채는 특이하게도 북쪽을 향하여 마당으로 트인 맛을 보여준다.

이는 며느리가 거처하던 집으로 며느리에게 외부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피하고 독립적인 공간을 할애해 주고자 함이라 하는데, 이는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의 내외관습을 지키려는 것으로 남녀유별이라는 유교적 덕목을 보다 더 잘 지키기 위함일 것이다. 부엌 두 칸에 안방 1칸, 그리고 윗방 1칸, 광 2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민가 건축의 전형을 보여주는 사랑채는 좌측에서부터 대문간 1칸, 부엌 1칸, 사랑방 2칸 등 4칸 크기의 집으로 동쪽에 대문칸, 사랑방 2칸, 부엌으로 구성되어 배치되어 있다. 부엌 서쪽에 쪽문이 달려있다. 방 사이에는 네짝미서기문(옆으로 밀어서 여는 4짝 문)을 달아 양분하고 있다.

툇마루의 좌측단에는 반 칸 크기의 토광이 마련되어 있고, 사랑방 앞쪽에는 툇마루가 놓여 있으며, 사랑부엌 앞쪽에도 마루가 깔려 있는데 바로 옆에는 툇마루에서 이용하는 다락이 있다. 또 고방(庫房. 이전에, 집안에 보관하기 어려운 각종 물품을 넣어 두기 위해서 집 바깥에 따로 만들어 두는 집채를 이르던 말)이 별채로 있으며 이것은 식품의 저장창고로 활용되었다 한다.


사랑채의 부엌으로 하여 안으로 들어가니 곧바로 안채가 나타난다. 안채는 장대석(長臺石. 계단의 층계나 축대를 쌓는 데 쓰이는 네모지고 긴 돌) 외벌대(장대석 한 켜로 쌓아 만든 지대) 토단 위에 자연석 덤벙초석(자연 그대로의 돌을 다듬지 않고 건물의 기둥 밑에 놓은 주춧돌)을 놓고 모두 방주(단면형태가방형인 기둥)를 세웠으며, 주상(柱上)의 도리는 모를 굴린 납도리(단면이 네모진 도리)를 사용한 민도리집(모가 난 도리를 써서 꾸민 집)이다.

상부 가구는 전면의 지붕을 후면보다 길게 하기 위한 2고주4량가(二高柱四樑架:半五樑架)이며, 지붕은 우진각(隅-閣. 건물의 네 면에 모두 지붕면이 있는 집) 초가지붕이다. 사랑채는 1고주 5량가로 안채의 구조기법과 유사하다. 다만 막돌허튼층쌓기의 기단으로 안채보다 축대를 높게 한 것이 다를 뿐이다.

안채는 원래 3칸으로 좌측에서부터 부엌 1칸, 안방 1칸, 윗방 1칸으로 19세기 후반에 지어졌다 하나, 20세기 초에 사랑채를 지으면서 부엌을 좌측으로 1칸 늘리고 윗방의 우측으로 대청 1칸, 아랫방 1칸을 증설하였으며, 아랫방 앞으로 ‘헛청(부엌·헛간)’ 1칸을 덧달아 이루었다 한다.


특히 안방과 윗방 앞에는 반 칸 폭의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으며, 두 방 사이에는 네짝미서기문을 달아 방을 구분한다. 대청은 윗방과 아랫방에서 드나들 수 있는 개구부(開口部. 집의 창문, 출입문이나 환기구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를 내지 않고 전면에만 유일하게 출입문인 쌍여닫이 판장문(板牆門. 널빤지로 만들어 달아 놓은 문)을 달고 있다.

이러한 간살잡이(칸살잡이. 기능이나 동선을 고려하여 건물 내부를 갈라 나누는 살의 크기와 배열 따위를 정하는 일)는 이 지방에서 가끔 보이는 형식으로 마루방이 일반 대청으로서의 기능보다 수납공간으로의 성격이 짙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 있는 안채는 6칸 크기에 ‘ㄱ’형 평면으로 왼쪽 끝에 부엌을 두고 안방·윗방·대청·골방이 있고 안방 뒤쪽에는 툇마루를 달고 있다. 안채 지붕 초가지붕인 안채지붕은 앞쪽 지붕 길이가 뒷면보다 길게 나와 있음을 보여 특이하다는 느낌을 준다.

안채의 문 앞에는 “목은 선조가 자손에게 훈계하는 말씀”으로 다음과 같은 글귀가 서예가 일중 김충헌의 글씨로 나란히 세워져 있다.

貴賤自分貽哲後(귀천자분이철후) 귀천은 저절로 밝은 천명을 받음에서 나뉘고
賢愚元在養蒙中(현우원재양몽중) 현명하고 미련함은 원래 어려서 기르는 데 있다

汝曹當把寸陰惜(여조당파촌음석) 너희들은 마땅히 촌음을 귀중히 여겨야 한다
眞負起家文孝公(진부기가문효공) 문효공이 가문을 일으킨 것에 역행하지 마라


대청의 문을 열자 온갖 갖가지 그릇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안채에서 옛날에 사용하던 갖가지 생활 도구들이 수없이 모아져 있다.

안내자의 말에 의하면 이러한 생활 도구들은 곧잘 직접 만들어 사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쓰던 것들도 모두 버리지 아니하고 고스란히 모아져 그대로 전해져 내려온단다. 그러므로 옛 가옥의 전통문화적 가치뿐만이 아니라 생활문화의 자취를 그대로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는 것이다.

안채로부터 헛간을 지나니 또 다른 집이 놓여있다. 웃채와 외양간이다. 웃채는 원래 오랫동안 대홍수로 유실된 채 방치되어 있다가 2003년 취락 연구를 위해 보존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정받아 국고보조로 복원된 것이라 한다. 구조는 부엌·안방·윗방·대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바로 서쪽으로는 외양간이 위치해 있다. 이 위채의 대청에는 안채의 대청과 마찬가지로 갖가지 생활 기구들이 보존되어 있다.


그중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보존되어 있다는 ‘함(函)’에는 ‘孝子忠臣(효자충신)’ 이라는 4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뿐만 아니라 삼층장과 더불어 화초장(花草欌: 문짝에 유리를 붙이고 화초 무늬를 채색한 옷장)에는 우리 전통 혼례 장면을 비롯하여 통과의례에 따른 갖가지 옛 생활 모습이라든지 민속놀이 등등 화려하게 그려져 있어 눈길을 머물게 한다.

위채와 마주하고 있는 집은 북쪽으로 향하고 있는 아래채이다. 아래채는 며느리가 쓰던 집이라 밖에서 안으로 향하고 있다. 이 아래채의 대청에는 이씨 가문에서 혼례에 사용되었다는 사인교가 보존되어 있어 또한 관심을 끈다. 

무릇 집이란 따뜻하고도 안락한 장소를 이름이다. 육신의 따뜻함이 첫째요, 사랑의 따뜻함이 둘째이다. 청남 이하복 선생은 이 <稼牧齋(가목재)>의 안에서 밖으로 내다본 조망이 어떠한가를 중요시 여기며 일평생 사랑으로 향한 발걸음을 지켜오셨다는 걸 분명히 보여주신 것이다.


발걸음을 뒤로하여 다시 사랑채 밖으로 나오는데 들어갈 때 예사로 보았던 향나무의 빛깔이 한결 푸르러 보인다. 아니 향나무 가지 사이로 슬그머니 일어나는 바람 한 줄기가 땀에 젖은 이마를 스쳐 지나가자, 있는 듯 없는 듯 스멀스멀 향기가 피어오른다.

향나무는 이미 퍽이나 나이에 들었음이 분명한데,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온몸으로 긴 세월의 풍상을 견디어온 오면서도 잃지 않은 향기의 빛을 엿보이고 있다. 아마 가목재의 주인인 청암 이하복 선생이 이 세상에 남겨놓으신 삶의 철학과 그 삶의 향기가 오늘날까지 여전히 전해지고 있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이 글은 이하복 고택의 리플릿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참고로 하여 작성되었습니다.


가목재(稼牧齋)의 향나무
                             구재기

한 여름의 뜨거운 열기로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안다면 
향나무 한 그루 되어 
깊은 밤 사경쯤에 이르러도
홀로 뜬 달그림자에 젖어들 수 있다
바람이 불어오고
눈비가 휘날리고
흔들리지 않기로 마음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향나무의 향기는
차갑고 매섭게 살갗에 스며들고 
세상을 멀리하고 있는 것처럼 
맑고 위엄 있는 기운으로 넘친다
온몸과 온 마음,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세상 긴 세월을 견뎌내며
향기롭기는 그리 녹녹치 않은 일 
마음에서 일어나는
온몸을 다루기란 어려운 것인데
푸른 가지 사이사이
하늘 땅 사이사이 
번듯하게 깨어 
향기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한참을 걸어 나오다가 
뒤를 돌아보니
가목재 돌계단 가득, 향나무는
향기로운 그늘을 드리우며
골진 초가지붕을 적시고 있다

* ‘가목재(稼牧齋): 충남 서천군 기산면 신산리소재의 국가민속자료 제 197호인 교육가 청암 이하복 선생의 고택으로 가정 이곡(稼亭 李穀)과 그의 아들 목은 이색(牧隱 李穡)의 호(號)에서 한 글자씩 따와 지은 당호(堂號)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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