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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기획탐방】한국최초 성경전래기념관을 찾아서...시인 구재기와 함께하는 '舒川 山河(서천산하)' 1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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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 한국최초 성경전래기념관을 찾아서 -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서인로 89-16

기념관의 다목적실에서는 십자가를 통하여 전개되는 또 다른 세상과 만나게 한다. 바다 위에 뜬 십자가!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유리로 된 출입문을 열고 툇마루 같은 베란다로 나간다.

분명히 십자가가 바다 위 허공 한가운데에 떠 있다. 좀 더 십자가에 가까이 다가선다. 그러나 아무리 다가서도 십자가는 바다 위 허공에 떠있는 모습 그대로이다.

뒤돌아본다. 다목적 강당 전면의 십자가가 환하게 세상을 밝히고 있다. 바로 눈앞에 마량리 포구가 펼쳐져 있고,, 등대도 보이고, 해돋이 해넘이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마량포구의 방파제가 손짓을 한다.

그 밑으로 살아있는 푸른 파도가 잔잔하게 너울을 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저만큼 <성경전래지기념공원>에서는 영국의 범선과 우리의 판옥선에서 나부끼고 있는 깃발이 보인다.


2019년 10월 10일 목요일

오후의 햇살을 가슴으로 찾아가며 <한국최초 성경전래기념관>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시각은 오후 3시경, 가을 햇살은 사라지고 하늘은 가득 구름을 머금어 있다. 다행스럽게도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따라다니던 그림자는 없다. 왠지 그림자를 밟고 성경 기념관에 들어가는 것이 조금은 저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갓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기념관은 동쪽 해 뜨는 마량포구를 향하고 있다. 비록 해가 뜨겁게 내리 쬐인다 하더라도 그림자는 등 뒤로 이어질 것이다. 그림자를 밟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속담에 ‘굽은 지팡이는 그림자도 굽어 비친다’고 했다. 제 본래의 모습이 좋지 않은 것은 아무리 하더라도 숨기지 못한다는 뜻이다. 행여 그러한 모습의 그림자와 함께 성경기념관에 들린다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 되지 않을지 모른다.


다행스럽다. 그만큼 성경은 기독교도도 아니요, 불교도도 아닌, 전혀 무종교인으로서의 마음에도 조금은 경외스럽게 다가온다.

기념관은 바닷가 한길에서 약 30m 조금은 가파른 언덕 위에 세워져 있다. 그러나 천천히 오르는데 전혀 힘들지 않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은 여전히 가득하다. 어둠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념관 위로에 걸쳐있는 구름은 신비로운 듯이 보인다. 아마도 그렇게 바라보니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기념관 지하에서 계단을 오른다. 입구에 방명록이 놓여있고, 기념품이 전지되고 있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무인 판매를 하고 있는 것 아닐까? 방명록에 사인을 하고 전시관 1층에 든다. 기념관 내에서의 항해를 준비하기라도 하고 있는 듯 서해안 항해의 목적과 함선, 스리고 서천의 마량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1816년 9월 5일 2척의 영국 함대 알세스트호와 리라호가가 서해안 일대의 해도(海圖) 작성을 하던 중 마량진에 정박한다. ​​이곳을 관할하는 첨사 조대복은 이양선이 정박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의 방문 목적을 알아내기 위해 비인 현감 이승렬과 함께 ​알세스트호에 승선한다. 알세스트호 함장 맥스웰, 리라호 함장 바실홀, 이들의 만남은 한국기독교 역사에서는 중요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전시관에는 알세스트호 맥레오드의 조선해역 및 유구열도 항해기와 바실홀 함장의 조선 서해안과 유구 항해기, 그리고 우리나라국보 제153호인 『일성록日省錄』에 마량진에 도착한 이양선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때 첨사 조대복은 이방인과의 대화를 이룰 수 없었으며, 다만 몸짓만의 소통으로 많은 에피소드를 불러일으켰다 전한다. 전시관에서는 영국인들이 타고 온 배 모형의 돛에 당시의 상황을 애니메이션으로 재현해놓아 자못 흥미롭기도 하다. 최초로 성경을 받았을 때의 상황을 알아본다.


“그는 선물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상치도 못한 친절에 마음이 놓였는지 돌아갈 때는 어느 정도 예의 기력을 되찾았다. 그가 선실의 책들을 둘러보았을 때 큰 성경책(기록상으로 우리나라에 전래된 최초의 성경이다)의 겉모양을 매우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여서 그것을 선물하려 하자 그는 결단코 거절했다.

체면을 차리느라 마지못해 거절하는 빛이 역력했기에 그의 배가 떠나기 직전에 다시 건네주자, 매우 고마운 표정으로 그것을 받았다. 그리고 매우 우호적인 태도로 작별 인사를 고하여 떠났다”(바실 홀 지음, 김석중 엮음 『10일간의 조선 항해기』에서)

우리나라에 성경이 전해졌던 조선 순조 때의 시대적 상황을 알려준다. 이때 우리나라는 정순왕후의 수렴청정과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되어 극도의 사회 혼란이 초래되었고, 특히 1801년 사교(邪敎)를 금한다는 명분으로 200여 천주교 신자들을 학살하는 신유박해가 있어나는 등 1815년 경상⁕충청⁕강원도 교인들을 검거해 혹독한 탄압이 가해지기도 한 시기이다.

이러한 시기에 1816년 영국의 알세스트호와 리라호가 서해안에 도착한다. 그리고 맥스웰에 의해 최초의 성경이 전해진다. 바야흐로 바이블로드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실제로 알세스트호의 맥스웰과 리라호의 함장 바실홀 일행의 서해안 탐사는 은둔의 나라 조선을 전 세계를 알리는데 공헌한다. 조선 서해안 및 류쿠 열도의 항해기를 비롯한 서해안 항해기를 계속 저술하고 해도를 작성하여 조선을 유럽 전역에 널리 알리는 계기를 이룬다.

특히 이러한 기록이 훗날 조선에 대한 선교의 장을 열어 귀출라프는 16년 후 1832년 1개월간 고대도에 체류하면서 복음을 전파한다. 그 뒤에 많은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와 많은 선교활동을 펼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4대 종교를 말한다면 불교, 천주교, 기독교, 원불교 등을 일컫고 있는 가운데 KOSIS(Korean Statistical Information Service. 국가통계포털)의 2015년 기준에 따르면 기독교의 개신교인은 9,675,761명, 천주교인은 3,890,311명이나 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인구 중 13,566,072명이 성경의 말씀과 함께 하고 있는 셈이다. - (참고로 불교인은 7,619,332명, 원불교인은 84,141명으로 집계되어 있다) - 뿐만 아니라 성경과 함께 그 당시 서구 사람들이 보고 듣고 느낀 바의 기록으로 책으로 엮어져 서구사회에 조선이 소개되기도 계기가 되었던 것이니 우리나라에 성경이 전해진 역사적인 의미는 참으로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의 범선 모형을 살펴보다가 문득 곁에 놓인 두 대의 축음기와 대포를 본다. 축음기 곁에 ‘손잡이를 천천히 세 바퀴 돌려주세요’라는 글귀와 방향 표시가 되어 있다. 손잡이를 잡고 돌려보니 음악이 나온다. 영국의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가 작곡한 관현악을 위한 행진곡인 〈위풍당당 행진곡>이다.

셰익스피어의 《오텔로》 대사에서 제목을 차용하여 곡 제목을 지었다 한다. 대영제국을 상징하는 선율이 된 이 곡은 영국공식모임에서 관례적으로 연주되고 있다. 또 다른 축음기에서는 조선의 행진곡인 <대취타>가 연주되어 나온다. 부는 악기인 취(吹)악기와 두드리는 악기인 타(打)악기로 연주하는 의미에서 ‘대취타(大吹打)’라 부른다.


조선조 궁중의 선전관청과 각 영문(營門)에 소속된 악사들에 의하여 임금이 성문 밖이나 능(陵)으로 행차할 때, 혹은 군대의 행진개선 및 궁중무용의 빈주음악으로 사용된 곡이다.

기념관 2충 전시관에는 1,611년 초판본 성경이 전시되어 있다. 세계적인 보물인 이 성경은 당시에 겨우 300여 권이 제작되었는데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하나 둘 유실되기 시작하여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겨우 30권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중 한 권이 바로 여기에 전시되고 눈앞에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킹 제임스 바이블 진본’이다. 이의 구입을 위해 먼저 2015년 처음으로 구매 가능성부터 조사를 시작하고 나서 2016년 8월에 이르러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구매가 3억 원으로 완료, 2016년 8월 공식적인 절차에 따라 가져왔다고 전한다.

특히 미국의 공인기관인 라파엘 비옹드(Raffaele Biondi)의 진품 감정평가서에 공증 받아 구입 완료한 희귀본이라는 것이다. <킹 제임스 성경.King James Bible>은 영국의 제임스 1세가 영국 상공화의 예배에 사용할 수 있는 성경을 번역하라는 왕명에 따라 만들어진다.


이에 영국 성공회(聖公會. 1534년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분리해나간 영국 국교회의 전통과 교리를 따르는 교회를 총칭. 즉 개신교의 일파로, 영국 국교회英國國敎會에서 발전하여 세계 전역으로 퍼진 국가별 독립 교회들의 교단)가 1604년에 번역을 시작하여 1611년에 끝마친 기독교 성경의 영어 번역본으로 ‘흠정역성경(欽定譯 聖經)’이라고도 불리는데, 흠정(欽定)이란 ‘임금이 몸소 제정함’이라는 뜻이다.

당시 ‘성공회’라는 독자 노선을 걷고 있는 영국은 더 이상 신학적으로도 밀리지 않는다는 걸 자랑하고 싶어서, 여러 성경 필사본을 수집하여 편찬했다고도 전한다.

또 기념관 2층에는 한국 성경의 변천사를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는 1911년 3월 6일 <구약젼셔>가 출간되면서 66권의 성경이 모두 번역된다. 최초의 한글 완역 성경인 <셩경젼셔>의 출간으로 성경 전체를 한 권의 책으로 읽을 수 있게 된다.

신약중심의 신앙생활에서 율법과 역사, 지혜, 시가, 예언을 모두 읽을 수 있게 되어 풍성한 신앙의 토대를 이루게 된 것이다. 2층에서는 성경책 만들기와 함께 당시의 복장이 준비되어 있는 포토존도 있다.


3층의 카페테리아에서 차 한 잔을 시킨 다음 4층의 다목적 강당으로 올라간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십자가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예배실과 세미나실, 그리고 레크리에이션 등으로 활용하고 있는 이 다목적실에서는 전면 십자가를 통하여 전개되는 또 다른 세상과 만나게 한다.

바다 위에 뜬 십자가!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유리로 된 출입문을 열고 툇마루 같은 베란다로 나간다. 분명히 십자가가 바다 위 허공 한가운데에 떠 있다. 좀 더 십자가에 가까이 다가선다. 그러나 아무리 다가서도 십자가는 바다 위 허공에 떠있는 모습 그대로이다.

뒤돌아본다. 다목적 강당 전면의 십자가가 환하게 세상을 밝히고 있다. 바로 눈앞에 마량리 포구가 펼쳐져 있고,,. 등대도 보이고, 해돋이 해넘이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마량포구의 방파제가 손짓을 한다. 그 밑으로 살아있는 푸른 파도가 잔잔하게 너울을 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저만큼 <성경전래지기념공원>에서는 영국의 범선과 우리의 판옥선에서 나부끼고 있는 깃발이 보인다. 마음은 어느덧 그곳으로 달려간다.


허공의 십자가
                    구재기

텅 비어 있는 상태로
가슴을 내려놓은 사람에게
허공에 뜬 십자가가 보였다
푸른 바다 위에 가볍게 떴다
흰 갈매기의 날개깃 위에
낮달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저, 십자가

그동안 몸 흔들리는 일이 
얼마나 쉽사리 일어났었던가
이전과 달라진 것 하나 없이
아무 탈이나 별 무리 없이 
이제는 비스듬히 
기울어진 길이라도 좋다

어울리지 않게
겉만 화려하게 꾸미는 것도
내 몸 하나 제대로
다룰 수 있는 기간도 짧았다
가장 깊은 곳에 있었던
희망의 초점 하나 
모을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뿌리에서 새싹으로
자라나기보다는
뿌리에서 열매를 익어가는 길에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정도는 여전히 심한 것
꽃잎을 두드려 가슴을 열면
단 한 번의 믿음에도
항상 건실한 열매가 보였다

보이지 않는
맑은 근거가 되었다
저, 허공에 떠있는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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