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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우리나라 비철금속 제련의 핵심 거점...‘장항제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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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비철금속 제련의 핵심 거점...‘장항제련소’
비철금속 ‘수탈’ 목적으로 1936년 일제에 의해 설립
우리나라 산업화의 큰 축...장항읍 경제호황기 ‘견인’
서천군, 근대문화유산 보존&문화관광상품 개발 나서



[sbn뉴스=서천] 남석우 기자 = 금강과 서해가 만나는 충남 서천군 장항읍은 1980년대 인구 3만 명을 웃돌며 융성의 시기를 구가했다. 

장항읍 주민 A 씨는 그때를 회상하며 “그 시절에는 동네 개들도 입에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닐 정도로 장항읍이 살만했었지”라며 “그때는 여기 노동자들이 장항읍 경제를 움직였는데 장항제련소 월급날인 매달 7일이면 장항읍이 난리였다”라고 말했다.

장항제련소는 주민이 회고하는 바와 같이 그 당시 장항읍이 활황기를 누리는 데 큰 역할을 했는데 이곳은 그 당시 진남포·흥남 제련소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제련소 중 하나로 아시아 최대 높이의 산업시설이었다. 

국내의 금과 은, 동 등 비철금속 수탈을 목적으로 일제에 의해 1936년 세워진 장항제련소(이하 제련소)는 건립 당시에는 연간 제련량이 1500t 정도였으나 해방 후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계속 확장돼 1974년 1만5000t, 1976년에는 5만t 규모로 증설되어 우리나라 비철금속 제련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 잡으며 산업화의 한 축을 이뤘다.



이곳은 1980년대 까지만 해도 제련소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관광객이 모이며 “장항제련소가 장항지역 사람 참 많이 먹여 살린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소위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는데 1989년 공정 중단에 이어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제련소 주변 지역의 환경오염 문제가 불거지며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근대 산업화의 상징인 제련소는 이제는 장항제련소가 국내에서 유일한데 그 같은 이유도 있어서 근대문화유산으로서 이곳의 보존 및 활용 가치는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그 시대를 직접 살아왔다는 장항읍 한 주민은 “장항제련소에서 제련하기 위해 칠레에서 동광석을 수입해오면 그걸 우리 조상님들이 배에 들어가서 소스랑 곡괭이로 파냈는데 배속에 들어가서 광석을 내리다가 광석이 무너지면 그 안에서 파던 사람이 그 광석 더미에 묻혀 죽기도 했다”라며 “동광석이 쇳덩이만큼이나 무거운데 그 무거운 돌들을 지게로 져 날라서 기차에다 실으면 기차가 제련소로 옮겨가 제련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 시절에는 장항읍이 대한민국 공업 근대사의 일 번지였는데 장항항은 미곡 수탈 목적으로 만들기도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제련한 철들을 가져가기 위해서 제련소 때문에 만든 것이다”라며 “군산도 외항이 있고 장항읍에도 외항이 있지만, 금강하굿둑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장항읍 수심이 더 깊어서 만 톤급 이상 배들은 장항읍으로 들어왔다”라고 말했다.

제련소는 해발 120m 바위산에 90m 높이로 굴뚝이 우뚝 솟아 있어 사람들에게 장항읍의 랜드마크처럼 인식되고 있는데 하늘과 바다와 어우러져 보여주는 절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사뭇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또 이곳은 바다 건너 군산시와 마주하고 있어서 군산에서 직접 보이는데 제련소 굴뚝을 보는 군산시민이나 관광객들은 “저렇게 굴뚝이 높게 서 있는데, 뭐지?”라는 의문을 품기도 한다. 

이에 서천군은 제련소를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하는 한편 문화관광상품으로 개발하기 위해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최근에는 굴뚝에 경관조명을 설치해 군산 쪽 관광객은 물론 군산시민들의 이목을 모아 동백대교 개통과 함께 군산과 연계한 서천 관광 활성화를 도모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2일 sbn서해신문이 찾은 제련소를 올려다보니 이곳에서 겪었을 우리 조상들의 비참한 생활이 떠올라 사뭇 숙연함이 느껴졌다.

‘저 황량한 돌산 위에서 우리 선조들은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렸을까? 또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이 사라졌을까?’ 제련소에 직접 들어가 그 치열했을 현장을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올라갈 수 없어 아쉬움이 컸다.

또 제련소 못지않게 숨 가쁜 일상이 이어졌을 포구에는 지금은 몇몇 어민이 따스한 햇볕 아래 앉아 어망 손질을 하고 있는가 하면 낚시 객 한 둘이 강태공의 여유를 부리고 있어 평화롭고 한가해 보였다. 

선인들의 피땀이 서려 있을 이 자리에서 누리는 풍요와 여유에 새삼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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