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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탐방】장항 장암진성長項 長巖鎭城에 오르다...시인 구재기와 함께하는 '舒川山河(서천산하)' 36편


036. 장항 장암진성長項 長巖鎭城에 오르다 - 충남 서천군 장항읍 장암리 

기벌포­-진포­-서천포라는 이름으로 불리워 오는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역사의 흐름을 지켜본 전망산과 후망산과 더불어 치욕의 역사를 가멸차게 견디어온 장항제련소의 굴뚝은 우리 가슴의 상징이며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거듭으로 생각하게 해준다.

오늘날까지 전­후망산이 지켜보았던 역사의 흐름에 정점을 찍고, 장항제련소의 굴뚝이 새로운 관광적 명소로 거듭나도록 하게 함으로써 살아있는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무릇 관광이라 함은 발걸음의 자유를 확보하여 줌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경계선을 뛰어넘어 오고 가게 하고, 그동안에 가졌던 가슴 앓이적 편견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도록 하여 새로운 시대에 맞는 커다란 길을 연출해 낼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장항읍 장암리 일대 면적 74.198㎡에 위치한 장암진성은 1995년 3월 6일 충청남도 시도기념물 제9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을 처음 찾은 날은 2019년 7월 5일 오후 여름의 햇살이 어느 날보다 뜨겁게 내리 쬐이던 날이다.

장항 제련소의 굴뚝을 배경으로 한 장항신어선물량장長項新漁船物揚場에 나아가 바닷바람을 시원하게 맛보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 문득 길가에 세워진 안내글을 만나 차에서 급히 내린다.

바로 장항진성의 동쪽 성벽에 이른다. 그러나 성벽 위로는 오르내릴 수가 있어도 성벽 아래로는 도저히 걸을 수가 없다. 우거진 풀 때문이다.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다.

다시 한길가로 나온다. 저만큼 도로 건너에 또 다른 안내문이 보인다. 좌우를 살피면서 도로를 건넌다.

가까이 다가서자 <장항제련소 주변 장암진성지역 문화재 정밀발굴조사>에 관한 안내이며, 조사기간은 2019.02.11~07.13(170일간)으로 (재)전남문화재연구원에서 조사를 하고 있는 중이란다.

그리고 “유적은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11조에 이거하여 문화재청장의 허가 하에 발굴조사 중이므로 유적지 내의 출입을 금하오며 견학을 원하시는 분은 발굴조사원의 안내를 받으시기 바랍니다”라는 글귀가 보인다.

그러나 발굴조사기간이 거의 끝나가서인지 안내원이 보이지 않아 금줄이 쳐 있는 밖의 한길 인도를 걸으며 후망산과 더불어 장암진성의 옛 모습을 그려볼 수밖에 없다.

거의 발굴조사가 끝날 때에 이르러서인지 발굴해놓은 자취들은 확연히 드러나 있다. 좀 떨어진 한길에서도 발굴의 현장 모습이 보인다.


주거지며 건물지며, 그리고 석벽도 보인다. 그러다가 문득 걸음을 멈춘다. 좀 특이한 바위가 가로막는다.

‘알바위’라 한다. 커다란 알 모양의 바위와 함께 여러 개의 작은 알바위들이 연이어 놓여있다. 모양으로 보아 어떤 전설이라도 숨어있을 듯하지만 그 내용을 알 수가 없어 아쉽다.

그러다가 또다시 걸음을 멈춘다. 환경부와 한국환경공단의 경고 안내문이다. <이 토지는 토양정화사업을 위해 국가에서 매입한 토지이므로  다음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됩니다.

이를 어길 경우 관계법령에 의해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해 지거나,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금지행위. 1. 무단점유 및 농작물을 재배하는 행위, 2.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 3. 불법 지장물을 설치하는 행위> 등에 관한 내용이다.

아, 그렇다. 이곳은 여전히 서천의 뜨거운 감자임에 틀림없다.


이곳 장암리는 1935년 이래 장항제련소의 온갖 중금속을 살아온 결과 오염이 되어 국가나 서천군에서 철저하게 정화사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에 따라 장항 제련소가 남긴 굴뚝도 화제의 중심에 서곤 한다. 여전히 크게 위용을 자랑하며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아무 말 없이 서해바다와 함께 오늘날까지 자리를 지켜온다.

일부로부터는 철거설도 들고 나온다. 그러나 장항제련소는 초·중·고등학교 교과서를 통하여 우리나라 국민들의 가슴에 너무나도 생생하게 살아있다.

뿐만 아니라 기벌포­-진포­-서천포라는 이름으로 불리워 오는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역사의 흐름을 지켜본 전망산과 후망산과 더불어 치욕의 역사를 가멸차게 견디어온 장항제련소의 굴뚝은 우리 가슴의 상징이며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거듭으로 생각하게 해준다.

오늘날까지 전­후망산이 지켜보았던 역사의 흐름에 정점을 찍고, 장항제련소의 굴뚝이 새로운 관광적 명소로 거듭나도록 하게 함으로써 살아있는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무릇 관광이라 함은 발걸음의 자유를 확보하여 줌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경계선을 뛰어넘어 오고 가게 하고, 그동안에 가졌던 가슴 앓이적 편견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도록 하여 새로운 시대에 맞는 커다란 길을 연출해 낼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든 줄 알지만/ 길은 순순히 사람들의 뜻을 좇지는 않는다/  사람을 끌고 가다가 문득/ 벼랑 앞에 세워 낭패시키는가 하면/ 큰물에 우정 제 허리를 동강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들이 만든 길이/ 거꾸로 사람들한테 세상사는/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길이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온갖 곳 온갖 사람살이를 구경시키는 것도/ 세상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길의 뜻이 거기 있는 줄로만 알지/ 길이 사람을 안에서 밖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은 모른다/ 길이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길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 몸을 수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이 땀을 식히게도 한다/ 그것을 알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 신경림의 「길」 전문

2020년 4월 24일 금요일. 다시 장암진성長巖鎭城을 찾는다.

한창 봄이 무르익어서인지 장암진성의 동쪽 성벽 밑에서는 역시 풀이 한창 자라고 있으나 오르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미 자란 풀마저 말끔하게 깎아놓아 성벽과 함께 하기에 아주 좋다.

관리가 잘 되고 있는 것 같아 흐뭇하다. 먼저 장암진성에 관한 안내의 글부터 살펴본다. 


장암진성은 해발 90.1m의 후망산 남서쪽 끝에 있으며, 산성이라기보다는 평지에 있는 평지성에 가깝다.

성벽의 둘레는 640m이고, 동­서 190m, 남­북 100m로 역사다리 꼴에 가까운 형태로, 남쪽 벽과 북쪽 벽에 각각 1개씩의 문터가 있다.

동쪽 벽에서 5­7m 정도 떨어진 곳에 폭 4m, 깊이 1.2m로 주변에 도랑을 돌린 해자가 있으며, 서쪽 벽은 일제시대 때 거의 헐려 형태가 잘 남아 있지 않다.

장암진성은 고려시대에 부르던 이름이며 조선시대에는 서천포읍성, 서천포진성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조선 중종 9년(1514)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안내문이 세워진 곳은 바로 장암진성의 입구이다. 그러나 입구에서 성은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 가운데로 도로가 놓여있는 탓이라 여겨진다.

뿐만 아니라 1997년 복원된 장암진성 밑로는 4차선의 도로가 인도와 함께 굴다리를 이루고 있다. 성벽 위로 굳이 오르지 않고 성벽 밑으로 천천히 올라간다.

복원된 성의 돌이라서 세월의 흐름을 엿볼 수 없다는 것이 조금은 아쉬웠으나 이렇게라도 복원되어 성을 살필 수 있다는 것이 퍽이나 다행스럽다.

선인들이 나라를 지키면서 피를 흘렸을 고귀한 희생정신의 현장이라 소중스럽게 보존하고 받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자못 엄숙해지기도 한다.


장암진성은 1511년(중종6) 9월에 축성이 시작, 잠시 중단하였다가 1514년에 완성된다.

주변에 널리 흩어진 암반에서 석재를 채취하여 성돌로 사용, 해발 90m의 후망산에 축조된 평산성으로 성곽높 이는 대략 2-2.5m정도다.

남쪽 성벽과 북쪽 성벽에 각각 성문 터가 있으며, 서쪽 성벽과 전망산 사이는 바닷물이 드나들어 자연스럽게 해자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성벽 밑으로 몇 발자국 더 오르자 나타난 곳은 성벽의 돌출 부분이다. 이른바 치성雉城으로 보인다.

치성雉城이란 성곽의 시설 중 하나로, 성곽 일부분을 네모나게 돌출시켜 적들을 손쉽게 진압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곳이다.

곡장曲墻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곡장은 방어적으로 중요한 지점에 성곽 일부분을 둥글게 돌출시킨 것이거니와 이 치성과는 다르다. 치성 밑에는 수많은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그중 검은 솔 하나가 멋진 모습으로 서 있다. 성 아래에 작은 씨앗 하나로 떨어져 뿌리를 내리면서, 비를 불러 부지런히 몸을 적시고 키워 오늘에 이르렀음이 분명하다.

성 안에서 일어난 숱한 함성과 울부짖음을 어떻게 짓누르며 간직하여 왔을까. 잠시 숙연해진다.


때로는 수없이 흐르는 세월의 한순간 푸른 바다에서 불어오는 매운 바람과 마주하여 치열한 싸움을 전개하였을 것이며, 또한 날카로운 잎잎마다에 날선 칼날 위에서처럼 햇살을 모아 허공을 향해 휘둘러대면서 이름 모를 병사들의 외침을 달래주기도 하였을 것이다.

장암진성에서 전개되었던 전운戰雲의 함성이 소나무 가지를 흔들어대는 바람소리처럼 들려온다.

사람의 힘에 의하여 올려 쌓여진 성돌 하나하나가 오랜 세월을 거쳐 오는 동안에도 부지런히 자라 이제는 노송老松으로 불릴 만큼 자라온 소나무들이 마치 성을 지키듯이 제각기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오래오래 한자리에 머물며 부지런히 하늘을 향하여 자라온 가지를 키워 그늘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 모습이야말로 어느 은자隱者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겨줄 듯 슬슬 불어오는 바람결에 소리 없이 흔들리는 모습 또한 은자의 소맷자락처럼 부드럽기만 하다.

치성 앞 소나무 그늘에서 잠시 이마의 땀을 말리다가 다시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러다가 성돌의 생김새나 색깔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새로 쌓은 성벽과 원래의 성벽이 확연히 구분된다. 복원된 성에 이어 옛 성곽이 이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복원된 성곽이 돌로 축성되어 있다면 옛 성곽은 3~4개의 돌이 층을 이루고, 그 위에 흙으로 덮여있다.

성 위로는 소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성밑으로는 잡초와 덩굴성 식물들이 뒤엉켜 있다. 성밑이 잘 보이지도 않아 정확하게 확인할 수는 없다. 급경사를 이룬 지형을 자연스럽게 성벽으로 이용한 듯하다. 

성밑으로 걷다 보니 나무테크 계단 앞에 이른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른다. 그리고 계단 끝으로 너른 전망대, 아, 가슴이 탁 트인다.

일망무제一望無際란 바로 이렇게 한눈에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하게 멀고 넓어서 끝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동으로는 장항읍내 산업단지 건물의 지붕을 가볍게 뛰어오르다가 어느 사이 동백대교를 지나 아스라이 금강대교의 모습이 송두리째 들어온다.

서쪽으로는 서해바다다. 해송림을 바람처럼 날아 망망대해에 풍덩 빠져드는가 했더니 점점이 찍어놓은 섬들 사이를 가볍게 휘돈다. 그래서일까 이곳의 낙조는 아름답기로 널리 알려져 있단다.


옛 장항제련소의 굴뚝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 옛날에 내뿜었던 검은 연기는 보이지 않는다. 연기를 버린 굴뚝은 다만 옛 그대로 서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모습이나 크기는 압도할 만큼 여전히 위엄이 배어있다. 얼마나 위풍당당한 모습인가. 1936년 조선제련주식회사로 설립되어 국내 비철금속산업의 중심 역할을 하는 동안 굴뚝은 산업화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1962년에는 한국 광업제련공사가 되고, 1972년에는 한국 광업제련주식회사로 민영화된 이후 1986년부터 스테인리스 파이프 제조설비 등 금속가공사업, 그리고 2000년 현재 한일합작회사인 LG-Nikko동제련의 장항공장으로 운영되는 등 그 변환 과정에서 굴뚝은 제 기능을 버린 채 전망산前望山 맨 꼭대기에 그대로 선 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장항제련소 굴뚝이 있는 돌산이 전망산이요, 장암진성이 있는 후망산後望山이라 불리고 있는데, 이 두 산 모두 고대로부터 군사적 요충지라고 한다.

옛날 세곡稅穀을 실어 나르던 조운선漕運船이 해적들로부터 나포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마량진까지 만호(萬戶:3.조선 시대, 각 도의 여러 진에 배치되었던 종사품의 무관 벼슬)가 근무하던 곳이기도 하였단다.

그러나 지금은 큰 도로 건너편의 송림 앞쪽 지역으로부터 옛 모습을 모두 사라져 있다.

금강 지류가 흘러 들어와서 형성된 모래사장이 있었다 하나 지금은 산업단지 등으로 막혀서 겨우 물길조차 숨 고르기가 어렵다 한다.


전망대에서 둘러보는 시선을 좀처럼 거둬들일 수 없다. 바라보는 한곳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둘러보아도 새롭고 끝이 없어 발걸음조차 차마 옮길 수 없다.

그대로 바라보면 보이는 족족 시선은 무한으로 달리고, 시선을 돌려 다른 곳에 이르는가 싶다 보면 어느 사이 시선을 또다시 훤히 드러나는 먼 길을 향해있다.

기벌포­-진포­-서천포라는 이름으로 흐르는 세월 동안 해적들의 노략질로부터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장암진성을 쌓아올린 것이다.

저 전망산과 이 후망산을 튼튼하게 지켜냄으로써 백성을 구하고자 하였던 만호들의 뜨거운 가슴을 그려본다. ‘전쟁의 목적은 평화’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 평화에 어찌 피가 뒤따르지 않았겠는가. 전망대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데 문득 이정표 하나가 눈에 띈다.

‘장암진성’과 ‘후망산’이란 글자 앞에 화살표가 서로 등을 돌리며 방향을 제시하여 준다. 후망산으로 오르는 길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듯하다.


검은 솔 하나
- 장암진성長巖鎭城에서
                         구재기

네 앞에서
무슨 말을 다 할 수 있으랴
하고자 하는 말을
다하고 사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세상
너는 언제나 침묵으로 항변해 왔다
바다로부터 몰려오는 거센 바람과
우와우우 돌진해 오는
밀물의 으르렁거림과 울부짖음에도
견고하고 철저하게 침묵을 지켜왔다
모든 생명들이
죽음을 두려워할 때
어디에도 피할 곳 없다 할 때
아무리 말을 꾸며 엎치락뒤치락하더라도
흩어지는 티끌처럼 푸른 깃 하나
세상을 더럽히지 않았다, 재앙은
도리어 너를 더럽히고 있을 뿐
결코 숨으려 하지 않는
숨을 곳도 찾을 수 없는 이 세상
허공도 아니요 바다도 아니다
하루 세 때 가운데
적어도 한 번은
하늘을 우러르며 너를 살피다 보면
말[言]이 말로 상하여
말 못 하고 말만 보고 듣게 되는 것
비록 침묵이 흠이 아니라도
세상맛을 돋우는 소금처럼
조금만으로도 맛을 내는데
하물며 많은 소금을 넣어
맛을 잃을 리가 있겠는가
검은 솔 하나
잔성盡誠으로 자리를 지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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