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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근호 칼럼】실패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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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n뉴스. 서해신문  독자 여러분, 새해 인사 올리겠습니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제 고향 충청인들께서 새해의 소망하는 모든 일을 모두 이루세요.  첫째로 몸 건강하시고, 둘째로 마음 건강하십시오. 어쩌면 마음 건강이 첫 번째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늘 건강하세요" 라고 인사할 때 그 건강에는 당연히 몸과 마음이 다 들어 있는 것이겠지만 우리의 언어 습성상 몸을 먼저 떠올리게 되어 일부러 몸과 마음을 구분하여 건강을 염원 드렸습니다.




지난해 12월 30일부터 금년 1월 1일까지 카톡, 메시지, 이메일 등을 통해 많은 신년 인사를 받았습니다. 어느 분은 예쁜 꽃바구니를 보내 주시기도 하였습니다. 


모두 2019년이 행복한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정성껏 보내 주신 것입니다. 일일이 답장은 못 했지만 이 월요편지를 통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도 많은 새해 인사를 받으셨을 테고 답장하시느라 손가락 꽤나 아프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새해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Ritual 즉, 의식(儀式)입니다.


저는 2019년 1월 1일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다른 분들과 다른 의미에서 이날 아침 신문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1월 1일 자 한국경제신문을 학수고대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제가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 수필 부문에 응모하였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기분 좋게 낙선하였습니다. 오랜만에 나선 경쟁에 미역국을 마신 것입니다.


무슨 주책맞게 신춘문예 응모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사정의 발단은 이러하였습니다. 2018년 9월 17일 자 월요편지에서 '한양도성 순성놀이를 아시나요.'를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그 월요편지를 보신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측에서 그 월요편지 내용을 한국경제신문에 실으면 어떻겠냐고 문의를 해와 좋다고 하고 기사화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일로 문화부 관계자 몇 분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문화부장께서 뜻밖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조 변호사님은 월요편지를 10년째 쓰고 계시고 글 내용도 좋으니 신춘문예에 한번 응모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침 저희 한국경제신문에서 2019년 신춘문예 부문에 수필을 처음 공모하니 한 번 응모해 보시죠." "제가 어떻게." "새로 쓰지 마시고 기존에 쓰셨던 월요편지 중에 골라서 응모하시면 충분하실 것 같습니다."


그날 이후 그 문화부장의 말씀이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한번 응모해볼까? 아니야, 떨어지면 창피인데. 그러면 어때 그냥 재미로 해보는 거야.' [한다]와 [안 한다]가 하루에도 수없이 티격태격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한다]가 승리를 하였습니다.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 공모 안내를 보니 200자 원고지 20매짜리 수필 2개를 제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날부터 과거에 썼던 월요편지에서 응모할 만한 수필을 고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제 혼자의 감각으로 부족하다고 여겨 젊은 김선정 과장과 박유진 과장에게 좀 도와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존의 수필 부문 신춘문예 당선작을 찾아 열심히 읽고 심사평도 공부하였습니다. 조근호식 프로젝트 수행법이 시행된 것입니다.


드디어 후보작을 5편 골라 친구인 국어국문과 교수에게 보내 어느 것이 좋은지 감별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친구는 두 개를 골라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힘을 빼. 현대의 독자들은 꼰대식 글을 좋아하지 않아." 그런데 제 글을 읽어보니 여기저기 꼰대의 냄새가 납니다.


두 개의 소재는 정해졌으니 기존의 월요편지를 토대로 응모 조건에 맞게 새로이 다듬는 일이 남았습니다.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친구 말대로 힘을 빼는 작업입니다. 다른 신문사 신춘문예 수필 부문 심사평을 읽어보았습니다. 주제와 구성에 대한 평가도 있었지만 문체에 대한 평가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제 혼자 생각에 월요편지의 강점은 주제와 구성인데 문체가 약점이라고 평가하였습니다. 그래서 문체에 관한 책을 몇 권 뒤적거려 보았습니다. 


결론은 제 글에는 비유법이 부족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글에 비유를 첨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글에 색깔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색깔은 추상적 의미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느 문장을 읽으면 노란색이 상상되거나 파란색이 읽히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작업을 하였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입니다.


"단풍이 곱게 물든/ 수사관처럼 집요하게/ 오렌지 알갱이처럼 송골송골/ 그랜드 캐니언같이/ 귤과 사과처럼/ 생각이 현실과 상상을 건너 다니는 사이 주황 빛깔 해님이 창문을 넘어 방안으로 한 발짝 한 발짝 들어서고 있다. 그때 아내의 소프라노 음색이 귀청을 때린다/ 시쳇말로 당근 같은 대답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호박에 줄 간 듯/ 태양보다 더 커다란"


[아빠 나 결혼했어]라는 제목의 월요편지에 첨가한 표현들입니다. 단기 기억상실을 한 딸의 회복 과정을 그린 따뜻한 글이라 주황색을 입히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왠지 남의 옷을 입은 듯 자연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글을 쓰는 스타일이 첫 글자부터 마지막 글자까지 한숨에 쓰는 스타일인데 비유법을 넣고 색깔을 넣느라 덧칠을 여러 번 하고 보니 화려하기는 하지만 덕지덕지 무엇이 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 글들을 아들에게 보여 주고 코멘트를 부탁했습니다. 


아들은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글은 아버지 글이 아니에요. 심사평에 신경 쓰지 마세요. 설사 이렇게 써서 신춘문예에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아버지께서 당선되신 것이 아닌 것 같아요. 낙선되더라도 당당하게 아버지 문장 스타일로 써서 내시는 것이 맞을 것 같아요. 떨어지시면 어떻습니까? 아버지 문체는 아버지다워야 하는 것 아닌가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그간 10년 동안 제가 쓴 월요편지에는 제 나름대로의 문체 스타일이 있습니다. 


그 스타일이 좋고 나쁨을 떠나 그 스타일로 애독자분들과 소통하며 지냈습니다. 때론 웃음이 때론 눈물이 그 스타일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저는 이제 문학을 시작하는 문학도가 아닙니다. 10년을 써온 저의 스타일을 한번 평가받는 것뿐입니다.


이렇게 응모한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 수필 부문의 결과는 낙선으로 끝이 났습니다. 


낙선이 되었지만 기분 좋은 낙선이었습니다. 도전은 결과보다 그 과정이 더 아름답다는 말이 이번 도전에 딱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실패한 도전. 나이가 들어가면 낯선 일에 도전하려 들지 않기 마련입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도전을 주저케 만들지요. 


그런데 이번에 오랜만에 공개적인 도전을 해 보니 실패도 별거 아니더군요. "아하 신춘문예 심사위원들은 월요편지 스타일의 문체를 좋아하지 않나 봐."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이번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제 문체는 지켜냈으니까요. 내년에 또 도전할거냐고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또 도전에 대한 욕구가 생기면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제 스타일은 지키고 싶습니다. 신춘문예 당선을 월요편지 10년과 바꿀 수는 없으니까요.


▶필자 조근호

1959년 충남 서천출생. 대일고. 서울대 법대 1981년 사시 21회 합격. 서울 춘천.대구지검 검사 서울지검 형사 2부장. 서울지검 형사 5부장, 대검 검찰 연구관, 대구지검 2차장검사. 대검법죄 정보과장,. 대검 범죄정보기획관. 대검 공판부장, 사법연수원 부원장  대전지검 검사장. 부산 고검 검사장. 법무연수원장, 법무벌인 행복마루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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