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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7080세대 추억의 아이템 서천 장항읍 원수리 ‘하숙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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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순 할머니, 50여 년간 ‘하숙집’ 운영해 4남매 반듯하게 키워
하숙집, 원형 잘 보존돼있어...가슴 한켠 아릿한 ‘향수’가 있는 곳
사라져가는 하숙집...개인주의로 부대끼며 살지 않으려는 ‘시대상’

[sbn뉴스=서천] 남석우 기자 = 충남 서천군은 얼마 전 SBS 예능프로그램 미운우리새끼’에서는 배우 겸 모델인 배정남이 어린 시절 자신을 키워준 하숙집 할머니를 찾아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이날 방송에서 배정남은 “부모님의 이혼으로 10살 나이에 하숙집에 맡겨져 차순남 할머니 댁에서 자랐다”라며 “할머니께서 매일 밥도 챙겨주고 졸업식이나 운동회에도 함께 가주셔서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 시절 그 빈자리를 채워줬다”라고 말해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70~80년대 전성기를 지냈던 하숙집은 이 시기에 하숙 생활을 했던 세대에게는 아련한 추억의 아이템이기도 한데 그 당시 하숙집은 대개는 허름한 집에 방이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은 구조 인데다 화장실도 보통은 한·두 개를 여러 명이 공유하는 형태여서 아침에는 용변을 보기 위해 줄을 서야 하는 등 지금 생각해보면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시절 하숙집이 우리에게 추억으로 자리할 수 있는 것은 그 당시 하숙집에는 정(情)이라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아주머니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와 하숙생들 간에 나눴던 정(情) 우린 아마도 그 정이 그리운 것일지도 모른다.


sbn서해신문에서 이 정(情)의 자취를 쫓아 장항읍 원수리에서 50여 년간 하숙집을 운영했다는 이종순(80) 할머니를 찾았다.



1960년대 초부터 90년대까지 50여 년 동안 하숙을 하며 4남매를 반듯하게 키워냈다는 이 할머니는 처음에는 따로 하숙을 위한 집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그 당시 신혼집에서 하숙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할머니는 그때를 회상하며 “집에 방이 셋 있었는데 안방까지 하숙생들한테 다 내어주고 우리 식구들은 근처 시댁에서 지냈다”라며 “방마다 4~6명이 지냈는데 밥때가 되면 둥그런 상에다 밥을 차려서 방으로 가져다주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그 당시에 좀 불편한 게 있었다면 한집에 사람은 많은데 화장실이 하나다 보니까 아침에 용변이 급한 사람은 곤혹스러운 상황을 겪기도 했다”라며 “정 볼일이 급한 사람은 시댁으로 데려가 용변을 보게 하기도 했다”라고 말해 잔잔한 웃음을 주었다.


그러면서 이 할머니는 “요즘도 그때 하숙생들이 간혹 찾아오곤 한다”라며 “얼마 전에는 무릎 수술하느라 2달 정도 입원해서 집을 비웠는데 그사이 한 하숙생이 찾아와 수술비에 보태시라며 앞집에 20만 원을 맡겨 놓고 갔다”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sbn서해신문 기자는 이 할머니께서 전해주는 낭만 가득했던 그 시절 하숙 생활 이야기에 마치 옛날이야기를 듣는 아이처럼 한참을 빠져있었다.


그렇게 추억 속을 더듬다가 이야기를 마치고 당시 할머니가 운영했다는 하숙집을 찾았다.
하숙집은 그녀가 하숙을 치던 때의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지금의 고시원보다도 작은 방들이 촘촘히 붙어 일렬로 쭉 늘어서 있는 하숙집은 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그 당시 풍경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하숙방의 문을 열고 안을 둘러보니 지금은 쉽게 볼 수 없는 형광등, 눈에 익숙한 모양의 문양이 새겨진 창문, 벽에 걸린 옷걸이 등이 향수를 불러일으켜 가슴 한켠이 아릿했다.



sbn서해신문 기자는 취재를 마치고 동네 골목길을 따라 나왔다.
길 굽이굽이 마다 어려있는 세월의 흔적을 거슬러 불과 몇 발자국 넘어오니 그곳엔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이 있었다.




그 길에 들어서니 불과 몇 분 전 세상이 마치 꿈을 꾼 듯 그새 흐릿했다. 지나간 세월의 아쉬움과 현실 속에 있다는 안도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sbn서해신문 기자는 얼마 전 친한 선배를 만나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선배는 “딸아이가 대학에 합격해 서울로 가야 하는데 하숙은 싫다고 해서 원룸을 알아봐야 할 것 같다”라며 “우리 때는 하숙 참 많이 했는데 요즘 애들은 하나나 둘씩 크다 보니까 도무지 남들하고 부대끼며 지내려 하지를 않는다”라고 푸념했다.


사람에 대한 애착이 점점 덜해지고 개인주의로 흘러가는 지금 이 시대, 사람 사는 냄새와 온기로 정(情)이 넘쳤던 그 시절 하숙집이 새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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