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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탐방】지명·인물 등 다채로운 이야기가 있는 마을 판교 현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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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충남 3대 시장 중 하나...현재 관광 테마 마을로 급부상
도토리묵·표고버섯·포도 등 다양한 특작 사업으로 소득 올려

서천군 판교의 지명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다. 원래 해 뜨는 마을이라는 뜻의 ‘동면’ 이었다가 일제강점기 일본이 해 뜨는 마을이라는 지명이 마음에 들지 않아 판교로 바꿔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설화로 산세가 커 호랑이 등 산짐승이 넘어오고 하여 낮에는 내려놓았다가 밤에는 올려 동물이 못 다니게 했다는 다리가 있었는데 이 다리가 나무로 만들어져 널빤지 판 자에 다리 교 자를 써 지금의 판교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렇게 지명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는 판교면, 이중 현암리에 뉴스아이즈 서해신문이 찾았다. <편집자 주>



◇일본인의 계획도시...한때 우시장으로 전국 유명세


현암리는 원래 일본인들의 계획도시라고 한다. 과거 현암리에는 조상들이 만든 ‘정주하’라는 보가 있었는데 보를 없애고 신시가지를 만들었고 이곳이 지금의 현암리가 되었다.



현암리 과거의 모습은 지금의 조용한 모습과 달리 광천, 논산과 함께 충남 3대 시장이 열렸던 꽤 규모가 있던 마을이었다고 한다.


30년대 일본인들이 수탈을 위해 철도를 놓았고, 철도가 놓이니 사람들이 운집했다. 판교는 ‘저산팔읍보부상’ 이라는 모시 보부상들의 통로도 됐었지만, 인천, 공주 등 전국에서 모여드는 소로 우시장 또한 크게 열렸었다.



우시장에는 소가 많게는 1000여 마리까지 있었는데 교통수단이 전혀 없으니 멀리서 판교에까지 도보로 소를 몰고 모여들었다. 6월 농사가 끝나고 소가 새끼를 낳는 7, 8월이면 우시장이 10일장으로 열리다가 소가 많아지면 5일마다 장이 열렸다.


 

당시 판교 우시장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렸고 풍각쟁이, 약장사 등이 덩달아 장사를 많이 했다고 한다. 판교 우시장의 위세를 엿볼 수 있는 말로 ‘판교에서는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 ‘판교에서 판 소로 우골탑이 만들어졌다’라는 말 등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엄청난 규모와 위세를 자랑했던 판교 우시장은 70년대 이후 교통과 수송수단의 발달로 쇠퇴의 길을 걸었으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시간이 멈춘 마을’ 관광...냉면·중식 맛집 거리 형성


현재의 판교는 ‘시간이 멈춘 마을’ 테마의 스탬프 투어와 냉면집, 중국집 등 TV에 자주 출연한 맛집들로 관광지로서 알려져 있다. ‘시간이 멈춘 마을’이라는 테마는 현암리 주민들이 듣기에는 가슴 아픈 이야기라고 한다.


예전에 충남 3대 시장으로 융성했던 시기에서 발전이 멈춰 건물도 그때 그대로 멈추고 쇠락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에 현암리 주민들은 음식점 하시는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시간이 멈춘 마을’이라는 테마를 가져 사람이 찾지 않을 이미지가 있지만, 음식점에서 자발적으로 음식을 개발하고 또 꾸준히 하니 이곳에 식도락 관광객들이 참 많이 찾기 때문이다.


현암3리 구양완 이장은 “관광에 있어서 관에 미안하지만, 민이 앞선 것으로 생각한다”라며 “누가 여름에 음식점을 이용하려고 수만 명이나 찾아올 거로 생각했겠나. 참 고마우신 분들이다”라며 감사한 마음을 내비쳤다.


또 구 이장은 스탬프 투어에 대해 “관에서 많이 도와줄 테고 사업도 오래 했지만 쉽지만은 않다.


 10여 년 전 철로를 뜯은 게 실수다. 지금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이 기차 테마로 전국적으로 유명한데 거기보다 좋을 뻔했다”라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도토리묵·표고버섯·포도 등 특작 사업으로 소득 올려


또한, 판교면은 도토리묵, 표고버섯, 포도 등의 특작 사업으로 군내 다른 지역에 비교해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현암리 주민들도 이런 특작 사업에 많이 종사하고 있다.



그러나 판교는 인구 2300명 중 절반에 가까운 1040여 명이 65세 이상의 초고령화 농촌으로 농사가 조금씩 힘겨워지고 있다.


먼저 도토리묵 사업의 경우 일본의 수탈과 6·25 전쟁으로 먹을 게 없어 도토리묵을 만들던 것이 현재 사업의 근원이다.



한 주민은 “사람들이 하도 도토리를 주워다 먹다 보니 도토리나무는 클 새도 없었다” 라고 한다.


또, 열차가 다니다 보니 사람들이 도토리묵을 팔러 많이 다녔는데 이 또한 지금의 도토리묵 사업 뿌리가 되었다. 표고버섯의 경우 원목 재배를 하는 데 고령화로 힘이 달려 힘든 상황에 있다.


게다가 작년과 재작년 급격하게 병해충이 증가해 피해 또한 많이 봤다. 그래도 표고버섯 사업 종사자들은 올해 가을은 어떻게 될지 기대하고 있다.


이어 포도는 우라리와 수성리 일대에 50여 농가가 재배하고 있다. FTA 자동차 수출을 위해 정부에서 포도에 대한 피해보전금을 지정했고, 그로 인해 현재 농가 수는 줄었지만, 다행히 남은 농가는 잘 유지되고 있다.





◇농촌계몽 운동의 선구자 고석주 선생의 활동무대


군산에서 태어나 판교에서 활동한 위인으로 잘 알려진 고석주 선생님은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복대리에 있는 보부상 공동묘지에 방치되는 등 한동안 잊고 살았다.


고석주 선생님 발굴에 큰 역할을 한 구양완 이장은 “사실 고석주 선생님이 누군지도 몰랐다. 이승만 선생님과 같이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이 왜 판교에 묻혀 계실까? 의문이 들어 조사해 보게 되었다” 라며 발굴 이유를 전했다.


그러나 고석주 선생님이 정확한 연고 자료가 없어 발굴에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기록에는 선생님의 존함이 주석석(錫) 자로 되어 있는데 판교면사무소 호적에는 돌 석(石) 자로 되어 있어 보훈처에서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시행착오 끝에 선생님을 지난 16년 11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모실 수 있었다.


판교면민들이 묘소를 지켜온 고석주 선생님은 현재까지도 ‘판교교회’를 설립해 지역에 복음을 전파함과 동시에 농촌계몽 운동의 선구자로 기억되고 있으며 그 서슬 퍼런 시기에 ‘창씨개명’도 하지 않는 꿋꿋함이 기억되기도 한다.


구양완 이장은 “개인적으로 뿌듯하다. 마을의 이야기가 역사라는 것을 이번에 뼈저리게 느꼈다”라며 작은 이야기라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을 당부했다.



이렇게 뉴스아이즈 서해신문이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고즈넉함이 존재하고 있는 판교면 현암리에 찾아보니 특유의 정취와 분위기가 아주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다양한 특작 사업과 맛집, 그리고 위인의 이야기가 공존하는 현암리의 발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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