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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방] “6·25전쟁 ‘굴곡진 삶의 기록’...서천 참전용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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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당시 서당서 공부하던 한 젊은이, 영문도 모른 채 전쟁터로 끌려가
1950년 9월 27일 서천등기소 창고에 주민 250명 불태운 학살 사건 발생
6.25 참전유공자회 강신유 회장, “참전수당 45만 원 받는 안타까움” 토로


6월은 기억하고 감사하고 추모하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참전용사와 호국영령의 희생과 헌신이 없었다면 현재의 우리도 없었다. 이에 뉴스아이즈 서해신문은 구순을 넘긴 충남 서천지역 참전용사들의 회고와 바람을 들어봤다.


1950년 6.25일. 당시 서당에서 글 공부를 하던 한 젊은이는 영문도 모른 채 전쟁터로 끌려가야만 했다.


강원도 전투에 투입된 그는 허벅지에 두 군데나 총상을 입었다는 강신유(92) 6.25 참전 유공자회 서천군지회장은 “그때는 내가 서당에 다니는데, 느닷없이 경찰들이 오더니 일어나라 하더니 강제로 군대 갔다”라며 그때 당시를 회고했다.



서천지역은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곳은 아니지만 1950년 9월 27일 서천등기소 창고에 주민 250명을 몰아넣고 한꺼번에 불에 태워 학살한 사건이 있었다.


옆 동네에 있었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는 생존자 조필연(6.25 참전유공자)씨는 “등기소 창고가 있어요. 거기다 전부 몰아넣었잖아. 북한군들이 후퇴하면서 거기에 휘발유 놓고 불 낸 거야. 나는 그때 앞 동네에 있었는데 사람 살려 소리가 나는데 총소리가 뻥뻥 났어요. 어떻게 가 나갈 수가 있어? 그 이틀 아침 가니까 다 죽었지. 니팔 내팔 할 거 없이 다 엮어져가지고...”라고 전했다.



현재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킨 이들은 국가보훈처에서 30만 원, 서천군에서 15만 원의 참전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이 역시도 최근 들어 늘어난 금액이다. 서천군에서는 2008년 3만 원으로 시작해 2011년 5만 원, 2012년 10만 원, 올해 15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서천군에서 참전수당을 받는 6.25 참전용사의 수는 모두 282명. 지난 2014년 456명에서 2017년 297명으로 해마다 그 수가 줄고 있다.



이에 대해 강신유 6.25 참전유공자회 서천군지회장은 “우리가 수당 45만 원을 받는 것은 너무나도 박한 그것을 받고 있다. 대부분 다 참전용사들이 떠나고 있는 실정에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국가에서 그런 대책이 돈 백만 원이라도 주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라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러한 안타까움은 박홍래 어르신도 마찬가지다. 그는 1년간 강원도 수도 고지 전투에서 천우신조로 살아남았다며 참혹했던 당시를 회고하던 중 가슴 속에 맺혀있던 울분을 토했다.



박홍래(91) 6.25 참전유공자는 “이북 놈들은 따발총 연발총 쐈어. 그렇지만 우리들은 한발 한발 나가는 거로 했어. 그것가지고 했어. (영하)30도가 넘는데 눈에다 모포 한 장만 놓고 잤어”라며 결국 울음을 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의 열악한 지원 속에서도 노병의 바람은 젊은이들이 다시는 이러한 참상을 겪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박홍래 6.25 참전유공자는 “안보가 첫째야 안보가. 더 이상 전쟁은 없었으면 하는 거야. 더 이상 우리가 겪은 것을 후손들이 겪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지”라고 강조했다.



6.25 참전유공자. 그들에게 당시 중요했던 것은 오로지 나라와 가족, 자손을 지키는 것이었다.


2018년 6월 우리가 누리는 이러한 평화는 68년 전 나라를 위해 헌신했던 6.25 참전유공자.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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