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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지금 당신은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까?를 묻는 [리틀 포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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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게 고향으로 내려온 혜원은 서리 내려 못 먹을 것 같은 배추를 다듬어 배추된장국을 끓이고 딱 한번 먹을 만큼만 남은 쌀을 꺼내 밥을 지어 먹고 오랜만에 단잠을 잔다. 

연락 없이 떠난 엄마처럼 연락 없이 내려온 혜원에게 고모는 왜 왔냐고 물어보지만 혜원의 대답은 “배가 고파서”가 전부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도시로 떠나 유통기한이 임박한 편의점 도시락, 냉장고에는 상한 음식들밖에 없는 원룸에서 홀로 사는 짠한 청춘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먹이면서 위로를 건네고 있다.

집으로 돌아온 혜원은 먹기 위해서 농사를 짓는다. 그리고 음식을 할 때마다 어린 시절 엄마가 해줬던 음식들이 자연스레 떠오르고 이 과정에서 혜원은 수능 날 집을 나간 엄마와 마주해야만 한다. 

엄마의 레시피대로 때로는 나만의 레시피로 만든 음식은 이제 혼자가 아닌 친구들과 함께 나눠 먹고 웃고 떠든다. 혼술이 아닌 여럿이 함께 먹는 음식과 술, 수다가 있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힐링이 된다. 

회사 이야기, 집값 이야기를 나누는 게 아니라 자연 속에서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며 웃고 떠들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서울이나 도시에 있는 대학에 가야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해야 하고 결혼을 해야 하고 아파트에 살아야하고 차는 꼭 있어야 하는 생각을 갖고 우리는 삶을 살고 있다. 

도시나 시골이나 누구나 이런 삶의 욕망을 갖고 있는데 이것은 진짜 나의 욕망일까, 혹시 다른 사람의 욕망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의 욕망이 아닌 타인의 욕망에 맞춰 살고 있기 때문에 만약 조금이라도 인생의 성공에서 미끄러지면 루저로 자신을 규정해버린다. 이런 삶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영화는 지금 잘 먹고 잘 살고 있는지를 묻는다. 

수능이 끝난 날 집을 나간 엄마는 혜원에게 보낸 편지에서 시골 생활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여기에 뿌리를 내려 이곳의 흙냄새와 바람, 햇볕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리틀 포레스트>는 유명한 관광지의 풍광이 아닌 자연스러운 시골 동네의 사계절을 보여준다. 

자연의 변화 뿐 아니라 그 변화에 맞춰 일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함께 보여주면서 자연의 순리대로 사는 삶이 주는 편안함을 선사하면서 계절마다 생각나는 음식을 곁들여 우리의 눈을 호강시킨다. 

일본 원작 영화를 리메이크했지만 밤조림만 빼고 우리가 삼시세끼로 먹는 음식들과 별식을 선보이면서 친구들과의 관계, 엄마와의 관계를 다루는 장면의 비중을 높여 훨씬 우리의 정서에 맞게 각색했다. 

아무런 사건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리틀 포레스트>는 엄마의 레시피를 따라 하던 혜원이 나만의 레시피로 감자빵을 만들고 엄마가 그랬듯이 나만의 ‘작은숲’을 만들기로 결심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또한 쉽지 않은 선택이겠지만 ‘흙 냄새와 바람, 햇볕’을 기억한다면 잘 해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감독, 2018. 02. 28 개봉. 전체관람가. 1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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