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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일본식민지의 남아있는 잔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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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대한민국 사회는 ‘위안부 이면합의’가 화두로 떠올랐다.

새해 들어서도 사그라지지 않는 ‘위안부 이면합의’ 문제는 지난해 12월 27일, 외교부 산하 태스크포스의 발표로 2015년 한·일 위안부 협상의 전말이 드러난 것이다.

전 정부에서 일본 측의 대사관 앞 소녀상 이전 요구를 수용한 듯이 해석될 여지가 있는 내용을 비롯해 제 3국의 위안부 기림비 설치를 정부가 지원하지 않겠다거나 ‘성노예’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는 등 민감한 사안을 이면합의 해주었다는 주장이다. 

정부가 이면합의 내용을 발표하자 일본의 아베 총리는 “위안부 합의는 1mm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확고한 의지를 내놓았고 고노 외무상도 담화문을 통해 “협상 과정에 전혀 문제가 없었고, 합의를 변경하려 한다면 한일 관계는 관리가 불능 상태가 될 것”이라며 엄포를 놓기도 했다.

“진정어린 사과를 받아야 할 대한민국이 되레 30년 간 비밀에 붙여야 할 외교문서를 까발려 국제사회에 한국의 신뢰를 떨어뜨렸고 자신들과의 약속을 어겼다”며 적반하장 격으로 나오는 일본의 반응을 보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비참함까지 느껴질 정도다.

‘위안부 이면합의’가 밝혀지자 여당은 “고통 받은 할머니들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준 박근혜 정부 당시 책임자들은 국민과 역사 앞에 지금이라도 사죄해야 한다”며 몰아세웠고 여당 측은 “국제무대에서의 굴욕외교로도 모자라 모든 외교현안도 정치보복에 이용하는 문재인 정권의 모습에 국민 인내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며 연일 맹공을 퍼붓고 있다.

역사를 바로잡고 사과를 받아야 할 대한민국 사회가 ‘외교참사’와 ‘정치보복’이라며 서로의 멱살을 잡고 있는 행태들을 보면  아직도 일제식민지의 역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청산해야 할 일제식민지의 잔재들이 정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교육현장에서도 그 흔적들이 남아있다.

황국신민 정신을 주입하기 위해 시행하던 애국조례며 학교장 훈화, 일본식 군국주의 교육의 잔재인 ‘차렷, 경례’, 불량학생을 색출하기 위한 주번제도, 복장위반이나 지각생을 단속하던 선도부, 초등학교 운동회가 되면 기계체조와 ‘인간 탑 쌓기’를 위해 어린 학생들은 한 달 내내 운동장으로 내몰려야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 스포츠머리에 검은 교복이 학생들의 트레이드마크였으며 규율을 어긴 학생들을 학생과로 끌고 가 훈육이라는 미명하에 모진매질을 해댔던 체벌도 일제식민지 잔재이다. 

부끄럽게도 일제식민지의 악습이 해방된 지 70년이 지났지만 학교에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 대표적인 상징물이 지역 내 A초등학교의 교표(校標)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드넓은 서천 뜰, 그 중앙에 A공립보통학교가 1922년 11월 10일, 개교했다.

이 학교의 교표는 일본강점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특히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제국주의 군부가 사용한 욱일기를 모방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23년 후 해방을 맞았고 유신정권을 지나 민주주의가 정착될 때까지 95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교표는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

실제 A초등학교의 교표를 보면 중앙의 원에 학교 이름이 쓰여 있고 붉은 빛이 외곽으로 뻗어나가는 모습이 욱일기와 꼭 닮았다.

한 교사가 학교 강당에 걸린 이학교의 교표를 보고 “학교의 교표가 욱일기를 닮았다”며 의문을 제기했지만 학교의 책임자들은 “학교의 상징이고 오래도록 내려온 교표를 이상하게만 해석하려하느냐?”며 묵살 당했다고 한다.

70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우리 삶속 깊이 남아있는 일제강점기의 흔적들... 이제라도 살펴보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성숙한 국민의식이 자리 잡는다면 일본으로부터 진정어린 사과를 받을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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