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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침묵’>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한 남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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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정지우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초창기 단편영화인 <생강>에서 노동운동을 하는 남편의 옷을 갖다 주고 버스를 타고 오는 아내의 고단함과 쓸쓸함을 드러내는 찰나의 특정한 장면을 봤을 때부터 이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좋았다. 

이번 영화 <침묵>도 그렇게 찰나의 특정한 장면에서 삶의 고단함과 슬픔을 드러내고 있었다. 

돈밖에 모르는 지독한 자본주의자인 태산그룹의 임태산 회장은 젊고 매력적인 재즈 가수와 결혼을 앞둔 상태에서 약혼녀가 죽었고 철부지 말썽꾸러기인 딸이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다. 

대부분의 법정 영화는 사건을 일으킨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왜 그랬는지를 쫓아간다. 관객들이 궁금한 것도 누가, 왜이기 때문이다. 영화 <침묵>은 누가, 왜를 보여주다가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의문이 생긴다. 

사건이 발생할 때부터 화면에 보여줬던 CCTV와 중반 이후에 삭제됐다가 복원된 CCTV에서 본 장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법정에서 본 CCTV는 같은 듯 다르다. 

이제부터는 누가, 왜 보다는 살인이 어떻게 일어났는지가 궁금해진다. 

임태산 회장은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설명해주는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검사와 변호사에게 사건의 본질을 모르고 접근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봤던 것이 진실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중반부 이후부터 드러나는 사건의 반전은 임태산이 진심으로 약혼녀를 사랑했는지, 정말 돈밖에 관심이 없는 몰인정한 인물이었는지에 대해 보여준다. 

<침묵>은 크게 두 개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나뉜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검사와 변호사가 나오고 용의자, 주변부 인물들을 통해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있게 되는 상황들이 등장인물의 시점에 따라 펼쳐지면서 우리가 익히 아는 사실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인물 중 한 사람을 범인으로 생각한다. 

그러다 이야기가 임태산으로 넘어가면서 사실은 진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전형적인 스타일로 보여주는 반전의 깊이는 진실을 맞닥뜨린 임태산의 절망과 슬픔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딸의 운전기사인 매니저에게 쌀국수를 건네며 조용히 담배를 피우는 임태산의 바로 그 장면에서 사랑하는 여자가 죽었고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 딸을 둔 한 남자의 슬픔과 그의 침묵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침묵>, 정지우 감독, 2017, 15세관람가, 1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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