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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한일협정 뒷이야기…박정희 대통령과 가려진 진실

  • 김연희 기자 news@newseyes.co.kr
  • 등록 2020.07.28 13:4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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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n뉴스=김연희 기자] 1965년 6월 22일, 14년에 걸친 협상 끝에 한일협정이 체결된다. 일본의 진정한 사과나 반성 없이 이뤄진 한일 국교 정상화는 55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일 관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굴욕 외교’, ‘졸속 협정’이라 불리는 한일협정은 어떻게 체결되었을까.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한일협정 중심에 있었던 박정희 대통령과 가려진 진실을 자세히 살펴본다. 

박정희와 만주

10여 년간 지지부진하던 한일 회담은 박정희 소장의 등장과 함께 새 국면을 맞는다.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 출신이었던 박정희 의장을 반가워한 일본은 “이제야 대화 상대가 나타났다!”고 평한다.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의장은 일본에 전격 방문해 한일 국교 정상화를 요구한다. 

회담 후 열린 만찬회에서 박 의장은 만주군관학교 시절의 오랜 인연인 교장 선생님을 만나 갑작스럽게 큰절을 하게 된다. 은사를 만나 예의를 표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공식 외교 석상에서 고개를 숙이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 그날, 만찬회 장에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본다. 

논란의 3억 달러 

5·16쿠데타의 브레인이자, 박정희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은 특사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한다. 당시 30대 중반에 불과했던 김종필 부장은 오히라 외무상을 만나 두 차례 밀실 회담을 갖고, 청구권의 액수와 지급 방식 등을 논의한다. 

이 자리에서 청구권 금액을 무상 3억 달러로 확정짓는데. 이는 이승만 정부가 요구한 대일청구자금, 약 20억 달러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였다. ‘매국 협상’, ‘굴욕 외교’라는 전 국민적인 반대 시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정부가 밀어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독도를 폭파하자?! 굴욕의 한일협정 

비공식 라인이 동원된 한일 회담에서 군사정권의 미숙한 외교력이 버젓이 드러났다. 김종필 부장은 일본에게 “회담을 방해하는 독도를 아예 폭파하자!”라고 말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 역시 독도를 폭파하고 싶다고 공식 외교 석상에서 거침없이 털어놓는데. 국민의 지지나 동의 없이 이뤄진 외교가 낳은 참극. 한일협정의 뒷이야기를 소개한다. 

박정희 정권의 지지 기반이자 정권의 정당성을 부여한 일본의 경제 협력 자금. 여전히 논란 가득한 한일협정의 진실은 7월 28일 화요일 밤 10시 KBS 1TV ‘역사저널 그날 – 박정희 의장, 한일협정을 밀어붙이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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