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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산의 소소한 이야기] 시를 붙드는 이유를 찾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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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은 스스로를 책망하는 순간이 잦았다.

 

그래서, 이 문장을 쓰는 내내 마음이 개운하지 못하다. 순간이 잦았고, 여전히 잦은 탓에 순간보다 분명 오래 지속되고 있음을 뜻하는 단어를 붙이고 싶은데 말이다.

 

글로 표현하는 데에 서툴러서 ‘순간’을 얄팍하게 묘사해 보이는 것은 아닌지 의뭉스러운 구석이 생긴다. 순간으로 끝났으면 하는데 이토록 질기게 이어지는 것은 왜일까.


‘책망’이란 잘못을 꾸짖거나 나무라며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완벽한 책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잘못을 찾아야 한다.

 

이후에 잘못을 꾸짖거나 나무라야 한다. 두 단계를 밟은 이후에 못마땅하게 여기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책망의 순간’이 끝나지 않은 이유는, 잘못이라 여기는 명확한 지점을 찾지 못해서가 아닐까. 그러니까, 못마땅하게 여기기를 반복하고 있으나 못마땅한 대상이 되어야 하는 잘못은 불명확한 상태인 것이다.


‘잘하지 못하여 그릇되게 한 일. 또는 옳지 못하게 한 일.’을 잘못이라고 이른다.

 

‘잘함’과 ‘옳음’을 기준으로 뒀을 때, ‘옳음’을 잣대로 하여 잘못을 살피는 일은 수월한 편이다.

 

도덕관념이나 윤리 의식은 생각보다 투철히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이들이 모여 살기 위해서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야 했을 테니, 이는 인간에게 있어서 태곳적부터 익숙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잘함’으로 잘못을 따지는 일은 고될 수밖에 없다. 좋고 훌륭하게 하는 것, 익숙하고 능란하게 하는 것에는 절대적인 규준이 없으니 말이다.


국어 수업을 하며 종종 ‘거울 자아 이론’을 언급해야 할 때가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스스로의 대답이 자아 개념이다.

 

이는 나를 둘러싼 중요한 타인이 나에 대해 보이는 반응을 통하여 스스로를 판단하면서 형성된다.

 

찰스 쿨리의 말을 인용하면, ‘나는 내가 누구라는 나의 생각도 아니고 내가 누구라는 너의 생각도 아니다. 나는 내가 누구라는 너의 생각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나에 대한 내 스스로의 대답에마저 타인의 흔적이 묻어 있다는 것이 매번 새삼스럽다. 타인과 결코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이 와닿는다.


옳음과 잘못이 아닌, ‘잘함’과 ‘잘못함’을 비기며 스스로를 책망하는 것은 ‘타인과 결코 떨어질 수 없음’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중요한 타인의 잘하는 영역과 나의 영역을 맞대며 못마땅해하는 것 아닐까.

 

우스운 자기 고백을 끄적이니, 책망의 대상은 어떤 잘못도 아닌, 타인과 비교하며 줄곧 책망하려 하는 나였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스스로를 기만한 순간들이었구나, 책망이라는 단어로 허름하게나마 포장하려 했구나.


잘하는 누군가를 보며 멋지다 하기만 하면 될걸, 왜 스스로를 과녁에 두고 겨냥하는 것일까.

 

잘하지 못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것은 왜 이리도 어려운 것일까.

 

잘해야지, 더 잘해야지 조급해하면서 왜 숨을 몰아쉬는 것일까.

 

타인을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사랑하는 것이 먼저라고는 하지만, 타인을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사랑하는 것이 더 복잡하고 힘겹다.

 

속속들이 알고 있는 나의 모습 중에 못난 부분이 참 많아서. 자기를 비하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시를 찾자.


‘상처를 내지 않고는 사랑을 쓸 수 없네 부서져 새로 태어나지 않고는 말이야’(장이지, <먼 곳> 중)


시인의 이 문장은 탓하고, 인정하고, 화내고, 수긍하고, 미워하고, 아끼기를 제멋대로 오가는 나에게 그래도 된다고, 괜찮다며 품을 나눠준다.

 

상처를 내 상처가 나고 아물어 가는 순간들로써 사랑을 쓸 수 있다면, 결국 이 부끄러운 책망에도 새살이 돋아 사랑으로 써질 것이라 믿게 한다.

 

시의 품에서 살자. 차악으로 차선을 그려내는 그곳에 살자.

 

수선화가 곳곳에 머무는 달에는 나를 책망하기보다 나도 책임지는 사랑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단단한 마음을 안고 햇귀를 쪼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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