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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근호 일상칼럼] 루첼라이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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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일에는 끝이 있는 법입니다.

 

2016년 6월 24일 시작한 연세대 김상근 교수님과의 고전 공부가 지난 금요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친구 강신장 모네상스 대표가 기획한 ‘루첼라이 정원’은 1기 34명으로 출범하여 7년간 봄, 가을 총 13학기 동안 고전을 공부하였습니다.

 

그중 11학기를 김상근 교수님이 강의해 주셨습니다. 1기 첫 학기가 끝났을 때, 김상근 교수의 강의가 폭발적 호응을 얻어 후학들이 생겨 현재 총 7기가 같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학기별 인원을 합산하면 연인원이 총 3,939명에 이르는 거대한 학습조직입니다.

 

저는 이 엄청난 학습에 참여한 한 사람으로서 과연 이 학습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였습니다.

 

서양의 엘리트들은 어릴 때부터 고전 읽기를 생활화하고 살아갑니다. 학교에서, 집에서 늘 고전 내용을 접하고 삽니다. 반면 동양에 자란 우리는 책 제목만 알 뿐 한 구절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습니다.

 

인생의 힘든 시기를 만나면 서양의 엘리트들은 학창 시절 읽었던 고전의 구절에서 힘을 얻고 자신의 방향을 재설정합니다. 이제 우리도 ‘루첼라이 정원’을 통해 고전이라는 그들의 ‘인생 무기’를 공유하게 된 것입니다.

 

‘루첼라이 정원’ 교재 첫머리에 ‘고전의 힘’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고전의 힘은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질문을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답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선각자들이 던진 최초의 질문에는 새로운 삶을 향한 진리의 실마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 질문으로부터 인간의 사유는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 갔고, 또다시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 냈습니다.”

 

또 김상근 교수의 책 ‘군주의 거울’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남들보다 빨리 노를 젓기 위해, 남들보다 먼저 목적한 항구에 도착하기 위해 고개를 숙인 채 열심히 노를 저어왔습니다. 그러나 인문학은 우리에게 숙였던 고개를 들고, 젓고 있던 노를 내려놓고, 밤하늘의 별을 보라고 요구합니다. 인생의 방향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 자신을 성찰하라는 요구입니다.”

 

저는 평생 앞을 바라보고 어떻게 하면 남보다 빨리 달릴 수 있는지 고민하였습니다. 그 바람에 다소 앞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고개를 들어 북극성을 본 적은 없었습니다.

 

‘루첼라이 정원’의 모토가 ‘PER ASPERA, AD ASTRA 고난을 넘어 별을 향해’ 입니다. 저는 루첼라이 정원에서 고전을 공부하며 힘들 때마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마침 김 교수의 마지막 강의가 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고전 독서광입니다.

 

잡스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는 ‘뛰어난 독서가이지만 독서를 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라고 적혀 있을 정도입니다.

 

잡스는 “인류가 현재까지 발견한 방법 가운데서만 찾는다면 당신은 결코 독서보다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독서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새로운 일을 도모하라. 애플을 만든 결정적인 힘은 고전독서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리드 칼리지 시절, 플라톤과 호메로스부터 카프카 등에서 고전 독서력을 키웠다”라고 말했습니다.

 

고전 공부 마지막 시간에 고전 독서광 스티브 잡스에 대해 강의 들은 것은 우연치고는 참 기이한 우연이었습니다.

 

저는 김 교수님께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스티브 잡스 강의를 들으니 잡스는 회사를 떠났다가 다시 컴백하더군요. 교수님도 조만간 다시 돌아와 강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 교수님은 이렇게 화답하였습니다.

 

“여러분 다른 공부를 하시다가 먼 훗날 제가 그리우면 부르십시오. 똑같은 고전을 다시 강의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내용은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우연히 ‘루첼라이 정원’ 1기에 동참하여 7년간 고전을 공부하게 된 것은 제 인생에 행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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