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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산의 소소한 이야기] 시간이 반대로 흐른다면, 마음은 똑바로 번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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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을 보낸다는 것은 내게 단순히 ‘시간이나 세월을 지나가게 하’는 일(표준국어대사전 ‘보내다’ Ⅲ-2)이 아니다.

 

한 해의 마지막 무렵에서 정말이지 한 해를 ‘놓아주어 떠나게 하’는 일(표준국어대사전 보내다 Ⅲ-1)이다.

 

연말의 사전적 정의는 ‘한 해의 마지막 무렵’이지만, 여덟 글자로는 부족하다.

 

연말의 각종 행사들은 분명 싱글생글에 가깝지만, 행사를 제외하고 남은 순간들은 싱숭생숭에 가깝다.

 

올 한 해도 고생했다면 북돋우는 말들 사이에, 올 한 해에 대한 미련과 후회가 덕지덕지 붙어버린다.

 

그렇기에 나는 연말을 ‘과거를 곱씹어 완전히 소화시키(어야 하)는 시기, 그러나 과거를 좀먹으며 체해서는 안 되는 시기’라고 뜻매김하고 싶다. 연말이라면, 지난날을 충분히 떠올려야 한다.

 

순간에 대한 더 이상의 부정은 물려두고 더할 것 없는 수긍을 기하여야 한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되, 사무치지도 파묻히지도 말아야 한다.

 

이는 나의 속 다짐이다.

 

시간은 애석하게도 반대로 흐른다.

 

기쁨에 가까운 때에는 시간에 머물고만 싶지만, 시간은 재빨리 움직이다.

 

슬픔에 가까운 때에는 시간을 벗어나고 싶지만, 시간은 더없이 머뭇거린다.

 

나는 연말이면 과거를 들이쑤셔가며 살펴보기 바쁘다.

 

하지만 시간은 제멋대로 바쁠 뿐이라 과거를 둘러볼 여유 따위 허하지 않는다.

 

시간은 마음과 반대로 흐르고 시간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면, 나의 소관이라도 제멋대로 해봐야 하지 않겠나.

 

‘더 잘해볼걸’, ‘차라리 하지 말걸’, ‘도대체 뭘 해보겠다고’와 같은 말들의 처음의 처음, 또 처음의 처음, 계속해서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은 애정이다.

 

과거를 들췄을 때, 남아있는 건 애정이다. 그래서 미련과 후회가 있는 것이다.

 

하나, ‘더 잘해볼걸’에 해당하는 애정의 자리는 단연히 2023년 1월 6일 안면고등학교 방학식과 졸업식이 아닐까.

 

제 감정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해서, 또 금방 마음만 먹으면 만날 것이라 섣불리 예견해서 마지막 인사를 어설피 해버렸다.

 

5를 받으면 10을 주는 마음이 ‘순수’가 아니라 ‘정성’이라는 것을 안다.

 

어리광과 의지는 나이와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을 안다. 이를 안 지금에야 꾸밈없이 말할 수 있다.

 

그 마음으로 한 해를 버틸 수 있었고, 나아갈 수 있었다.

 

앞으로도 안면고등학교에서의 인연을 무기로 살 것이다.

 

마음에 빚졌기에, 오래도록 고마움과 그리움을 안고 있을 테다.

 

둘, ‘차라리 하지 말걸’에 해당하는 애정의 자리는 학급 담임이다.

 

더 세심하게 감정선을 볼 줄 아는 A 선생님이 담임이었다면 OO이가 고생하지 않을 텐데, 더 강단 있는 B 선생님이 담임이었다면 OO이가 더 성장할 텐데, 더 다재다능한 C 선생님이 담임이었다면 OO이가 좋아할 텐데- 나의 아쉬운 점들이 아이들의 앞길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 나의 아쉬운 점들을 꿰차고 있는 선생님들이 많다는 것을 따져 보면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어야 했을까.

 

그럼에도 하기를 잘했다.

 

곁에서 지켜보며 달가웠다 싶은 것은 결국 애정 때문일 테다.

 

셋, ‘도대체 뭘 해보겠다고’ 에 해당하는 애정의 자리는 배움과 익힘이다.

 

어떤 시험을 대비해서 공부하는 것은 죽도록 싫었지만, 그저 공부하는 것은 나를 살도록 했다. (과장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있음을 느끼는 희열이다.

 

가까운 이는 종종 공부가 그렇게 좋냐고 물을 만큼!) 비어있는 곳을 채워가는 느낌에서 살아있음을, 계속해서 채워갈 수밖에 없는 느낌에서 살아감을 체감한다.

 

하지만 그저 공부하고자 한 대학원 과정에서 논문을 써야 한다는 목적이 생겨 면면하게 나를 옥죄어왔다.

 

그리하여 ‘도대체 뭘 해보겠다고’ 스스로 이런 길을 선택했는지 추궁했다.

 

자퇴원을 내지도 않고, 책이 쌓이도록 서점을 가는 것을 보면서.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야, 이마저도 애정이구나 깨닫는다.

 

‘애정이 헛벌이한다’지만, 알면서도 애정을 구(求)하는 이유는 누군가를 구(救)하는 것은 늘상 애정이었기 때문이다.

 

기어이 애정으로 치닫는 미련과 후회라니, 올 한해의 무수한 선택과 이행은 애정에 뿌리를 두었구나.

 

한 해의 마지막 무렵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분명해졌다.

 

지난 아이들에게 고마움과 그리움을 표현하는 것, 지금 아이들을 최선으로 아끼는 것, 쫓기지 않고 쫓으며 몰입하는 것, 무엇보다 애정을 들인 나를 탓하지도 위하지도 않고 보듬는 것!

 

추신, 혹여 스스로를 위하는 게 어렵다면, 노래 가사의 힘을 빌려보자.

 

‘넌 아름다워. 같은 얼굴의 꽃은 없어. 살아가는 이유, 태어난 이유는 너만의 것이니 마음을 따라가. 완벽한 것은 따스하지 않아. … 행복은 내려 놓을 때 오지. 삶의 파도는 거칠지만 너의 영혼은 바다 깊은 곳의 숲. 넌 하나뿐이야. 누구와도 비교하지마!’ - <넌 아름다워>(이상은 작가·작곡·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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