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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신수용 쓴소리> 3.1절, 운동보다 항쟁이라 부르자


80년대 학생운동권의 한 학생이 검찰에 연행되어왔다. 당시 명문대 총학생회장이었다. 

그는 5.18관련 집회를 주도한 인물로 수배령이 내려져 여러 달째 변장을 하고 전국의 대학가를 다녔다.

그러다 명절 무렵 지방도시에 사는 이모의 집으로 가다가 경찰의 불시의 검문 끝에 붙잡혀왔다.

그는 경찰의 조사를 거친 뒤 검사의 심문을 받았다.  이 검사는 나중에 검사장과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꽤 알려진 분이다.

당시 검사는 '광주 5.18사태'를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연행된 학생은 '광주시민들이 전두환 독재에 맞선, 용기 있는 항거이자 자발적인 항쟁'이라고 말했다.

40년이 지난 지금은 어느 정도 '전두환 신군부에 맞선 광주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으로 진실이 규명되어 가지만,  당시는 '불순세력 폭동'으로 매도될 때였다.

서슬 퍼런 전두환 군부독재 당시 '광주 사태','광주 시위'... 이 모든  것은 죄다 금기어였던 시대다. 

검사는 또 묻는다. 검사는 '나이로 봐 5.18 사태 당시 초등학생이었는데, 데모 상황을 어찌 그리 소상히 아느냐', '순진한 대학생들을 선동하기 위해 꾸며 낸 것 아니냐'라고 질문한다.

그러자 ' 검사님은 3.1운동에 참여해서 기미년 3.1만세 항쟁을 아느냐'라고 되물었다.

학생은 '검사 당신은 3.1만세운동에 참여해서 아느냐. 나도 5.18항쟁에 직접 나가서 태극기를 흔들고, 구호를 외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않았어도  다 듣고 배웠다'라고 답했다

검사는 훗날 필자에게 '아 그 친구한테 30년 검사 생활하다가 처음으로 되치기 당했네'하고 말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검사는 조사 말미에 '왜, 광주사태를 광주사태라고 하지 않고 말끝마다 광주 민주화 항쟁이라고 진술하느냐, 정부에서는 폭동이라는데'라고 물었다.

학생은 '비민주와 불의, 독재, 불법에 항거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라의 미래와 국민을 위해 정의를 지키기위해 광주시민이 분연히 일어선 일이기 항쟁이다'라고 당당했다.

검사가 '끝으로 할 말이 없느냐'라고 묻자 그의 답은 명쾌했다.

그는, '일제가 우리나라를 무단 침략하고 미화했으나 패망했다. 항일독립운동에 나선 우리 민족의 노력으로 이룬 것이다. 이처럼,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은 무고한 국민을 살상한 더러운 역사를 남길 것이다. 지금은 총칼 탄압으로 시민과 언론의 입을 막지만, 새날이 오면 반드시 상응한 죗값을 치를 것'이라고 했다.

해마다 3.1절 아침이면, 생각나는 분과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한 분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다. 백범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등과 함께 영원한 한국인의 어머니다.

물론 기록 없이 스러진 독립운동가의 어머니들도 다 우리 한국인의 어머니다. 그중 유독 조마리아 여사의 독립운동은 길이 전해질 역사다. 

조마리아 여사는 국채보상운동에 참여는 물론 항일 독립군과 임시정부 인사들에게 물심양면으로 평생을 도운 독립운동의 지주로 불렸다. 

아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제에 의해 사형 판결을 받자 항소하지 말라고 권했다는 얘기도 사실이다.

사형집행을 앞둔 아들에게 보냈다는 편지는 애절하면서도 당당하다.

'네가 만일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조소거리가 된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한국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공소를 한다면 그것은 목숨을 구걸하고 마는 것이 되고 만다. 네가 국가를 위하여 이에 이르렀을 즉 죽는 것이 영광이다. 모자가 이 세상에서는 다시 상봉치 못하겠으니 그 심정을 어떻다 말할 수 있으리... 천주님께 기원할 따름이다.'

비록 기록 없이 구술로 전해지지만,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다.

시모시자(是母是子)란 말로 적절할까.  위대한 사람 뒤에 역시 위대한 어머니가 있었기에 말이다.

또 하나는 통일되지 않은 3.1절 표현이다.


'기미년 만세운동','1919년 3월 1일 파고다공원 만세 운동','3.1만세 운동''기미년 3.1만세 운동','3.1의거', '3.1만 세 혁명'...

그렇지만 이는 단순한 만세운동이 아니다.

일제의 총칼 앞에 태극기를 들고 불의와 불법에 대항에 우리나라가 독립국 가임을 우리 2000만 겨레가 당당함을 만방에 전한 비폭력 항거다.

그래서 3.1항쟁이 맞다. 김한기 선생은 연전에 sns의 '3.1절을 생각한다'는 게시글을 통해 '3.1절이 운동이라 쓰이면 만세나 부르다 끝난 어떤 날 같다. 

하지만, 그것은 나라를 빼앗긴 모든 이들의 염원이 담겨 일어났던 일이라 3.1항쟁이라 부르는 게 옳다'라고 주장했다. 

그분의 주장처럼 모든 역사는 빼앗으려는 자들과 그것에 맞서 지켜내려는 자들의 투쟁으로 이뤄진 것이다.

3.1절을 운동이라 부른다는 것은 이를 바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3.1만세운동에 참가한 대표 인물인 충남 천안 유관순을 보면 그렇다.

유관순은 1919년 3월 1일,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라고 독립선언서가 낭독된 뒤  '대한 독립만세'를 외치는 현장에 있었다.

참가자들은 평화시위를 했다. 남의 것을 빼앗으려 한 것도 아니었다. 우리의 것임을, 우리의 나라임을 외친 만세였다.

그러나 독립선언서를 설명해주던 연설사가 체포되는 것을 봤다. 그의 동지도 함께 끌려가 모진 고문과 폭행을 목격했다.

소녀 유관순은 탑골공원에서 종이에 가득 쓰인 독립선언문 글자들을 읽고 또 읽었다. 

그곳엔 종교적인 분열도, 신분적 제한도, 출신지의 차별도 없었다. 그 종이의 글씨를 읽고, 들은 조선인들은 깊은 곳에서부터 활활 타올랐다.

한 달 뒤 유관순은 고향 병천 아우내 장터에 있었다.

손수 그린 태극기를 수백 명에게 나눠 주고 외쳤다.

'우리 조선의 독립을 위해! 우리 조선인이 외치자! 대한독립만세!'

장터거리는 이내 소녀의 외침과 함께 수백 명의 인파가 몰렸다.

'만세'라고 외칠 때마다 모두가 태극기를 더 높이 흔들었다. 

그제야 그를 감싸던 두려움도 흔들리는 태극기와 거친 함성 속에 사라졌다. 

하부 내포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부르짖다가 고초를 겪은 위대한 조선인들의 앞섰던 길도, 이 길에 모여든 이들의 가슴속에서 한몫하며 뜨겁게 불타올랐다.

유관순은 울부짖으며 외쳤다.

'대한 독립 만세! 만세! 우리 조선의 독립을 위해! 우리 조선인이 외치자! 만세!'

총포소리에 함성은 오래가지 못하고 비명과 울부짖음으로 뒤바뀌었다. 

거리는 온통 혼비백산이었다.  소녀는 살아남았지만 가족들의 품을 떠나 차디찬 형무소 바닥에 자리를 잡게 됐다.

그리고 매일 같이 소녀는 폭행과 고문, 구타의 또 다른 고통을 참아내야 했다.

그렇지만 '몸이 고통스러운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나라를 잃은 고통은 견딜 수가 없다'라고 했다.

만신창이가 된 몸이지만 함께했던 이들이 있기에 소녀의 말에는 그 어느 때보다 힘이 있었다.

이렇게 조국의 딸 유관순은  만세에 그치지 않았다. 조국을 위해  젊은 피를 흘리며 항거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미 년 3.1 만세 운동이 아닌 더 큰 3.1 비폭력 혁명이자, 3.1항쟁인 것이다.

우리 역사에 있어 가장 뜻 깊은 날이라 해도 될 만한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한국 현대사에 있어 민중이 역사의 주체로 나타난 실질적인 날이다.

그렇게 선열들이 목숨으로 지켜낸 조국, 지금 7000만의 염원이 담긴 이 자랑스러운 조국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3.1항쟁의 역사와 정신을 계승하려면 단순히 일제에 항거했던 일로 폄훼해선 안된다.

우리는 3.1항쟁의 정신을 되살리려면 미완으로 끝난 일제 주구들에 대한 역사적 심판 끝내야 된다.

해마다 3.1항쟁 기념식을 이레 적으로 연다해도 친일청산이 없는 한  국가의 미래는 어둡다.

독립군 향해 총부리 겨눴던 민족 반역자들까지 국립묘지에 안장된 일은 그래서 부끄럽다.

많은 정권이 지나갔지만,  나랏돈을 들어 친일부역자와 민족반역자를 관리해주는 자체가 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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