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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신수용 쓴소리> 헌정사 첫 법관 탄핵안 발의에, 대법원장 탄핵 맞불…자제될 수없나


1948년 8월15일 정부수립과 함께 대법원이 탄생했다.

해방된지 3년 만이다.

일제와 미군정시대를 마감하고 그해 5.10 총선을 거쳐 제헌국회가 개원되어 만든 헌법과 정부조직법에 따라 3권분립이 시작됐다.

청념하며 항일독립운동가인 초대 대법원장은 가인 김병로 선생이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조부다.

김병로 선생이 위대한 것은 고무신을 신고, 도시락으로 허기를 달래면서 그 어떤 권력에도 헌법정신을 지키려는 것이었다.

그는 제주도 4.3사건당시 토벌대의 양민학살과 여순사건때 무고한 많은 시민이 토벌대에 희생된 점을 들어 대통령 이승만에게 직언을 했다.

더구나 친일경찰들을 청산하기위한 반민특위를 놓고도 선생과 대통령은 부딪혔다.

반민특위를 와해하려는 이승만측과, 친일부역자와 민족반역자를 반드시 법의 심판대에 세우라는 가인선생은 대립각이었다.
   
가인선생은 항일독립운동가였지만 헌법주의자인  요시나가 유스케 일본 검사총장의 말을 즐겨 인용했다.

유스케는 "판·검사는 재판과 수사가 정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판결이나 수사로 세상이나 제도를 바꾸려 하면 법원이나 검찰 파쇼가 된다. 그것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시 초대 검찰총장인 권승렬도 가인 선생의 헌법정신을 존중했다.

권승렬은 특히 반민특위를 적극 지지하며, 검찰권을 행사하려 했으나 이승만과 친일경찰의 방해로 번번히 무산됐다.

이승만의 비호속에 친일경찰들은 1949년 6월6일 반민특위 본부사무실을 습격하고, 위원들을 심한 구타와 고문을 자행하는 일이 생겼다.
 
초대 반민특위 위원장인 김상덕이 사퇴하고, 특위위원들이 사퇴할 정도 였다.

친일경찰은 서울중부서 장경근 서장을 지휘로 '6.6사태'를 저질렀다.

심지어 권승렬 검찰총장을 무릎꿇리고, 권총을 압수할 정도였으니 구타와 폭행을 오죽했을까.

이 '6.6사건 이후 이승만은 반민특위를 와해 시키기 위해 권승렬을 검찰총장에서 법무장관으로 기용했다. 

그런 와중에 이승만은 사설 공작대를 동원해 '반공(反共)'을 내세워 친일청산을 잠재우고 체제 굳히기에 들어갔다.

이른바 대한정치공작대 사건이다. 권력의 비호 아래 1950년에 생겨난 사설 정보·탐정단체로 이승만의 비서와 해운공사 사장 출신 정운수가 핵심인물이다.

대장은 김태수( 일명 김영)가 맡았고, 정동엽·김낙영·오관수·이무열·정운수 등이 대원이었다. 내무부장관 백성욱 등이 배후다.  

대한정치공작대는 1950년 4월 트럭 10여대에 헌병과 경찰병력을 동원하여 인민군 부사령관이라는 최동석(崔東石)을 체포하고 경무대 근처의 땅 속에 묻어둔 장총 한자루와 실탄 등의 무기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공작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민국당의 김성수·조병옥·백관수·김준연 등의 반 이승만계 거물급 인사들이 남하간첩들과 밀통하여 정부를 전복하고 음모를 밝혀내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 사건에 의문을 가진 오제도·선우 종원·정희택 등 세 검사는 철저한 조작극임을 폭로한다. 

결국, 대한정치공작대의 김태수·정동엽·김낙영·오관수·이무열 등은 불법단체조직·허위고발·무기불법관리 등의 죄로 체포되어 재판을,정운수는 미국으로 도망갔다.

당시 법원과 검찰은 이승만 권력에 맞서 싸웠다. 2개월 뒤 일어난 6.25와 그해 있을 국회의원선거에서 '반공'을 내세운 이승만 측의 흉계로 기록되고 있다.

이승만은 6.25직전 이를 내각의 책임으로 떠넘길 요량으로 권승렬 법무부장관 등 3개 부처 개각과 검찰총장을 해임하게 된다.  

이처럼 대통령의 인사권과 집권여당 앞에 법과 검찰권은 무력해졌다.

이승만 정권 때 법원의 판결없이 제주도 양민학살, 여순 양민학살, 거창양민학살 등의 무지막지한 법원 유린행위가 있었다.

더구나 4사5입, 발췌 개헌으로 종신대통령을 꾀하려다 이승만 정권은 4.19혁명에 무너졌다.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역시 쿠테타로 정권을 잡았다.

하지만 공포정치, 군인정치가 검찰과 법원을 짓누르고 압박하면서 3권분립은 공허한 메아리였다.

박정희 정권에 들어서도 중앙정보부는 1964년 인민혁명당 사건 발표한다.

이용훈 검사 등은 기소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거부하고 사표 제출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런 와중에 정권에 줄을 대는 일부 몰지각한 판·검사가 생겨났다.

권력의 편에서서 검찰권과 판결을 위정자의 입맛대로 움직였다.

정치권력이 제 입맛에 들지 않는다고 법을 짓밟고, 3권분립 정신을 무력화하자 이른바 사법파동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사법파동은 모두 다섯 차례다.

1차 사법파동은 1971년,  2차 노태우 정권당시 일부 소장판사들의 사법 개혁 요구. 3차는 김영삼 정부때, 4차 대법관 인사 관행에 대한 항의, 5차는 신영철 대법관의 208년 촛불집회 재판 개입에 대한 법관들의 항의 등이다.

사법의 흑역사인 셈이다.

새해 초부터 집권당이 임성근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발의했다.

그러자 제1 야당도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했다며 김명수 대법원장 탄핵 추진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2일 아침 조간을 보니 더불어민주당은 이탄희 의원 주도로 사법농단에 연루된 의혹을 받는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발의했다고 보도됐다. 

4일 본회의에서 표결 절차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탄핵 소추안 발의자로 이름을 올린 건 민주당과 정의당, 열린민주당, 기본소득당 등 4개 정당 모두 161명이다. 

임성근 부장판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의혹을 다룬 칼럼을 썼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일본 언론인 재판에 개입한 혐의라고 한다. 

1심 재판부는 직권남용 혐의에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재판 개입을 인정하면서 위헌적 행위라고 판시했었다.

가결 정족수인 151명을 넘어선 의원이 발의안에 서명한 만큼, 본회의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법관 탄핵소추안 발의는 헌정 사상 3번째지만 대법관이 아닌 일선 법관에 대한 발의는 처음이다. 

가결되면, 사상 첫 법관 탄핵안 국회 통과이나 탄핵안은 헌법재판소에서 최종 심판을 받게 된다. 

그는 오는 28일 퇴직을 앞둔 만큼 헌재가 탄핵을 결정하면 5년간 변호사로 일하거나 공직에 취임할 수 없다. 

국민의힘은 국회의석을 명분삼은 사법부 장악시도나 사법부 길들이기로 규정하며 적극대응을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김명수 대법원장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맞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문제는 70년이 훨씬 넘은 우리 사법정신이, 3권 분립 정신이 다시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숱한 시행착오와 갈등과 싸움과 희생, 그리고 짓밟히고 찢긴 우리의 헌법정신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문도 든다.

법원 내, 검찰 내 개혁이 조용히 추진될 수 있으련면 왜 외부에서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수술대에 올리는 지도 한번 쯤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의 명분이야, 그럴듯하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이유들을 들이 대지만 국민들은 어리둥절하다.
 
법관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어서다.

법관 한사람, 한사람이 사법기관이요, 법조라는 수레바퀴의 3륜 중에 한 부분이다.

여당은 당연히 야당과 국민을 설득하고, 여야간 타협을 지켜본 국민이 볼 때 '여당이 그럴수 밖에는 없구나'하는 설명도 없다. 

본질이 자꾸 정치적으로 흐르다보니, 국론은 갈리고 혼란스럽다.

심지어, 정치권 일각에서는 4.7일 서울.부산시장 재보선이 끝나면 개헌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누더기가 된 대한민국 헌법, 정말 한국의 미래 때문인가 아니면 내년 3월9일 대통령선거를 위한 것인가.

정치권력에 휩쓸리는 헌법정신과 사법분위기, 이게 3만달러시대의 한국의 법문화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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