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개봉한 토르: 나그나로크는 마블시리즈의 액션과 스토리에 지쳐가고 있던 팬들에게 오랜만에 즐거움을 선사했다. 영웅담이지만 강한 개성과 우스꽝스러운 외모를 가진 캐릭터들이 출연하면서 주조연 할 것 없이 유머러스한 대사와 외모에 어울리는 도구들을 사용해서 보여주는 슬랩스틱 코미디는 그동안 이 시리즈가 보여줬던 인물들 간의 갈등 구조와 진지한 캐릭터를 유쾌하게 비틀면서 신선한 웃음을 선사한다. 물론 그 와중에도 망치 없이 아무것도 못할 것 같던 토르에게 망치를 없애고 그가 진정한 아스가르드의 왕으로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 구조는 영웅의 서사를 그대로 따른다. 이번 토르: 나그나로크에는 어벤저스 직장 동료들이 3명이나 출연하는데 먼저 닥터 스트레인지가 깜짝 등장하면서 그의 팬들을 즐겁게 해줬다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헐크가 중반부터 등장해서 토르와 함께 나머지 분량을 채워준다. 물론 블랙 위도가 모니터 화면에서 잠깐 등장해주는 센스를 보여준다. 토르: 나그나로크의 하이라이트는 헐크와 토르의 대결 장면으로 어떤 무기도 없이 맨몸으로 펼쳐지는 둘의 대결은 누가 최강의 어벤저스인지를 가르는 대전을 선사하지만 대결이 끝난 후에도 둘은 여전히 자신이 최강이라고 싸운
‘서프러제트’의 번역은 ‘여성참정권론자’다. 20세기 초 여성들의 정치참여를 위한 운동을 했던 여성들을 그대로 지칭하는 말이다.이들의 시작은 글로, 말로 자신들의 주장을 해왔으나 남성정치인들, 남편들, 직장의 남자상사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서프러제트들이 선택한 것은 남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인 ‘전쟁’을 선포했다. 영화 서프러제트는 이 전쟁에서부터 시작한다.세탁공장 동네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직업을 그대로 이어 세탁일 노동자가 된 모드 왓츠에게 다른 인생은 없다. 같이 일하는 동료인 바이올렛을 대신해서 영국 의회에서 여성참정권을 위한 증언을 한 후 모드는 이 일을 계기로 공장에서, 남편에게서 배척당하고 급기야 아들과 만날 수 없게 되면서 자신의 권리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내 아이가 나와 똑같은 세상을 살아야한다는 사실에 ‘서프러제트’의 일원이 된다. 영화는 여성참정권 운동을 이끌었던 팽크허스트의 일대기도, 국왕이 참여한 경마대회에 여성참정권을 외치며 죽은 에밀리의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집안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차별과 성적 착취를 당한 모드 왓츠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행동하고 소리치는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주어
10월 목요상영회의 ‘다양한 주제, 다양한 영화’의 두 번째 영화는 1960년대 활동했던 김시스터즈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다방의 푸른꿈이다. 1960년대 미국 라스베가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한국 가수가 있었다. ‘목포의 눈물’로 유명한 이난영과 ‘오빠는 풍각쟁이야’ 등 수많은 대중가요를 작곡한 김해송의 딸 숙자와 애자, 그리고 이난영의 조카 민자로 구성된 걸그룹 김시스터즈다. 당시 최고의 스타였던 비틀즈, 롤링스톤즈, 엘비스 프레슬 리가 출연했던 미국의 유명한 텔레비전쇼 ‘에드 설리반 쇼’에 출연하면서 10년 이상 미국에서 사랑을 받은 대표적인 그룹이 됐다. 김시스터즈의 일대기를 다룬 다방의 푸른꿈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악극단 활동부터 해방 이후, 한국전쟁 이후까지 대한민국의 대중음악사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 활동했던 조선악극단, 그리고 대중음악사의 시작을 열었다고 할 수 있는 오케레코드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이난영, 김해송, 이철 등 지금 대중음악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인들과 연대기, 그들의 주요한 대중음악들을 중심으로 영화가 펼쳐진다. 특히 김해송과의 특별한 인연을 말해주는 손석인 작곡가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 이
영화 속 나옥분 할머니는 매일같이 구청 민원실을 드나들면서 민원을 넣는 ‘도깨비할매’로 통한다. 시장 재개발을 막아보고자 개발업자의 불법적인 일들을 고발하지만 민원이 해결된 적은 없다. 다른 구청에서 전근 온 9급공무원 박민재도 원칙대로 민원인으로만 대할 뿐 나옥분 할머니의 민원은 서랍 속에 처박힌다. 민원인과 공무원으로만 만났던 두 사람은 나옥분 할머니의 미국 하원 위안부 결의한 채택을 위한 증언을 위한 연설을 도와주면서 나옥분 할머니의 민원이 처음으로 해결된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미국 하원 위안부 결의안 채택 시 청문회 증인으로 나선 고 김군자 할머니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으셨고 모으신 돈을 가난한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기부하셨다. 영화 속 일본군 강제 동원된 위안부는 대부분 일제 강점기의 피해자 모습으로만 다뤄지면서 2000년대와 1940년대라는 시간적 거리만큼 감정적 거리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영화 속 나옥분 할머니는 그 감정적 거리를 뚝 잘라내 미안하다고 말하고 위로해주고 싶은 살아있는 내 할머니가 됐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역사적 사실로만 접근해 피해자의 모습 위주로만 묘사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살아 숨 쉬는 인
음악을 먼저 선곡하고 그에 맞춰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베이비 드라이버에는 (배급사의 보도자료에 따르면)서른다섯 곡의 OST가 나온다. 귀에 익숙한 음악부터 처음 들어보지만 흥겨운 리듬감이 충만한 음악까지 감독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음악의 단순한 사용이 아니라 음악에 덧입혀진 효과음은 새로운 OST가 되고 음악의 박자에 맞춰진 배우들의 정확한 몸짓과 대사는 비트박스가 돼서 총체적인 장면을 연출해내고 있다. 이런 점들이 아마도 영화 평가사이트인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백퍼센트를 받은 것 같다. 어린 시절의 자동차 사고로 귓속에서 소리가 들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어야만 진정이 되는 ‘베이비’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최고의 운전 실력을 갖고 있으며 각 상황에 맞춰 듣는 완벽한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갖고 있다. 순하고 앳된 얼굴의 베이비는 꼭 지켜야만 하는 아버지, 꼭 갚아야만 하는 빚, 그리고 처음 만난 첫사랑과 자동차 드라이브 여행을 꿈꾸지만 일이 꼬이다보니 잔혹한 범죄에 휘말리면서 인생도 꼬이게 된다. 베이비 드라이버는 뻔한 이야기이다. 10대 청소년의 성장영화가 보여주는 범죄에 연루되고 위기에 직면하고 진정한 사랑을 만
지난주 개봉작인 살인자의 기억법(원신연 감독)은 기억과 망상, 실제와 허구를 넘나드는 영화다. 과거에는 연쇄살인범이었지만 지금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병수(설경구)가 우연히 만나게 된 남자 태주(김남길)에게서 자신과 같은 살인자의 눈빛을 발견한다. 자신의 딸인 은희(김설현)와 가깝게 지내는 것을 막기 위해 그의 뒤를 쫓지만 실제와 허구가 뒤엉키는 병수의 기억 때문에 오히려 혼란만을 가중시킨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과거 연쇄살인범인 병수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그의 병인 알츠하이머 때문에 그가 추적하는 인물이 살인자인지, 그가 보호하려고 하는 딸이 진짜 딸인지 명확하지 않아서 신뢰할 수 없게 만든다. 심지어 영화의 서사마저 병수의 망상은 아닌지 의심하게 만든다. 범죄 스릴러 장르는 진짜 범인을 찾기 위해 영화 속에 숨겨진 단서를 하나씩 쫓아가 진짜 범인과 만나면서 끝을 맺는다. 살인자의 기억법도 태주가 살인자라는 단서를 남기고 의심하게 만들면서 그의 뒤를 쫓아가게 해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영화에 몰입하게 만들었던 ‘의심’은 마지막에 가서는 영화의 서사마저도 의심하게 만든다. 장르적인 결말을 기대했던 관객들에게는 약간의 배신감을 줄 수 있지만 스릴러
이번 주 개봉작품인 브이아이피는 신세계의 박훈정 감독의 작품이라는 정보만으로도 개봉 전부터 관객들로부터 높은 관심을 받았다. 영화 신세계가 보여줬던 남성 느와르 영화의 진수, 개인의 정체성, 그리고 주인공들의 입체적인 캐릭터와 배우들의 연기력이 뇌리에 각인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최소한 전작에서 봤던 남성 느와르의 분위기, 조직 내부에서 고뇌하는 인물들, 그리고 잘 짜인 각본을 기대했지만 브이아이피에서는 그런 부분이 많이 아쉬운 영화였다. 장르영화는 자체의 관습적인 영화문법이 있기 때문에 관객들은 이미 인지된 문법에 따라서 영화를 이해한다. 그런데 브이아이피에서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오히려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스테레오타입화 된 인물 묘사가 이어지면서 지루함마저 느끼게 한다. 기획수사로 데려온 북한 브이아이피에 대한 국정원 내부에서의 의견 대립을 보여주는 장동건과 박성웅의 대화씬은 그 어떤 긴장감도 느낄 수 없는 진부한 캐릭터들의 묘사를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전작인 신세계 출연배우에 대한 예의로 넣은 장면은 아닌지라는 생각마저 들게하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영화 전반적으로 신세계에서 보여줬던 긴장감 돌던 인물들 간의 대립 씬은 이번 영화에서는 보여지지 않
어느 하루, 어느 카페의 한 테이블에서 머물다 간 네 여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더 테이블은 작년 최악의 하루로 우리에게 색다른 로맨스영화를 선보였던 김종관 감독의 신작이다. 최악의 하루가 하루 동안 서울 거리에서 벌어진 이야기라면 더 테이블은 하루 동안 서울의 어느 카페 안에서 벌어진 이야기다. 지금은 유명한 배우가 된 유진(정유미)은 전 남자친구를 만나고, 하룻밤 사랑을 나눈 후 여행을 떠나버린 남자를 다시 만난 경진(정은채)은 그의 진심이 무엇인지 확인하고자 하고, 결혼사기로 만난 가짜 엄마(김혜옥)와 딸(한예리)은 서로를 속이는 척하면서 진심을 드러내고, 결혼을 앞둔 혜경(임수정)은 전 애인인 운철을 떠본다. 이 네 쌍의 대화는 서로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채 끊어질 듯 이어진다. 더 테이블은 네 개의 에피소드가 이어진 옴니버스 영화이지만 이야기가 서로 연결돼 있지는 않다. 카페의 테이블 만이 공통점일 뿐 서로 다른 이야기를 가진 단편영화의 모음이다. 각각의 에피소드에는 한국영화계에서 나름의 포지셔닝을 가진 연기 잘하는 여배우 네 명이 출연하여 자신들의 색깔과 잘 맞는 이야기와 캐릭터로 각자의 개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네 개의 에피소드는 사전 정보
애나벨: 인형의 주인은 컨저링(2013년)에 등장했던 악령이 깃든 ‘애나벨 인형’의 탄생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영화 컨저링은 국내에서 개봉한 외화 공포영화 중에서 최고 관객 수 기록을 세웠던 제임스 완 감독이 제작하고 지난해 개봉해 새로운 공포영화를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은 라이트아웃의 감독이 연출했다. 애나벨: 인형의 주인은 컨저링에서 등장했던 애나벨의 탄생을 보여준다. 너무도 사랑스런 딸을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잃은 인형 제작자인 멀린스 부부는 12년 후, 자신들의 집으로 고아원의 수녀와 아이들이 머물 수 있도록 허락한다. 소아마비에 걸린 재니스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지 못하지만 밤이면 집 안을 살피면서 출입이 금지된 방문을 열고 인형 애나벨과 만나게 된다. 잃어버린 딸을 되찾고 싶은 멀린스 부부의 간절한 기도는 악령을 불러들였고 결국 애나벨 속에 깃들이게 됐다. ‘집’을 공포의 대상으로 삼아 다양한 장치들을 마련했던 컨저링처럼 애나벨: 인형의 주인도 마찬가지로 집안에 세심한 공포 장치를 마련해놓고 있다. 수녀가 머무는 방에 설치된 지하까지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움직이지 못하는 부인을 위해 만들었다는 의자모양으로 된 에스컬레이터와 마당 한가운데 놓인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만든 영화를 볼 때 우리는 두 가지 마음가짐을 갖는 것 같다. 좀 더 먼 역사적 사실일 경우 고증의 정확도에 집중하는 반면 가까운 과거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경우에는 감정적 접근에 집중한다. 훈 감독이 연출한 택시운전사는 역사적 사건보다는 그 사건 속에 휘말린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한 휴머니즘을 통해 당시의 사건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영화 택시운전사 속 만섭은 서울에서 개인택시를 운영하는 평범한,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인 택시운전사다. 대학생들의 데모를 보면서 공부를 해야지 무슨 데모냐면서 혀를 차지만 또 택시비를 안 갖고 탄 만삭의 임산부와 남편에게는 까탈스럽게 굴지 않고 그저 명함 한 장만 받고 돌아서는 마음 약한 소시민이다. 그런 만섭은 동료 기사의 광주행 10만원 외국인 손님을 가로채 서울에서 광주까지 향한다. 만섭이 태운 손님은 광주에서 유혈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동료 기자의 이야기를 듣고 카메라 한 대를 들고 나선 독일기자다. 만섭은 어떤 정치적 이념이나 자유, 민주화를 이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닌 반면, 독일기자인 위르겐 힌츠펜터는 이미 광주에서 벌어진 일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인물이다.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