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도시탐험역을 찾아서 - 서천군 장항읍 장항로 161번길 27 장항역사驛舍가 본래의 장항선에서 벗어나 영영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가 했지만 ‘문화관광 플랫폼’이란 문화예술 소통공간으로 재탄생한다. 이름도 ‘장항도시탐험역’. 한때 장항의 발전의 초석이 되어 왔던 장항역에는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게 되었다 하더라도, 장항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공간을 형성한 것이다. 따라서 옛 장항역의 겉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현대적으로 증축하고, 그 역사적 가치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재단장하는 등 장항의 옛과 오늘의 조화로움을 재탐험하고 재발견하게 하는 등 소통하는 문화예술의 장場을 이루고 있다. 장항선長項線은 조선 경남京南 철도주식회사에 의해 사설철도 노선으로 처음에는 충남선忠南線이라 불렸는데, 1922년 6월 1일 개통되면서 첫 구간이 천안역에서 온양온천역까지, 그리고 1931년 남포역부터 판교역까지의 구간이 개통되면서 전 구간이 완전히 영업을 개시한다. 오늘날에는 충남 천안시의 천안역을 기점으로 서해안을 경유하여 전북 익산시의 익산역을 종점으로 하는 한국철도공사의 철도 노선이 된다. ‘장항선’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서천군 장항읍에 위치하였던 종착역인 장항
024. ‘상굴앞 풋농사’라는 말을 아시나요? - 시초면 태성리와 신곡리 사이, 풋농사의 현장을 찾아서 물 흐름이 정조情調하여 변함이 없고, 본래부터 기름진 농토라서 농사 걱정 전혀 없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푸른 들녘을 바라보면서 미리부터 풍년가를 준비해오던 곳, 농민들에게 다른 고장 어느 곳보다도 풍년을 먼저 예약해주곤 하던 상굴앞 너른 들녘이 그만 청천벽력과도 같은 태풍을 만나 노도와 같은 큰 물줄기에 묻혀버림으로써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아지게 하였던가? 우리의 아버지 아저씨들은 당산뫼 마루에 올라 여지없이 휩쓸려버리는 알밴 벼포기가 흙탕물에 잠기고 있는 것을 애태우며 바라보아야 했으며, 우리의 어머니 누이들은 밥술을 푸던 주걱으로 놀란 가슴을 치면서 눈물을 씹어야만 하였으니 ‘상굴앞 풋농사’가 할퀴고 간 상처를 어디에 견줄 수 있었으리오. 시초북로 시초초등학교와 면사무소 사이에서 시초로로 꺾어들다 보면 일군一群의 비석들을 만날 수 있다. 각종 송덕비頌德碑, 기적비記蹟碑, 불망비不忘碑, 공적비功績碑 들이다. 그중의 한 기적비에는 ‘태성리와 신곡리의 극심한 침수피해로부터 물 흐름을 잘 이끌어내어 벼농사가 완전하게 하였으니 주민이 어찌 감히 잊겠는가, 비를 세
023. 판교, 그 시간이 멈춘 마을 - 충남 서천군 판교면 현암리 일원 한길 위에 늘어뜨린 옛 건물의 짙은 그늘에서 마치 말하지 못하고 차마 남겨놓지도 못한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질펀하게 깔려 있음을 본다. 바람에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지금까지 남겨진 ‘시간이 멈춘 마을’의 모든 건물들은 비록 낡았을망정 오랜 세월을 함께 비와 바람과 햇살과, 그리고 한때의 온통 침침하고 답답한 하늘과 땅을 우러르고 굽어보면서 견디어왔으리라. 곁에서 방앗간을 지켜주는 고목 가지 사이사이로 이름 모를 새소리까지도 알뜰하게 멈춘 시간들을 모아왔음이 분명하다. 2019년 12월 19일 목요일 오후. 겨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포근하다. 조금은 싸늘한 기운이 손등을 살짝 건들고 지났으나 이내 따스한 온기의 햇살이 뒤를 따라준다. 산책하기엔 아주 좋은 날씨이다. 걷는 발걸음마다 번지는 온기는 자칫 말라붙기 쉬운 겨울의 마음까지도 부드럽게 다독여준다. 세칭 흥림저수지로 불리는 서천 서부저수지 둘레의 구불부구불한 길을 따라 달리는 풍광은 더없이 신선한 맛을 돋아준다. 더더욱 흥림저수지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장항선 철길은 색다른 눈 맛을 톡톡히 해준다. 너무 아름답다. 몸은 비록 두꺼
22. 붱바위(부엉바위)에서 추억을 더듬다 바위 아래로 저수지가 생기자, 바위와 함께 물까지 어우러진 명승지로 변하였다. 그 당시에는 놀러 갈 변변한 공원 하나 가지지 못하였던 시절이라서 붱바위는 자연 놀이공원이 되어 숱한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특히 행락철인 봄가을이면 서천군뿐만이 아니라 인근의 거리에서도 선남선녀들이 몰려와 북적거리곤 하였다. 또한 추석 명절에는 붱바위의 바위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 아래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보기도 하고, 달 밝은 밤이면 저수지 깊숙이 잠긴 달을 잡으려는 청춘의 낭만도 출렁이곤 하였다. 2020년 1월 20일 월요일. 오전의 햇살은 구름 뒤에 숨었다가 나타났다를 반복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반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햇살은 걷기에 알맞도록 길 위에 질펀하게 풀어놓는다. 하기사 겨울 날씨라니 햇살이 아무리 강하게 내여 쬐인다 하더라도 어디 여름날 같을 수 있겠는가. 가벼운 마음으로 기분 좋게 산애재蒜艾齋를 벗어나 걷기 시작한다. 더더구나 오늘의 동행은 초등학교 동기인 지우知友가 아닌가? 벌써 며칠 전부터 초등학교 시절 소풍을 가던 그 ‘붱바위’에 한 번 올라가 보기로 약속해놓았던 터라 같이 걷는다는 것 그 자체
021. 아, 「바라춤」의 시인 신석초 - 충남 서천군 화양면 활동리 한눈에 들어오는 마을은 어느 한 곳 바람 한 점 없이 너무나 고요하고 한없이 편안하게 보인다. 이곳에서는 단 한 줌의 추위도 허락하지 않는지 겨울이라 해도 햇살만을 고스란히 내려놓아 다사로움과 맑음과 밝음을 그대로 품고 있다. 회관 앞으로는 튤립나무 한 그루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잎을 다 떨어뜨린 알몸이래도 자못 위엄스럽다. 홀로 서서 든든히 마을을 지키고 있다. 추운 겨울이 아니라면 어느 누구라도 슬그머니 밖으로 나와 잔잔한 미소와 수줍은 목소리로 마을의 이야기라도 들려줄 듯도 하다. 그 속에 선생의 고고한 모습이 엿보인다. 2020년 1월 18일 토요일 오후,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의 틈을 빚어 가볍게 산애재蒜艾齋를 나선다. 문헌서원文獻書院 앞을 지나 곧바로 충절로에 이르고, 광암삼거리로 지칭된 ‘장승배기’에서 국도 29호선인 장선로를 불과 150여 미터 따른다. 그리고 곧 왼쪽으로 활동리를 알리는 이정표를 만난다. 활산로로 방향을 튼다. 천천히 걸음하다 보니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맑고 밝은 양지마을 활동리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 마을은 지난날 서천군 한산면 숭문동崇文洞이라 불리웠
20. 선도리 '쌍도雙島'로 가다 - 충남 서천군 비인면 갯벌체험로 428-13 쌍도는 뿌리를 바다에 묻은 채로 온몸을 드러내 보인다. 바다는 이미 먼저 와 있었고, 쌍도는 그 위에 바다의 영혼처럼 살짜기 드러내면서 저 멀리에서부터 푸르름을 불러온다. 때로는 넘실거리는 모습으로 세상과 함께 어깨를 맞추며 춤을 추고, 때로는 충만처럼 넘쳐나는 몸짓으로 세상의 삶을 즐겁게 맞도록 해준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마음을 깊숙이 가라앉히기도 하지만, 때로는 분노하면서 거친 삶의 길을 스스로 열어나가며 설레기도 하는 그리움 속에서 바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곤 한다. 2019년 9월 19일 목요일 오후 1시경. 몇몇과 더불어 선도리갯벌체험마을을 찾는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면서 둘레에 심어놓은 동백나무에 매달린 붉은 열매를 만난다. 맑은 햇살을 되받아 빛나는 열매로부터 어느덧 가을로 접어들고 있는 세월의 흐름을 느낀다. 거대한 주꾸미 한 마리가 갯벌체험마을 관리사무실을 온몸으로 감싸고 있다. 새삼스레 바닷가에 닿고 있음을 실감한다. 3월 중순경부터 펼쳐지는 서천군 서면 마량리(마량포구) 일원의 ‘동백꽃주꾸미축제’를 떠올린다. 만발한 붉은 동백꽃 속에서 주꾸미요리 맛도 보는 멋
019. 한국최초 성경전래기념공원에서 -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서인로 문득 판옥선 위에서 마량포구를 바라본다. 하루가 오고 가는 모습을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는 곳, 아니 하루의 시작과 끝이 가장 아름다워야 삶의 보람을 크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곳이 분명하다. 저만큼 언덕 위에 세워진 한국최조성경전래기념관과 두 눈을 마주한다. 경전을 펼쳐주고 있는 듯 마음에 고요가 차오른다. 판옥선이 한 자리 넉넉히 채워주는 마량리 경전經典으로 자리하게 되어주기를 빌어본다. 2019년 10월 10일 목요일 오후. <한국최초 성경전래기념관>으로부터 빠져나온다.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마량리 한국최초 성경전래 고증벽화’를 보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먼저 두 눈에 들어온 것은 ‘마량포 해돋이 해넘이 명소’라는 안내의 글씨가 붙어있는 마량포구 방파제다. 바로 이 방파제에 올라 바다로 속으로(?) 따라가다 보면 등대가 서있는 곳에 이른다. 바로 이곳에서 이른 아침 바다 건너 육지로부터 솟아오르는 해돋이를 볼 수 있으며, 저물 무렵 뒤를 돌아보아 불타는 해넘이를 볼 수 있다. 아, 머릿속으로 해돋이와 해넘이를 그려본다. 하루해가 저물 적마다 그동안에 지나온
이 세상은, 아니 이 지상에는 작은 나라이든 큰 나라이든,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저마다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선생은 바로 이러한 민족의 정체성을 되찾으려 몸을 던지고 재산을 던지고 난 뒤 몸과 마음의 일체를 이끌고 살아오신 것이다. 일제강점기 임시의정원 전원위원장, 제4대 의정원의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충청남도 서천 출생. 1920년 2월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에 피선되었으며, 특히 재무예산위원으로 재정문제 타결에 솜씨를 보였다. 그 해 4월에는 임시의정원 정무조사특별위원(군사)으로도 활약하였고, 동시에 임시의정원의 부의장을 지내다가 1921년 5월에 사퇴하였다. 1921년 8월에는 임시정부 국무원(國務院) 학무차장과 이어 학무총장대리로 활약하였다. 그 뒤 다시 임시의정원 전원위원장(全院委員長)으로 선임되었고, 1922년 5월에는 제4대의정원의장에 선임되어 입법활동과 함께 독립운동의 방략을 계획, 실천하였다. 그 해 10월 김구(金九)·여운형(呂運亨) 등 16명과 함께 군인양성과 독립전쟁의 비용조달을 목적으로 한 한국노병회(韓國勞兵會)를 결성하였다. 또한, 인재를 육성할 계획하에 중국 각지의 군사강습소·병공국(兵工局)·학생단
017. 풍정리 산성(豊亭里 山城)의 천제단(天祭壇) - 충청남도 서천군 시초면 풍정리 산성 이제 머지않아 이곳에서는 백제시대 옛 선인들의 호흡과 소망이 살아올라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려 한 민족의 뿌리가 되살아 오르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우리 민족에게는 우리 민족만이 고이 간직하고 있는 마음의 고향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너와 나의 가슴 속에 자리한 향토, 공통된 종족과 언어와 역사적 문화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 속에서 민족 전체가 그리워하는 마음의 길을 함께 하면서 우리 민족만이 뻗어내려 온 거대한 혼령, 그 혼령이야말로 실재하듯 믿음을 같이 하여온 민족의 영원한 뿌리라 하겠다. 2019년 12월 19일 목요일 오후, 날씨는 제법이다시피 쌀쌀하다. 판교면의 <시간이 멈춘 마을>에서 빠져나와 문산면 금복리를 거치면서 옛날로 돌아가는 기분에 든다. 바로 서천군 시초면 풍정리 천제단(天祭壇)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판교 사거리에서 판문로를 따라 달린다. 고개 하나 넘고, 성황골에서 시작되는 도마천을 따른다. 그러나 힘없이 걸음을 멈추고 만다. 지난 9월 7일 주말, 제13호 태풍 링링의 힘에 어이없이 부러져버린 노거수(=느티나무)의 흔적조차 이미 사라지고
016. 한국최초 성경전래기념관을 찾아서 -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서인로 89-16 기념관의 다목적실에서는 십자가를 통하여 전개되는 또 다른 세상과 만나게 한다. 바다 위에 뜬 십자가!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유리로 된 출입문을 열고 툇마루 같은 베란다로 나간다. 분명히 십자가가 바다 위 허공 한가운데에 떠 있다. 좀 더 십자가에 가까이 다가선다. 그러나 아무리 다가서도 십자가는 바다 위 허공에 떠있는 모습 그대로이다. 뒤돌아본다. 다목적 강당 전면의 십자가가 환하게 세상을 밝히고 있다. 바로 눈앞에 마량리 포구가 펼쳐져 있고,, 등대도 보이고, 해돋이 해넘이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마량포구의 방파제가 손짓을 한다. 그 밑으로 살아있는 푸른 파도가 잔잔하게 너울을 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저만큼 <성경전래지기념공원>에서는 영국의 범선과 우리의 판옥선에서 나부끼고 있는 깃발이 보인다. 2019년 10월 10일 목요일 오후의 햇살을 가슴으로 찾아가며 <한국최초 성경전래기념관>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시각은 오후 3시경, 가을 햇살은 사라지고 하늘은 가득 구름을 머금어 있다. 다행스럽게도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따라다니던 그림자는 없
015. 옛 나루, 원산圓山을 찾아서 - 충남 서천군 화양면 옥포리 마을길을 빠져 언덕위로 오르니 강둑이다. 금강둑이다. 강바람이 초겨울의 매서움으로 얼굴을 후려친다. 몸을 옹크린다. 차갑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물결을 작은 몸짓으로 차고 넘치는 강물임을 알려준다. 금강하굿둑의 버팀으로 흐름은 멈추었으나 당당하게 흐르던 그 강물의 기개는 여전히 살아있다. 계절을 알려주는 철새들이 떼를 이루어 빈 하늘을 굵은 목소리로 가득 채우며 날아간다. 저만큼 서해고속도로 금강교 위를 달리는 뭇 차량의 속도가 요란스레 외쳐댄다. 시간의 흐름이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그 시간의 흐름속의 변화가 자칫 소홀하여 잘못 보내버린 어느 시간에 대한 보복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2019년 12월 5일. 목요일 오후라 해도 무척이나 춥다. 손이 시렵다. 그러나 손에 장갑을 끼울 수도 없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려면 아무래도 불편하다. 장갑을 준비하였으면서도 그냥 호주머니에 집어넣는다. 맨손인 채로 견뎌보기로 한다. 그냥 떠나보기로 한다. 서천읍을 가볍게 빠져나와 충절로를 따라 길산에 이르고, 길산천을 뛰어넘어 화산로에 이른다. 왼쪽 오른쪽이 모두 너른 들녘이어서 들판 한가운데로 달려가
014. 장항 제련소 굴뚝을 바라보며 - 충남 서천군 장항읍 화송길 어느 민족에게나 때때로 비 오는 날도 있고 어둡고 음산한 날은 있다. 어두운 역사 속의 나날들은 항상 비가 오고 어둡고 음산하게만 보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은 긴 시간 속의 잠시일 뿐이다. 비바람이 불고 비 온 뒤에 따라오는 것은 무지개라는 희망이 있다. 음산한 역사 위의 무지개는 더욱 찬란하기 마련이다. 중국의 노신(魯迅)은 <생각컨데 희망이란 원래부터 있는 것이라고도 또한 없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지상의 길과 같은 것이다. 지상에는 원래 길이 없다. 걷는 사람이 많으면 그것이 길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2019년 7월 5일 오후의 시각은 이미 16시를 넘고 있었다. 장항 해송림숲에 들기 위하여 내딛은 발걸음은 장항제련소 굴뚝을 바라보며 이어졌다. 동행인으로부터 장항신어선물량장의 풍광이 아름답다는 말을 귀담아 듣고 방향을 돌리고 만 것이다. 결국 장항 해송림숲의 방문은 뒤로 미루게 되었다. 장항신어선물량장으로 가는 길은 장항도선장에서 바다쪽으로 건설된 쭉 뻗은 4차선 도로로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장암진성(長巖鎭城) 굴다리를 통과하자마자 마음은 또 변하였
013. 해 뜨고 지는, 마량포구(馬梁浦口)에서 포구의 안온과 휴식과 더불어 간간히 밀려오는 이웃의 웃음소리와 갈매기의 끼룩거리는 소리가 만찬을 준비하려는 듯 바쁜 아낙의 손길처럼 따뜻하게 들려온다. 아, 이 아름다운 포구의 정경(情景)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그리움이란 그리움을 모조리 끌어 안겨주는 듯 삶의 향기를 북돋워주면서 가슴 설레게 한다. 마량 포구의 푸른 물결은 끝없는 이랑을 만들어대고, 힘찬 바다 물이랑은 하늘 높이에서 푸르름을 끌어내려 한 몸을 이루더니 마침내 갈매기의 흰 날개 빛으로 바다와 하늘 사이를 활기차게 한다. 2019년 10월 10일 목요일. 바다를 향해 달린다. 길은 군도 5호선, 2011년 국토해양부 선정 한국의 경관도로 52선 중 ‘낙조 감상하기 좋은 해안길’로 선정된 그 도로 위를 가볍게 달린다. 이미 낙엽으로 변해버린 잎을 다 떨어뜨리고 매끄럽고 깔끔하게 돋보이는 나무결과 바다를 곁눈질로 바라보면서 천천히 달린다. 모름지기 해안도로를 달릴 때는 갑자기 속도가 줄어든다. 넘실대는 푸른 파도가 이랑이랑 넘실대고 있으며, 저 멀리 작은 섬의 아리아리한 모습은 무한으로 눈길을 잡아놓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이랴, 파도와 함께 춤을 추는
012. 비인면 선도리 당산을 찾아서 - 충남 서천군 비인면 갯벌체험로572번길 18-2 (선도리 399) 저 당산바위의 소나무 세 그루는 부부로서 혹은 외동이로서 서로가 서로에게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제공하여 주고 있기 때문에, 부부는 부부로서, 외동이는 외동이로서 삶의 방향을 바로 하여 전범이 되는 가족의 모랄(Moral : 인생이나 사회에 대한 정신적 태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019년 10월 31일 목요일. 10월의 마지막 날이다. 간밤에 인터넷을 통하여 ‘당산의 일몰이 아름답다’라는 말을 읽고 난 뒤에 다시 가고 찾고 싶은 곳은 다름 아닌 ‘선도리 당산’이다. 그러나 당산의 일몰이 아름답다 하여 일몰을 보고자 찾는 것은 아니다. 그냥 다시 보고 싶다는 것일 뿐이다. 당산을 처음 찾았을 때는 9월 19일 역시 같은 목요일이었으니 이미 한 달도 더 된다. 그때의 그 가슴 벅찬 느낌은 좀처럼 잊을 수가 없었고, 다시 찾아가는 것 또한 처음 찾았을 때의 그 느낌 그대로 되받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이다. 아무튼 서천읍을 빠져나와 군도 5호선을 타고 해안으로 달린다. 배롱나무가 점점 가을을 한껏 모아 가는지 하나 둘 낙엽으로 날리는 품이 조금은 안타깝
011. 아, 사우[四五]고개! - 충남 서천군 서천읍 태월리-화금리, 지방도 611호선 인간이 삶을 영위하고자 할 때 어쩔 수 없이 넘어야 할 고개는 언제나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간들의 수많은 사연을 품고 있기 마련이다. 비록 오늘날 ‘사오고개’, 그 험하고 구불구불했던 고개는 말끔히 포장되어 지워져 버리고 겨우겨우 넘나들던 자리에는 칡넝쿨로 뒤덮여 보이지도 않지만 그 속에 ‘보릿고개’와 같은 사연들이 깊이 잠들어버릴까 봐 지극히 염려스럽다. 과거의 아픈 삶이 역사의 거대한 회오리 같은 고개 위에서 사라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이든지 많아서 넘치거나 편리해서 즐거움만 찾게 된다면 마음속에는 알게 모르게 보이지 않는 혹이 생기게 마련이다. 오늘도 ‘사우고개’를 넘는다. 산애재(蒜艾齋)에서 서천읍으로 가려면 반드시 넘어야 할 사우고개, 아니 넘을 수밖에 없으며, 당연히 넘게 되는 ‘사우고개’다. 사우고개는 지방도 611호선 서문로에 위치해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서천읍 태월리와 화금리 사이를 가로막는 고갯길이다. 이 고개에서 계속 올라가면 금북기맥(錦北岐脈)의 한 줄기인 태봉산(해발 90.0m)에 이르게 되고, 이에 사우고개의 높이를 대략 짐작할 수 있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