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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단독】<신수용 한국 정치사(20)> 미국 정가까지 핫이슈화된 남로당의 방송국 점령사건

-1947년 8월 서울중앙방송국내 14명의 남로당원 방송적화 드러나
-수도경찰청이 수사확대, 이후 방송국장 30여명 연루자 밝혀져
-미소공동위 소련측 수석 스티코프연설부각, 미수석 하지장관연설 왜곡
-중앙방송국 남로당원 그해 1월6개항등 밀명받아 방송적화와 기물파괴등 계획
-외신등 연일 보도...이후 미국 정치권에서 조선정책 철회등 이슈화

제21대 국회개원에 이어 오는 2022년 3월에 제 20대 대선, 그리고 그해 6월 지방선거를 치른다. 때문에 70여년이 넘는 한국 정치사가 새롭게 조명되어야할 시점이다. 지난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된 뒤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정세와 올해로 72년을 맞은 한국정치사는 영욕의 현장들이었다. 정치적 사건. 여야 정치비사, 대통령의 이야기등 영욕이 있다. 그래서 소중한 역사의 ‘한국 정치사’를 다시 읽고 새로 쓴다.<편집자 주>

해방정국에서 조선의 장래는 암울했다. 그중에도 미국과 소련이 벌이는 암투와 갈등은 일제 식민지하에서 진저리를 떨어온 우리에게 큰 비극이었다.

무엇보다 조국이 하나되어 통일정부 수립이 민족적으로나, 역사적인 과업인데도 이념의 암초에 직면, 허둥댔다.

외신들은 앞다퉈 연일 일제에서 갓 벗어난, 조선의 일거수 일투족이 다뤘다. 


조선과 일본 관계, 조선과 미.소관계, 그리고 남북한 조선 정치인들의 동향과 발언들이 외신의 주요 뉴스거리 였다.

◇…남로당의 중앙방송국 점거시도 사건

국민의 80%이상이 신문과 라디오를 접하던 시대였다. 

신문이나 책을 읽지 못하는 까막눈의 민족이라는 외신들의 표현에도 누구하나 3000만겨레중에  그 누구도 항의 한 번 못하던 무렵이다. 

당시 비공식 기록으로 ,  우리의 글을 해독하지 못하고 일본말이 입에 붙어 우리의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률이 85%였다.

10명 중에 9명은 글을 모르니 헤프닝들이 잦았다.

어느 정치인은 당시 문맹률의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국민들이 어리숙한 시대를 통탄하며 쓴 기록이다

"일제를 거처온 양심이 불량한 '면서기'가 들고온  자신이 제멋대로 세목(稅目)과 세액(稅額)을 매겨 세금고지서를 발부하고 착복했을 정도였다'

이런 시대에 글을 모르니 라디오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라디오 매체가 서울과 대도시의 잘사는 집, 가진 집들의 문명의 척도였다.


이런 시대에 공정. 불편부당하고 조선미래의 방향을 잡아줘야할 중앙방송국을 남한내 남로당이 적화선전도구로 삼으려다 들통난 사건이 터졌다.

미군정청이 미국 본국에 이를 긴급상황으로 보고하는 바람에 미국 정가가 발칵 뒤집혔다.

AP, AFP, 로이터 통신과 워싱턴 타임즈, 뉴욕포스트와 더 타임즈등 외신등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세상의 이목이 쏠렸다.

당시 로이터 통신은 '전파를 이용해 적화화 하려는 남한내 공산당'이란 제목으로,  AP등은 '미국을 추방하기 위한 소련의 사주받은 공산주의자들의 방송장악시도'로 각각 보도했다.

내용은 지난 1947년 8월 4일 수도관구 경찰청(청장 장택상)의 발표로 시작됐다.

경찰청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남조선내  남로당계의 사주를 받은 당원이자 방송국직원 14명을 검거했다고 공개했다.

발표는 김구.이승만등 우익진영은 물론 박헌영. 허헌등 남로당계를 벌집쑤신 듯 혼란을 겪었다. 문자그대로 사태는 일파만파였다.

◇…김구·이승만 등 우익 인사들, "공산 조직이 마이크까지 빼았다니..."개탄

수도경찰청은 발표하면서 이들을 검거한 배경에 대해 "방송내용이 몇 개월째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 차려, 파고들어갔더니 이런 남로당 음모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 수개월 간 우리(경찰이)지켜봤더니, 어디까지나 엄정한 중립과 불편부당한 입장에서 사실을 국민에게 그대로 전해야할 정부기관인 서울 중앙방송국이 참으로 이상했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자신들이 밝혀낸 서울 중앙방송국의 흑막을 가리고 보니 남로당 빨갱이들이 요소요소에서 방송국을 장악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찰은 검거한 이들 남로당원들에게 누구로부터, 어떤식의 지령들을 받아왔는 지와 이북의 )소련)군정과 누가 내통했고, 평양의 빨갱이와  어떤 관계인지 추가로 전모를 밝혀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경교장의 백범 김구선생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상해 임정요인인 해공신익희 선생등 측근들과 회의 도중에 "우익정객들의 얘기가 방송될 때만 유독 방송이 자주 자주 끊기는 것을 보고 시설이 낙후돼서 그런줄 알았는데 실은 그들이 장난을 했다니 수치스럽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경찰은 실오라기 하나 의심가지 않게 철두철미하게 수사해서 더이상 정부기관이  좌익진영의 마수에 넘어가지 않게 하라'고 촉구했다.

이승만 박사도 이화장에서 기자들과 차를 마시며 "놀라운 일이야. 무서운 사람들이야. 적화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빨갱이들을 어찌 할꼬, 어찌 할꼬"하며 노발대발했다고 전한다.

며칠뒤 하지 사령관 등 미군정청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수도경찰청을 극찬하며, "서울(중앙)방송국안에 공산주의자들이 웅크리고 있다는데 여기 뿐이겠느냐"며 응징을 요구헸다는 당시 언론인들은 기록하고 있다.

이밖에도 서울에서 조선의 통일정부수립을 준비하던  좌,우 합작인사인 김규식선생등도 우려와 함께 통일정부수립에 장애가 되는 일은 모두 자제하라고 말했다.

◇…경찰 "남로당이 중앙방송국에 내린 지령이 있다"며 내용 공개

뉴스를 신문과 라디오에 의존해온 많은 시민들도 충격에 빠진 가운데 경찰은 중앙방송국 직원을 취조해보니 남로당의 밀령이 있었다고 추가로 발표했다.


경찰은 "방송국의 마이크로 전해지는 내용이 조국과 국민을 사랑하는 언론인들이 쓰는 것과 방향이 다르고, 언변도 달라 계속 추궁했더니 결국 남로당의 밀명이 있었다"고 설명한뒤 내용을 기자들에게 돌렸다.

경찰청은 미군정청에도 이를 보고했더니 방송국안에 붉은 마수가 뻗혔다며 지금 쯤 미국 대통령각하(당시 칭호)에게도 전달됐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남로당이 중앙방송국 직원인 남로당원들에게 내린 지령은 6개 항이고, 부서별 배치도 구체화 했고, 그 지령시기도 1947년 1월이었다.

보도자료 내용은 이렇다. 

⑴방송국 전원을 남로당 세포에 가입시키라(현재는 전 국원의 4분의 1은 획득).
⑵방송을 통해 극좌사상을 일반 청취자에게 주입시키라.
⑶우익에 대한 정치방송은 가급적 방송을 회피하고, 만일 방송을 해야할 때에는 기계고장을 구실로 암암리에 방송을 방해하여, 일반청취자가 청취하기 곤란하게 하라.
⑷가사(歌詞)등을 창작하여 청취자에게 좌익사상을 주입시켜라.
⑸미국인의 언동을 매일매일 일일이 보고하라.
⑹직장을 통하여 비밀을 보고하라,

뿐 만아니다. 서울중앙방송국내 남로당계의 조직도 드러났다.

자료에 따르면 이렇다.

▲편성과= 김응* 김원* 이만* 이방*(여)
▲방송과=차영* 신진* 전보*
▲총무과=김순* 배상*외 기술자3명, 기타 수부 2명,

여기에 '특히 편성과 김응*은 24세이 청념으로 남로당의 지령을 실천목표로 삼아 방송국에  취직한 다음 방송적하를 위해 암약중 수도청 사찰과에 의해 8월4일 일달 14명과 함께 체포되어 취조를 받은 결과, 그후 배후조정자가 남로당 서울시 당부 김원복(金元福)과  문학가 동맹운 박설리(朴雪里)임을 자백, 경찰에서 그들도 구속하여 문초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사실왜곡 방송적화 선전의 도구

시민들은 아연실색했다.


그렇잖아도 반탁운동을 함께 벌였던 좌익이 하루아침에 이를 뒤짚고 찬탁에 돌아서면서 전국이 온통 우익과 좌익의 대결한데 놀랐던 시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거기다가 미소의 대립에 힙싸여 데모와 테러, 심지어 요인 암살까지 자행되는 암울하고 불안과 공포에 싸인 국민들로선 입을 '방송적화'라는 신종에 혼란만 가져왔다.

외신들은 당초보도에서 한발더나가, 공산주의자들이 수도서울에서 마이크를 장악한데 이어 방송기물파괴까지 시도하려했다는 경찰의 발표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미군정청의 강한 요구로 수사를 확대하고 보니 연루자가 14, 15명수준이 아니었다.

1947년 8월7일 새벽에는 주앙방송국 조정과 직원 안병*와 아나운서 이춘*를 검거했다.

또한 10여명을 지명수배한 경찰은 수사진행과정 브리핑을 통해 범인모두 남로당 소속으로 최후에는 방송국과 기계를 파괴할 계획까지 세우고 이북의 지령에도 동조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수사를 경찰에 맡겨온 서울고등검찰청도 심각성을 깨닫고  검사와 수사관들이 수사에 직접 나섰다.

검찰이 이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내용은 이렇다.


"서울중앙방송국에서 지난달 7월28일 남산에서 거행된 미.소 공동위원회 촉진 인민대회보도에 대한 왜곡방송도 확인했다. 소련측 수석대표의 연설을  보다 강조된 내용이었고, 미국측 수석대표연설은  전연 다른 것이다. 왜곡방송한 혐의로  검찰에서는 방송국장등 서너명을 불구속으로 불러 문초했다"

이런 검.경수사결과중에 놀라운 결과도 소개됐다.

그해 7월28일 열린 미소 공동위원회 촉진인민대회에서 소련측 수석대표 스티코프의 연설문중에 이런 때문이다.

스티코프는 '반탁투쟁을 하는 사람들은  모스크바 3국외상회의결정과 연합국을 지지하여 민주독립국가를 건설하려는 우리의 거사 앞에 수치를 면치 못하리라'라는 대목이다.

이 대목을 한 좌익신문은 "반탁투쟁을 하는 사람들은  모스크바 3국외상회의결정과 연합국을 지지하여 민주독립국가를 건설하려는 우리의 거사를 앞에 '멀지 않은 장래에 인민앞에 사과하라'"라고 고쳐 보도했다.

중앙방송은 이 좌익신문을 확인 없이 그대로 방송한 것이 이들 남로당들의 행위였다는 것이다.  

미소 공동위원회 미국측 수석대표였던 미군정창 하지 사령관이 크게 화를 낸것은 물론이다.

더구나 하지는 이 방송으로 반미감정을 갖게한 사실과 민심을 교란시키고 질서를 문란하게 한점은 용서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사건은 점차확대되어 미 하원에서 국무장관등을 집중추궁하고, 대통령의 조선정책에 대해 강한 질타도 이어졌다.


이후 수사를 해보니 방송국장 뿐아니라 정치인이나 다름 없는  신문사 편집국장과 간부들 상당수가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이를 계기로 남로당 수뇌부는  남한내 입지가 좁아지고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지자, 38선을 비밀리 오가며 사실상 평양으로 월북하기에 이른다.

결국 중앙방송은 이를 계기로 일대 쇄신해 점차 엄정하고 중립적인 방송으로 거듭났다.

특히 194년 8월15일 정부수립과 함께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이승만 대통령은 방송국의 중립성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자유당 독재가 시작되면서 그도 방송을 도구화 했다.

남로당계 중앙방송국 직원들은 이후 6.25동란으로 흐지부지되다가 북한으로 넘어간 사람도 적지 않다고 전해진다.

당시 정치와 언론계에서는 이를 서울중앙방송국 프락치사건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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