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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탐방】소설가 운당 구인환 선생 생가를 찾아서(上)...시인 구재기와 함께하는 '舒川山河(서천산하)' 49편


049. 소설가 운당 구인환 선생 생가를 찾아서(上)
- 충남 서천군 장항읍 옥산리(봉근리마을)
단편을 이야기하자면 「산정의 신화」와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숨 쉬는 영정」을 꼽을 수가 있어요.

장편으로는 「일어서는 산」이 가장 애착이 가지요. 「산정의 신화」는 잃어버린 낙원을 찾으려는 현대인들의 욕구를 그린 작품이구요.

「일어서는 산」은 해방 이후 5년에서 7년 사이에 민초들이 겪는 수난을 그린 작품으로 역사의 회오리에 대응하는 대학생, 지식인의 태도에 대하여 말하려 하고 있어요.

또 「숨 쉬는 영정은」 6.25동란 이후 이산가족의 비극적인 현실을 소재로 다루고 있어요.

적십자사에서 만든 면회소에서 동생이 북에 있는 형을 만나러 갔는데 사람이 안 들어오고 영정이 들어오는 실화지요.


2020년 4월 2일 목요일.
금강하굿둑 관광지에서 전망대에 올라 서천과 전북을 이어주는 금강하굿둑의 모습과 가로막힌 금강의 물줄기를 바라보다가 내려오니 시각은 어느덧 오후 3시를 넘고 있다. 봄날은 마음의 설렘과 함께 서둘러 달려가는 탓인지 쉽게 시간의 흐름을 일러주지 아니하고 그대로 흘러가버리는구나 싶기도 하다.

벌써 이리도 깊은 오후에 들어있다니, 선듯 불어오는 바람결에 쉽사리 떨어져 휘날리는 벚꽃 잎들이 아쉽기만 하다. 4월 초이기는 하지만 이 이름다운 봄은 그리 오래 지탱하여 줄 것 같지만은 않다. 그래서 봄은 언제나 그리움과 아쉬움의 대상이 되고, 그에 따른 미련이 남겨주고 있는 지도 모른다.

무엇인가에 설레며, 무엇인가에 매료당하게 하는 봄날은 언제나 그렇게 우리 곁에서 멀어지곤 한다. 그래서 봄은 우리의 성장 과정에서 하늘하늘 기억을 불러일으켜 주는 첫사랑의 물결처럼 잔잔하면서도 끊임없는 출렁임으로 잊었던 일들을 거침없이 되살려주기도 한다.

금강하굿둑 관광단지의 공용주차장은 언제나 주차된 차량들로 만원을 이룬다. 봄을 맞아 몰려든 관광객들이 그만큼 많이 밀려온다는 까닭이기도 하지만,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하굿둑의 장엄한 모습과 금강의 뻘밭에서 반짝이는 햇살에 두 눈을 앗기다 보면 한 인생으로서의 삶을 부지불식간 그려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물줄기의 막힘과 흐름, 그에 따른 뻘밭의 드러남과 감춤으로 인한 반복적 작용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은가. 이제는 금강하굿둑이 서천과 전북을 잇는 교통로로도 이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관광지로서 큰 몫을 하고 있다. 장항선의 일부인 신장항과 군산 대야 철도도 놓여 있다. 또한 서천군 마서면의 금강변 일대에 새로운 관광단지를 탄생시켜 아름다운 경관을 구비마다 펼쳐놓고 있다.

이러한 곳에 막힘과 흐름, 드러남과 감춤의 대자연의 모습이 인간의 손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는 데에서 잠시 놀랍기도 하지만 혹여나 인재지변으로 말미암아 일어날 수 있는 일도 예고하고 있지 않나 하는 다소의 염려스러움도 숨길 수 없다.


하굿둑 관광단지의 봄 풍광을 가슴으로 마음껏 끌어들이다가 문득 고개를 숙인다. <봉근리, 우당 구인환 선생 문학비 3km>라는 오석(烏石)이 세워져 있다. 갑자기 까마득히 잊었던 사실처럼 번쩍 눈을 뜨이게 한다. 그렇구나, 그래, 그곳에 가보자. 얼마나 오랫동안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가.

당시 충남문인협회 회장에서 물러나기 전 문학비 건립 후원 단체장으로서 2004년 5월 15일 당시 구인환 문학비 제막식에 참여하였던 일을 떠 올린다. 끊임없이 출렁이는 금강하굿둑의 물결이 봄빛을 받아 잊었던 일들을 거침없이 되살려준 까닭이리라.

급히 차를 몰아 금강하굿둑 관광단지를 빠져나온다. 그리고 하굿둑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핸들을 꺾어 국도 21번 금강로를 따라 국립생태원 앞으로 하여, 송내교차로 밑을 빠져나간 다음 만난 삼거리에서 장항로를 향하여 왼쪽으로 핸들을 꺾는다. 한 500여m나 달렸을까, 오른쪽으로 안내하는 표석이 보인다.

<구인환 선생 문학비. 1km> 차를 멈추고 멀리 보이는 마을이 반가움에 나타난다. 봉근리의 먼 전경이 그대로 그려진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을 뒤로는 낮으막한 산봉우리가 감싸 돌고 앞이 탁 트인 봉근리의 모습이 시원스럽고 후련한 가슴으로 안겨온다.


옛 장항선의 철도길이 앞을 가로막는다. 1990년 10월에 금강하굿둑이 준공된 이래 지금의 장항선이 직접 전북으로 이어지는 바람에 장항읍내로 진입하던 봉근리 앞의 철로는 장항선으로부터 밀려나 있다. 다만 장항읍내 공장의 수하물을 실어 나르는 철길로 변해버린다.

그러므로 장항선이라는 이름을 빼앗긴 이후에는 그때 그 시절의 건널목 신호등만이 철길을 지키고 있다. 봉근리 앞으로 탁 트인 들판 가운데로 이어진 철로의 신호등은 여전히 살아있어 옛날을 더욱 그립게 한다. 신호등을 뒤로하고 앞으로 달린다. 그러나 봉근리가 분명하지만 왠지 낯설기만 하다.

그때에 보지 못한 우람한 창고며, 울퉁불퉁한 마을 안길은 깨끗하게 아스파트 길로 변해 있고, 동네 안길마다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어 옛날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만큼 낯선 마을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낯선 것은 길만이 아니다.

여기저기 가득했던 마을의 집들이 많이 사라진 듯하여 어쩐지 옛날같이 다정다감한 맛이 사라지고, 오히려 쓸쓸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한다. 그만큼 오늘날의 시골 동네란 동네는 모두 사람의 그림자마저 줄어버린 채 쓸쓸함만 가득 차오르게 한다.

곧바로 봉근리에 들어선다. 옛 기억을 더듬어 몇 발자국 떼듯 달리니 지난날을 그대로 보여주듯이 구인환 선생 생가가 반겨준다. 마을의 할머니 두 분이 텃밭 길가에 앉아 따뜻한 오후의 봄볕을 모으고 있다가 낯선 나그네에 시선을 돌린다. 그 시선이 너무나 따뜻하다 못해 다정스럽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그러나 왠지 묻고 싶어 묻는다. “저 집이 구인환 선생님댁 맞죠?” “예”라는 대답이 동시에 두 분 할머니의 입에서 동시에 나온다. 사람이 그리운 탓이리라. 그 목소리 또한 반갑다. 흔히 어디서 오셨느냐고 묻지도 아니한다. 그리고는 “지금 아무도 안 살아유!”라는 묻지도 않은 질문에 답을 해준다.

사람 목소리가 어쩌면 귀한 시골에서 사람을 만난다는 반가움 속에 아쉬움과 그리움이 묻혀있는 듯이 들린다. 문득 소설의 한 장면을 그리움처럼 떠올려본다.

- 저놈들이 다 지어놓은 농사를 망칠 작정인가. 어서 나오지 못해!
할아버지는 고함을 질러보지만 그 아이들이 벼 이삭 아래로 몸을 숙여 한 놈도 눈에 띄지 않아 그저 엄포를 놓을 뿐이다. 조심하여 벼 모개를 꺾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여 개구쟁이는 벼 고랑을 오가면서 할아버지가 마을로 들어가기를 기다리면서 잡은 붕어를 세어보기도 하고 커다란 우렁을 자랑하기도 한다. 붕어는 어머니 갖다주면 깻잎을 넣고 찌개를 만들어 저녁거리가 되고 우렁은 산 밑 놀이터에 모여 솔가루나 잡풀을 긁어다가 구워 먹으면 그 맛은 정말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지경이다 거기에 거의 익은 콩대를 꺾어다가 구우면 이건 더 없는 만찬이 된다. 서루 다투어 먹다가 얼굴이 온통 까마진 것을 보고 누엿누엿 져가는 석양에 날아가는 기러기를 보면서 콧노래가 제대로 나오게 된다. - 단편소설 「약수터와 연못가」에서


구인환 선생의 생가 입구에 세워진 문학비가 반갑다. 문학비는 생가 입구 바로 곁에 생가와 나란히 서 있다. 문학비와 생가 앞으로는 깨끗하게 포장도로로 닦여져 있지만 생가 앞의 들이나 생가 울안은 모두 온갖 잡초로 우거져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멀리서 보아도 빈집임을 쉽게 알아차리게 한다.

할머니들의 말씀에 의하면 살기에 바쁘기 때문인지 찾아오는 가족조차 그리 자주 만날 수 없단다. 그래서 비워 놓았기 때문에 잡초가 우거질 수밖에 없단다. 문학비 앞으로 다가서자 문학비로 오르는 계단의 석판 하나 떨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안타깝다. 누가 돌보고 있지 아니하는 모양이다.

바로 제막식 때 참석하여 축사도 하고, 또 함께 제막 테이프도 끊고 하였으니 감회가 새로워서인지 남다르게 느껴진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흘러왔고, 그동안 전국의 문학비를 많이 보아온 터라 알게 모르게 비교가 되어 아쉬운 마음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문학비 전면에는 자연석으로 이루어진 마름모형 커다란 돌에 오직 <우당 구인환 선생 문학비>라는 글자 10자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아무런 새겨진 글자가 보이지 않은 채로 역시 자연석 받침돌 위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허전하다.

그러면서 바로 옆에 세워진 돌 전면에는 <우당 구인환선생 문학비. 영겁(永劫)의 세월 푸르게 빛나소서>라는 기리는 문장이 새겨져 있고, 그 아래로는 건립기가 새겨져 있다. 건립기를 옮겨 적는다.

建立記. 한국문학사에 대춘부(大春府)로 꼽히며 40여간 서울대학교에서 후학들을 배양하며 각종 논문집과 소설집 등 무려 1백여 권이 넘는 개인 저서를 왕성하게 발간하고 있는 우당 구인환 선생 문학비를 고향인 충남 서천군 장항읍 옥산리(봉근리) 204번지 출생지에 세운다. 2001년부터 고향의 후학들인 계간 문예마을의 회원들과 장항초등학교 총동창회와 평해구씨 문중에서 구인환 선생 문학비 건립위원회를 구성하고 모금한 결과 전국의 많은 뜻깊은 분들이 기탁금을 보내주고 전국과 서울지역 문학단체들이 많이 참여하여 운당(雲堂) 구인환(丘仁煥 선생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자는 의견이 모아져 범 문단적으로 활발하게 움직여 결정이 되었다. 참여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훗날 이 문학비를 찾는 많은 문학도와 후학들에게 긍지가 되어 크고 넓은 문학으로 접근하여 성장하기를 기원하면서 건립기를 마친다. 2004. 5. 15. 운당 구인환선생문학비 건립추진위원회

그 건립기 뒷면 위쪽에는 구인환 선생의 약력과 주관단체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서울대학교사범대학국어교육과 동문회, 충남문인협회,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동문회 등 후원단체의 이름이 보인다.

구인환 선생이 작고하자, 『연합뉴스』는 ‘원로 문인 구인환 서울대 명예교수 별세’했다면서 <소설가이면서 문학 연구·교육자로 문학계에 족적>이라는 제하에 “한국현대소설학회장을 지낸 원로 소설가 구인환 서울대 명예교수가 9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소설을 창작하는 작가로서뿐 아니라 소설 문학을 연구하고 비평하는 학자로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는 게 문학계의 평가다. 충남 서천에서 태어난 구 교수는 서울사대 국어교육과와 동국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나와 서울대에서 문학박사를 받았다. 고등학교 교사와 서울여대 조교수를 거쳐 1972년부터 1995년까지 서울사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후학을 가르쳤다. 현대소설학회장 외에도 국어국문학회 대표이사, 한국문인협회 부회장, 서울대 국어교육연구소장, 한국소설가협회 대표위원 등을 역임하면서 학계와 문단 양쪽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문단 경력을 보면 1960년 '문예'에 소설 '동굴주변'으로 등단했다. 소설집으로 '산정의 신화', '뒹구는 자화상', '모래성의 열쇠' 등이, 장편소설은 대표작으로 꼽히는 '일어서는 산'을 비롯해 '별들의 영가', '동트는 여명' 등이 있다. 그 외 다수 중편소설과 수필집을 남겼다. 구 교수의 소설은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고민과 실낙원을 향한 현대인의 그리움을 간결한 고백체 문체를 통해 다룸으로써 독자적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을 받았다. 문학 이론서로는 '문학과 인간', '한국근대소설연구', '한국단편소설의 이해', '한국문학의 비평적 탐구' 등이 있다. 주요섭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한글문학대상, 최우수예술가상, 월탄문학상(1992), 예술문화대상, 순수문학대상, 대한민국문학상 등을 받았고 국민훈장 동백장이 추서됐다”고 보도하여 알려준다.


보도된 내용에 따라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한 소설가로서 무엇보다도 2005년 ‘운당 구인환 문학 전집’을 27권으로 완간함으로써 우리에게 양적 질적으로도 많은 작품을 남겨주었음을 증거하고 있다.

선생이 스스로 대표작이나 가장 아끼는 작품을 어느 잡지의 대담을 통하여 <단편을 이야기하자면 「산정의 신화」와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숨 쉬는 영정」을 꼽을 수가 있어요. 장편으로는 「일어서는 산」이 가장 애착이 가지요. 「산정의 신화」는 잃어버린 낙원을 찾으려는 현대인들의 욕구를 그린 작품이구요. 「일어서는 산」은 해방 이후 5년에서 7년 사이에 민초들이 겪는 수난을 그린 작품으로 역사의 회오리에 대응하는 대학생, 지식인의 태도에 대하여 말하려 하고 있어요. 또  「숨 쉬는 영정은」 6.25동란 이후 이산가족의 비극적인 현실을 소재로 다루고 있어요. 적십자사에서 만든 면회소에서 동생이 북에 있는 형을 만나러 갔는데 사람이 안 들어오고 영정이 들어오는 실화지요.>고 밝혀 그는 또 <내가 가장 영향을 받은 작가를 말하라 한다면 외국에서는 톨스토이를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학생 때엔 톨스토이 작품을 거의 외우다시피 읽었는걸요, 그리고 국내에서는 이광수 선생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지요. 춘원 이광수에 대한 논문도 썼는걸요.>라고도 덧붙여놓는다.

운당 구인환 선생의 문학비로부터 물러나와 바로 곁에 있는 구인환 선생의 생가 앞으로 향한다. 발자국마다에서 봄이 낳은 그리움에 흠씬 젖어버린 채 마음속에 떠오르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연하여 밀려온다.


철길 건널목에 서서

                      구재기

철길 건널목에 이르러
비로소 발걸음을 잡는다
내내 거침없이
내달리던 발걸음도
철길 건널목을 만나면
일단, 걸음을 멈추고 선다
내내 달려오던 앞길보다
좌우로 먼저 눈을 돌린다
마음 단단히 거두지 못하면
앞서려는 발걸음을 뚫지 못하는 것
철길 건널목에는 벨이 울리고
하늘과 땅 사이로
붉은 불이 번쩍거리고
발걸음보다 먼저 온
바람조차도 제 자리에 서서 
앞길에 둔 눈길을 거둔다
한걸음으로 단박에 부딪치던
세상일에 빠지지 않아
시달려서 괴로워하거나
혹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고
옳고 그름을 가려
철길 건널목 앞에 서면
걸음을 멈출 줄을 알게 된다
세상 한걸음 벗어나 
모오든 번뇌가 들뜨지 않게
지혜로 돌아서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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