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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최민호 명언명상】터널비전과 이관규천(以管窺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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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 조종사나 곡예 비행사가 비행기를 수직으로 급상승시키면 앞쪽 가운데 부분을 제외한 주변부가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져 주위가 깜깜하게 보이는 수가 있다고 한다.


운전을 하면서 어두운 터널을 빠른 속도로 달리다 보면 터널의 출구만 동그랗게 밝게 보이고 주변은 온통 깜깜해지는 현상은 종종 경험할 수 있다.


속도를 줄이면 다시 주위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런 시각효과를 이른바 터널비전(Tunnel Vision)현상이라고 한다.


의학적으로 이 현상은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고 한다.


안과적 질환에 의한 손상으로 시야가 축소될 수도 있고, 뇌출혈이나 중추신경계의 산소 중독도 터널비전을 불러올 위험이 있다고 한다.


흔히 경험하는 것은 음주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과도하게 알코올을 섭취하면 눈 근육이 이완되면서 초점을 잘 잡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극도의 공포나 스트레스, 또는 격렬한 긴장감도 이런 현상을 일으킨다고 한다. 눈앞의 상황에 집중하느라 주변 상황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터널비전 현상이 나타나면 사고의 위험이 커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비행기 조종이나 자동차 운전, 중장비 조작, 도로 횡단 중에 터널비전 현상을 겪으면 치명적인 사고를 당할 수 있을 것이다.


심리적인 터널비전 현상도 있다고 한다.


한 가지 문제나 원인에 집착해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판단을 그르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수사관이 범죄를 수사할 때 자신만의 예단을 하면서 수사를 하면 거기에 빠져 중요한 단서를 놓치기 쉽다.


자신이 내린 결론에 부합하는 증거만 받아들이고, 어긋나는 증거는 자신도 모르게 제쳐놓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이런 성향이 있을 수 있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심각한 결과를 빚게 될 것이다.


만일 지도자나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면 그 결과는 헤아리기 어려운 불행을 불러 올 것이다.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실로 위험한 현상이다.


이관규천(以管窺天)이란 말이 있다. 대롱(管)으로 하늘을 엿본다(窺)는 뜻이다.


관중지천(管中之天) 즉 대롱 속의 하늘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좁디좁은 대롱으로 하늘을 본다는 말이다.


춘추시대 천하의 명의(名醫)로 일컬어지던 편작이 한 말이라고 한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춘추시대 말기, 천하의 명의로 이름난 편작이 괵이라는 나라에 갔을 때였다. 태자가 병으로 숨졌다는 소식을 듣고 편작은 궁정의사를 찾아가 무슨 병인지, 지금 어떤지 물었다.


환자의 상태를 파악한 편작은 “내가 살려 보겠다”고 했다. 


궁정의사는 죽은 사람을 살려보겠다는 말에 “어린애도 그런 말은 곧이듣지 않을 것”이라고 무시하고 믿지 않았다.


그러자 편작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대의 의술은 대롱으로 하늘을 엿보고(以管窺天) 좁은 틈새로 무늬를 보는 것(狹隔目紋)과 같소. 바늘구멍으로 하늘을 보니 그 구멍만큼만 하늘을 볼 수밖에 없는 법, 하찮은 의술로 일부의 증세만 보고 병을 진단했으니 잘못 보았소이다.”하는 것이었다.


편작이 침을 놓자 태자는 소생했고, 치료를 더 하자 20일 후에는 일어났다.


궁정의사가 죽었다고 진찰한 태자는 죽은 것이 아니라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인데, 궁정의사의 식견으로는 그것을 알아차릴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놀라 “편작은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소문이 그로부터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편작은“죽은 사람을 소생시킨 게 아니라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을 고친 것뿐이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여름벌레가 얼음에 대해 왈가왈부하면 얼마나 우스울까?


이런 것을 하충어빙(夏蟲語氷)이라고 하지만, 식견이 좁은 비전문가가 전문가를 제치고 자기주장만을 강변한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는가?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라는 우리 속담도 그런 것을 경계하라는 말이다.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이유 중의 하나로 정규 육군사관학교 장교들을 게쉬타포같은 비밀경찰이나 비선라인의 비전문가들이 지휘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군에서는 유명한 이야기다.


제 주장을 하느라 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고, 남의 허물로 인해 제 허물을 볼 수 없고, 주어진 조건 때문에 스스로의 시야를 좁히고, 변명과 합리화로 자신만을 방어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바로 이 터널비전의 중증환자요, 괵 나라의 궁정의사라 아닐 수 없다.


그들에게 죽은 편작은 일어나 이렇게 말하지 않겠는가.


“대롱으로 하늘을 보지 말고, 문틈으로 무늬를 보지 마시오. 당신이 보는 뱀 무늬는 뱀이 아니라 호랑이의 꼬리란 말이외다.”


자신이 보고 읽은 것만이 세상의 전부요, 옳은 것이라고 믿고 있는 그들은 나쁘다기 보다 어리석다고 할 수 밖에 없으니, 중국 한(漢)나라의 동방삭(東方朔)이 “대롱 구멍으로 하늘을 엿보고, 고둥 껍데기로 바닷물을 재며, 풀줄기로 종을 치는 격(以管窺天 以蠡測海 以莛撞鍾)”


이라고 한 말은 무식한 줄도 모르고 큰 소리만 지르고 있는 어리석은 자를 보는 현자의 측은함이 눈 속에 가득 배어있는 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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