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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탐방】서천 치유의 숲을 찾아서...시인 구재기와 함께하는 '舒川山河(서천산하)' 4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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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8. 서천 치유의 숲을 찾아서
-충남 서천군 종천면 산천리 산 35-1  

몇 발자국 앞으로 떼어놓고 보니 소나무 숲 사이로 정자 하나가 보인다. 비록 낮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하늘물빛’을 바라보기에도 넉넉한 시야(視野)를 마련해 준다. 빙 둘러 씨고 있는 산녘의 한가운데 자리한 호수의 이름이 곧 ‘하늘물빛’이란다.

누가 이리도 넓고 깊고 그윽한 천지(天地)를 한데 어울리도록 지상의 가장 맑고 깨끗한 물줄기를 한데 모아놓고 하늘과 물빛과 동일화를 이루어 놓았단 말인가. 이곳에서는 아무리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본다 하더라도 ‘하늘물빛’이라는 이름 이외에는 달리 어떻게 이름 지어 부를 수 없을 것만 같다.

하늘물빛, 하늘물빛- 거듭으로 되뇌어 불러보면 불러볼수록 온누리에 하늘의 푸르름이 절로 흘러넘쳐 마치 인간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와 신선이나 된 것처럼 두둥실 하늘의 흰구름을 올라 세상을 올바르게 굽어보도록 해준다.


우리나라에서의 장마는 원래 7월 중순에서 늦으면 8월 초에 끝나기가 보통이란다.

그런데 올해는 다르다고 한다. 2020년 장마기간은 6월 말부터 시작하여 8월 11일 현재 49일을 기록하고 있다 한다. 다행히 어제부터 볕이 들었으나 앞으로 또 언제 비가 더 올지 몰라 지레 걱정이 된다.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빗물이 고였던 자리에 햇살이 가득하니 몸과 마음이 날아갈 듯하다. 얼마나 햇볕이 나오기를 기다려 왔던가. 이미 역대급 장마의 기록은 세워지고, 그에 따른 피해도 엄청나다. 더더욱 올해의 장마에는 코로나19 사태와 함께 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러한 장마 속에서 기다리던 햇살이 나오자 절로 발걸음이 옮겨진다.

2020년 8월 14일 금요일. 이제 장마가 끝나가는가 싶으니 어서 코로나19로부터 해방을 맞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향하게 된 곳은 종천수원지, 아니 <서천치유의 숲>이다.

필자의 초등학교 시절에는 그곳을 ‘종천 수원지’라 했고, 보통 장항의 식수원이라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와서인지 ‘서천 치유의 숲’이라는 이름이 왠지 조금은 낯설다. 초등학교 시절 종천 수원지로의 소풍은 먼 옛날 속에 자리 잡고 있던 터라 점점 가까이 안내되는 길이 무척이나 멀게 느껴진다.

국도 21번 도로를 따라 당정 교차로에서 만나는 이정표가 반갑다. 서천복지마을로 향하여 달리다 보니 ‘서천 에메니티복지마을’이란 안내석이 보이고, 그 너머로 살짝 서 있는 이정표를 보자 바로 ‘서천치유의 숲’이 다가온다. 곧바로 멈춤 없이 달란다. 그러나 그만 고개 밑에서 주춤한다.

방향을 가리키는 안내 글자가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으나, 어릴 적의 ‘종천저수지’라고 불렀던 ‘저수지’라는 이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뒤따라오던 승용차의 진입을 풀어주고는 곧바로 그 승용차를 뒤따른다. 바로 그 앞에 나타난 곳이 바로 <서천치유의 숲>의 주차장이었던 것이다.


주차장 나무 그늘 아래 주차하고는 ‘이곳이 바로 종천저수지인가?’ 크게 자문하면서 차창 밖으로 나오자, 나무그늘 아래에서 햇살을 피하며 힐링하고 있던 낯선 사람이 “맞다”고 답해준다. 종천저수지라는 소리에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말하면서 옛날의 수원지 시절을 말해준다. 고마운 일이다.

“그때는 정말 대단했어요. 해마다 봄이 되면 수많은 인파들이 몰려들었지요. 벚꽃이 피어 만발할 때면 그야말로 장관이었지요. 물은 좀 맑았나요. 주위 경치는 또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장항의 인구가 급속도로 유입되면서 물이 부족한 장항 주민들의 식수원 문제가 크게 대두되었지요. 바로 이곳이 장항 주민들의 식수로 사용되었던 수원지입니다. 1938년도 무렵에 건설되어 장항 주민들의 식수가 되었지요. 장항제련소 같은 공장이 세워지는 등 근대산업화로 인하여 급속도로 늘어나는 장항읍 주민들에게 공급할 식수 문제가 심각해지자 비교적 수자원이 풍부하고 청정한 지역을 물색하던 중으로 이곳을 수원지로 지정하였다 합니다. 그러다가 한국수자원공사가 1990년에 착공하여 2001년에 완공한 다목적 댐인 용담댐의 물로 바뀌었어요. 그러나 그 후에도 이 수원지는 꾸준히 보호되고 보존되어 왔지요. 그래서인지 자연의 그 모습이 그대로 잘 갖추고 있어 그때 그 아름다움을 고이 간직하고 있어요. 참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낯선 사람의 다정하고 자세한 설명이 끝나자 눈길을 돌린다. 족히 반백년은 넘게 되었으리라는 소나무와 삼나무, 그리고 편백나무 등 각종 나무가 아우러진 사이로 높은 저수지의 제방이 보인다. 바라보기만 해도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할 만큼 거대한 나무숲에 드니, 바라만 보아도 가슴 깊이에 이르기까지 숲의 향기로 가득 채워지게 하는 듯하다.

주차장에서 테크 다리를 건너가는데 안내도가 보인다. 이 치유의 숲에는 ▲소나무소리쉼터 ▲어린이놀이숲 ▲대나무소리쉼터 ▲능소화터널 ▲수변명상의숲 ▲물빛전망대 ▲하늬바람풍욕장 ▲문수산등산로  ▲물향기치유원 ▲약재원 ▲희리산등산로 ▲임도 등이 인내되어 있다.

어디선가 맑은 물소리가 울려 나온다. 저만큼에서 부서지면서 내리는 수원지를 넘쳐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자못 시원스럽다. 숲속에서 울어대는 매미소리도 무척이나 곱다.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른 굵은 나무들이 너른 그늘까지 넉넉하게 펼쳐놓아 온몸 가득 시원스러움이 스며든다. 몸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소나무소리쉼터’에서 몸을 멈춘다. 가만히 몸의 움직임을 멈추고 두 눈을 감아본다. 세상의 번뇌한 소리들을 밀어내고 난 빈자리에 쉼터의 온갖 소리를 담아본다. 지금까지 가득했던 세상의 모든 소음들이 일시에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가 어느 한순간 사라져버리는 걸 온몸으로 느낀다.

소나무, 바람소리, 새소리, 벌레소리 등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걷거나 명상에 잠기고 나면 알파파(Aalpha波 : 뇌파의 하나로, 1초에 8~13펄스의 빈도로 뇌 피질의 후두부에서 나오는 전류)가 빨리 유도되어 정신의 안정을 가져온다고 한다. 소나무소리쉼터에서 잠시 한 휴식은 세진(世塵)에 찌든 가슴을 잠시나마 시원스럽게 다듬어 바로잡아 살펴보게 한다.

늙은 소나무 밑에서 하늘을 본다. 온 가슴으로 하늘과 노목(老木)의 하늘 밑 가지에서부터 좌르르르 흘러내리는 향기가 가슴 한복판으로 쏟아져 밀려온다. 일순 가슴속으로 치미는 서늘함에 새로운 생각을 일깨워주는 듯 잠시 명상에 들게 한다. 이 위대한 자연의 품속에 들어 인간으로서의 가슴으로 받아들여지기에는 인간이 갖추고 있는 공간은 너무나 비좁다. 이 치유의 숲에서 무엇을 본받아 키워나갈 것인가.


‘어린이놀이숲’에 이른다. 어린이들이 스스로 자연재료를 활용하여 놀이와 체험,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간이다. 자연을 자연과 함께 가장 자연스럽게 놀이하는 일이란 곧 어린이의 마음을 가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에 이르자 문득 발걸음이 빨라진다.

‘대나무소리쉼터’는 짙푸른 대나무들이 소리 없이 작은 몸짓을 보여주는 바람결을 불러 서로가 서로의 푸른 잎을 맞부딪고 있다. 그럴 때마다 대숲의 속삭이는 소리를 들려준다. 이러한 소리를 일러 ‘풍옥(風玉)’이라 했다던가? 풍옥이란 대나무에 바람이 불어 서로서로 잎을 부딪으며 서걱거리는 소리이다.

즉, 풍옥은 수많은 댓잎이 바람 불어댈 때마다 서로 부딪치며 내는 소리로, 옛사람들은 이 소리를 허공에서 옥을 구르며 내는 소리라 여겼던 것이다. 이 풍옥이란 말이 나오는 시작품은 당나라 때의 시인 두목(杜牧.803~852)이 어느 무너진 절터에 남겨진 대나무를 보고 읊은 <작죽(作竹)>, 즉 ‘베어버린 대나무’라는 시작품이다. 살펴보기로 한다.

寺廢竹色死(사폐죽색사) : 절이 무너지니 대나무 빛도 생기를 잃고
宦家寧爾留(환가영이류) : 관가에서 어찌 너만 남겨 두었던가
霜根漸隨斧(상근점수부) ; 서리처럼 새하얀 대나무 뿌리마저 도끼에 찍혔지만
風玉尙敲秋(풍옥상고추) : 바람에 댓잎이 내는 옥음(玉音)은 여전히 가을을 두드리고 있구나
江南苦吟客(강남고음객) : 강남에서 괴로이 시 읊는 나그네
何處送悠悠(하처송유유) : 어느 곳으로 이 애절한 마음 담아 보내리

제방(堤防)으로 오른다. 그리고 제방에서 하늘 물빛을 바라보니, 옛 수원지의 물을 ‘하늘 물빛’으로 명명(命名) 한 까닭을 알 수 있을 듯하다. 바라보니 온통 세상은 짙푸름이다. 아, 저 물빛, 저 물빛은 지금 둘레의 짙푸른 산빛과 하나가 되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해놓고 있다.


방금 안내판에서 보았던 ‘하늘물빛’이 무엇을 이르고 있는가를 절로 깨닫게 한다. 과연 ‘하늘물빛’이다. 하늘과 물빛은 따로가 아닌 하나요, 물과 하늘은 서로가 서로를 품어 한 가지 빛으로 이루어놓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창출해놓고 있는 것이 아닌가.

16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정식 판매 부수가 무려 8천만 부가 넘고, 해적판까지 합하면 전 세계적으로 1억 부 이상 팔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어린 왕자(The Little Prince)』의 저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ery)는 물을 일컬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물, 너는 맛도 없고 빛깔도 향기도 없다. 너는 정의(定議) 할 수가 없다. 너는 알지 못하는 채 맛보는 물건이다. 너는 생명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이다. 너는 관능으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쾌락을 우리 속 깊이 사무치게 한다.  너와 더불어 우리 안에는 우리가 단념하였던 모든 권리가 다시 들어온다, 네 은혜로 우리 안에는 말라붙었던 마음의 모든 새들이 다시 솟아난다 -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大地)」중에서

잠시 능소화 터널 앞에 이른다. 아직 한창 자라나고 있는 능소화는 터널을 이루고 있는 기둥을 타고 자라나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머지않아 크게 자라날 능소화는 한 여름의 무더위 속에서 청초한 맑은 물빛을 고스란히 빨아들이면서 아름답게 피어날 것이다. 구중궁궐의 꽃 능소화가 지금은 슬픈 전설로부터 빠져나와 하늘물빛을 한 아름 안아 들이고 있다.

‘능소화 터널’을 지나 이르게 한 곳은 ‘수변 명상의 숲’이다. 소나무 숲 사이사이에 리클라이너 소파가 곳곳에 놓여 있다. 가장 편안한 자세, 비스듬히 누워 하늘을 보고 물빛을 끌어들이면서 몸 안에 쌓인 온갖 잡다한 생각들을 토해놓다 보면 마음의 정화를 이루어 가장 맑은 영혼을 도모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나같이 모두 ‘하늘물빛’을 바라보도록 하여 하늘과 함께 세상의 번뇌를 쉽사리 져버릴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은 복잡다난하여도 이 ‘수변명상의 숲’에서 리클라이너 소파 위에 누워 있으면 하늘과 지상 사이의 한 존재로서의 가치를 드높일 수 있을 것만 같다. 잠시 몸을 눕히고 나서 일어나 보니 온몸이 홍모처럼 가볍다. 아니 정신이 맑아짐을 느끼게 한다.

몇 발자국 앞으로 떼어놓고 보니 소나무 숲 사이로 정자 하나가 보인다. 비록 낮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하늘물빛’을 바라보기에도 넉넉한 시야(視野)를 마련해 준다. 빙 둘러 씨고 있는 산녘의 한가운데 자리한 호수의 이름이 곧 ‘하늘물빛’이란다.

누가 이리도 넓고 깊고 그윽한 천지(天地)를 한데 어울리도록 지상의 가장 맑고 깨끗한 물줄기를 한데 모아놓고 하늘과 물빛과 동일화를 이루어 놓았단 말인가. 이곳에서는 아무리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본다 하더라도 ‘하늘물빛'이라는 이름 이외에는 달리 어떻게 이름 지어 부를 수 없을 것만 같다.


하늘물빛, 하늘물빛- 거듭으로 되뇌어 불러보면 불러볼수록 온누리에 하늘의 푸르름이 절로 흘러넘쳐 마치 인간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와 신선이나 된 것처럼 두둥실 하늘의 흰구름을 올라 세상을 올바르게 굽어보도록 해준다.

문득 물빛에 젖어든 몸을 스치어 지나가는 하늬바람 한 줄기를 만난다. 지금까지의 모든 생각과 움직임을 이제 넉넉히 하라는 뜻일까. 걸음을 멈추게 한 곳은 바로 하늘물빛과 마주하게 하는 ‘하늬바람풍욕장’이다. 바람이 맛있다.

바람 끝에 하늘물빛이 걸려있다. 푸른빛을 가득 먹음은 소나무가 하늘물빛과 하나 되려는 탓인지 물빛을 향하여 푸른 가지를 하나같이 늘어뜨리고 있다. 물빛까지 물고 와서 온몸이 한결 짙푸르러진다. 문득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저만큼에 <서천치유의 숲, 힐링센터>라는 건물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선 게시판에 <서천 치유의 숲 치유프 로그램 시범운영 안내>라는 안내문이 그 동안 코로나19로부터, 지루한 장마로부터 가뜩이나 쌓여온 정신적 피로감을 조금씩 온몸으로부터 빠져나가게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사랑하는 고향 서천이 고이 간직한 치유의 숲으로 이루어놓은 서천만의 행복이 아닐까?


하늘물빛을 바라보며
                     구재기

이곳에서는 
모든 안과 밖이
앞과 뒤, 위아래, 양 옆으로 
어긋나거나 부딪침이 전혀 없다
삶이 죽음으로
죽음이 삶으로 이어져
서로가 서로에게 
고르고 고른 어울림으로 
하나가 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막히거나 거칠 것이 없고
그래서, 있는 것이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있는 것이라고
어제오늘처럼, 내일인 양
푸른 물낯에
푸른 하늘이 내려와 
소리소문도 없이 깃들어 있다
끊임없이 출렁이고 있다
하늘과 지상이 제 마음대로 
오직, 엄연한 존재로 하나를 이루고 있다
보아라, 하늘물빛을 향하여
저 솔나무란 솔나무들 모두
푸르고 푸른 가지를 늘어뜨려
허리를 굽히고, 두 손 모으고 있는 
겸허함을 보아라
하늘의 뜻과 지상의 뜻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물빛 하나로 이루어 놓은 이곳
감히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흠씬 젖어버린 채
하늘물빛 속을 멈춤 없이 
걷고 있는 사람들을 보아라
제 몸을 송두리째 가라앉힌 
문수산을 보아라

*언제부터인가, 옛 종천수원지를 <서천 치유의 숲>으로, 그 물빛을 <하늘물빛>이라 멋지게 이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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