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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탐방】서천 이하복 고택(舒川 李夏馥 古宅)을 찾아서(상)...시인 구재기와 함께하는 ‘舒川山河(서천산하)’ 45편


045. 서천 이하복 고택(舒川 李夏馥 古宅)을 찾아서(상)
충남 서천군 첫 공립박물관인 ‘이하복 고택 전시관’
충남 서천군 기산면 신막로 57번길 32-3

일찍이 서천군 기산면 신산리에서 태어난 청암 이하복 선생은 고려 말 문인이자 학자인 목은 이색 선생의 후손이다. 전 재산인 8만평의 땅을 팔아 학교를 짓고 평생 교육에 몸 바친 서천의 교육사업가이다.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에서 동양경제사를 가르치던 중 1944년 일제의 학병 입대 권유를 거부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동강학원과 동강중학교를 설립해 평생 청빈한 선비정신으로 지역 인재 양성에 진력하시면서 어두운 시대의 밝은 빛이 되어 오신 것이다.

전시관에서는 “결코 관직에 나아가 일제의 녹을 먹지 않겠다(교육자의 길에 들어서며)”, “독립을 위한 길은 교육과 문화 운동뿐이다(학창시절의 신념)”, “내 고향에는 이 학교가 아니면 아무 곳에도 갈 데가 없는 아이들이 많습니다(동강 학원을 세우며)”, “학생들이 학도병으로 끌려가는 현실을 보고 있을 수는 없다(보성전문학교 교수직을 내려놓으며)”, “함부로 나뭇가지를 치지 마라(청암의 교육관)” 등등 삶의 철학을 엿볼 수 있게 한다.


2020년 7월 16일 목요일. 몇 발자국 떼어놓기가 무섭게 이마에서 땀은 절로 흘러내린다.

무섭도록 더운 날씨이다. 조금 전에 한산면 축동리에서 맹사성 부자의 효자비를 둘러보며 만나고, 이제는 우리나라 근·현대 격동기를 지나면서 사회계몽운동에 모든 것을 바친 청렴한 청암 이하복 선생의 고택을 찾아간다. 어쩌면 고불 맹사성(古佛 孟思誠. 1360~1438)이나 청암 이히복(靑菴 李夏馥. 1911~1987)은 550여 년의 차이를 두고 태어나 당대의 격동적인 시기를 거치면서도 올곧은 성품으로 청렴한 삶을 살아온 정신적 맥을 함께 하여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축동리에서 마산으로 나와 삼일로를 따른다. 갑자기 가슴이 탁 트이게 하는 봉선지의 맑은 물너울이 한여름의 뜨거운 바람줄기를 타고 출렁거린다. 다시 화산로를 따라 달리다가 막동리 앞에서 신막로에 접어든다. 마을을 곁에 두고 들녘 가운데 죽 곧은 삼막로는 가볍게 고개 하나를 넘는다. 고개를 넘자 오른쪽으로 <서천이하복가옥>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온다.

곧바로 핸들을 꺾어 오른쪽으로 마을안길에 접어드니 이하복 생가가 나타난다. 짙푸른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서천 이하복고택>이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깔끔하면서 반듯하다. 깨끗하게 정리되어 가지런한 모습이 예사롭지 아니하다. 특히나 요즈음에는 거의 볼 수조차 없는 초가집이 옛 모습을 그대로 지키고 있어 한결 부드러우면서도 포근하게 안겨온다.

금상첨화로 푸른 대숲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러한 정경은 지난 날 흔히 볼 수 있는 ‘대숲 아래 초가집’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이미 멀리 지나가버림으로써 아득해진 옛 시절 옛 마을 정취가 물씬 번지어 온다.


<서천이하복가옥>은 멀리 장군봉에서 이어진 진산(鎭山)이 오른쪽으로 휘감아 우백호를 이루고, 옥녀봉 줄기가 왼쪽에서 사알짝 돌아가는가 싶다가 좌청룡을 이루어놓았으니 바로 명당터에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전에는 한마당 앞으로 큰 연못을 파놓아 집터에 모아진 기(氣)가 새 밖으로 어나가지 못하게 함은 물론, 연못가로는 소나무를 심어 운치를 자아냄은 물론 기를 세어나가지 못하게 하였다는데, 이를 증명이락도 하듯이 이하복 고택에서 바라보는 앞에서는 짙푸른 소나무 몇 그루가 턱 버티고 서서 지나는 바람을 희롱하는 모습을 보인다.

<서천이하복가옥> 옆에는 서천군 내 첫 공립박물관인 <이하복 고택 전시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전시관이 충남도의 심사를 거쳐 공립박물관(충남 제40호)으로 등록되어 있다. 1984년 국가민속문화재 제197호로 지정되어 2018년 11월 8일 개관한 이 전시관에는 청화백자모란문호(20세기 초), 태극기(1940∼1950년), 놋수로(20세기 중) 등 유물 1천476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 100여 점을 선보인다.

희귀본으로 알려진 목은연보(牧隱年譜, 조선시대)도 소장하고 있어서 학술연구에도 귀중한 자료 역할을 하고 있다. 지하 1층에 전체 면적 357.44㎡ 규모로 지어진 이 이하복 고택 전시관은 무료 개방되며, 관람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학예사와 해설사가 함께 상주하고 있다.


계단을 따라 지하로 천천히 내려서자 계단의 오른쪽 벽면에 이하복 선생의 어록이 먼저 뜨인다. 일찍이 서천군 기산면 신산리에서 태어난 청암 이하복 선생은 고려 말 문인이자 학자인 목은 이색 선생의 후손이다. 전 재산인 8만평의 땅을 팔아 학교를 짓고 평생 교육에 몸 바친 서천의 교육사업가이다.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에서 동양경제사를 가르치던 중 1944년 일제의 학병 입대 권유를 거부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동강학원과 동강중학교를 설립해 평생 청빈한 선비정신으로 지역 인재 양성에 진력하시면서 어두운 시대의 밝은 빛이 되어 오신 것이다.

전시관에서는 “결코 관직에 나아가 일제의 녹을 먹지 않겠다(교육자의 길에 들어서며)”, “독립을 위한 길은 교육과 문화 운동뿐이다(학창시절의 신념)”, “내 고향에는 이 학교가 아니면 아무 곳에도 갈 데가 없는 아이들이 많습니다(동강 학원을 세우며)”, “학생들이 학도병으로 끌려가는 현실을 보고 있을 수는 없다(보성전문학교 교수직을 내려놓으며)”, “함부로 나뭇가지를 치지 마라(청암의 교육관)” 등등 삶의 철학이 적혀 있으며, “조선의 선비, 타고난 스승, 인간 사랑의 큰 바위의 얼굴”이라는 이현재 전 국무총리의 찬사와 함께 “조국 고향 정든 언덕에 겨레의 꽃을 피게 하였다”라는 황금찬 시인의 찬송도 기록되어 있다.


문득 동강중학교 교문 입구에 세워져 황금찬 시인이 청암 이하복 선생을 기리는 시 한 편이 떠오른다.

구름을 잃고 청자빛 하늘에/ 식지 않은 사상과/ 시들지 않는 나라사랑의 마음을/ 여기에 새겨 영원히 기리노라// 이극 하늘에 날린/ 세기의 물결 같은 깃발이었다/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피어/ 빛나는 겨레의 잚은 가슴에/ 언제나 내일을 눈 뜨게 하였고/ 조국 고향 정든 언덕에/ 겨레의 꽃을 피게 하였다// 빼앗은 자의 권위를 짚고/ 우리 반만년의 뿌리는 성씨와/ 이름을 짓밟고 일어서던 저 이족들/ 서릿발보다도 더 날섰던 욕된 그날을/ 의지의 횃불로 밀어내고/ 이끼 짙은 바위 위에/ 선구의 소나무로 서시던/ 겨레의 님 청암// 한 봄에 심지 않으면/ 언제나 가을이 서글프다고/ 살얼음 길을 힘차게 밟으시며/ 강물의 의지로/ 보성전문학교대의 교단에 서서/ 나라와 그 민족 다시 세계의 사랑을/ 눈 뜨게 하여/ 비로소 시대의 새 하늘과 삶의 땅을/ 볼 수 있게 하였느니// 이 지구 정원에 한 송이의 보석으로/ 하늘나무로 자랄 진리의 눈을/ 바다의 이상으로 심었으니/ 바로 동강 천년의 배움의 터라/ 지금 자라고 있다/ 영원한 등대로 시들지 않는 나무로/ 청암 이하복의 사상과 사랑은/ 오늘 이 하늘에 쉬고 있다 ― 황금찬의 시 「하늘에 새긴 시」 전문

전시관 문를 열자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사인교(가마)이다. 이하복 가문의 혼례에 쓰여 고택에 소장되어 있는 것을 복제하여 만든 체험용 가마이다. 앞뒤에 각각 두 사람씩 네 사람이 메는 형태로 혼례 때 보통 신랑은 말을 타고 신부는 가마를 탔지만, 신랑신부 모두 가마를 타기도 하였단다.


청암 이하복 선생은 가마를 타고 가서 신부집에서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이때의 신부는 이름도 없었다면서 청암 선생의 자전집 『왔다 사랑했다 그리고 갔다(1997.12.10. 학교법인 동강학원. p.p.118~119)』에 다음과 같이 적어놓고 있다.

아내는 나와 결혼하기 전까지는 이름도 없는 여자였다. 그 당시만 해도 여자에게는 이름을 별도로 지어주지 않았다. 그저 부르기 편한 대로 ‘언년’이라고 호명할 따름이었다. 시집을 가서는 낭군의 성을 붙이고 ‘누구의 부인’이리고 불렀다. 그러다가 개화를 맞이하여 여자들도 학교에 다니게 되고, 따라서 정식으로 작명을 해야만 호적부에 기재가 되었다. 여자들에게 이름이 지어진 것도 거의 사무적인 절차 때문이었다. 그러나 출생 신고 시에는 그저 몇째 딸 ’아무개 씨‘라고만 기재하였다.

1938년 3월 말, 와세다대학 정경학부 경제학과를 졸업한 아들이 부친께서는 당연히 고등문관시험을 쳐서 출세의 정석 길을 밟아가든가,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공무원 시험을 거쳐 관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지만, 선생은 정반대로 한국민을 수탈하기 위해 존재하는 일제의 관료조직 속에 들어가 받은 녹으로 자식들 공부시키고 싶은 생각은 애당초 가가지 않고, 교육과 문화운동을 통해 한국인의 정신을 살려 내는 것, 이것이 이 땅에 태어나 대학 공부까지 하게 된 행운에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시골에 내려와 있는데 결국 손진태 선생과 인촌 김성수 선생을 만나 1939년 초 보성전문학교 선생이 된다. 그러나 곧 중일전쟁의 불씨가 태평양 전쟁으로 비화한 뒤, 1944년 일제의 학병 입대 권유를 거부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광복의 기쁨도 오래가지 않은 채 자력경생의 노력과 육영사업의 신념에 따라 학교를 세우기 위해 길산에 있는 적산 창고 하나를 빌려 고등공민학교를 열고 중학교 과정을 무료로 가르친다. 이때 협동조합 운동도 시작하여 가마니 조합을 운영하는데 이는 끝내 격렬한 비난의 대상이 되고 만다.

1948년 해방을 맞자 약 1년간의 준비를 거쳐 재단법인을 설립한다. 당시 문교부 장관이었던 안호상 박사를 만나 학교 설립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나 안호상 장관이 서울에 학교를 세우라고 하였으나 ‘서울에는 학교도 많고 앞으로도 학교를 세우려는 사람이 많으니 시골에다 세우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선생은 일생을 통해서 시골에 학교를 세운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한다.


마침내 재단과 학교의 명칭을 ‘동강(東岡)’이라 이름한다. 재단의 기본 재산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재산이요, 학교를 설립하고 가르치는 일은 동생인 ‘은복(殷馥)’씨의 몫이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호 ‘동암(東菴)’에서 ‘동(東)’자를 따오고, 아버지의 호 ‘운강(雲岡)’에서 ‘강(岡)’자를 따서 ‘동강(東岡)’이라 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전쟁은 청암 선생을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게 한다. 그러나 정확한 시대적 판단과 올바른 기지로 위기를 탈출하여 종전이 아닌 휴전이라는 어설픈 평화를 맞게 된다.

청암 이하복 선생이 최고학부인 대학까지 나온 이른바 식자인 반면 아내는 무학(무학)으로, 사랑보다는 윤리적인 측면에서 의무적으로 부부생활을 하는 가운데 평범한 중농 출신의 가정교육을 잘 받은 전형적인 한국 여성으로서 살아간다. 부잣집 맏며느리라는 부러운 대상이 아니라 실제로는 층층시하의 고달픔을 견디어 낸 강한 여자라고 말한다.


1976년 10월 평생을 통해 청암을 뒷바라지하는 희생의 삶을 살아온 아내가 하늘나라로 간 후 재혼하라는 자식들의 간청을 한 마디로 물리치고 적막한 삶 속에서 청암 선생은 ‘인생길은 결국 혼자서 떠나는 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홀로 살아간다. 1987년 12월 18일 77세의 일기를 뇌졸중으로 마감한 청암 이하복 선생의 묘비명은 간단했다. 오고 가는 것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삶의 양식이라면 사랑은 이하복 선생이 살아온 삶의 내용이라 할 수 있거니와, “왔다, 사랑했다, 그리고 갔다” - 이 한 마디로 선생이 평생 사랑한 가족과 나라, 그리고 교육과 전통을 요약해놓은 삶의 철학을 보여준 셈이다.

<이하복 고택 전시관> 안에 들자 전시관에는 우리나라 중부지방 전통 농가의 형태와 이하복 선생의 업적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다. 주요 전시실은 이하복 선생의 기념실, 기획전시실, 서적전시실, 영상실, VR체험 공간 외에 학생들과 관광객을 위한 분판체험과 가마 야외 체험 공간이 있어 옛 선인들의 배움에 대한 열의를 엿볼 수 있는 자료를 체험을 통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안내자의 말에 의하면 살아생전 조그만 생활 기구 하나라도 절대 버리는 일이 없이 있는 그대로 보존하여 왔으며, 이로부터 평소 몸에 밴 검소한 삶의 모습으로 일생을 살아왔다고 한다.


필자는 동강중학교 13회로서 청암 선생의 가르침을 직접 받아왔거니와 또한 곁에서 선생의 검소한 삶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기억할 수 있다. 다 헤진 겨울용 누런 잠바만 입으신 채로 서울이며, 어디 외출이며, 학교의 행사의 현장에서까지 직접 걸음 하셨던 그 검소하신 옷차림은 아직까지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선생은 도덕을 가르쳐 주시면서도 교과서대로 가르치시는 일은 없다.

일상생활과 직접 맞닿은 올바른 삶의 실천, 어떤 것이 바른 삶의 길인가를 직접 깨닫도록 해주신다.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것은 중간고사 시험 문제가 ‘학생의 본분에 대하여 써라’라는 주관식 문제 딱 하나였는데,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필자로서는 결국 그 정답은 중학생으로서 스스로 지켜야 할 일이 무엇이고, 무엇이 그릇된 학생의 본분인가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었다는 것을 종심(從心)을 넘은 이제서야 알아차린다.

그만큼 선생의 가르침은 심오한 생활의 빛을 보여주셨고, 비범보다는 평범한 인간적 삶의 깊고 넓고 높은 의미를 아름답게 비춰주셨던 것이다. <이하복 고택 전시관>에서 나와 바로 옆에 있는 <서천이하복가옥>로 향하는데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한여름 태양의 열기는 더 이상 온몸으로 땀을 부르지 아니한다.

*이 글은 청암 선생님의 자전·논고집 『왔다 사랑했다 그리고 갔다』(1997.12.10. 학교법인 동강학원 발행)를 참고로 하였습니다.


놋수로를 바라보며
- 청암 이하복(靑菴 李夏馥) 선생님께
                                           구재기
세상 앞에서
놋수로의 불씨는 꺼지지 않습니다
홀로 몸을 태워 지키며
불씨를 불꽃으로 북돋을 뿐
제 빛으로 홀로, 감싸지 않습니다
홀로란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홀로로서도 외로운 일은 없습니다
외롭지 아니하니
작은 괴로운 일 하나 없습니다
그러므로 홀로이되 
홀로이지 않아
언제나 세상을 향하여 피어오를 
뜨거운 불씨는 살아 있습니다
불씨가 살아 있는 한
옳고 그름을 나누어 
결코 가름하지 않습니다
빛은 오직 하나, 그 하나로
<왔다 사랑했다 그리고 갔다>
소리 없이 맑고 고운 재로 
포근히 다독여 마련되어 있는 
작은 놋수로, 하나, 
그 속에 살아있습니다
비록 놋수로 하나는 작지만 
그 속의 불씨는, 그 빛은 
영원히 찬란하게 뜨겁습니다
지금 세상의 창밖으로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쉬임없이
홀로라는 이름을 붙일 수조차 없습니다
오직 놋수로의 불씨 하나
홀로, 필요로 하고 있는 세상입니다

* 놋수로: 이하복 고택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는 ‘손화로’를 말하며, 실내에서 사용하는 작은 화로로 이동하기 쉽게 양쪽에 손잡이가 달려있다. 20세기 중반 금속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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