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1 (목)

  • 흐림서산 3.5℃
  • 대전 3.3℃
  • 홍성(예) 3.6℃
  • 흐림천안 2.7℃
  • 흐림보령 3.0℃
  • 흐림부여 3.0℃
  • 흐림금산 4.4℃
기상청 제공

종합뉴스

【기획탐방】서천의 순교성지를 찾아서 (하)...시인 구재기와 함께하는 '舒川山河(서천산하)' 42편

URL복사

042. 서천의 순교성지를 찾아서 (하)
- 독매 공소 및 작은재 줄무덤 기타
- 문산면 수암리의 독뫼 공소 터 및 작은재줄무덤

공소터에서 작은재를 오르는 산길은 모두 단풍나무로 옹위되고 있다.

동행의 말에 의하면 이곳의 가을 단풍은 가히 거룩할 정도라 하니 얼마나 아름다운 길인가를 짐작할 수가 있다. 가을을 맞아 다시 한 번 이곳을 찾아보리라 다짐한다.

낮으막한 언덕에 오르기라도 할 듯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놓고 있는 길가에는 십자가의 길 14처가 세워져 있다. 단풍나무로 우거진 숲길이다. 그러나 한창 와르르 쏟아지듯 내리는 봄햇살임에도 이곳의 숲길은 차마 함부로 근접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일상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숲길이 주는 향기와 위엄과 함께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맞는 십자가의 길 14처는 죽음에 이르는 한 생애의 거룩함과 위대함에 한없는 존경의 마음이 절로 솟아오른다. 몸가짐을 조심스럽게 하고 받들지 않을 수 없게 한다. 


2020년 4월 28일 화요일. <산막골>에서의 시각은 어느덧 오후 2시에 이른다.

제법 긴 시간을 머무른 셈이다. 십자고상도 십자고상이지만 성 황석두 루카상 앞에의 머무름은 한참 동안이나 마음을 사로잡혀 있게 하였던 것이다.

성인에 이르도록 순교함을 말하기보다는 그의 일생에서 오직 한길을 굳건히 하면서 목숨까지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는 그 지순하고 견고한 마음이 어딘지 모르게 발걸음을 쉽게 떠나지 않게 하였던 것이다.

성 황석두 루카 상을 우러르면서 자못 경외로운 마음을 끝내 떨쳐내지 못한다. 몇 번이고 우러름을 되풀이하면서, 그러나 조금씩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산막골 성지에서 독뫼 성소로 가는 길은 끝내 찾지 못하고 다시 판교로 나오고 만다. 산막골에서 독뫼 공소로 가는 길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지만 산막골에서는 누구 한 사람 만나 물어볼 수조차 없었고, 또 동행인도 공소로 가는 길을 모른다 하니, 하는 수 없이 뒤돌아설 수밖에 없다. 우선 판교로 나가기로 한다. 그리고 대백제로를 따라 달린다. 그리고 판교사거리에서 판문로를 따라 다시 달린다.

판문로는 가로수가 단풍나무로 잘 가꾸어져 있다. 가을이면 단풍빛이 오색찬란하여서 이 길을 달릴 때마다 차를 멈추고 단풍관광을 즐기곤 하던 곳이기도 하다. 그 옛날 박해를 받은 교인들이 한 번쯤 넘나들었을 법도 한 놋점고개를 넘어 가면 금복리에 이르고, 금복리에 이르면 고고하게 서 있는 느티나무 한 그루를 만나곤 한 적이 있다.

그런 그 느티나무는 이제 간 곳이 없다. 2019년 13호 태풍 링링(Lingling)에 의하여 무참하게 쓰러졌기 때문이다. 이미 느티나무는 송두리째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한때 ‘수령 450년, 나무 둘레 5.20m, 수고 18m’나 되는 서천군 보호수(고유번호 8-9-172)였음을 말해주는 표석만이 풀섶에 안겨 있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단풍일 때의 단풍 모습을 머릿속으로 아름답게 그려보면서 달린다. 도로는 상상만으로도 아름다운 단풍나무 숲길이 된다. 문산저수지의 맑은 물낯에서 하늘빛이 그대로 묻혀있는 모습을 곁눈질로 바라보다가 이윽고 수암리 입구에서 길을 멈춘다.

작은재성지 2.0km. 그리고 수암리 앞으로 지나니 또 다른 이정표가 나온다. 독뫼공소성지 0.3km. 잘 찾아왔다는 안도의 숨이 나온다. 처음으로 찾아가는 낯선 길은 언제나 확실한 안내가 있으면서도 자못 염려되곤 한다. 이제 불과 300m쯤 남아 있다니 이전까지의 불안이 떨치고 마음을 내려놓는다. 그렇다. 곧 독뫼공소성지에 이른다. 그렇다면 ‘공소’란 무엇일까?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공소(公所)’란 ‘본당보다 작아 본당 주임신부가 상주하지 않고 순회하는 구역의 천주교 공동체 또는 그 천주교 건축물’을 말한다고 한다. 신부님이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미사가 집전되지 못하며, 공소 교우들의 본당신부를 대리하는 공소회장(公所會長)을 중심으로 성찬의 전례가 빠진 미사형식의 공소예절(公所禮節), 즉 공소에서 미사 대신 행해지는 전례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본당신부의 공소 방문은 1년에 두 번 봄·가을에 있는데, 신부 방문 때 집행되는 성사가 주로 판공성사(判功聖事)이었기 때문에 각각 ‘봄판공’ · ‘가을판공’이라고 불러온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공소 소재 마을은 전체 공소의 48.2%가 산간지대에, 35.5%가 평야지대에 있고, 9.0%가 도서·임해 지대에, 7.3%가 도시근교에 자리 잡고 있다는데, 이들을 지역별로 살펴보면 82.2%가 순농촌지역, 12.3%가 반농촌지역으로 나타나 전체의 94.5%가 농촌지역에 위치하여 있음을 알 수 있단다.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공소는 1799년(정조 23) 이전에 설립되었다는데, 이승훈(李承薰)이 평택 현감 재직 때 설립된 평택 본당의 대추리공소가 바로 그것이란다. 우리나라 천주교회의 첫 모습은 공소였으며, 한국천주교회 200년의 반 이상이 공소시대였으므로 천주교회의 모태가 바로 공소라고 할 수 있다고 하나, 공소 신자수·공소전례·공소 사목활동·공소 재정 등의 여러 측면에서 볼 때, 현재의 공소는 옛날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지 못하고 있다고 적혀있다.

독뫼공소를 천천히 둘러본다. 수암리의 독뫼 공소 터에 세워진 성모동산이 보인다. 작은 골짜기 개울을 건너 수암리 양지뜸의 공소터에는 작은 기념비와 함께 성모상과 십자고상이 있는 작은 성모동산을 이루고 있다. 공손히 두 손을 앞에 모으고 고개를 숙인 다음 독모공소에 대한 안내문을 읽어 내려간다.

<교우촌 독모는 조선 후기 천주교 대박해가 있을 때에 박해를 피해 내려온 서울과 경기지역, 내포지역 신자들이 교우촌을 이루어 살게 되었다. 독뫼(음지뜸)에서 옹기굴과 숯가마를 이용하여 첨례를 지냈고, 1899년 11월 뮈텔 주교의 사목 방문도 있었다. 이곳은 마을로 내려온 공소로 양지뜸에서 공소가 이루어져 왔다.>고 적혀있으며, 독뫼의 순교자 ‘이 암브로시오(1968.05), 박운서 바로오(1868.05) 정수동, 박 사도요한(1868.05)’을 기록해놓고 있다. 구상의 시《기도》를 떠올린다.


땅이 꺼지는 이 요란 속에서도/ 언제나 당신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게 하옵소서.// 내 눈을 스쳐가는 허깨비와 무지개가/ 당신 빛으로 스러지게 하옵소서.// 부끄러운 이 알몸을 가리울/ 풀잎 하나 주옵소서.// 나의 노래는 당신의 사랑입니다./ 당신의 이름이 내 혀를 닳게 하옵소서.// 이제 다가오는 불 장마 속에서/ ‘노아’의 배를 타게 하옵소서.// 그러나 저기 꽃잎 모양 스러져 가는/ 어린 양들과 한 가지로 있게 하옵소서. -구상의 《기도》 전문

이 시는 명상과 기도의 심오한 내면적 자유를 구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시인은 성서(聖書)의 단순한 장면과 사건을 소재로 하여 어떤 감정이나 사실, 주의 따위를 불러일으켜 준다. 그러나 그에서 어떤 뜻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시작품 속에 깃들어있는 의미를 찾아내도록 하고 있다. 

것은 바로 ‘불 장마 속’ 같은 현실적으로 몸이나 마음의 아픔이나 괴로움을 겪고 난 체험으로부터 이전에 없었던 생각이나 이념이 새로이 나타난 것으로, 각 연의 마지막 행마다 쓰이고 있는 ‘~하옵소서’의 기원적 태도에서 기독교 신앙과 삶에 대한 진실성을 보인다.

이러한 삶의 진실성을 뒷받침해 주는 것은 구상의 투철한 신앙심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이 시작품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첫째 연에서 지상에서의 현실적으로 겪게 되는 정신적 아픔과 괴로움에 시달림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천상적 구원을 기원하면서, 2연에서는 ‘허깨비’와 ‘무지개’로 구체화되어 나타내어지는 관념으로부터 아무 쓸모없이 헛된 생각에서 벗어난 이성의 회복을, 3연에서는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하여 인간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나면서부터 놓이게 된 은총의 결핍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는 원죄 의식의 신앙적 겸손을 호소하는 한편, 4연에서는 신에 대한 아무런 조건이나 제약이 붙이지 않거나 구속을 받지 않는, 어떤 대상의 아름다움을 기리고 찬양하여 일컬어짐을, 5연에서는 ‘불 장마 속’으로 표현된 인간의 불행을 원래의 좋은 상태로 되돌리거나 원래의 상태를 되찾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6연에서는 ‘어린 양들’로 비유하여 직접적이고 분명하거나 뚜렷하게 말이나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은 채로 은근히 자신의 뜻을 나타내 보이는 믿음의 세계로 접근하고 있다.


독뫼 공소터에서 산길을 따라 올라가노라면 작은재 줄무덤터가 나온다고 한다.

천주교 대전교구 서천본당에서는 이미 독뫼 공소와 작은재 공소 터에 기념비를 세워 순례객들의 교우촌 순례길을 돕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작은재 줄무덤 터에도 기념비를 세워 천주교 백색― 천주교에서의 제의(祭衣)에 있어서 백색(白色)은 “그들은 하얀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게 될 것이다”(묵시 3,4)에서와 같이 영광, 결백, 기쁨을 상징한다- 순교자들을 현양(顯揚)하고 있다고 한다.

공소터에서 작은재를 오르는 산길은 모두 단풍나무로 옹위되고 있다. 동행의 말에 의하면 이곳의 가을 단풍은 가히 거룩할 정도라 하니 얼마나 아름다운 길인가를 짐작할 수가 있다. 가을을 맞아 다시 한 번 이곳을 찾아보리라 다짐한다. 낮으막한 언덕에 오르기라도 할 듯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놓고 있는 길가에는 십자가의 길 14처가 세워져 있다. 단풍나무로 우거진 숲길이다.

그러나 한창 와르르 쏟아지듯 내리는 봄햇살임에도 이곳의 숲길은 차마 함부로 근접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일상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숲길이 주는 향기와 위엄과 함께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맞는 십자가의 길 14처는 죽음에 이르는 한 생애의 거룩함과 위대함에 한없는 존경의 마음이 절로 솟아오른다. 몸가짐을 조심스럽게 하고 받들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서천군 천방산 기슭에 있는 문산면 수암리의 독뫼 공소 터와 판교면 금덕리 작은재 공소터를 이어주는 고갯마루가 곧 작은재이다. 숲길로부터 벗어나자 곧바로 작은재 줄무덤이 있었던 곳에 이른다. 그러나 줄무덤은 보이지 않는다.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이 작은재 고개에는 이름 없이 살다 간 숱한 신앙인들의 줄무덤이 있었지만 1994년 산림도로 개설과 함께 줄무덤 터는 콘크리트에 묻히고 말았다 한다. 당시 공사현장에서 숱한 유골과 함께 발굴된 십자가와 묵주 등 성물도 있었다지만 연고자를 찾을 길이 없어 인근에 다시 묻었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제는 그 위치조차 찾을 수가 없다고 한다. 단 한 점의 성물도 남겨지지 않았다 하니 더욱더 안타깝다. 


작은재에는 <천주교 백색순교자 작은재 줄무덤>이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으며,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이곳은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가 있을 때에 독뫼 공소(문산) 신자들과 작은재 공소(판교) 신자들이 통발을 하던 장소이고, 박해를 피해 신앙으로 지키다가 선종한 많은 이향 신자들이 묻힌 장소이다.(30여기의 작은 무덤). 1994년 천방산 임도포장이 있을 때에 파묘가 되었으며, 파묘시 작은 십자가 등 많은 성물이 출토되었으나 연고가 없어 어딘가에 재매장 되었다고 한다.

‘줄무덤(줄묘)’이란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자 묘지를 말한다. 한 무덤에 여러 사람을 줄줄이 함께 묻었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대원군 집정 이후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심할 때 순교한 교도들이 많았는데, 그 친척들이 야간을 이용하여 이곳으로 운구 암장한 것이라 한다.

그 순교자 수와 성명과 순교 경위를 알 수 없지만 가족 단위로 묻히기도 하였다 한다. 제대와 십자고상 앞에서 잠시 두 눈을 감고 발걸음을 멈추다가 다시 발걸음을 시작하였을 때 이정표와 함께 나란히 서 있는 ‘천방산 임도시설현황’의 표석이 눈에 띄어 왠지 모르게 몰려오는 씁쓰레함을 쉽게 감출 수가 없다.


작은재 성지를 벗어나 작은재 공소(일명 띠안말)를 찾아 임도를 따라 판교면 금덕리쪽으로 내려간다. 좁은 임도는 시멘트 포장으로 이루었으나 아리구불 저리구불하여 조금은 주의스럽기만 하다.

다행스럽게도 작은재 공소는 바로 임도의 곁에 있어 쉽게 만난다. 그러나 지난해에 벋어내린 각종 덩굴식물의 엄습으로 주위는 을씨년스럽기도 하다. 사유지라는 출입금지의 푯말은 더욱 가슴 아프게 한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다행스러운 것은 봄이 한창 무르익어가는 시기여서인지 골짜기를 따라 늘어선 왕버들나무의 우듬지로부터 서서히 번지기 시작하는 연둣빛 신록은 한결같은 새 생명의 빛으로 눈부시게 다가온다.

<개개의 육체는 죽으면 없어질는지 모르지만 인류의 생명은 영원한 것이다. 섶을 인간의 육체에 비한다면 그것을 태우는 불은 생명이다. 섶이 타 없어지는 것을 볼 수 있지만 불은 그 섶에서 저 섶으로 이어져서 영원히 타오르는 것이다> 장자(莊子)의《양생주편(養生主篇)》에서 한 구절을 빌려와 옮겨놓는다. 

리고 또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라는《신약성서 요한복음 12:25》를 떠올린다. 조금 내려오다가 오던 길을 돌아보니 왕버들나무 우듬지가 아까보다도 한결 푸르러진 듯 보인다.


천방산 왕버들
                구재기 

천방산 작은재 줄무덤터에서
이리저리 구불구불 내려오는 길
골짜기를 타고 우르르 
줄 지어 내려오는 왕버들 무리
봄눈 녹아도 물이 흐르는지 
흐르지 않는지는 들리지 않는데
어찌 저리도 
촉촉(矗矗)하니 물 오른 모습들일까
우듬지로 촉촉이 젖어든 연록의 생명체들
생명은 오르지
하늘을 닮은 청색
땅을 닮은 황색
그 중간, 바로 그 색이 아닌가
지상을 향하여 
척 늘어진 가지 끝마다
하얀 제의(祭衣)를 입은 것처럼 
꽃눈 하나씩 달고
새 생명을 맞을 준비가 다 되었다는가
싸움터에서는  
백 만 명을 이기기보다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더 
가장 뛰어난 것
목숨 앞에서 목숨을 내놓는 일
누가 꺾어 받아낼 수 있을까
천방산 골짜구니 왕버들나무,
죽은 살거죽의 모습을 한 채로 
마른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물기 쪽쪽 빨아올린 걸 보면
죽어 살아오는 하늘과 땅 ,
중간의 빛으로 부풀리고 있는
연록(軟綠)한 생명의 목소리
두 눈만으로도 알아들을 듯하다


#서해방송, #sbn뉴스, #서천, #서천군, #서천군의회, #보령, #보령시, #보령시의회, #대천, #대천해수욕장, #천안, #천안시, #천안시의회, #아산, #아산시, #아산시의회, #당진, #당진시, #당진시의회, #왜목마을, #서산, #서산시, #서산시의회, #육쪽마늘, #태안, #태안군, #태안군의회, #안면도, #홍성, #홍성군, #홍성군의회, #예산, #예산군, #예산군의회, #예당호흔들다리, #청양, #청양군, #청양군의회, #칠갑산, #공주, #공주시, #공주시의회, #백제보, #부여, #부여군, #부여군의회, #계룡, #계룡시, #계룡시의회, #논산, #논산시, #논산시의회, #탑정호, #금산, #금산군, #금산군의회 #인삼, #서해신문, #장항, #스카이워크, #국립생태원, #근대문화, #모시, #소곡주, #충남도, #충남도의회, #충남도교육청, #대전시, #대전시의회, #대전시교육청, #유성구, #유성구의회, #대덕구, #대덕구의회, #동구, #동구의회, #중구, #중구의회, #서구 #서구의회, #세종시, #세종시의회, #세종시교육청, #정부청사, #경찰, #검찰, #감사원, #청와대 감찰, #청와대 청원, #국립해양생물자원관, #뉴스, #갈대밭, #금강하굿둑, #갯벌, #유네스코, #도시탐험역, #인공습지, #삼성, #송전탑, #서천 김, #현대, #강남 아파트, #부동산




포토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