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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탐방】충남 서천의 순교성지를 찾아서 (상)-산막골...시인 구재기와 함께하는 '舒川山河(서천산하) 40편'


040. 서천의 순교성지를 찾아서 (상)산막골 - 충남 서천군 판교면 금덕길 81번길 119

순교는 죽음에 직면하여 신앙의 의미와 진리를 효과적으로 증거하는 행위를 말한다.

가장 소중한 생명을 바침으로써 육신을 죽이는 자를 초월하는 주님의 존재를 드러내는 행위이므로 순교의 목표는 최고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있으며 그 가치는 최고의 존재자를 긍정하는 일이다.

또한 인간이 다른 인격을 긍정하는 것은 사랑이므로 순교는 사랑의 행위이기도 한 것이다. 


2020년 4월 28일 화요일. <산막골>을 찾기로 한다.

서천에도 성지(聖地)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터라 성지로부터의 느낌이 좀 색다르게 다가온다.

예사롭지 않은 경지를 넘어 거룩하며, 매우 깨끗하고 위대하고 성스러운 땅에 이르게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산막골로 향한다.

참된 순교자란 신의 뜻대로 되어버린 사람이므로 그는 신의 의지 속에 자신의 의지를 버리고 맙니다. 아니, 버린 것이 아니라 신의 의지 속에서 자신의 의지를 찾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신에 복종함으로써 자유를 찾기 때문입니다.

엘리엇(T. S. Eliot)의 <대성당의 살인> 한 구절을 떠올리면서 봄을 가로질러 달린다.

천주교 성지인 <산막골>을 찾아가는 길이다. 주위는 무르익은 봄기운으로 펄펄 넘쳐흐른다. 왕버들나무의 가지 끝에서 연록이 하루가 다르게 좌르르 흘러내리는 것을 보면 ‘이제는 봄이로구나!’라는 말이 절로 실감하기에 이른다.

봄 앞에서 봄이라며 봄을 찾는 것 그 자체가 봄에 대한 잘못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이미 봄은 깊어진 봄인데 봄을 가리키며 봄이 왔다고 되풀이로 말한다면, 봄으로서의 봄이 봄 내음을 잊고 있지 아니한다 하는 의구심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봄은 봄의 신(神)에게 복종함으로써 봄을 마음껏 발로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오직 봄을 즐기면 된다. 봄을 봄이라고 말하지 않고 온몸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깊이 펼쳐놓으면 된다.

그렇다. 봄은 분명 가슴을 부풀리게 한다. 겨우내 옹크렸던 가슴을 활짝 열어 빛과 향기로 가득 채워줌으로써 새로운 힘을 북돋워주고, 신비로운 세상으로 발길을 이끌어준다.

대백제로를 따라 서부저수지(흥림저수지)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달리면서 저수지 맑은 물에 무릎까지 담근 채 싱그러이 자라나고 있는 왕버들나무의 우듬지에서 연초록을 낚아낸다.

봄을 낚아 내어 봄의 맛을 본다. 봄의 향기가 혀끝에서부터 온몸 두루두루 퍼지는 것을 느끼면서 온몸이 홍모(홍모:기러기의 털이라는 뜻. 매우 가벼운 사물을 이르는 말)같이 날려가는 것을 느낀다. 봄은 그렇게 마음을 들뜨게 하고 몸을 부풀리게 해준다. 마냥 즐겁다.

오늘의 동행인은 목회자의 자격을 가진 초등학교 동창생이다. 벌써 몇 번째 동행인가? 등산광이요, 진정한 등산인으로 등산을 생활화하고 있는 그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전국의 산을 누빈다. 그러하거니와 먼 산으로의 등산 계획이 없는 날은 곧잘 나의 동행이 되어준다.


어쩌다 그가 매일 같이 오르내리는 천방산에 동행이 되어보면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함부로 밟거나 부러뜨리지 않고 다만 묵묵히 발걸음을 옮겨가면서 산과 무한의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그는 목회자이면서 진정한 산악인의 전범을 보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흥림저수지를 빗겨나가 판교를 향하여 달리다 보니 문득 <산막골 성지 - 2.6km>라는 푯말이 보이고 이어서 도로 옆으로 안내 표석이 우뚝 서있다.‘아름다운 사람들이 함께 사는 천방로’라 쓰여 있다.

잡고 있던 핸들을 우측으로 꺾어 들어간다. 점점 골짜기가 깊어진다. 산 아랫마을이 봄을 가득 물고 있다. 작은 언덕을 넘으니 자목련 꽃이 한창이다.

잘 다듬어진 정원수 가지 끝에서 돋아나는 새싹들이 봄을 다투어 맞는지 마냥 견줄 수 없을 만큼 생기 가득하다. 팔팔하다. 산속으로 이어진 길, 잘 다듬어진 아스팔트 길이라서 달리는 데에도 가볍다. 봄 속으로 빠져들 듯 포도 위를 달린다.

그러나 잠시 후 문득 끊어지고 좁은 비포장길이 밭 언덕 아래로 간신히 이어져 있다. 아, 산막골로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다.

길가 언덕 위 밭에서 열심히 호미질을 하고 있는 두 아낙에게 묻는다. 산막골로 가는 길이 어디인가요? 오던 길로 되돌아가서 금덕교 건너지 말고 우회전하여 안으로 계속 들어가란다.

몇 마디 말을 주고받다가 귀촌인 임을 알게 된다. 반갑다. 마음속으로 내 고향으로 와서 살아주시어 감사하다고 뇌인다.

잠시 후 금덕교에 이르러 자세히 보니 미처 보지 못한 안내판이 보인다. 산막골 성지가 1.2km 거리에 있단다.

길은 매우 좁다. 좁을 뿐만이 아니라 구불구불하고, 오르고 내리는 길이 반복된다. 앞으로 걷듯 달리는 데도 온몸이 자못 흔들린다. 울퉁불퉁하다.

들어가는 동안 마주 오는 차량이나 있을까 적이 염려가 되는가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저만큼 내리막의 좁은 길 위에서 봉고 한 대가 온몸을 흔들며 내려오고 있다.

잠시 좀 너른 공간으로 비껴 차를 멈춘다. 그런데 저쪽에서 라이트를 깜빡거린다. 어서 올라오라는 신호 같다. 그래 길옆에서 나와 조금 빠르게 봉고가 머문 곳을 향하여 달린다. 그러다가 멈춘다.

길을 비껴가면서 고맙다는 신호로 크락션을 거듭 누르고 앞으로 계속 전진한다. 동행인이 성지 순례자들이 탑승한 차량인 듯하다고 한다. 많은 성지순례자들이 이 좁을 길을 걸음 하여 오고 갔음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좁고 좁은 길을 따라 조심조심 핸들을 꺾고 바로 가기를 거듭한다. 특히나 좁은 산길은 점점 깊어지면서 과연 이 깊은 산골에 성지가 있겠는가라는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그러나 갑자기 두 눈의 확 트이도록 너른 공간이 나타나고 있으며 <회개悔改와 피정避靜의 땅 산막골 성지聖地>라는 거대한 표석이 저만큼 앞에서 턱 버티어 서 있다. 마침내 산막골 성지에 이른 것이다.


입구에는 산막동 안내석이 보이고 바로 곁에는 공손히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며 기도하고 있는 성모 마리아 님이 선 채로 맞아준다. 마음으로 성호聖號를 그린다.

안내의 글귀에 의하면 황석두 루카 성인이 기거한 곳이며, 페롱 권 신부 및 서양 신부 등이 은거하던 곳이기도 하거니와, 1857년 입국한 페롱 신부는 황석두로부터 한문과 조선 문화를 배우고 사목司牧을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황기원 안드레이, 황천일 요한, 김요셉 공소회장, 안드레아 김, 이경서, 박정로 야고보 등의 산막동 순교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순간 가슴 한가운데에서 알싸한 골바람이 일어나면서 둘레에 펼쳐지는 성지의 모든 모습을 둘러보게 한다. 문득 ‘순교殉敎’라는 말이 예리하게 좁은 가슴을 울려준다.

《천주교용어자료집》에 의하면 천주교에서 ‘순교(殉敎)’란 신앙을 증거하기 위하여 죽음을 당하는 일이다.

신약성서 중에 사도행전만이 순교의 장면을 묘사하고(사도 7:54-8:1) 순교자의 이름을 전해 주지만 스테파노와 야고보의 순교를 단순히 ‘없애버림’(anairedis, 사도 8:1, 12:2) 즉 살해로 표현했을 뿐 순교를 뜻하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폴리카르포 주교(150년경)의 설명에서 신앙을 위해 죽음을 당하는 것을 의미하는 ‘순교’가 신약성서에는 말로써 증언하는 것을 가리켰을 뿐이란다.

순교는 엄격히 말해서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즉 실제로 죽음을 당해야 하고, 그 죽음이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진리를 증오하는 자에 의하여 초래되어야 하며, 그 죽음을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진리를 옹호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순교는 죽음에 직면하여 신앙의 의미와 진리를 효과적으로 증거하는 행위를 말한다.

가장 소중한 생명을 바침으로써 육신을 죽이는 자를 초월하는 주님의 존재를 드러내는 행위이므로 순교의 목표는 최고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있으며 그 가치는 최고의 존재자를 긍정하는 일이다.

또한 인간이 다른 인격을 긍정하는 것은 사랑이므로 순교는 사랑의 행위이기도 한 것이다.

신유박해 이후 조선의 천주교도들은 혹독한 탄압을 받으면서도 지하에서 신앙과 전도 생활을 이어간다.

신해박해(辛亥迫害)는 1791년(신해년, 정조 15년) 조선 최초의 가톨릭에 대한 박해 사건으로 신해교난(辛亥敎難) 또는 신해사옥(辛亥邪獄), 진산 사건(珍山事件)이라고도 부른다.

신유박해(辛酉迫害)는 1801년(순조 1년)에 발생한 조선의 가톨릭 박해 사건으로 시파(時派. 조선 정조 시기 정조의 탕평책을 지지한 정치 세력)·벽파(僻派: 노론의 정치적 우위를 관철시키고자 했던 정치 세력)의 정치 투쟁에서 시파의 제거를 오랜 숙원으로 한 벽파가 천주교 탄압을 명분으로 일으킨 사건이다.

기해박해(己亥迫害)는 조선 후기 1839년(기해년, 헌종 5년)에 발생한 천주교 탄압을 말한다.

병오박해(丙午迫害)는 1846년(헌종 12) 6월 5일부터 9월 20일까지 일어난 천주교 박해로 교회사 최초의 한국인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처형된다.

병인박해(丙寅迫害)는 1866년(고종 3년)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 정권의 대규모의 천주교 탄압을 말한다.

병인사옥(丙寅邪獄)이라고도 하며, 당시 6천여 명의 평신도와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출신의 선교사 등이 처형된 사건으로 병인양요의 발단이 되기도 한다.

천방산 기슭에는 기해박해를 피해 온 신앙인들이 삶의 터전을 가꾸던 곳이 있다.

교우촌은 형성했던 곳으로 바로 이 산막골이다. 또한 작은재, 독뫼 교우촌과 공소들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순교한 신앙인들은 기록상 확인된 순교자만 57명에 이른다고 한다.


특히 호남교회사 연구소 서종태 박사의 연구로 2010년 처음으로 순교자들의 줄무덤터가 발견되기도 하였단다. 이 산막골은 파리 외방 전교회 다블뤼 주교와 페롱 신부가 1858년부터 거주하며 사목 활동을 한 곳이기도 하다.

그가 1858~1865년까지 보낸 서한들 가운데 산막골에서 보낸 편지가 6통 남아 있고, 조안노 신부가 1862년 11월 4일에 산막골에서 보낸 편지가 1통 전해진다 한다.

또한 산막골은 황석도 루카성인 일가가 충북 연풍에서 이주하여 병인박해 전까지 10여 년 동안 살던 곳이다.

또한 이곳은 독뫼공소 터와 판교 금덕리 작은재 공소 터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 이름 없이 묻힌 신앙인들의 무덤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산막골의 이모저모를 살펴보기 시작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상과 성 황석도 루카 상 앞 원을 이룬 잔디밭의 둘레를 따라 세워진 십자가의 길 14기도처를 순서대로 따른다.

고난의 길, 그 숭엄한 순교의 길을 함께 한다. 예수님께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갖은 핍박과 고난을 받으시다가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 집행장인 골고다 언덕까지 그토록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신 다음 결국 목숨을 잃으신 다음 무덤에 묻혔다가 다시 사흘 만에 부활하시기까지의 수난과 고난의 역사가 형성화된 조형물을 이루고 있거니와 바로 그것이 ‘십자가의 길 14기도처’이다.


전에 천주교 성지를 찾았을 때 보았음에도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던 14기도처를 하나하나 보고 읽어가면서 두 손을 모은다.

①예수님께서 사형선고를 받으심 ②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 ③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쓰러지심 ④예수님께서 성모를 만나심 ⑤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짐 ⑥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 ⑦기력을 다한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심 ⑧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 ⑨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 ⑩예수님께서 옷 벗김을 당하심 ⑪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 ⑫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 ⑬제자들이 예수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 ⑭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 등 이러한 과정에서 숱한 군중들의 야유와 폭력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수난을 겪었던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마음속으로 낮으막하게 두 손을 모은다.

그 길을 따라가는데 어찌 종교인이요 비종교인을 가름할 수 있겠는가. 천주교인이 아닌 필자로서도 십자가의 길 14기도처를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공손히 고개를 숙인다.


문득 이탈리아의 종교개혁자이면서도 미니크교단의 승려였던 G. 브루노(Giordano Bruno. 1548-1600)를 떠올린다.

그는 르네상스 사람이며 당시의 휴머니스트 곧 카톨릭이 지배하는 중세 세계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에 서 있는 진보파에 동조한다.

특히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주장하면서 과학을 떠받들어 반 스콜라적인 입장에서 교회적인 말세관末世觀을 부정하였다는 이유로 종교 재판을 받고 이단자로 낙인찍혀 화형을 받게 된다.

7년 동안 심한 고문 끝에 이단 재판에 붙여졌으나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은 채로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이렇게 외친다.

“한 사람의 순교자로서 기꺼이 죽겠노라. 나의 영혼은 이 연기들과 더불어 낙원에 이를 것이다” 바로 그 목소리가 어디에서인가 우레처럼 들려온다. 저만큼에서 성인聖人 황석두(黃錫斗, 속명은 재건, 루카, 1813-1866) 님이 굽어보고 계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순교殉敎에 대하여
                            구재기
나는 나에게 
거짓이 없을까
처음과 끝이 한결할까

하나의 나뭇잎이 
자라서, 한 모양 한 맘으로
가을 낙엽이 되기까지, 어떻게 
그 많은 비바람을 견디어 왔을까

겨울눈을 싹 틔우고
줄기 하나로 자라나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
켜켜이 이룩한 저 믿음의 거룩함이여

그렇구나, 잎새 하나가 
겨울눈 하나를 기루기 위하여
하늘에 크게 울리는 소리였구나
된서리에 온몸을 말리며
지상을 향하여 한몸을 던져버렸구나

눈을 키우고 
향기로 밝히어 꽃눈을 일으킨
성스럽고 위대한 몸짓이여

붉은 열매 맺은 가지 밑으로
잎자국 상처는 여전히 선연하다
샛빨간 핏방울이 마르고 굳어
나무껍질은 차라리 떡진 흑갈색이다

아, 나는 나에게
신실한 걸음을 하여 
모자람 없이 넉넉하여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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