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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기획탐방】서천 중고제의 맥脈을 짚으며...시인 구재기와 함께하는 '舒川山河(서천산하)' 3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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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 서천 중고제의 맥脈을 짚으며
- 중고제의 명창 김창룡
- 충남 서천군 장항읍 성주새길 145

김창룡과 함께 종천 도만리 출신의 이동백도 한때 김정근으로부터 판소리를 전수받았다고 한다.

그들은 나란히 근대 5명창의 반열에 들어 조선성악연구회에 참여 후배를 양성하였으며, 자가 가내의 법제인 중고제를 계승하여 온다.

그 중심지에는 언제나 서천이 위치한다. 중고제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한다.

예나 지금이나 서천은 경지지역과 전북지역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해온다. 따라서 서천에서 판소리의 명창이 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라고만 여길 수 없다.

그에 따른 왕성한 전파력에 편승하여 중고제가 충청권과 경기권을 영역으로 발달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중고제는 경기도와 충청도 지역에 전승되는 판소리 소리제로 귀결된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서천의 중고제 판소리는 고제 판소리를 한 단계 위로 성장시킨 판소리라 할 수 있다. 


2020년 2월 20일 목요일 오후.

중고제 판소리의 명창 김창룡이 출생하였다는 장항 황산을 향하여 달린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맴도는 생각들을 모아본다. 우리 전통 음악 중에서 왜 판소리만이 ‘소리’라고 불렀을까? 

우리의 전통 음악에서의 성악은 크게 ‘노래’와 ‘소리’라는 말로 구분하여 불러온다. 경기 잡가나 서도잡가 등은 대부분 ‘노래’라고 일컫는 반면, 판소리만은 오직 ‘남도소리’라 한다.

남도소리라 해도 성주풀이와 흥타령과 육자배기 등은 ‘소리’라고 하지 않고 오직 판소리에 한해서만이 ‘소리’라고 불러온다.

왜 그럴까? 노래를 ‘일정한 형식의 말에 음을 붙여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면, 소리는 노래보다 더 광범위한 개념을 지니고 있다.

‘소리’는 인간의 단순한 감정의 표현인 웃음소리, 울음소리 등 음성에만 한정하지 아니하고,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천둥소리 등 자연의 음향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음악적 표현양식이 노래보다 그 범위가 아주 넓다 하겠다.

그렇다면 판소리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판소리’는 보통 ‘판+소리’의 합쳐서 이루어진 말이다. 이른바 복합명사이다.

여기에서 ‘판’은 씨름판이나 노름판, 난장판 등등에서 볼 수 있는바와 같이 ‘여러 사람이 모여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요, 한편으로는 ‘씨름, 놀이, 노름, 난장’ 등 ‘특수한 일로 특수한 행위가 일어난 자리’란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판소리는 소리판에서 부르는 소리, 즉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소리로 이루어지고 있는 소리판’을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판소리는 어떻게 구분되어지고 있는가? 1940년 정노식(鄭魯湜)의 저술로 조선일보사에서 발행한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 대가닥조를 살펴보면 우리의 판소리를 처음으로 동편제와 서편제, 그리고 중고제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중고제는 동편제나 서편제처럼 많이 일컬어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음악적인 특징이나 정체성을 분명하게 파악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설명하는 사람에 따라 뜻이 달라서 혼란을 초래하였고, 심지어는 ‘중고제’라는 유파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도 있다(배연형의 「판소리사와 중고제」에서)고 한다.

그러나 근대 판소리의 5명창 중 김창룡과 이동백 명창의 유성기 음반이 중고제 음악적 특징을 밝혀줄 중요한 자료임이 밝혀지면서 중고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으며, 특히 근대 판소리의 5명창으로 이동백, 김창룡, 김창환, 정창렬, 유성준을 일컬어지고 있는 가운데 서천군은 자랑스럽게도 이동백, 김창룡 등 두 명창을 배출한 영광스러운 고장으로 주목을 받기에 이른다.

어디선가 봄 햇살을 감고 돌아오는 ‘소리’가 진양조의 장단에 맞추어 들려오는 듯하다.


햇살 바른 곳에 눈을 꼬옥 감고 서 있으면
귀가 환하게 열려 온다.

환히 열리는 귓속에 들려오는 소리는
화안한 빛을 지닌 노랫소리 같다.

지금 마악 눈 덮인 앞산을 넘어
밭고랑으로 개울가으로
퍼져 가는 바람 소리는 연두빛이다.

냉이싹 보리싹 오맛 푸나무 잎새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다.
그것은 또 버들피리 소리가 난다.

그리고 논두렁으로 도랑가으로
울타리 옆으로 흙담 밑으로
살살 지나가는 바람은 노랑빛이다.

민들레 개나리 또는 담을 넘어
팔랑팔랑 날아오는 노랑나비 날개 빛이다.
아 이것은 바로 꾀꼬리 소리다.

그리고는 또 이제 앞뒷산으로
병풍을 두르듯이 휘도는 세찬 바람 소리는
연분홍 보랏빛꼭두서니 빛이다.

진달래 복사꽃 살구꽃빛이다.
온 마을을 온통 고까옷을 입혀 놓는 명절 빛이다.
아 이건 애국가 합창 소리가 난다.

눈을 뜨면 아무 소리고 없고
귀를 감으면 아무 빛도 안 보인다.
앙상히 마른나무 가지의 얼어붙은 흙빛이다.

그러나 봄은 거울 속에 있다.
풀과 꽃과 열매는
얼음 밑에 감추어 있다.

그리고 꿈은 언제나 생시보다는
한철을 다가서 온다.

햇살 바른 곳에 눈을 꼬옥 감고 서 있으면
화안한 새 세상이 보인다. 

- 조지훈의 「소리」 전문

아직 겨울 기운이 남이 있을 때이지만 봄 결 같은 날씨는 발걸음을 가볍게 하여 준다.

그러나 김창룡의 출생지는 쉽게 열리지 않는다.

주거터로 추정되는 장항읍 성주 3리. 장항 초등학교 교문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든 마을 길을 따라 이리구불저리구불 한참을 들어가서야 성주새길 145를 겨우 찾아 이르게 된다.

황산은 바로 이곳 마을의 이름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비스듬히 누워있는 산을 배경으로 하여 이룬 마을이라서 ‘빗그뫼’로 불러졌던 성주리 마을, 이곳에 김정근이 이주해 옴으로써 김창룡을 낳고 판소리를 가르치게 된다.

한때는 종천면 도만리 출신의 이동백도 김창룡과 함께 김정근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우기도 하였단다.

마을 앞으로는 너른 들녘, 그리고 들녘 건너에는 장항읍의 아파트군(群)들이 하늘 높이 솟아 있다.

시간을 되돌려 가다 보면 아파트 너머로 금강의 물결이 판소리의 진양조를 닮아 유유히 흘러내리고 있을 터이지만 세월은 인간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산천(山川)의 모습까지도 저리 쉽게 변화시킬 수 있구나 생각하니 세월의 덧없는 흐름을 새삼스럽게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그러나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은 여전히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온기를 품어 인간의 가슴을 후끈 데워준다. 그래서일까? 빗그뫼 마을의 햇살은 유난스럽게 따스하다.

뿐만 아니라 비스듬히 누어있는 뒷산에는 울창한 푸르름이 가득하다.

대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향나무와 멀리 어느 먼 이국에서 귀화한 히말라야시다 한 그루가 온 동네를 푸르게 지키고 있다.

푸르름 위에 햇살이 가득 내려 푸르름은 더욱 짙푸르기만 하다. 햇살의 따스함이 조화로이 깃들어 있어 빗그뫼 마을은 한층 안온하고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김창룡의 태어난 곳으로 추정되는 곳 바로 곁의 길가로는 고물상인 듯 높은 가로막이 길게 둘러쳐 있고, 입구에는 향나무 두 그루가 수문장처럼 양쪽에서 짙푸르게 지키고 있다.

그 뒤로 2층 스라브집 한 채, 그리고 그 스라브집 뒤로 낡아가고 있는 기와집 한 채가 쓰러질 듯 놓여 있다.

고물상의 자리가 김창룡의 태어난 집터인지, 스라브집 자리가 그러한지, 아니면 낡은 기와집인지 확실히 알 수 없었지만 굳이 그것을 알아보고자 마음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것보다는 김창룡의 판소리 한 소리를 환청(幻聽)으로나마 들어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그러던 중 일행 중 한 사람이 스라브집 뒤의 낡은 기와집이 김창룡이 태어난 집 같다는 느낌이 든단다. 웬일인지 모르지만 그 말에 저절로 수긍하게 된다.

왜 예인(藝人)들의 집은, 예술인의 가옥은 호화로울 수 없다는 고정관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피식 웃음을 먹음으면서 생각을 열어본다.

비록 김창룡의 생가터로 추정된 곳에 이르렀을지라도 바로 이곳이 판소리에 진양조(민속악 중에 가장 느린 장단으로, 한 장단은 6박자가 넷이 모인 24박자가 한 단위가 된다)를 도입하여 판소리 역사상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면서 중고제의 창시자로 알려진 김상옥의 대를 이어, ‘상궁접이라는 곡조를 창시한 김정근을 거쳐 중고제의 마지막 사자(嗣子)가 된 명창 김창룡의 출생지라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진다.

한집안 3대가 이어져 내려와 판소리의 가계(家系)를 이룬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할아버지 김상옥은 강경 출신으로 선천적으로 좋은 성음을 가지고 태어나 계룡산 암굴에서 온갖 득음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다가 무릎이 부어올라 앉은뱅이가 되었다고 한다.

이때 익산 웅포에서 살던 명창이자 처남인 송홍록이 병문안 왔을 때 중모리(중간 속도로 몰아가는 장단이라는 뜻으로, 2소박 보통 빠른 속도의 12박자, 즉 서양음악의 박자로 표기하면 4분의 12박자이다)를 부르면서 방 안으로 들어가며 병세를 묻자, 병석에 누운 김성옥은 느린 24박자 장단인 진양조로 화답한다.

12박을 두 배로 늘려 답한 김성옥의 소리를 듣고 실로 놀라운 발견이라 칭송한 송홍록은 이를 다년간 연마하여 마침내 진양조의 장단을 완성한다.


그의 동생이요 김성옥의 고수인 송광록은 진양조를 몇 가지 중에서 골라 뽑아 널리 퍼뜨리자 이를 계기로 김성옥은 중고제의 시조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단다.

이른바 중고제는 한 기족, 즉 처남남매의 판소리에 대하여 고집스럽게 더듬고 파고든 끈질긴 혼신의 노력으로 이루어놓은 소리의 금자탑을 이룬다.

그러나 순조와 철종 때에 이르러 판소리 8명창(권삼득, 고수관, 송홍록, 염계달, 모홍갑, 신만엽, 황해천, 김제철)이 활동하였으나 불행하게도 병약한 김성옥은 일찍 타계하여 명창에도 들지 못한다.

다만 아들 김정근으로 하여금 중고제 판소리를 잇게 된다. 김정근은 ‘무숙이 타령’으로 명성을 날린다.

‘무숙이타령’은 판소리 12마당의 하나로 <조선창극사>에 소개되어 있는데 ‘왈자타령(曰者打令)’이라고도 한다. ‘왈자’란 술과 노래와 기생들을 즐기던 사람을 말한다.

이 왈자타령을 중고제의 명창 김정근이 잘했다고 하나, 안타깝게도 소리는 전하지 않는다.

다만 오입쟁이들이 기생을 유혹하는 내용이라거나 평민 부호층에 대한 각성을 촉구한 내용으로 추측된다.

김정근은 또 느릿느릿하고 유연한 음조로 고아한 아취와 점잖은 품격이 느껴지는 ‘상국접(김정근 명창이 창시했다는 판소리 음악으로서 중고제가 전승이 끊어진 후 사라진 용어로, 중모리 12박을 반으로 잘라서 6박으로 나가는 장단으로서 엇중모리와 비슷하며 옛 명창들이 단가를 할 때 쓰던 장단이라고 한다)’이라는 곡조를 창시하고, 시조에 능통하였다고 한다.

이는 정가(正歌:正樂)를 판소리에 수용한 한 모습이기도 하다. 

강경에서 출생하여 장항으로 이주해온 김정근은 김창룡을 차남으로 낳는다.

김창룡은 중고제의 창시자 김성옥의 손자이자. 김정근의 아들로 태어난다. 타고난 성대가 좋아 아무리 오래 소리를 하여도 목이 전혀 상하지 않는 목소리를 가지고 어릴 적부터 일찌감치 중고제의 사자(嗣子)가 된다.

중고제의 음악적 특징을 살펴보면 먼저 평조(平調. 신라시대부터 현재까지 전통음악의 구조적 특징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 악조樂調의 하나)로 평탄하게 부르는 대목이 많고 정가풍의 창법이 많이 쓰인다는 점이다.

장단을 달아놓고 창도 일명 도습(道習)이라고 불리는 도섭으로 부른다.

이는 판소리에 사용되는 리듬적 기교인 붙임새(판소리에서, 말이 장단 또는 박에 어긋나게 붙는 기교) 중 하나로, 판소리는 노래로 짜인 소리(창)와 말로 엮어가는 아니리(판소리에서 소리와 소리 사이에 가락을 붙이지 않고 이야기하듯 줄거리를 설명하는 부분) 대목이 있는데, 도섭은 창과 아니리의 중간 형태를 가진다.

그래서 노래라기보다 마치 글을 빨리 읽어 가는 듯 급히 몰아가는 특징을 가진다. 

앞서 김창룡과 함께 종천 도만리 출신의 이동백도 한때 김정근으로부터 판소리를 전수받았다고 하였는데, 그들의 나이를 살펴보면 김창룡(1872~1943)이 이동백(1866~1949)보다 6살 아래다.

그들은 나란히 근대 5명창의 반열에 들어 조선성악연구회에 참여 후배를 양성하였으며, 자가 가내의 법제인 중고제를 계승하여 온다. 그 중심지에는 언제나 서천이 위치한다.

중고제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한다. 예나 지금이나 서천은 경지지역과 전북지역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해온다. 따라서 서천에서 판소리의 명창이 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라고만 여길 수 없다.

그만큼 교통의 요충지라 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문화와 예술의 발달이 거세게 일어날 수 있었음은 물론이려니와, 그 전파력 또한 다른 고장에 비하여 촉매력이 강하다도 할 수 있다.

또한 충청권이나 경기권은 유통업과 상업이 번창한 곳이었으며, 특히 왕실과 가까운 곳이기 때문에 광대들이 잘 모일 수 있는 입지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에 따른 왕성한 전파력에 편승하여 중고제가 충청권과 경기권을 영역으로 발달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중고제는 경기도와 충청도 지역에 전승되는 판소리 소리제로 귀결된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서천의 중고제 판소리는 고제 판소리를 한 단계 위로 성장시킨 판소리라 할 수 있다.

빗그뫼에서 천천히 나오면서 한참을 뒤돌아보며 선다. 들어올 때와는 반대 방향으로 나온다. 그러다 보니 마을 모두가 한 눈으로 들어온다.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조용하고 편안하다.

날씨마저도 바람 한 점 없고 따뜻하다. 그러나 비스듬히 누워 마을을 품고 있는 뒷산에는 푸르른 솔과 대나무가 울창하여 힘이 넘치고 생기가 가득하다.

어디선가 중고제 판소리의 한마당이 진양조로 들려오고 있다. 서 있는 자리 너머에서 금강의 출렁이는 물결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서천을 중심으로 하여 우우우 대바람 솔바람 소리처럼, 금강의 물결소리처럼, 맑고 밝게 일어나 밀려오는 중고제의 웅대한 부활을 예고하고 있는지 모른다.

* 위 글은 판소리학회 지음 『서천의 판소리와 중고제』 (2016. 서천문화원)와 눈의 내용을 참고하였음을 밝힌다.  


맥脈, 그 소리의 길
- 명창 김창룡을 그리며
                        구재기
앞자락은 
항상 부족하다
아침이나 저물 무렵
뒷자락에 길게 드러난 그림자는
아예 바라보지도 아니하고
앞자락은 항상 부족하다고 느낀다
앞과 뒤의 영역은
항상 상호 보완적인 것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어느 한쪽이 
결여된 개념으로 인정하려 든다
때로는 초월이나 절대에 대한 
개념 정립보다는 
마음으로 느끼는 데에 힘쓴다
소리는 인식하고 판단하고 
지각하고 추구하는 정도에 따라 
사람과 사회와 생명과 
행복의 농도가 
알뜰하게 나타날 수 있는 것
바람이 지나갈 자리는 아무도 모른다
바람이 남긴 그림자의 길이와 
그 폭과 깊이와 함께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끊임없는 의심과 의문과 물음을 갖는다
소리하며 산다는 것은 
물길처럼, 줄기처럼, 맥박처럼
서로서로 진맥하며 이어 가는 것
현실 이상을 실현하려는 꿈과 
의문과 물음을 굳게 캐나가려는 
소리와 판 때문에
앞자락은 항상 부족하다

그래서 
연기적緣起的 소리의 길은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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