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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탐방】한산 건지산성에 오르다...시인 구재기와 함께하는 '舒川山河(서천산하)' 27편


027. 한산(韓山) 건지산성(乾芝山城)에 오르다 - 충남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산성

곧바로 몇 계단에 이어서 성벽을 타고 앞으로 천천히 오른다.

성벽은 지금 한창 지표조사 중이다. 석성(石城)의 모습을 엿보여준다.

성벽 주위에는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한편 꺾이고 토막 난 채로 썩어 뒹굴고 있다.

노송 몇몇은 불어오는 바람결에도 의연한 부답(不答)으로 묵상 중일뿐 아무런 몸짓을 드러내지 않는다.

흘러간 세월 동안 보고 듣고 느껴온 바를 아무리 몸을 흔들어 보여준다 하더라도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리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생각은 곧 무념무상(無念無想) 함 일 뿐이다.

역사는 그렇게 유유한 흐름 속에서 성벽으로 견고하게 쌓여있는 거대한 돌처럼, 돌 틈에 파고들어 있는 듯 없는 듯 바짝 스며든 흙 한 줌처럼 무언(無言)으로 기록된 자취만으로 남겨진다.


2020년 2월 23일 일요일, 한산 건지산성(乾芝山)을 찾기로 한다.

이미 품속에 안겨있는 듯한 봄기운은 화창하기 이를 데 없어 온몸은 철철 온기로 넘친다. 천천히 봄을 만끽하면서 시초로를 벗어나 시초남로에 이어 화산로를 거쳐 삼일로에 든다.

부엉바위를 곁에 끼고 부드러운 바람에 출렁이는 봉선지(鳳仙池)의 잔물결 위로는 봄 햇살이 쏟아져 내려앉아 한 마리의 봉황이 날아와 춤을 추는 듯하다. 과연 봉선지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산면 신장리에 든다. 1919년 3월 29일 신장리 장날에 외쳐댔던 항일 만세 소리는 깊이 잠들어 있고, 봄날의 움틈에도 불구하고 한적하기만 하다.

곧 한마로(지방도613호)에 들어 한산으로 달린다. 팔당골 앞에 이르자 멀리 건지산 봉우리가 보인다. 건지산은 바로 한산면의 진산(鎭山)이다.

서천군에서 한산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지역이다. 그만큼 문화·역사·인물 등이 많은 지역이다. 1914년 일제가 한산군, 비인군, 서천군 등 3개 군을 서천군으로 통폐합하기 전까지에는 한산군은 독자적으로 지방을 다스려온다.

한산군의 최초 치소는 지금의 마산면 벽오리로 군명은 마산현(馬山縣 또는 馬邑)이었으며, 나당연합군에 의하여 660년 백제가 멸망한 이후 통일신라 때 지금의 한산면 지현리 건지산을 진산으로 하고 고읍을 이전하여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치소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어느덧 차는 한산면사무소 잎에 이른다. 차에서 내리고 온 누리가 깨끗이 씻어낸 배추 줄기같이 밝고 해맑은 분위기에 휩싸인다.

일군(一群)의 비석 무리들이 반긴다. 주로 불망비(不忘碑)들이다. 군수(郡守), 도순찰사(都巡察使), 관찰사(觀察使) 등등의 직함 글자가 보이고는 있으나 맑은 햇살에 반사되고, 또한 긴 세월에 마모되어 다른 글자는 좀처럼 읽어낼 수가 없다.

문득 고개를 돌린다. 거대한 묏봉오리가 세 개 나타난다. 옛 호족(豪族)의 무덤이 아니겠는가 했더니 뜻밖에도 무덤이 아닌 알[卵]의 모습이란다. 비보(裨補)란다. 뿐만 아니라 바로 그 앞에 한산 이씨의 시조인 호장공 이윤경의 묘소가 있다.

이 자리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인 명당자리인 바 풍수학적으로 모자라는 것을 채우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설치물로서 달걀을 형상화해놓은 것이다. 즉 닭은 바로 건지산의 정기를, 알은 한산이씨의 후손들이 나라의 동량이 되라는 의미가 숨어있단다

삼가 큰 인물 탄생의 앞날을 기원하면서 호장공의 묘소 앞에 두 손을 모은다. 


건지산 입구에는 또 하나의 유물이 놓여 있다. 곧 호장공 묘역 곁에 세워진 석탑이다. ‘지현리 삼층석탑(芝峴里 三層石塔)’이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128호로 지정된 고려시대의 석탑이다. 안내문을 찬찬히 보듬어 본다.


지현리 삼층 석탑은 비지붕돌인 옥개석 3매와 탑신석 4매로 구성된 석탑이다. 탑신석의 수로 보아 원래 5층 석탑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남이 있는 석탑의 높이는 205cm이며, 지대석 위에 탑신석과 옥개석이 있는데, 탑의 전체적인 균형을 고려하여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작게 만들어져 있다.

옥개석의 모소서리에는 풍탁(風鐸)·풍경(風磬)을 달았던 풍탁공이 뚫려있다. 1층 탑신에 새겨진 총 8행 66자 명문에는 고려 상종 10년(991) 한산 지방의 호족이 나라를 지키기 위한 뜻을 담아 이 탑을 세웠다고 적혀있다.


한산이씨의 호장공 이윤경의 묘소와 지현리 삼층 석탑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조상들은 후손들의 앞을 위하여 마음 모아 얼마나 기원하여 왔는가를 새삼 깨닫는다.

명당자리를 골라 조상을 모시면서 후손들로 하여금 나라의 큰 인물로 자라게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과 탑신탑을 세우고 그 탑신에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뜻을 담아낸 것이 아니겠는가. 조상들의 애국충정(愛國忠情) 앞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노송(老松)의 늘 푸른 구목(丘木) 밑으로 천천히 건지산으로 오르려 하니 계단 밑으로 안내의 글이 보인다. 그러나 건지산성에 대한 안내문이 아니라 한산읍성에 대한 설명이다.

한산읍성은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문화재 자료 134호로 지정된 조선시대의 읍성으로 조선 문종 때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안내문은 바로 건지산성으로 오르는 입구에 세워져 있어 얼핏 건지산성과 똑같은 성으로 읽혀질까 자못 염려스럽기도 하다.


곧바로 몇 계단에 이어서 성벽을 타고 앞으로 천천히 오른다. 성벽은 지금 한창 지표조사 중이다. 석성(石城)의 모습을 엿보여준다. 성벽 주위에는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한편 꺾이고 토막 난 채로 썩어 뒹굴고 있다.

노송 몇몇은 불어오는 바람결에도 의연한 부답(不答)으로 묵상 중일뿐 아무런 몸짓을 드러내지 않는다. 흘러간 세월 동안 보고 듣고 느껴온 바를 아무리 몸을 흔들어 보여준다 하더라도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리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생각은 곧 무념무상(無念無想)함 일 뿐이다.

역사는 그렇게 유유한 흐름 속에서 성벽으로 견고하게 쌓여있는 거대한 돌처럼, 돌 틈에 파고들어 있는 듯 없는 듯 바짝 스며든 흙 한 줌처럼 무언(無言)으로 기록된 자취만으로 남겨진다.


건지산성으로 올라가는 산길은 점점 가팔라진다. 건지산이 불과 170m의 높이라니 쉽게 오를 것이라는 생각은 이미 사자라진 지 오래다. 적어도 건지산성은 군사적 요충지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건지산성은 1983년 1월 21일 국가문화재 사적 제60호로 지정된 산성이다. 성곽은 흙과 잡석을 이용하여 쌓았고 건지산의 남쪽봉오리와 북쪽봉오리 계곡을 포함하고 있는 포곡식 산성(包谷式 山城)이란다.

일반적으로 산성은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적의 공격력을 약화시킴으로써 항전함은 물론 민간인들의 피난처의 역할을 한다.

산성은 그 모양에 따라 퇴메식 산성과 포곡식 산성으로 나누는데, 먼저 퇴뫼식 산성은 산 정상부로부터 성벽을 둘러쌓은 것으로 ‘발권식산성, 시루성, 머리띠산성’이라고도 하며, 대개 정상부까지 계곡을 하나 또는 여러 개 감싸면서 축성함으로써 그 규모가 자못 크다.

또한 산성과 평지성의 성격을 함께 갖춘 평산성(平山城)이 있다. 지형과 취락 입지에 따른 우리나라 성곽의 특징으로 국경지방의 변방 읍성이나 우리나라 대부분의 읍성이 바로 이러한 특성을 가진단다.

건지산성은 백제,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군사적으로 요충지임을 역사는 말해 주고 있다. 관문인 금강을 통해 백제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 수문장 역할을 하는 산성이 바로 건지산성이다.

백제의 충신인 성충이 의자왕에게 백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금강에서 적의 침입을 막아야 한다고 극간할 정도로 중요한 지역이기도 하다.

동성왕 8년에 성을 쌓고 우두성(牛頭城)이라 불렀는데, 이는 산성의 평면도상을 보면 소머리를 닮았다 하여 그리 불리지 않았나 생각된다.

백제 무왕 30년에 고쳐서 마산성(馬山城), 그리고 의자왕 15년(655)에도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18세기 조선시대 편찬된 한산군지 사례편(事例篇) 전고(典古·옛문헌)에 따르면 우두산성은 백제 동성왕 8년에 쌓았고 우두성을 건지산성의 고성(古城-오래된 성)이라고 한 것을 보면 건지산성은 백제시대 쌓은 산성임을 알 수 있다.


한산군의 진산인 건지산성은 660년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하여 멸망하였지만 모든 산성까지 함락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한산 건지산성인 주류성은 일본에 있던 풍 왕자를 모셔와 왕으로 추대하고 흑치상지와 더불어 3년간 백제의 부흥운동을 주도하였던 거점성인 쥬류성(周留城)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요즘 일부 학자들이 건지산성은 주류성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전북 부안설, 연기 운주산성설, 홍성의 학성산성을 말하고 하지만 건지산성이 주류성이라는 학설은 대다수의 학자가 주장하는 통설로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학설은 분분하지만 고대 백제산성임과 백제의 동성왕과 무령왕, 풍 왕자가 마지막까지 백제의 부흥을 꿈꾸었던 군사적 중요한 성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건지산성은 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지형이 험준하여 좀처럼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가파르기는 말할 것도 없고 점점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아래 굽어보면 굽어볼수록 시야가 확 트여 그야말로 작은 개미 한 마리까지 송두리째 보여준다.

가장 가파른 곳은 어느 곳보다도 건지산의 정상 부근이다.

건지산성은 이곳을 에워싼 말안장모양[馬鞍形]의 산정에 길이 150m, 너비 30m로서 둘레는 350m에 불과한 작은 성이다.

내성은 흙으로 쌓았고, 외성은 돌과 흙을 함께 사용하여 쌓은 흔적이 엿보인다. 산성의 북쪽은 험준한 천연의 암벽을 이용하여 성벽으로 삼았으며, 나머지 부분은 토축했으나 붕괴가 심하다.

다행스럽게도 산성의 윤곽이나 성벽의 통과선은 찾아볼 수 있다.


마침내 건지산 정상에 올라 건지산정(乾芝山亭)에 바로 선다. 둘레를 바라본다. 그러나 왠지 쓸쓸한 감회가 밀려온다.

밖으로 보이는 것은 고복격양가(鼓腹擊壤歌)를 부르고도 남게 할 정도로 무한한 들녘이요, 오곡을 시절에 맞게 적시어줄 풍부한 물줄기로 흐르고 있는 금강이 그대로 보이거니와 천지 간에 가득 차 있는 넓고 큰 가운이 저절로 차오르는 듯하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라와 백성을 구하고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렸던 옛 백제인의 마지막 숨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백제인의 가슴이 아직도 한으로 남아있는 탓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아무것도 바랄 수 없는/ 성마루에서/ 접동새가 운다.// 사람은 가고/ 성터는 남아/ 무상함이/ 이리도/ 새삼스럽다.// 무너진 성돌 위에 푸른 이끼/ 세월이 남기고 간/ 슬픈 얘기여.// 다 가는 것이/ 성줄기마저 가라앉으면/ 텅 빈 하늘 아래/ 저녁노을만 타리라// 낡은 성문에 기대서서/ 나도 갈 것을 생각하여 본다.// 흐르는 강물/ 세월은 흐르는데// 꽃처럼 피었다 진/ 옛날을/ 접동새 운다. - 황금찬의 「접동새」전문

정상의 건지산정 아래 안내문이 있고, 북서쪽의 토성을 따라 내려오니 건지산성에 대한 안내문이 또 나온다. 1963년 사적 제60호로 지정되어 있는 건지산성의 둘레는 1,300m, 백제를 거쳐 고려시대에 이르는 산성이다.

서문지와 수구지가 확인되었으며, 성내에는 5개소의 건물 터와 조선시대 군창지가 남아 있단다. 이 건지산성은 임천 성흥산성과 함께 금강 하류 수륙 교통의 요지에 위치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백제 부흥운동의 거점인 주류성이 이곳이라는 학설이 있으며, 성내에서 백제 시대 유물이 수습된 사례가 있다고 한다. 1999년 발굴조사를 통해 포곡식 산성에 대해서는 고려시대 축성된 것으로 확인되어 고려시대 한산군의 고읍성으로 추정된다고 적혀있다.


역사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다만 뒤를 바라보는 현재의 삶을 깨닫게 해준다. 곧 오늘의 삶을 견주어 후회를 가르치는 것이요, 그 후회가 결국 새로운 삶을 그려보게 한다.

그러나 역사 속의 내일인 오늘에 취해버린다면, 그것은 새로운 삶에 대한 침몰을 의미한다는 생각에 문득 내려온 길을 다시 돌아보고야 만다.

* 이 글은 「서해와 금강이 만난 서천의 지리」(박수환.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와 「다음 백과서전」 『주류성 이야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송풍선월』 등 sns를 참고했음을 밝힌다.


건지산성(乾芝山城)에 오르며
                                   구재기
산성에 오르고자
첫 발걸음 앞서 신[靴]을 내며
성(城)돌과 소나무와 대나무 사이
바람의 길을 먼저 살펴본다
한 곳에 머물지 아니하고
흐르는 구름과 물
푸른 하늘이 물에 잠겨
하나를 이루고 있음을 
먼저 헤아린다, 하나를 이룬
완전한 자유의 흐름을 만난다
바람 없어도
촛불은 흔들리기도 하지만
바람을 느끼지 못하여도
작은 이파리의 흔들림으로 
바람의 방향은 알 수 있다
건지산성에 오르며
세상을 향해 
무어라고 소리하는
구름과 바람이 한 방향임을 안다
문득, 바람과 구름이 함께 
물에 잠겨 흐르고 있음을 안다
자유란 그렇게 
서로 다른 것끼리 하나 되어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
아, 자유란 
바람 없이도 흔들리는 촛불 같은 것
건지산성에 오르며
우듬지에 매달린 
마지막 이파리의 흔들림으로 
바람의 방향을 따라
완전한 자유를 꿈꾸어본다
흐르는 물에 벗은 발을 담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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