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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탐방】서천 풍정리 유적공원(遺蹟公園)을 찾아서...시인 구재기와 함께하는 '舒川山河(서천산하)' 26편


026. 풍정리 유적공원(遺蹟公園)을 찾아서 - 충남 서천군 시초면 풍정리 106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확실하게, 그리고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이다.

다만 언제 어디서 죽을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태어나서 죽는다는 불확실한 시간 동안에만 사람은 생명을 가진다.

그 불확실한 시간 속에서 사람은 살아가는 길을 걸으면서 생명조차도 잃어버린 채 가장 강하다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숨을 고른다.

이것이 모든 비열한 것의 가장 큰 근본 원인이 되기도 함에도 사람은 생명을 부지하려고 하고, 또 한 생명체로서의 존재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 노력이 얼마나 치열한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일생을 돌아보면 ‘사람은 태어나서 죽는다’만 남는다.

사람만이 아닌 모든 생명체들이 가지고 있는 운명이다.


2020년 2월 13일 일요일.

지방도 611호선을 따라 달리다가 문산면 소재지에서 핸들을 꺾어 시초동로를 따라 동부저수지(봉선지) 쪽으로 몇 걸음 건너니 서천-공주 간 고속도로가 보인다.

IC로 닦여진 길이 고속도로와 곧장 연결되어 있으나 위협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바로 생과 사의 갈림길을 가로막고 있는 듯하다. IC개통이 거부되어 있다.

바로 이 자리에 <풍정리 유적 공원>이 나타난다. 그 옛날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 죽음에 이르러 흙과 하나를 이룬 고분들이다.

그 나름의 세상을 보여주듯 오순도순 모여 있다. 이 <풍정리 유적공원>으로 카메라를 둘러맨 채 오른 것은 오늘이 벌써 3번째 답사가 된다.

처음의 답사는 2011년 5월 20일 금요일, 봄이 무르익어서인지 덮여있는 잔디가 푸릇푸릇 자라나 보기에도 좋다. 과연 작은 공원답다.


그러나 안내의 내용에 이 유적공원의 위치가 문산면 풍정리로 적혀있다. 공원조성관리자들의 실수라기에는 너무 무성의하다는 느낌이 들어 영 기분이 언짢다.

2019년 11월 14일 목요일, 두 번째의 답사에서는 그만 떡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다. 도저히 접근할 수 없다.

엄지손가락만 한 칡덩굴이 엄청나게 번지어 유적공원 전체를 휘감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키보다도 더욱 크게 자라난 억새가 칡덩굴과 함께 덮여 있어 도저히 공원 안에 들어가서 유적공원을 살펴볼 수 없다.

옛 고분들의 입구는 숫제 억새와 칡덩굴이 한데 어울려 들여다볼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한다. 그런 가운데 다행스러운 것은 처음 오석을 깎아 정성스럽게(?) 세워놓은 안내의 글에서 위치의 기록이 수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의 답사는 바로 2020년 2월 13일 일요일이다. 언뜻 바라보니 억새는 좀 돋아난 채 바람에 흔들이고 있으나 그대로 고분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싶다.

그러나 나의 그런 생각은 먼 거리에서 바라본 것일 뿐, 현장 상황과는 전혀 다른 착각에 불과하다. 긴 겨울을 지나는 그동안에 칡덩굴은 잎이 말라버린 채 주저앉아 있고, 바람에 헤살 대는 억새들은 일부 풍화에 못 이겨 꺾어져 있기 때문이다.


슬그머니 화가 치밀어 온다.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일부 고인돌 부근에만 아주 조금 억새와 칡덩굴을 깎아있을 뿐이고 나머지는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초 작업을 하다가 그만두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아무리 고속도로 건설 때문에 고분들을 한곳에 옮겨놓을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관리는 철저히 했어야 옳다.

철저한 관리로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고 옛사람의 삶을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차라리 이렇게 옮겨 놓고 방치를 할 수밖에 없다면 본래 있었던 자리에서 굳이 옮겨놓을 필요가 있었을까?

고분 내부로 너구리들이 들어가 안식처로 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기가 막혀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조금은 서글퍼지기도 한다.


말라버린 잔디와, 칡덩굴의 무성한 잎과 줄기, 그리고 억센 억새의 줄기를 밟고 감추어진 ‘종합 안내문’의 내용을 살펴본다.

<종합안내문 綜合案內文>에 의하면 충청남도 서천군 시초면 풍정리 106번지 일대이다.

고려대학교고고환경연구소. (재)충청문화재연구원. (재) 가경고고학연구소 등이 조사를 하였으며, 조사 기간은 2003년 6월 11일~2004년 12월 17일과 2012년 9월 10일~2013년 1월 14일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전 복원한 기관은 (재)충청문화재연구원. (재)가경고고학연구소. (주)혜안미디어이 맡았으며, 한국도로공사 대전-당진 건설사업단과 대전지방국토관리청에서 시행하였다고 적혀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천 봉선리 유적공원에는 서천지역에서 형성된 무덤 문화를 폭넓게 알리고, 그 역사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서천지역에 발견되고 조사된 청동기시대와 백제시대 무덤을 옮겨 놓았다.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은 고인돌(지석묘 支石墓)이다. 서천지역에는 20여 곳 800여기 확이 되었으며 이외에 다수의 돌널무덤(석관 묘石棺墓)도 발굴조사되어 서천지역 일대에서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을 많이 볼 수 있다.

고인돌은 겉모습에 따라 탁자식(卓子式), 기반식(基盤式), 개석식(蓋石式 또는 지지석식)으로 구분된다. 공원에는 2003년 서천 -공주 간 고속도로 건설공사 중에 조사된 서천 이사리 유적의 개석식 9기가 옮겨져 복원되었다.

백제시대의 무덤은 2003년 서천-공주 간 고속도로 건설공사 중에 조사된 서천 추동리 유적의 5기와 2012년 서천-보령간(제1공구) 도로건설공사 중에 조사된 서천 화산리수리넘어재 유적의 3기가 옮겨졌으며, 이 가운데 추동리 유적 5기와 화산리 수리넘어재 유적 1기가 원상태로 복원되었다.

복원된 무덤은 땅을 파고, 잘 다듬은 돌을 이용하여 무덤방(玄室현실)을 갖춘 굴식돌방무덤의 형태이다. 이들 무덤에 안치된 사람은 백제가 웅진(熊津·공주)과 사(泗沘·부여)에 도읍하였던 시기에 살았던 서천지역의 유력집단(有力集團)으로 추정된다.

서천지역에는 발굴조사를 통해 다양한 형태의 백제시대 무덤이 다수 조사되어 작은 지역단위의 유력집단이 여기저기에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전․복원된 무덤은 백제 중앙관의 교류를 통해 서천지역 특유의 문화를 변화·전시키고 있다는 것을 밝히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안내문을 읽어내려 가다가 문득 낙자落字 하나를 발견한다. ‘사비(泗沘·부여)’에서 한글의 ‘비’자가 안 보인다. 

겨울답지 않은 따스함이 봄으로 가는 길목에서인지 조금씩 온기를 더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낀다. 곧 온 누리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 한창 자라나기 시작할 듯하다.

태어나 자라나는 순간의 연초록 향기가 묻어 오를 것 같다. 생명이 움트고 활발하게 자라나기 시작하게 될 바로 이 자리, 그러나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죽는다.

그리고 저승에 가서 영원한 생명을 받는다’고 W. 세익스피어는 말한다. 생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는다. 동물이고 식물이고 간에 언젠가는 그렇게 죽는다.

그리고 죽어서 영원한 생명의 가진 것처럼 새로운 생명의 대를 이어 다시 태어난다. 그 영원한 생명은 곧 한 줌의 흙이다. 한 줌의 흙을 이룬다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우주의 대 순환원리이다.

여기 옛 무덤은 함 줌의 흙으로 돌아가기 전 그들이 자리한 곳에서 벗어나 이 새로운 자리에서 흙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일 것이다.

다시 안내문에 눈을 돌린다.

<서천 추동리(1지역) 돌방무덤(舒川 楸洞里 1地域 石室墳)>부터에 대한 설명을 옮긴다.


돌방무덤은 서천군 화양면 추동리 산 101번지에서 2003년 6월 11일부터 2004년 12월 18일 사이에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2003년 서천­공주 고속도로 건설공사와 관련하여 발견된 서천 추동리 유적에서는 백제시대 무덤, 청동기 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아르는 무덤, 집자리, 건물 터 등 다양한 성격의 유구가 발견되었다. 그 가운데 백제시대 돌방무덤 6기가 이곳으로 옮겨져 복원되었다.

추동리 돌발무덤은 산의 남쪽 비탈면에 자리를 잡고 있다. 널길[연도·羡道]은 무덤방[현실·玄室]의 오른쪽에 설치되었다.

돌방은 잘 다듬은 장방형 판석을 세운 다음 큰 돌을 맞대어 쌓았으며, 천장의 구조는 고임식 또는 변화된 궁륭식이다.

벽면의 빈틈은 작은 돌조각으로 메꾸어졌고, 겉면은 회(灰)를 발라 마감되었다. 무덤 중에는 바닥에 돌조각을 깔았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무덤 둘레에는 도랑[주구·周溝]이 설치되어 있었다. 무덤 안에서는 백제 토기 및 금동제 귀걸이와 은제 팔찌 등 여러 종류의 귀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무덤 형식과 출토 유물을 볼 때, 무덤의 주인공들은 백제가 웅진(熊津·공주)과 사비(泗沘·부여)에 도읍하였던 당시 중앙 세력과 관계가 있었던 유력집단(有力集團)으로 추정된다.

이들 무덤은 봉선리(鳳仙里) 유적과 함께 이 지역의 고분(古墳) 문화와 그 변화 과정을 살피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천 추동리(1지역) 돌방무덤’의 안내문을 살펴보고, 이어서 ‘화산리 수리넘어재 유적’과 ‘이사리 고인돌’의 안내문을 차례로 읽어보려니 자연스럽게 영혼靈魂과 육체肉體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 젖어든다.

영혼이 죽음 다음의 세상이라면 육체는 현존의 살아있는 실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영혼은 보여주는 실체가 없으며 육체는 보여주면서 영혼을 담아주는 그릇이 된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살피면서 많은 시간 동안 인간들은 그 모순에서 허덕이며 살아오고 있다.

그러나 본질은 분명 육체가 아닌 영혼에 있으면서도 수없이 많은 시간들을 육체에만 우선해 오곤 한다. 존재에 대한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육체보다는 영혼의 존재를 먼저 깨달아야 한다.

그 깨우침을 항상 깊이 해야 한다. 그것을 깨우치지 않으면 세속적으로 빠져들기 쉽다.

육체로 하여금 영혼을 깨우치도록 함으로써 언제나 진실한 길을 활짝 열고 나아간다면 마지막 연혼이 차지하고 있는 안식처가 한 뼘 지상을 차지한다 하더라도 평온할 것이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확실하게, 그리고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이다.

다만 언제 어디서 죽을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태어나서 죽는다는 불확실한 시간 동안에만 사람은 생명을 가진다.

그 불확실한 시간 속에서 사람은 살아가는 길을 걸으면서 생명조차도 잃어버린 채 가장 강하다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숨을 고른다.

이것이 모든 비열한 것의 가장 큰 근본 원인이 되기도 함에도 사람은 생명을 부지하려고 하고, 또 한 생명체로서의 존재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 노력이 얼마나 치열한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일생을 돌아보면 ‘사람은 태어나서 죽는다’만 남는다.

사람만이 아닌 모든 생명체들이 가지고 있는 운명이다.


문득 장자의 <양생생편養生生篇>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진실(秦失)이 노담(老聃-老子)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조상을 하는데 그는 영전에서 세 번 곡(哭)만 하고 그대로 나와 버리자 노담의 제자가 힐책하자 그는 ‘선생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태어날 때를 만난 것이며, 이 세상을 떠난 것은 떠나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니 하늘이 정해준 때를 마음 편히 여기고 운명에 순응하면 슬픔과 즐거움이 끼어둘 수가 없다. 이러한 경지를 옛사람들은 천재(天宰)가 준 생사의 고(苦)에서 벗어난[懸解] 것이라 하였거니와 하나하나의 장작개비는 타서 없어져 버리지만 불은 영원히 타고 있는 것이라네’라 하였다.

유적공원을 빠져나오면서 문득 뒤를 돌아보자. 하늘에는 점점 몰려드는 구름으로 서서히 덮이기 시작한다.

태어나고 죽는다는 것은 하늘만의 뜻인 것임이 분명하거니와 아무래도 오늘은 맑고 밝은 하늘의 뜻을 제대로 찾아 만나볼 수 없을 것만 같다.

바짓가랭이에 달라붙은 풀씨들을 털어 내면서 유적공원을 빠져나온다. 그러나 좀처럼 쉽지 않다. 마른 풀이 너무 우거져 있어 발자국을 떼기가 힘들다.

‘공원’이라는 이름이 조금은 부끄럽다는 생각으로 밖으로 나오면서 꼭 막혀버린 고속도로 출입구를 바라본다. 저만큼 육중한 바리케이드가 막아놓고 있다.

필요에 의하여 IC를 만들어놓았으면 소통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만들어 놓고 이용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삶의 의미가 없다.

그리고 만들어 놓았으면 소통으로 삶을 윤택하게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막혀버림으로써 불통이 된 고속도로 출입구, 돌보지 않음으로써 이용할 수 없는 유적공원은 무엇인가 유사하다는 느낌이 든다.

잘 닦여진 시초동로 위에 자동차를 굴리며 멀어져 가는 유적공원을 뒤로하는데 끝내 쓴맛을 지울 수가 없다.


돌방무덤[石室墳)] 앞에서
- 풍정리 유적공원(遺蹟公園)
                              구재기
흰구름 가는 대로 
물이 흐르는 대로 
오직 하나, 몸을 맡겨오다가 
여기 이렇게 이르러있습니다
가야할 길은 언제나
바람을 따르는 일
흰구름 따르는 일
달빛을 따르다 보면
동쪽으로 오거나 
서쪽으로 가거나 
마음 하나 남겨둘 수 없습니다
영혼은 느낄 수 없어도 
갈대가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는 있습니다
칡덩굴이 번지고 번지어
앞으로 가리고
억새의 억센 이파리가 
뒤를 막아 주어도
온 몸이 묻힌 자리 
편할 리가 있겠어요
세상이 흔들리고 있다한들
함께 이야기하며 살아갈 뿐이지요
그러나 아무런 
흔적을 남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산다는 것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살아온 흔적이 
부끄러운 줄 알아차릴 때입니다
흔적이 부끄럽다는 걸
영혼 되어 알아차려야 하겠지요
그 부끄러움을 
미리 깨달을 수 있어야겠어요
미미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물과 구름과 바람과 같이 
자유롭게 달빛으로 
흐르는 삶을 누리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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