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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기획탐방】‘상굴앞 풋농사’라는 말을 아시나요?...시인 구재기와 함께하는 '舒川山河(서천산하)' 2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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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 ‘상굴앞 풋농사’라는 말을 아시나요? - 시초면 태성리와 신곡리 사이, 풋농사의 현장을 찾아서

물 흐름이 정조情調하여 변함이 없고, 본래부터 기름진 농토라서 농사 걱정 전혀 없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푸른 들녘을 바라보면서 미리부터 풍년가를 준비해오던 곳, 농민들에게 다른 고장 어느 곳보다도 풍년을 먼저 예약해주곤 하던 상굴앞 너른 들녘이 그만 청천벽력과도 같은 태풍을 만나 노도와 같은 큰 물줄기에 묻혀버림으로써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아지게 하였던가?

우리의 아버지 아저씨들은 당산뫼 마루에 올라 여지없이 휩쓸려버리는 알밴 벼포기가 흙탕물에 잠기고 있는 것을 애태우며 바라보아야 했으며, 우리의 어머니 누이들은 밥술을 푸던 주걱으로 놀란 가슴을 치면서 눈물을 씹어야만 하였으니 ‘상굴앞 풋농사’가 할퀴고 간 상처를 어디에 견줄 수 있었으리오.


시초북로 시초초등학교와 면사무소 사이에서 시초로로 꺾어들다 보면 일군一群의 비석들을 만날 수 있다.

각종 송덕비頌德碑, 기적비記蹟碑, 불망비不忘碑, 공적비功績碑 들이다. 그중의 한 기적비에는 ‘태성리와 신곡리의 극심한 침수피해로부터 물 흐름을 잘 이끌어내어 벼농사가 완전하게 하였으니 주민이 어찌 감히 잊겠는가, 비를 세워 영원히 밝힌다(台城新谷 酷被浸災 始决導流 稼穡完全 民何敢忘 立石永表)’는 공적이 적혀있다.

전 <시초면장 구한섭기적비時草面長 丘翰燮記蹟碑>에 새겨진 내용의 일부이다. 세워진 기록을 보니 단기 4292년 8월, 그러니까 1959년도에 침수지경작인일동浸水地耕作人一同이 건립하였다고 쓰여 있다. 이 기적비의 내용으로도 당시 상굴앞 들녘, 즉 시초면 태성리와 신곡리 사이의 너른 들녘이 얼마나 극심한 침수피해를 입고 있었는지를 지레 짐작하게 한다.

이 들녘은 토질이 기름지고 양호하여 알차고 풍요로운 가색稼穡에 다른 곳으로부터 부러움을 샀지만, 뒤늦게 수확을 앞둔 시기에 태풍과 함께 몰아치는 폭우로 침수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엄청났다고 한다.


이러한 침수피해는 ‘상굴앞 풋농사’라는 뼈아픈 말도 남겨놓게 되었거니와 오늘날에 이르러 다시 생각해보아도 실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상굴앞 풋농사’의 침수피해는 해마다 되풀이로 겪는 농부들의 아픔이었으며, 1981년 대대적인 농지정리작업을 마치기 전까지, 그리고 지금 한창 <도마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정비사업>이 2.13km에 걸쳐 완공되는 2024년까지에도 결코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아픔이 될 것이다.

2020년 1월 20일 월요일. ‘상굴앞 풋농사’라는 현장의 들녘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시초면사무소 앞에서 시초북로를 벗어나 시초로를 따라 걸으면서 신곡리 2구 노인정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바로 이곳에서 ‘당살뫼’라 부르는 낮은 산봉우리에 오른다.

이곳에 오르면 ‘상굴앞 풋농사’의 그 뼈아픈 현장의 들녘이 그대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천천히 오르면서 둘레를 살펴본다. 시초면 소재지 마을이 송두리째 보이고, 멀리 천방산이 선뜻 가슴 안으로 안겨온다. 당산 정상에 있었던 바위 무리가 반쯤 몸을 감춘 채나마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옛날을 떠올리기에 도움을 준다.

그 바위 곁으로 다가가 조금 전에 보았던 <시초면장 구한섭기적비時草面長 丘翰燮記蹟碑>의 ‘태성신곡혹피침재台城新谷 酷被浸災’의 들녘을 바라본다. 그러나 소나무를 비롯한 많은 나무들이 하늘 높이 치솟아 있을 뿐만 아니라 대나무들이 장막처럼 앞을 가로막고 있어서 조금은 앞가림하고 있다.

그러나 ‘상굴앞 풋농사’의 현장을 모두 숨겨낼 수는 없었는지 그대로 드러내준다.

신곡리 2구의 당산에서 내려와 다시 시초로에 이른다. 그러다가 다시 걸음을 멈추고 만다. 들녘에 하얀 큰고니가 떼 지어 노닐고 있다.


한겨울의 검은 들녘에서도 물기에 젖어 있는 곳을 골라 내려앉아 장관을 이루고 있다. 신비스럽다. 큰고니들은 날개에 깊이 스며든 겨울 햇살을 가슴으로 가득 부둥켜안고 스스로 겨울 추위를 이겨내면서 때때로 너른 날개를 활짝 펼치며 흔들어 댄다.

그때마다 부드럽고 빛나는 흰 그림자들이 텅 비어있는 겨울 들판에 넘치는 활기를 가득 불어넣고 있다. 아, 저 한겨울에 만날 수 있는 행운의 광채여! ‘큰고니’, 이를테면 ‘백조’라 불리는 저 아름다운 모습을 이 겨울이 아니고 언제 다시 만나볼 수 있으랴.


천연기념물 기념물 제201-2호인 큰고니(Whooper Swan)는 가족으로 무리 지어 다니는 습성이 있단다. 이런 대가족의 모습은 처음 보는 장관이라서 더욱더 신비롭기만 하다. 큰고니는 11월 초순에 도래하며 3월 하순까지 관찰된다는데 이 들녘에서 그때까지 함께 해주었으면 싶다.

헤엄칠 때는 흑고니와는 달리 목을 수직으로 곧게 세우고 앞으로 끄덕이면서 ‘훗호, 훗호, 훗호’ 또는 ‘호, 호, 호’하고 나팔소리 비슷한 소리를 내며, 날 때에는 ‘과안, 과안’, 또는  ‘곽고, 곽고’하고 운다는데, 날 때 우는 소리까지도 들어보았으면 싶기도 하다.

큰고니는 흔치 않은 대형 겨울새로 기러기목 오리과에 속한다. 몸길이가 무려 152cm 정도이며 온몸이 균일한 흰색이고, 어린 새는 갈색을 띤다. 부리의 끝이 검정색이고 기부肌膚는 노란색이며, 이것이 바로 다른 고니와 구별되는 특징이 된다. 자세히 살펴보니 대략 5,60마리는 족히 될 듯싶다.

카메라를 들고 서서히 접근하니 좀 떨어진 몇 마리 중 한 마리가 고개를 곧추세우고 꼬리를 흔들자 그 육중한 몸을 서서히 움직이며 일행과 합류한 채 계속 눈치를 살핀다. 


큰고니 무리가 놀라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들녘을 가로지르는 논길에 이른다. 들녘 건너 시초면 태성리 ‘상굴’이란 마을이 보인다. 신곡리에서 태성리 사이에 펼쳐진 들녘에는 커다란 냇물이 흐른다.

이 냇물들이 상굴 앞의 기름진 들녘을 적시면서 다른 어느 곳보다도 먼저 풍년의 기쁨을 만끽하도록 해준다.

천방산 남쪽 시초면 초현리 절굴로부터 시작하여 천방굴 앞을 지나 신곡리 앞쪽으로 흐르는 작은내, 중간쯤에는 천방산 북쪽 문산면 금북리 골판이골과 성황골 등등의 물줄기를 모아 문산저수지에 잠깐 머물러 흘러 ‘도마천都馬川’이라 불리는 큰내, 그리고 상굴 앞쪽으로는 리궁천을 끼고 일명 ‘봉선지鳳仙池’라 불리는 동부저수지에 머물렀다가 배수갑문으로 이어진 ‘길산천吉山川’이 흐르고 있다.


이 세 물줄기가 각각의 동행을 이루는 둑길을 만들어 주며 물의 흐름으로 기름진 농토를 마련하여준다. 이 흐름에는 언제나 변함없이 같은 물의 흐름을 가지지만 어느 때는 세류細流를 보이는가 하면 어느 때면 급류急流로 세차게 흘러내리기도 한다.

흘러내릴 뿐만 아니라 때로는 동행의 둑길을 넘쳐흘러 여지없이 둑길마저 무너뜨리기도 한다. 충혈된 눈빛을 하고 들녘의 푸른 농토를 여지없이 짓밟으면서 폐허로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생긴 말이 바로 비극적인 ‘상굴앞 풋농사’이다.


도마천과 작은내는 상굴 앞의 너른 들녘 가운데에서 합수合水를 이루거니와, 이곳에서 물 빠짐이 가로막혀 그만 수침水沈으로 인하여 한해 논농사가 수포로 돌아가곤 하였던 것이다.

큰 고기 무리들이 경계하면서 논배미에서 먹이는 찾고 있는 그 자리도 실상은 지난날 극심한 수침 피해를 입었던 곳, ‘상굴앞 풋농사’의 현장이 된다. 스산한 겨울바람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먹이를 찾고 있는 큰고니 무리들이 오히려 한가롭게 보인다. 들녘은 곧이어 작은내에 이른다.

마음속으로 그 옛날의 합수부合水部를 떠올린다. 그리고 옛 모습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길 없이 변해버린 둑길을 걷는다.

이리구불 저리구불 비틀거리지 않으면 걸을 수조차 없었던 옛날의 논둑길은 찾아볼 수 없고 자로 잰 듯이 반듯하게 다듬어져 있다.

경운기와 트랙터가 드나들 수 있도록 널찍하게 닦아져 있다. 이를 두고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했던가. 잘 다듬어진 길은 다만 논길만이 아니다.

나란히 동행을 서둘러대던 둑길은 하이웨이처럼 곧게 뻗어있어 아무리 거친 물줄기라도 쉽사리 흘러내림으로써 ‘상굴앞 풋농사’는 먼 전설 속에 묻혀 까마득한 이야기로 전해오게 한다.


천천히 작은내 둑을 걷는다. 그러나 둑길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둑길은 둑길로 이어져 바다로 향할 뿐 결코 곁을 엿보지 않는다. 앞으로만 이어진다.

그러다가 도마천의 둑길과 만난다. 어느 사이 하나의 둑길로 이어진다. 그러나 어느 둑길이라 해도 두 둑길이 만나게 되면 둑길은 하나이되 하나가 아닌 동행을 이룬 하나가 된다. 둑길이 다른 하나의 둑길과 만나 지금까지 동행이던 둑길을 버리고, 제각기 새로이 만나는 둑길을 이룬다.

하나의 둑길은 동행이 아니라 아예 하나로 이어지고, 동행을 이루던 또 다른 하나의 둑길은 새로운 둑길과 만나 새로운 동행을 시작한다. 작은내와 도마천의 둑길은 그렇게 만나 작은내는 끝내 그 이름을 버리고 도마천이라는 이름에 함께 몸을 싣는다. 작은내와 도마천이 합수되면서 완전한 도마천을 이룬 것이다.

한편 작은내와 도마천이 합수되어 도마천으로 흐르는 동안 상굴 앞의 길산천은 동부저수지 배수갑문을 통하여 점점 몸을 불려 진다리를 지난다.

그리고 용곡리 앞으로 이르러 도마천과 다시 합수한다. 작은내의 이름을 삼켜버리고 흐르던 도마천은 용곡리 앞에서 길산천과 만나면서 그 이름을 앗긴 채 길산천과 한 몸을 이룬다.

도마천은 ‘상굴앞 풋농사’의 진범이었던 아픔을 길산천에 숨겨버린다. 이리하여 바야흐로 거대한 길산천의 이름으로 서천군의 심장부를 가로질러 긴 물 흐름의 길을 재촉한다.


길산천은 서천군 최대의 금강 지류로 총 길이 23km. 문산면文山面 금복리金福里 원진산遠進山(270.5m)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화양면華陽面 망월리望月里로 유입된다.

내동천, 석마천, 동산천, 화금천, 계동천 등 5개의 작은 흐름을 거느리면서 서천군 총면적의 절반인 문산면, 시초면, 마산면, 기산면, 서천읍, 화양면, 마서면 등 7개 읍·면을 유역으로 들어온다.

그리고는 마침내 바다에 이르면 길산천 둑길의 동행은 금강이란 장렬한 흐름 안에 든다.

지난날을 생각하고 내일의 맑은 내일을 향한 활기찬 전진을 노래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난날의 ‘상굴앞 풋농사’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면서 비극적 풋농사의 아린 가슴이 떠올려지는 것은 아무리 달래려도 멈추어지지 않는다.


우리말에 ‘건대 놈 풋농사’라는 말이 있다. 시작은 남보다 잘되고 빠르더라도 마지막에 가서는 실패하고 마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상굴앞 풋농사’가 이를 두고 하는 말인 듯하다.

물 흐름이 정조情調하여 변함이 없고, 본래부터 기름진 농토라서 농사 걱정 전혀 없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푸른 들녘을 바라보면서 미리부터 풍년가를 준비해오던 곳, 농민들에게 다른 고장 어느 곳보다도 풍년을 먼저 예약해주곤 하던 상굴앞 너른 들녘이 그만 청천벽력과도 같은 태풍을 만나 노도와 같은 큰 물줄기에 묻혀버림으로써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아지게 하였던가?

우리의 아버지 아저씨들은 당산뫼 마루에 올라 여지없이 휩쓸려버리는 알밴 벼포기가 흙탕물에 잠기고 있는 것을 애태우며 바라보아야 했으며, 우리의 어머니 누이들은 밥술을 푸던 주걱으로 놀란 가슴을 치면서 눈물을 씹어야만 하였으니 ‘상굴앞 풋농사’가 할퀴고 간 상처를 어디에 견줄 수 있었으리오.


그야말로 마을 사람들은 물 없이 못 지어먹을 천둥지기와 물 때문에 못 지어 먹을 수침논 사이에 서서 한평생 하늘만 우러러보고 요행을 믿어왔던 슬픔을 억장이 무너지듯이 가슴 앓이로 끌어들이면서 헛농사의 푸념을 새겨놓을 처지에 이른다.

모를 옮겨 심은 너댓새 뒤에 뿌리가 완전히 땅에 박혀 모가 새파랗게 빛을 띤 사름 때부터 간절히 풍년을 바라던 마음들,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이 땅속에 스며들어 간 깊이가 보습이 들어갈 만큼 된 정도의 보지락에도 절대 굴하지 않던 마음들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나면 그저 하늘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렇게 ‘상굴앞 풋농사’는 이른 봄부터 기원하였던 풍년농사를 헛농사에 이르게 한 지난날의 아픔이다. 그 아픔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지금 영원한 풍년을 이루기 위한 <도마 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 정비사업> 공사가 진행 중이다. 누가 지난날의 ‘상굴앞 풋농사’를 기억하고 싶겠는가? ‘상굴앞 풋농사’라는 말을 알고 있으리오.


상굴앞 풋농사
                    구재기 
하늘을 우러러 
하늘을 닮아가는 연습으로
하루의 생활이 그대로
하늘의 삶이 되도록 할 수 있을까
누구나 가진 무한의 능력과 
생명의 신비를 실현할 수 있다고 
너와 나, 제각기 가지고 있는
하늘 닮는 연습을 할 수 있을까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진실한 경지를 나타낸 말도
어느 사이 이리도 꺼지지 않은 
물거품을 이루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아버지들은 휘청이고
우리 옆집 아저씨는 비틀거리고
아, 우리의 어머니와 아주머니들은
무쇠솥 뚜껑을 열어
찐 보리쌀을 휘저어 젖히려다가
주걱을 들어 가슴을 치는 날
억장이 무너지듯 
여지없이 냇둑은 무너져버렸다
번뇌를 소멸하고 
본심이 일어나 
하늘의 경지에 들어보아도 
큰 안락은 기대할 수조차 없다 
두 손을 모아 올리는 
말 한마디,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외우다가
산란한 아픔을 모을 수 있으랴
흩어진 상처를 달랠 수 있으랴

* 상굴앞 풋농사: 시초면 신곡리와 태성리 사이의 논이 수침으로 인하여 자라 자라던 벼가 썩어버림으로써 헛농사가 되어버렸다는 데에서 유래된 말로, 무엇인가 잘 되다가 큰 성공을 거둘 즈음 뜻하지 않은 일로 헛된 일이 되어버렸음을 의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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