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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기획탐방】판교, 그 시간이 멈춘 마을...시인 구재기와 함께하는 '舒川山河(서천산하)' 2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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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 판교, 그 시간이 멈춘 마을 - 충남 서천군 판교면 현암리 일원


한길 위에 늘어뜨린 옛 건물의 짙은 그늘에서 마치 말하지 못하고 차마 남겨놓지도 못한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질펀하게 깔려 있음을 본다.


바람에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지금까지 남겨진 ‘시간이 멈춘 마을’의 모든 건물들은 비록 낡았을망정 오랜 세월을 함께 비와 바람과 햇살과, 그리고 한때의 온통 침침하고 답답한 하늘과 땅을 우러르고 굽어보면서 견디어왔으리라.


곁에서 방앗간을 지켜주는 고목 가지 사이사이로 이름 모를 새소리까지도 알뜰하게 멈춘 시간들을 모아왔음이 분명하다.



2019년 12월 19일 목요일 오후.


겨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포근하다. 조금은 싸늘한 기운이 손등을 살짝 건들고 지났으나 이내 따스한 온기의 햇살이 뒤를 따라준다.


산책하기엔 아주 좋은 날씨이다. 걷는 발걸음마다 번지는 온기는 자칫 말라붙기 쉬운 겨울의 마음까지도 부드럽게 다독여준다.


세칭 흥림저수지로 불리는 서천 서부저수지 둘레의 구불부구불한 길을 따라 달리는 풍광은 더없이 신선한 맛을 돋아준다. 더더욱 흥림저수지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장항선 철길은 색다른 눈 맛을 톡톡히 해준다.


너무 아름답다. 몸은 비록 두꺼운 옷으로 둘러있지만 흥림저수지 둘레 길을 따라 날아갈 듯 가볍게 뛰어 달린다. 겨울로 옹크려있던 몸속의 흥興이란 흥은 새순을 돋우는 봄 날씨처럼 활기에 차오른다.


마침내 판교 입구에 닿는다. 현암교를 건너다가 문득 걸음을 멈춘다. 뒤돌아본다. 오래된 가옥이 하나 눈에 띈다.


판교가 ‘시간이 멈춘 마을’이라니, 보이는 것이 모두 다 오래된 것으로만 보인다.



현암교에서 다시 시가지를 바라본다. 어느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할 정도로 마을의 길거리가 모두 지나간 세월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듯 보인다.


세월의 흐름이란 애당초 언제 어디서나 그리 흔하게 생각해보지 않는 것이라서인지 새삼 이곳에 와서야 강렬하게 느껴진다. 세월은 지금의 이 순간에 대하여 주관적인 인식과 객관적인 사실을 앞에 두고도 일치하게 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 앞에서 다소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하는 지도 모른다. 그만큼 판교는 입구에서부터 옛과 오늘을 같은 장소에 나란히 놓고 있는 것이다.



발걸음은 먼저 옛 판교역으로 향한다. 그곳에 가면 ‘시간이 멈춘 마을’의 모든 시간들이 머물고 있다. 옛스러운 거리를 천천히 걸으면서 사위를 바라본다.


그러나 어느 곳 하나 오늘날의 손길이 화들짝 드러난 곳이 없다. 옛과 오늘이 서로 간에 어깨를 겯고 있는 듯하다. 이곳에는 급변하는 현대가 곧바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앞장선 옛 시간들의 뒤를 따라 천천히 다가오는 오늘날이 보일 뿐이다.


그러나 판교역 앞에 이르자 오늘날의 모습이 확 트인다. <판교특화음식점>이라는 현판이 허공 속에 우람하게 버티어 있다.


역전에는 청청한 늙은 소나무 한 그루가 짙은 그늘을 드리운다. 그 역전 소나무이다. 1930년대 신봉균과 박동진 씨가 심은 소나무라고 한다. 소나무를 심은 뜻을 나름으로 상상하여본다.


이 판교역을 통하여 지난날 판교장이 성황을 이루고 있을 때에는 멀리 천안이나 광천, 대천 등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었다고 한다.



그러나 하루에 열차가 몇 번 다니지 않아 오랜 시간 동안 열차를 기다려야 했고,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장꾼들에게 이 소나무는 넉넉한 쉼터를 마련하여 주었단다.


결국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어 먹거리로부터 광대, 약장수, 동동구르무 장수들이 장사하곤 하여 ‘역전장’을 이루었단다.


그러는 동안 역전 소나무는 일제의 강제징용과 위안부로 끌려가는 우리 가족들의 피눈물, 50년대 동족상잔의 비극, 60~80년대 좀 더 나은 삶과 꿈의 실현을 위해 무작정 도시로 떠났던 수많은 이들의 한과 설움, 그리고 이별의 아픔을 지켜보게 된다.


이러한 모습으로 오늘날 이 역전 소나무는 ‘시간이 멈춘 마을’의 지킴이가 되어 있는 것이다.



곧바로 벽화처럼 그려진 옛 역전의 모습을 찾아본다. 일제 강점기 식량약탈과 전쟁물자, 징용, 장병, 위안부 수송을 위해 1931년 8월에 개통된 장항선의 총 길이는 154.4km, 지금은 천안에서 익산에 이르는 철도선로 되어 있다.


이 판교역이 예로부터 저산팔읍(서천, 비인, 한산, 홍상, 임천, 부여, 공부, 남포) 보부상의 육로였던 서천, 부여, 보령의 중심지였으므로 서천군 판교면 동면 판교리에서 판교장의 이름이 붙여진다.


해방 후에는 도시로 향하는 길목이 되었고, 6,25전쟁의 아픔도 고스란히 겪었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통학 열차와 희망과 꿈을 안고 떠나는 사람들의 탈출구가 된다.


지금은 장항선 직선화 공사로 인하여 2008년 11월 27일 역사驛舍 이전한 채 시간이 멈추어버렸으며, 이제는 판교특화음식촌으로 변신하여 있다.



옛 판교역으로부터 물러 나와 몇 발자국 아래로 들어서자 허름한 창고 같은 건물 하나가 나타난다. 시간이 멈춘 마을 안내에 따르면 판교극장 건물이다.


옛날에는 공관이라 불렸으며, 새마을운동 당시에는 ‘근면, 자조, 협동’이라는 기치로 건립되었다 한다.


또한 문화생활을 위한 판교극장으로 근처의 미산, 옥산, 홍산, 문산, 비인, 서면 등 부여군과 보령시의 주민들도 영화를 보기 위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하니 당시의 영화에 대한 인기가 얼마나 높았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때때로 영화 상영은 물론 유명 가수들의 쇼 프로 공연과 콩쿠르도 열렸지만 1970년 월남전 이후 TV의 보급으로 하향길로 접어들어 체육관으로도 사용되었다 한다.


옛 그대로를 보존되어 있는 극장 매표소 앞에는 영화상영시간표와 입장요금 성인 500원, 청소년 200원이 쓰여진 요금표가 그대로 붙어있어 옛 추억 속을 헤매게 한다.


뿐만 아니라 옛날에 보았던 영화 포스터까지 붙어 있으니 그 아니 반가우랴. 그 영화 제목만 들어도 추억 속에 사로잡혀 있는 장면이 떠오르게 된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 <꼬마 신랑> <저 하늘에도 슬픔이> <별들의 고향> <사격장의 아이들> 그리고 <미워도 다시 한 번> 등등, 특히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는 영화를 보던 옛 추억 속의 한 소녀가 문득 생생하게 살아 오르는 것은 도저히 막아내지 못한다.


아마도 1968년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한창 영화에 빠져버린 당시, 그러니까 충남 공주의 공주극장에서 <미워도 다시 한 번>을 본 적이 새롭게 떠오른다.


정소영 감독, 신영균, 문희, 김정훈 출연한 이 영화에서 60년대 1세대 트로이카인 남정임, 윤정희와 함께 각축전을 벌였던 ‘문희’의 청초하게 익어버린 매력에 빠져버리고, 아역배우 김정훈의 명연기로 이루어진 몸부림에 눈물샘이 마악 터지려는 순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훌쩍이는 소리에 좌석의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러다가 아,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하얀 교복 카라 속에서 흐느끼는 한 여학생 모습은 화면 속의 ‘문희’와도 비교도 안 될 만큼 황홀하도록 아름답지 아니한가.


갑자기 터져 나오는 폭소를 억누르면서 그 찡한 전율 끝에 꽉 막혀버린 눈물샘의 자극은 지금까지도 생생한 기억으로 되살아난다.



당시 이 영화는 서울 인구가 450만 정도이던 시절인 1968년 7월 16일 국도극장에서 개봉하여 총 65일간 상영 37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고 한다.


TV에서 드라마 연출을 해오던 정소영이 영화로 전향하여 세 번째 감독한 이 작품으로 1960년대 최고의 흥행에 성공하였음은 물론 제12회 부일영화상에서 감독상과 여우조연상(전계현)을 수상했고, 일본과 대만에 수출하기도 하였으며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선정하는 ‘한국영화 100선’에 뽑히기도 한다.


옛 판교극장의 둘레를 살펴보다가 판교장에 이른다. 판교장은 원래 동면 판교리(=너더리)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현암리’로 와서 큰 시장으로 발전한다.


주 거래품목은 소와 세모시, 특히 소시장은 충남의 3대 우시장으로 유명하였으며, 세모시장은 주변 저산팔읍 보부상들의 거래로 인해 새벽 일찍 장이 서기도 한다, 판교역과 가까운 판교장은 의류 잡화 등 판매하는 전통 큰 시장이었지만 유통산업 및 교통발달로 점점 쇠락해지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른다.



오늘날에는 지난날의 복작거렸던 시장 모습은 사라지고 번창했던 그 시절이 그려진 벽화가 대신 말하여 주고 있다. 1980년대까지 만해도 7~8월에는 홍성, 광천, 공주 등에서 약 1천여 마리 정도의 소가 묶여 있었고, 수백 마리의 소가 거래되었다 하거니와 이곳에서는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한다.


당시에는 소 운반의 교통수단이 없어 소몰이 목동이 그 역할을 하여 멀리 소를 끌어다 주기도 했단다.


판교장 끝부분에 적산가옥敵産家屋 한 채가 서 있다. 적산가옥이란 점령당한 나라 안에 세워진 있는 적국 소유의 집을 말한다.


1945년 8.15 광복 이전까지 한국 내에 있던 일제나 일본인 소유의 집을 광복 후에 이르게 된다. 이에 따른 일본식 가옥으로 <장미사진관>이었다는데 1930년 당시에는 왜놈들이 살았다 한다.



그때 왜놈들의 만행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단다.


판교에 살았던 자칭 본토인이라는 왜놈은 고작 남자 5명, 여자 6명 등 모두 11명에 불과하였지만, 조선인이라 불리는 동면 사람 5,515명을 마음대로 휘젓고 농토와 상권을 장악하면서 ‘천황폐하만세!’를 외쳐대었을 뿐만 아니라, ‘쌀 주세요!’를 왜놈 말로 해야 쌀을 주었다 하니, 그 만행을 어찌 다 말할 수 있었겠는가.


해방 이후에 이 적산가옥은 우시장과 세모시장의 번창으로 숙소(여각)의 역할을 하였으며, 그 후 사진관이 있었다하여 지금까지도 <장미사진관>으로 불려오고 있다.



몇 발자국을 걸어 한길로 나오자 곧 ‘동일주조장’에 이른다. 2000년도까지 박성달 이하 박씨 3대가 운영하였다는 양조장이다.


쌀이 귀하던 시절 나라의 세수 확보를 차원에서 술을 ‘밀주’라 하여 가정에서는 일체 술을 빚지 못하게 하고 오직 주조장을 통하여 밀가루로 빚은 막걸리를 제조 판매하였다가 ‘통일벼’의 보급으로 쌀의 자급자족이 이루어짐으로써 비로소 쌀막걸리가 보편화된다.


그때 쌀의 원활한 보급을 위하여 쌀방앗간까지 운영하게 된다. 막걸리는 동동주, 탁주, 농주, 왕대포라 불리면서 서민들의 애환과 삶을 함께 해온 우리 민족의 음료이거니와 막걸리의 변천은 서민들의 생활상을 엿보이기도 한다.



‘동일주조장’ 바로 곁에서는 ‘쌀방앗간’이 지난날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방앗간이라 함은 오늘날 정미소와 마찬가지로 방아를 두고 곡식을 찧거나 빻는 곳이다.


지난날에 대한 향수에 빠져들게 한다. 발동기에서 흘러내리는 기름 냄새가 풍기면서 왕겨가 쏟아지는 둘레에는 참새떼가 왁자지껄 시끌벅적 날아드는 것으로 기억되어 있어서인지, 오후의 햇살이 아름아름 쏟아짐에도 방앗간에 둘러싸인 고요함이 오히려 쓸쓸하게 느껴진다.


밖에서 바라보면 과연 이곳이 그런 방앗간인가 싶을 정도로 한가롭다. 생울타리를 뚫고 들어간 방앗간 마당에 들어가서 건물의 벌어진 틈으로 내부를 살펴보고 나서야 이곳이 바로 방앗간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오늘날 현대화된 기계 양곡의 도입으로 마을마다 설치되었던 정미소에서는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지만, 이곳 방앗간에는 아직도 건립 당시의 구조와 그 형태로 그대로 놓여있어 금방이라도 발동기가 살아나서 통통거릴 것만 같다.


방앗간을 천천히 뒤로하여 나온다. 한길 위에 늘어뜨린 옛 건물의 짙은 그늘에서 마치 말하지 못하고 차마 남겨놓지도 못한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질펀하게 깔려 있음을 본다.


바람에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지금까지 남겨진 ‘시간이 멈춘 마을’의 모든 건물들은 비록 낡았을망정 오랜 세월을 함께 비와 바람과 햇살과, 그리고 한때의 온통 침침하고 답답한 하늘과 땅을 우러르고 굽어보면서 견디어왔으리라.



곁에서 방앗간을 지켜주는 고목 가지 사이사이로 이름 모를 새소리까지도 알뜰하게 멈춘 시간들을 모아왔음이 분명하다.


그렇다, 시간은 삶의 예지를 말하는 순간으로 멈추어 있지만, 물 흐르듯이 그치지 아니하고 이어가는 후세들에게 있는 그대로 살아남아 있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예지를 길러 나가도록 소리 없이 외쳐대는 굵은 목소리를 ‘시간이 멈춘 마을’의 길 위에 질펀하게 깔아놓고 있다.



시간이 멈춘 마을

                          구재기

지난 것에는 모두

형상이 사라져버리는 것일까

시간에 멈춘 마을에는

형상이 아닌 형상들이 가득하다

차마 마음을 낼 수 없어

응당 머문 바 하나 없는데

어느 사이 마음은 질펀해진다

보이는 것 두 눈으로

나를 바로 보면서

나를 구하여 시간을 일깨우고 싶다

때때로, 아,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이

멈추어버린 이 시간들

한평생 가운데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란 없다.

갖가지 생각이 얽히고설켜

갈피를 잡을 수 없고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흥건하게 늘여 뜨렸던

말과 행동으로 지은 업業들이

앞길을 막고 있는 듯

작은 바람에런 마음이 일어선다

그렇다, 시간이 멈춘 마을에서는

한평생 가운데 마음먹은 대로

온 힘을 다하려는

지극한 자취들이 살아있다

시간이 멈춘 마을에서는

새로운 시간의 문이 열리고 있다


*질펀하다: 평평하고 탁 트여 넓다


*충남 서천군 판교면에는 ‘시간이 멈춘 마을’이 있다. 과거의 어느 한순간에 멈춘 듯 모습이 그대로라는 의미로,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을 거쳐 산업화 시기를 버텨낸 오랜 건물들에는 마을 사람들의 곡진한 사연과 삶의 애환이 곳곳에 서려 있어, 도시화와 함께 젊은이들이 빠져나가 쇠락한 마을이 이제 그 빛바랜 모습이 매력으로 떠오르며 다시 젊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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