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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탐방】옛 나루, 원산圓山을 찾아서...시인 구재기와 함께하는 '舒川 山河(서천산하)' 15편


015. 옛 나루, 원산圓山을 찾아서 - 충남 서천군 화양면 옥포리

마을길을 빠져 언덕위로 오르니 강둑이다. 금강둑이다. 강바람이 초겨울의 매서움으로 얼굴을 후려친다. 몸을 옹크린다. 차갑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물결을 작은 몸짓으로 차고 넘치는 강물임을 알려준다.

금강하굿둑의 버팀으로 흐름은 멈추었으나 당당하게 흐르던 그 강물의 기개는 여전히 살아있다. 계절을 알려주는 철새들이 떼를 이루어 빈 하늘을 굵은 목소리로 가득 채우며 날아간다. 저만큼 서해고속도로 금강교 위를 달리는 뭇 차량의 속도가 요란스레 외쳐댄다.

시간의 흐름이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그 시간의 흐름속의 변화가 자칫 소홀하여 잘못 보내버린 어느 시간에 대한 보복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2019년 12월 5일.

목요일 오후라 해도 무척이나 춥다. 손이 시렵다. 그러나 손에 장갑을 끼울 수도 없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려면 아무래도 불편하다. 장갑을 준비하였으면서도 그냥 호주머니에 집어넣는다. 맨손인 채로 견뎌보기로 한다. 그냥 떠나보기로 한다.

서천읍을 가볍게 빠져나와 충절로를 따라 길산에 이르고, 길산천을 뛰어넘어 화산로에 이른다. 왼쪽 오른쪽이 모두 너른 들녘이어서 들판 한가운데로 달려가는 느낌이다. 서천에서 가장 너른 들녘이다. 그야말로 서천의 곡식창고이다. 가슴이 흐뭇해진다.

옛날 한 걸음 한 걸음 걷고 또 걸을 때에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이었는데, 잘 닦여진 화산로를 따라 승용차로 달리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 너른 들녘에는 짚을 단단하게 말아놓은 공룡알(?)들이 형형색색으로 흩어져 있다. 하얀 공룡알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곳을 지나다가 푸른색, 노란색 등등으로 여며있다.

그런 공룡알들을 바라보니 새로운 장관으로 돋보인다. 누가 이름하여 주었는지 몰라도 ‘공룡알’이라는 이름이 그럴듯하다고 느껴진다. 눈앞이 훤하니 거칠 것이 없다. 가슴까지 넓어지는 듯하다. 너른 곡식창고를 바라보는 마음에는 풍요가 넘쳐흘러 저절로 흐뭇해진다.


드디어 멀리 화양면 옥포리(玉浦里)가 멀리 나타난다. 아니 원산(圓山)이 보인다. 점점 다가갈수록 확실하게 나타나는 원산, 마침내 하얀 억새꽃 사이로 원산이 피어나는 듯이 가까이 다가온다. 원산이 옥포리를, 아니 ‘도루메’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원(圓)이 ‘둥글다, 동그라미’의 뜻이요, 산(山)이 메, 즉 뫼이니 ‘도루메’라는 이름을 가진 것, 그러나 이곳은 행정구역상의 이름은 옥포리다. 옛 나루가 있었던 곳이라는 걸 알려준다.

마침내 옥포천을 건너 옥포리의 가운데에 이른다. 면사무소 앞의 주차장에 주차해놓는다. 그리고 지인을 만난다. 화양면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규연 씨이다. 차가운 날씨에도 앞장서서 길을 안내해준다. 뿐만 아니라 역사 속의 옥포리 하나하나를 거침없이 말해준다.

면사무소에 근무하려면 그렇게 면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곳곳에 얽힌 숨은 이야기까지 알고 있어야 하는가 보다. 사전 조사한 내용이 필요 없을 정도로 상세하게 안내를 해준다. 이규연 씨 같은 공무원이야말로 오늘날의 가장 모범적이요 전범적인 공무원이 아닌가 생각된다.

옛 나루터로 이어진 마을의 모습은 지난 시간들을 잘 보여준다. 아직도 남아 있는 6,70년대의 여염집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으나 맑고 깨끗하게 정리된 느낌을 준다. 마을길이 모두 잘 포장되어 있어 말끔하기만 하다. 휴지 한 조각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는다.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화양파출소 앞이다. 조선시대 해창(海倉)이 있었다는 곳이다.


나루터가 있었던 이곳에 세곡(稅穀)을 쌓아놓고 손쉽게 운반하기 위함이란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해창의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이던가? 입구에 나무 한 그루가 신화(神話)처럼 서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사찰나무이다. 처음에는 교목(喬木)인 줄 알았다가 관목(灌木)으로서 교목처럼 자라는 사철나무의 모습에 그만 탄복한다.

모르면 몰라도 아마도 수백 년은 좋이 넘긴 연령을 지닌 듯이 보인다. 여전히 푸른 모습에 붉은 열매를 주절주절 매달고 있는 모습이 너무 당당하고 꼿꼿하다. 옛날을 물으면 주저함 없이 말해줄 것 같았으나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인간이라니 물러날 수밖에 없다.

마을길을 빠져 언덕위로 오르니 강둑이다. 금강둑이다. 강바람이 초겨울의 매서움으로 얼굴을 후려친다. 몸을 옹크린다. 차갑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물결을 작은 몸짓으로 차고 넘치는 강물임을 알려준다. 금강하굿둑의 버팀으로 흐름은 멈추었으나 당당하게 흐르던 그 강물의 기개는 여전히 살아있다. 계절을 알려주는 철새들이 떼를 이루어  빈 하늘을 굵은 목소리로 가득 채우며 날아간다.

저만큼 서해고속도로 금강교 위를 달리는 뭇 차량의 속도가 요란스레 외쳐댄다. 시간의 흐름이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그 시간의 흐름 속의 변화가 자칫 소홀하여 잘못 보내버린 어느 시간에 대한 보복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금강의 배수 시설물 밑으로 배 두 척이 떠있다. 한 척은 아예 배[腹]를 드러내놓고 강가 마른 수풀 위에 누워 있고, 또 다른 한 척은 밧줄에 목을 매인 채로 출렁이며 물결 위에 떠 있다. 어디로 향했던 빈 배들일까? 기다림도 헤어짐도 없이 그냥 놓여진 그대로 출렁이는 모습이 초겨울의 차가운 바람에 쓸쓸함으로 맞아준다.

그 옛날 배를 건너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을 때의 자취라고는 찾을 레야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린 자리에는 배수시설물로 굳게 묶여 있다. 옛 이름만이 살아있는 도루메 나루터, 군산과 장항으로 왕래하던 나루터라고 하기엔 너무나 옛 자취는 사라져 있다.

50,60년대만 하더라도 이곳에서 장항 백사장으로 모래찜을 하러 다니던 사람들이 많았었다고 한다. 그때에는 저물 무렵 물때에 맞추어 사람들이 목선을 이용하여 장항송림백사장으로 가서, 다음날 그곳에서 아침을 지어먹고 모래찜을 한 뒤 돌아오던 곳이라고도 한다.

뿐만 아니라 호남의 선비들이 군산에서 배를 타고 건너와 한양으로 과거를 보라 가던 나루라고도 하지 않던가? 그 선비들의 어느 누구는 한산에 머물다가 소곡주 맛에 앉은뱅이가 되어 과거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거침없이 들려온다.


불어오는 강바람을 가슴으로 안으며 원산에 오른다. 가파른 오름길은 계단으로 이어져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숨이 차오른다. 무척이나 가파르다.

한 계단에 오르자 강 건너가 확실해지고, 또 한 걸음 오르자 멀리 금강하구둑으로 이어지는 국도 29호선이 확실해진다. 강 건너 문득 앞을 가리는 산을 물으니 군산 오성산(五聖山)이다. 엣 백제의 슬픈 망국의 전설을 안고 있는 산이다.

마침내 정상에 닿는다. 그러나 정상의 좁은 터전에 시멘트로 둔탁하게 지어진 정자 하나 우뚝 서 있을 뿐이다. 옛날에는 이곳에 수고정(戍鼓亭)이란 정자가 있어, 바다에서 들려오는 바닷물 소리를 북소리처럼 들어왔다고 하는데, 북소리는 고사하고 지금은 차갑고 매서운 겨울바람이 귓불을 마구 할퀴며 지난다.

원산 마루에서 서해고속도로의 금강대교를 바라보기도 하고, 금강하구둑을 향하여 시선을 돌리기도 한다. 그러나 정상의 시선(視線)을 가로막는 것은 무성하게 자라난 뭇 교목들, 나무 사이로 멀리 보다가 결국 도루메의 마을을 내려다본다. 그러나 역시 잘 보이지 않는다.


오르던 계단을 뒤로 하고 반대편 계단을 천천히 내려오면서 마을을 굽어본다. 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마을의 부분부분을 카메라에 담는다.

이곳 옥포에서는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한 때 당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한다. 그 시작이 언제부터인가는 알 수 없으나 일제말기 중단되었다가 20년도 채 되지 못하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한다.

인근에서 석탄 채굴로 인한 폭음 때문에 당산 산신령이 다른 곳으로 피신하였기 때문에 옥포에서 교통사고와 인사사고가 잦았다고 생각한 주민들이 당산 산신령을 다시 불러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서였단다. 보통 음력 정월 초이렛날 당제를 지냈으나 확정된 것은 아니란다.

그 무렵에 초상이나 산기, 개잡는 집 등이 있으면 부정하다 하여 음력 이월 초하룻날로 연기하여 지내기도 했단다.


두루메 마을을 가운데로 지나면서 <다고정>이라는 샘을 찾기로 한다. 두루메에서 동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다고리로 향한다. 그리고 지금은 마을 한가운데 소방수 시설을 갖춘 샘을 만난다. 바로 다고정으로 비정(比定)되기도 하다.

대략 300여 년 전 농사를 짓게 하여 가난을 벗게 하였다는 샘이 있다고 말했다. 가난에 찌들어 부황이 든 마을 사람들에게 한 선비가 나타나 마을 한쪽으로는 큰 강물이 흐르고, 뒤에는 산이 빽빽하여 꽉 막힌 마을을 살펴보고는 한쪽으로 흘러가는 마을의 정기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곤 우물을 파도록 하였다. 반신반의한 마을 사람들은 선비의 말한 대로 우물을 팠다. 그러자 물이 흘러넘쳐 농사는 물론 풍부한 물로 어느덧 마을은 풍요로워졌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이 샘물로 마을에 활력이 넘쳐나자 강 건너 전북 옥구군 마포면 서포리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마을 아낙네들과 처녀들이 미치기 시작하였는데 바로 이 다고정 때문이라 했다. 하는 수 없이 옥포리 사람들은 다고정을 폐쇄할 수밖에 없었으며, 다시 가난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설 뒤에도 다고정임을 말해주는 것일까? 옥포3리 다고리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큰 우물 하나. 지금은 식수로도 쓰이지 않고 있지만 한 대에 3~5톤의 많은 수량(水量)을 소방차에 제공할 준비는 언제나 마련되어 있다면서 마을의 한 사람이 대한불갈(大旱不渴)의 우물임을 말해준다.

옥포라면 지금 옛 일품의 맛 우어회로 입맛이 떠오르고, 뱅어의 맛도 되살아 오르는 입마저 잃어버린 지 오래다. 그러나 옛 한산 팔경의 하나인 ‘원산수고(圓山戍鼓)’의 정취는 아직도 살아남아있거니와 강변의 원산이 옛으로 복원되기를 소망하여 본다.


도루메 나루에서
                        구재기

어제 흐르는 물이 
오늘의 흐름은 아니다
항상(恒常)됨이 없다는 걸
꾸미지 않고 진실히 알고 보면
발걸음에는 그림자도 밟히지 않는다
나루에서 만나고 
떠나는 일이 되풀이하다 보면
살아가는 것이란
한 바퀴, 두 바퀴 돌고 돌아
도루메, 원산(圓山)에 닿는 것
언제나 제 자리에 머물게 된다 
때로는 돌아올 때마다
떠날 때의 마음으로
바람을 맞게 되기도 하지만
그래, 원산에 올라
너른 들녘이나 바라볼까
금강, 출렁이는 물결이나 맞아볼까
아, 저, 저, 철새들의 군무(群舞)
함께 춤이나 즐겨볼까
바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북소리로 들으며 
추스르던 몸을 둘러본다 
고요한 곳에서 홀로 
방일하지 않는 데에 머무르는
빈 배는 애써 출렁이면서 
바람으로 가슴 가득 차오른다
이제는 어제 흐르던 물로 
오늘의 흐름이게 할 수 있을, 
하다 보면, 바로 그렇다, 
잘 쉬는 일이 가장 잘 하는 일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인 것
필요한 것은 오늘의 휴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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