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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가을과 문학과 시낭송콘서트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하늘은 높고 바람은 맑아 예로부터 사색의 계절이라 했다. 굳이 철학자가 아니어도 뭔가 생각하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인지 돌아보고, 살아가는 의미는 무엇인지, 내가 옳다고 믿고 있는 것들이 영원불변한 진리인지, 어느새 변해버린 것은 아닌지, 어쩌면 내가 변한 것은 아닌지, 이런 생각들을 해야 어울릴 것 같은 계절이다.

또한 그런 생각을 해야 어울릴만한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한 푼의 돈을 위해서, 한 걸음 더 성공하기 위해서, 잠시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옆 사람과 싸우고 자신을 속이고 때로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고개 숙이며 살아간다.

그것이 과연 우리의 본연의 모습일까?

우리가 시를 읽고 소설을 탐독하면서 무언가를 느끼고 마음이 움직이는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잃고 있는 것들을 문학이 대신 채워주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바빠서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들, 움켜진 손에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놓쳐버렸던 의미들.

뒤로 밀쳐놓았던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문학이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시는 문학과 모든 예술의 압축판이라 할 것이다.

지난주에 익산에서 열린 김경복의 시낭송콘서트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일련의 시들을 통해 조근조근 들려주는 자리였다.

그녀는 우리가 간과하며 잊고 있던 삶의 의미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우리 앞에 보여주었다.

시를 읽으면서도 간과하기 쉬운, 숨어있는 의미를 담백하면서도 감성을 놓치지 않는 울림을 통해 하나씩 되짚어보게 해주었다.

90분의 러닝타임 동안 모두들 숨죽이며 그녀의 말 한 마디에 귀 기울이고 동작 하나에 가슴을 쓸었다.

시낭송이 최근에 재조명되고 있다. 이전까지는 시낭송이라 하면 한복을 화려하게 차려입은 중년 여성이 감정을 끌어올리며 격하게 시를 외쳐대는 모습을 떠올리곤 했는데, 최근에는 시의 의미를 오롯이 살려내는 데 주력하는 이른바 ‘자연스러운 시낭송’이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재능시낭송협회를 중심으로 전파되고 있는 '자연스러운 시낭송' 운동은 감성적인 호소력과 기교에 의존하기 보다는 대화하는 듯한 어조로 시가 품고 있는 메시지에 주목하며 이미지의 표현보다는 의미의 연결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김경복은 이러한 시낭송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어가는 대표적인 시낭송가 중에 한 사람이다.

시낭송콘서트로 전국투어를 하면서 3만원이라는 만만치 않은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매번 좌석을 채워내는 힘은 김경복 개인의 역량에 힘입은 것이기도 하겠지만, 시낭송이 새로운 공연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했고 시낭송 애호가들이 그만큼의 공연 수요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시낭송의 힘은 시에서 나온다. 두말할 것 없는 진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시를 읽는다 해서 그 시가 담고 있는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는 것은 아니다.

“시가 낭송으로 와서 빛을 발한다”는 이번 공연의 문구처럼 시낭송은 시를 우리가 먹기 좋게 조리해서 떠먹여 주는 역할을 한다. 좋은 시를 좋은 낭송을 통해 청각과 시각을 통해 접한다면 그만큼 공감의 폭이 넓고 깊어진다는 것을 이번 공연을 보며 느낄 수 있었다.

수준 높은 공연은 수준 높은 연출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 관점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이번 콘서트는 사회자가 없는 무대였다는 점이다. 사회자가 없으면 무대의 연결이 매끄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시간 없이 공연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번 콘서트는 일체의 군더더기 없이 낭송으로만 이어졌다. 그로 인해 조금의 끊어짐 없이 관객은 무대에 집중할 수 있었다. 막이 바뀌거나 의상을 갈아입는 시간마저도 잘 기획된 영상이나 연주로 이어져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았다.

전문 음악가의 품격 있는 배경음악 연주와 그림자 막을 활용한 조명과 무대를 가득 채우는 화려한 영상까지 더해지면서 이것만으로도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3만 원의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은 높은 완성도의 디테일을 느낄 수 있었다. 지방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생각하게 만드는 문학 공연과 연출 수준이어서 부러울 뿐이었다.

우리 서천에서도 이러한 수준 높은 무대를 볼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고대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마땅한 공연장부터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타지로 이런 공연을 보러 다녀야 하는가? 열악한 무대 환경 때문에 가진 바 역량을 다 보여주지 못하겠다는 예술가들의 푸념을 언제까지 감수하고 있어야 할까? 부끄러운 일이다.

지방정부의 열악한 재정상태 때문이라고 스스로 설득해 보지만, 특별할 것 없는 일회성 행사에도 수억 씩 쓰고 있는 것을 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닌 듯싶다.

결국은 선택과 집중의 문제일 것이다. 미래를 바라보며 서천의 문화적 자산을 만들어가는 작업에 우선순위를 둔다면 그 결실은 서천군민 모두에게 돌아갈 것이며 두고두고 남을 업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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