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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탐방】시인 구재기와 함께하는 '舒川 山河(서천산하)'...007. 임벽당 김씨(林碧堂 金氏)를 찾아서(上)


007 임벽당 김씨(林碧堂 金氏) 찾아서()- 충남 서천군 비인면 남당리

 

  마디 허투로 침묵을 깨뜨리지 않은 채로 꼿꼿하게  있는 은행나무의 올곧은 모습이야말로 거대한 침묵의 표상이라 아니할  없다.


일찍이 말하는 것은 인간으로부터 배우고, 침묵은 ()들로부터 배운다고 한다.


그렇다면  은행나무가 침묵으로 일관하며 무럭무럭 자라나는 동안 임벽당은  허구한 세월 동안 말하는 것을 침묵으로 배우면서,  침묵으로 시를 써온 것은 아닐까.

 


2019 6 14 금요일 오후 4


초여름의 한낮은 이미 지났지만 아직도 여름의 더위는 그칠  모른다.


너무 덥다. 초여름답지 않게 하는 것은 내리쪼이는 일찍 여름으로 찾아온 햇살 때문이다. 길거리나 산과 들에 햇살로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산과 들의 초록은 아침보다  푸르게 짙어져 가고 있다.


그러나 거리의 그늘마저도 열기를 가득 품고 있어서 좀처럼 더위를 피할  없다. 훅훅 솟아오르는 열기에 부지런히 땀을 흘려댄다.


너른 주차장이라 하지만 겨우 틈을 비집고 들어가 주차해놓은 곳이라곤 뙤약볕 아래일 뿐이다. 차창을 열어젖히자 그동안 차속에서 가뜩이나 옹크리던 열기덩어리가 한꺼번에 밀려와 얼굴 위에  끼얹어놓는다. 가히 숨이 막힐 정도이다.


차속의 열기를 에어컨으로 쫓아내면서 달리기 시작한다. 종래의 국도가 ‘충서로라는 새롭게 이름표를 달고 다시 태어난 국도 21번과 만나다와 헤어지다를 반복하다가 어랭이고개를 넘고, 마침내 기럭재마저 넘어 내리달리다가 선듯 남당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갑자기 차를 멈춘다.


표지석과 만난다. < 桃花洞 淸節祠. 林碧堂 金氏 詩碑.  梨花洞> 화살표가 2km 거리를 알려준다. 청절사와 임벽당 시비가 있는 곳이  도화동임을 알려준다.


천천히 차를 몰려 차창 밖으로 넘어 보이는 산천을 바라본다무더위만큼 하루가 다르게 초록의 산천이 짙어가고 있지만, 여름은 점점  여름으로 무르익어갈 뿐이다.


차에서 내려 여름 속으로 내딛는다. 낭만적 시와 산문을 써서 당시에 인기가 높았던 춘성(春城) 노자영(盧子泳) 여름은 날고 싶고 뛰고 싶은 시즌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덧붙여 그는 ‘봄이 여성의 계절이라면, 여름은 남성의 계절이라 하고, 다시 ‘봄은 웃음의 때라고 하면 여름은 힘의 라고  말이 문득 떠오른다. 더위에 이미 지쳐버린 스스로를 바라보며 가벼운 웃음을 허공을 향하여 던져버린다. 웃음에서도 열기가 치솟는다.


바로 그때   속으로  트여오는 은행나무  그루, 아니 저만큼 또한 그루가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임벽당 부부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은행나무  그루이다. 종합 안내도에 그려진 안내도를 살펴본다.

 

김임벽당(1492~1549) 아버지는 의성김씨 김수천(金壽千), 남편은 기계유씨(杞溪俞氏) 유여주(兪汝舟)이다. 부여에서 태어나 혼인 후로는 서천 비인현에서 살았다.


증조부 김승로와 조부 김축에게서 글을 배웠으며, 남편 유여주는 1518 18세에 현량과에 추천되어 이름이 높았으나. 기묘사화에 연루하여 고향 비인에 은거하게 되었다.  도화동(桃花洞) 이화동(梨花洞)이란 이름에서 엿볼  있듯이 배꽃과 복숭아꽃이 더불어 피어난 마을이었다.



 근처에 연못을 만들고,  가운데 소나무와 대나무를 심어 선취정(仙醉亭) 임벽당(林碧堂) 조성하였다 하니  선취와 임벽의 멋은 과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500  은행나무  그루가  취감(取勘)으로 남아 마을을 지키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은행나무는 500 년을 그렇게 지키고 있으면서도   마디의 말도 없다. 높이가 25m, 둘레가 8.4m 되는 거대한 밑동에 수없이 많은 싹을 튀우고 있는가 하면 반세기 500  동안 눈비바람에 맞서온 상처 사이로도 꿋꿋하게 우우우 움돋아내는 일을 주저하지 않고 있다.


  마디 허투로 침묵을 깨뜨리지 않은  꼿꼿하게  있는 은행나무의 올곧은 모습이야말로 거대한 침묵의 표상이라 아니할  없다. 일찍이 말하는 것은 인간으로부터 배우고, 침묵은 ()들로부터 배운다고 한다.


그렇다면  은행나무가 침묵으로 일관하며 무럭무럭 자라나는 동안 임벽당은  허구한 세월 동안 말하는 것을 침묵으로 배우면서  침묵으로 시를 써온 것은 아닐까. 둘레에 새겨진 시비군(詩碑群)들이 마치 은행나무와 비견(比肩)하며 침묵과 지혜를 가르쳐주고 있는 것만 같다.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임벽당의 한시는 모두 7, 일상의 지혜로운 삶의 이야기와 침묵의 요령이 그대로 새겨져 있다.


임벽당의 한시는 1683(숙종 9) 7대손인 유세기(兪世基,1653~1737) 편찬한임벽당 칠수고(林碧堂七首稿)》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 수록된 한시 7수는 1652년에 명나라 때의  2,000명에 이르는 시인들의 시작품으로 엮은 청나라 전겸익(錢謙益)열조시집列朝詩集 실린 것을 1683(숙종 9) 서장관 김두명이 중국사행을 다녀오면서 이것을 발견하고 유세기에 보여줌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열조시집列朝詩集 <별증別贈> <빈녀음貧女吟> <고객사賈客詞>  3수가 수록되었고, 조선시대 문신·문인 허균이 정도전에서부터 권필에 이르는 35()  체시 877수를 수록한 시선집인국조시산國朝詩刪 실린 <증질자贈姪子> <증별종손贈別從孫> 2, 그리고 <제임벽당題林碧堂> 2수는 임벽당이 베개에 자필로 수놓은 것을  200 년간 후손들이 보관해 내려오면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임벽당은 (), (), (), 자수(刺繡) 두루 뛰어났다고 전한다. 7   여인으로서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시작품 <빈녀음(貧女吟:가난한 여인의 노래)> 살펴본다.

 

地僻人來少(지벽인래소) 으슥하고 외진 곳이라 오가는 사람이 적고

山深俗事稀(산심속사희) 산은 깊어 세속의 일이 전혀 없네

家貧無斗酒(가빈무두주) 집안이 가난하여 넉넉한 술조차 없으니

宿客夜還歸(숙객야환귀) 자고  손님조차 밤에라도 돌아가네

-[貧女吟(빈녀음: 가난한 여인의 노래)] 전문

 


깊은 산골에 살고 있는 가난한 여인의 삶의 모습이 그대로 엿보이는 오언절구(五言絶句) 한시이다. 그러나 비록 가난하지만 기품 있는 삶의 모습이 엿보인다.


으슥하고 외진 곳에서 사는 탓으로 찾아오는 사람이 적다고는 하나, 그것이 오히려 속세와 거리가 멀어 결코 속박되거나 이끌리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삶을 보여준다. 이는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키며 지내는 아녀자로서의 기품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넉넉한 술조차 준비할  없을 정도의 가난한 살림으로 손님조차 밤길을 떠나버리고는 있으나, 그것이  삶의 모두가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요란하지 않고 단출하면서도 아담하고 깨끗하며 곱고 맵시가 있는  여인의 처지를 빗대어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생계유지의 어려움 속에서도 오지의 삶이 가난하다는 푸념으로 들리지 않는다.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지키며 즐기는 있는 듯한 모습이기도 하다.

 

은행나무 밑으로부터 물러나와 임벽당 정원에 든다. 문득 수풀 속에서   마리가 갑자기 지축을 박차면서 뛰어나올  앞다리를 번쩍 들고 있다. 힘찬 발놀림이다. 푸른 초원을 내달리며 어쩌면 부군 유여주(兪汝舟) 높은 호연지기에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렇다. 세상에는 말을  알아보는 백락(佰樂) 같은 사람이 있음으로 해서 천리마의 존재를 알게 되듯 말을 알고 말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천하마(天下馬) 저절로 () 있어서  모양은 마치 무슨 근심이 있는  무엇을 잃은 ,   몸을 잃은 듯한 것이다. 그런 놈이야말로 모든 말에서 뛰어나서  달림은 바람처럼 빨라서 그칠 바를 모르는 것이다라고장자(莊子)》 <서무괴편(徐無鬼篇)> 말한다.


무엇보다도 임벽당의 시작품 속에 나타난 삶과 인생의 일면을 품고 있는 시비군(詩碑群)으로부터 번득이는 지혜로움을 발견한다. 시비는 모두 7, 임벽당의 모든 시작품이 제시되어 시세계를 한곳에서 엿볼  있게 한다. 서예가 국당 조성주(匊堂 趙盛周) 힘찬 붓놀림이 시공을 초월하여 내달리는 듯한 돌새김으로 드러나고 있다.



 또한 일품이다. 임벽당의 시가 맑고 깨끗하기만  청명한 하늘과 어울리도록 부드러운 온기(溫氣) 알맞게 품고 있다면, 국당의 글씨는 길게 뻗쳐 있는 장림(長林) 숲에서 가뜩이나 구름 끼어 흐려버린 담천(曇天) 대담하게 뚫어버린 채로 눈부신 햇살 같은 붓놀림에 힘을 가하고 있다.  여세(餘勢) 가히 시와 서예라는 예술적 조화를 극명하게 느끼도록 해준다.


시비군으로부터  눈을 돌려 정자를 바라본다. 그리고 서서히 발걸음을 옮긴다. 사면으로 둘러싸인 초여름의 물빛에 자못 아롱거린다.


그윽한 연꽃의 향기는 만날  없었으나 임벽당의 시작품에 서린 향기가 온갖 물속의 풀향기와 함께 풍겨 나오는  건듯 부는 바람이 시원하고 부드럽다.


어릴 적이라면 어레미로 송사리라도 잡아내었을 같은 작은 개울을 건너 청절사로 향하는 발걸음 위에 은행나무 우듬지에서 속살거리는 바람소리가 내려앉는다. <下편에서 계속>

 


임벽당 은행나무

                             구재기

 

마음먹기에 따라 

기쁨과 아픔 사이를 오가는 하루하루

삶을 모르면서 살아갈  있을까

거푸집에서 태어나지 않은 생이라면

생명을 가진 것은 모두

삶의 흔적을 남겨놓는 

반만 년을 살아온 목숨이라거나

겨우  세기도 살아갈  없는 몸이래도

바람 맞아, 비를 맞아, 눈보라를 맞아

살가죽이 터지도록

아옹다옹 몸집을 쥐틀면서 살아가는 

뿌리에 움을 북돋워 기르고

허리춤에 푸른 잎을 튀우고

잘못된 가지를 자르다 보면

온전한 하루도 제대로 넘길 수는 없다

지나온 발자취를 바르게 보고 

빛이 되는 삶이 

어떻게 오는가를   있을까

미리 드러내지 않고 

넌지시 알려지는 덧대던 생각으로

떳떳하지 못한 잇댐으로 

지금  자리 번거로이 

티끌을 일으키며 살아갈 수는 없다

어루만지듯 스스로를 다스리고 

돌보아 거느리고 길러온 세월은 

바로 여기, 거대한 

푸른 옥돌집[碧堂]  채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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