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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기획탐방】동백정冬柏亭 동백꽃을 찾아서...시인 구재기와 함께하는 '舒川 山河(서천산하)'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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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 동백정冬柏亭 동백꽃을 찾아서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마량리 313-4

 

아낌없이 절정의 순간을 버릴 줄 아는 동백나무 동백꽃. 수없이 많은 꽃들이 제 아름다움을 돋보이며 향기를 내뿜으며 마냥 화냥기를 엿보이다가 그 자리에서 꽃잎을 하나 둘씩 떨어뜨리면서 추하게 고스라지거나 말라 붙어버리는데, 동백은 절정의 아름다움일 때 통째로 뚝, 떨어진다.


뇌성벽력이라도 몰아칠 듯이 뚝, 거친 바닷물결을 달래기라도 하듯이 천인단애의 절벽 아래 철썩, 붉은 꽃송이를 내던져놓는다.

 



2015419.


산애재蒜艾齋에 반가운 손님이 오셨다기분이 매우 좋았다. 내외분이 오셨다. 내가 좋아하는 선배 시인 두 분의 내외였다. 내가 퇴임 전 2007년도부터 아버님께서 물려주신 고향집을 세칭 리모델링하고 산애재蒜艾齋라는 당호를 붙인 다음 각종 야생화와 정원수룰 가꾼다는 소문에 격려차 오신 것이었다. 그러하거니와 어찌 반갑지 아니하겠는가?


서천 기차역 도착예정 시각에 맞추어 서천역으로 나가고, 반가운 악수를 나눈 다음 곧바로 찾아간 곳은 바로 동백정冬柏亭, 그 무리진 동백숲의 동백꽃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서천을 출발하여 한국관광공사 100대 드라이브 코스로 선정된 서천의 배롱나무길을 달려 나갔다. 멋진 해변을 옆으로 끼고 달리면서 한 여름의 새빨간 배롱나무 가로수길을 머릿속으로 그려볼 뿐이었다.


아직 새잎을 조금씩 내밀기 시작하는 배롱나무들을 바라보면서 바닷바람과 가슴을 마음껏 마주하였다. 그러나 저게 뭐람? 흡사 호러영화의 한 장면에서나 만날 수 있는 거대하고 흉포한 괴물 모습을 하고 있는 굴뚝 하나가 푸른 봄하늘 사이를 뚫고 있다. 쉬지 않고 토해내고 있는 연기 줄기가 순식간에 온 하늘을 덮을 듯이 희뿌연 연기를 토해내고 있다.



하필이면 수백 년 동안 눈비와 바람과 서해바다의 푸른 물결과 호흡하며 조상 대대로 물려온 자연 유산 동백군락지 바로 옆에 화력발전소가 세워져 있단 말인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중부발전 서천 화력발전소의 담벼락에 붙어 있는 동백정의 옛 모습을 사진으로 그려보면서 동백정으로 오르는 돌계단을 밟아가는 동안에 아려오는 가슴은 숨길 수가 없었다. 몇 계단을 오르니 안내문이 보인다.

 

[마령리馬梁里 동백나무숲]

천연기념물 제169. 지정년월일: 196541. 위치: 서천군 서면 마량리 산 14. 수량: 85. 면적: 8.250. 8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8.250의 면적에서 자라고 있다.


서쪽은 바람이 강하여 몇 그루만 남아 있고, 동쪽에는 70여 그루가 분포하고 있다. 차나무과()에 속하는 동백나무는 키가 7m까지 자라나는 난대성 상록엽수지만 이곳의 동백나무는 강한 바람 때문에 키가 2m 내외이며, 옆으로 퍼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약 500년 전 마량의 수군첨사(水軍僉使)가 꿈에 바닷가에 있는 꽃 뭉치를 많이 증식 시키면서 마을에 항상 웃음꽃이 피고 번영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고 바닷가에 가보니 정말 꽃이 있어 증식시킨 것이라고 전해져 온다.


그 뒤 마을 사람들은 매년 음력 정월에 이곳에 모여서 고기가 많이 잡히고, 바다에서 무사하게 해달라고 비는 제사를 지내왔다고 한다. 현재 이 숲은 마을의 방풍림(防風林) 구실을 하고 있다.

 

이 동백나무숲은 방풍의 목적으로 심어졌다 하나 방풍의 기능을 찾아보기 어렵다. 둔중한 화력발전소가 버티어 있으니 동백정 동백나무 숲을 배경으로 삼아 바다를 벗할 주민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깊은 곳으로부터 차오르는 아쉬움과 답답함이 함께 몰려오는 가슴을 억누르면서 돌계단을 딛고 오르려니 동백정이라는 정자가 눈앞으로 다가온다. 숲 정상의 동백정(冬柏亭)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中層)누각이다. 누 아래 기둥 사이로 오력도가 아름답게 보인다.



가지를 척 늘어뜨린 곰솔 사이로 끊임없이 몰려오는 검푸른 바다의 흰 물결은 대체 무어라 무어라고 저리도 외쳐대는 것일까. 물질문명의 편리성에 이미 길들여버린 군상들의 탐욕에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 자연의 준엄한 격노의 외침이요 절규라는 생각에 문득 흘러내리는 이마의 땀방울을 훔친다.


동백정의 계단을 오르내리고는 문득 출입금지를 알리는 문구를 바라본다. 차마 밀치고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허리를 구부려 동백나무 밑을 내려다본다.


4월의 봄볕조차 거부한 채 동백과 동백 사이에 펼쳐놓은 비밀의 동백 광장이다. 수백 년의 세월을 소중하게 끌어안은 채로 낮으막하게 구부려 앉은 동백나무의 밑동은 광장을 지켜온 육중한 근육질을 보이면서 오통통하다 못해 뚱뚱해버린 동백의 알종아리로 보인다. 이곳에서 동백과 동백들은 제 몸으로 장막을 둘러치고 무슨 구수회의에 열중하고 있는 것일까, 광장 안에는 짙은 그늘 속에 묻혀 한낮임에도 어두컴컴하기만 하다.


동백 광장 곁으로 용왕을 위해 제를 올리는 마량당집이 보인다. 안내판의 문구와는 달리 동백에 얽힌 또 다른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500여 년 전 이 마을 사람들은 뗏목을 타고,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를 하였는데 바다에 휩쓸려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던 중 남편과 자식을 잃은 한 노파가 그 앞바다에서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용왕을 잘 받들어 모셔야 바다의 거친 화()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자, 꿈속에서 백발노인을 만나 뵙게 되었다. 백발노인의 현몽으로 해안사장에서 널에 들어있는 선황 다섯 분과 동백나무 씨앗을 얻었다. 선황은 신당을 지어 모시고, 동백나무 씨앗을 신당 주변에 심었다. 동백나무는 무럭무럭 잘도 자라났다. 무려 85주나 되는 동백나무는 거찬 바닷바람 앞에서 스스로 몸을 낮추어가면서도 오랜 세월을 묵묵히 견뎌나갔다.


동네사람들은 매년 정월 초하룻날 신당에 올라 초사흘날까지 신께 제사를 지낸다. 그 후부터 고기잡이에서 어떠한 화를 입지 않았으며, 오늘날까지 그 풍어제는 계속되고 있다.


풍어제가 시작되기 며칠 전부터 집집마다 쌀 한 되씩 거둬들여 용왕제의 경비를 마련하고, 신당부근에 수십 개의 어선깃발 풍어, 만선을 꽂아 제를 알린다. 화주, 화장(선주의 일을 도와주는 사람), 당굴(대잡는 사람) 2~3명 등의 의상 준비 등 제반 준비가 끝나면, 굿은 시작된다. 선창제, 독경, 대잡이, 마당제, 용와제, 거리제로 이어진다.

 


신당(神堂)의 문틈으로 살짝 안을 들여다본다. 그러나 내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보여주지 않는다. 어찌 세속의 탐욕에 젖어있는 범인에게 함부로 내부를 보여줄 수 있으리오. 씁쓸한 마음으로 고개를 돌려 동백을 본다. 서서히 벙그러지고 있는 동백의 붉은 입술이 보인다.


봄볕에 젖어든 동백의 입술은 더욱 붉어져 있다. 그렇다. 저 입술이 한창일 때 동백은 통째로 떨어지리라. 아낌없이 절정의 순간을 버릴 줄 아는 동백나무 동백꽃. 수없이 많은 꽃들이 제 아름다움을 돋보이며 향기를 내뿜으며 마냥 화냥기를 엿보이다가 그 자리에서 꽃잎을 하나 둘씩 떨어뜨리면서 추하게 고스라지거나 말라 붙어버리는데, 동백은 절정의 아름다움일 때 통째로 뚝, 떨어진다.


뇌성벽력이라도 몰아칠 듯이 뚝, 거친 바닷물결을 달래기라도 하듯이 천인단애의 절벽 아래 철썩, 붉은 꽃송이를 내던져놓는다. 그렇게 겨울을 이기고 봄을 맞아 하나 둘씩 붉은 꽃송이를 벙글다 보면 동백의 두터운 잎 표면에서는 진한 녹색의 광택이 좌르르 흘러내린다


 어느 곳의 동백들보다 빽빽하게 매달아놓은 잎 사이로 동백정 동백은 늦은 겨울부터 늦은 봄에 이르기까지 절정의 순간을 가장 아름답게 아낌없이 버림으로써 새로운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는 것이다.

 

 

동백정冬柏亭 동백꽃

                                  구재기

 

빛깔과 향기가 한창 힘찰 때

한 세상을 뒤로 한 젊은 죽음은

결코 슬퍼할 일만이 아니라는 걸

사월의 끝머리 어느 날

서천의 동백정 동백꽃을 보러왔다가

꽃처럼 아름답다는 걸 알았다

 

성한 모습 그대로 간직한 채

통째로 떨어진 동백꽃을 모으다 보면

모든 사람들이 아쉽다 한숨하고

동백정 동백꽃 아래로

끊임없이 출렁여 오는 바닷물결에

취하는 까닭도 알아차렸다

 

문자를 세우지 아니하고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

본성을 바로 보일 수 있다는 것

그것밖에는 아무 것도 만들지 않았다는 것

얼마나 아름다운 마무리라 하겠는가

 

천인단애 아래로 툭, 떨어지는

동백정 동백꽃 붉은 송이 송이를 따라

곰솔 한 그루 시꺼먼 어깨죽지 하나 뚝,

꺾어, 부끄러운 듯 뛰어내릴 듯 내던져

젊어서나 늙어서나 여전히 한창인

푸른 바닷물결 흰 자락에 묻히는 걸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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