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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탐방】시인 구재기와 함께하는 '서천 산하(舒川 山河)'...003. 기벌포 해전(伎伐浦 海戰) 전망대에 올라


003. 기벌포 해전(伎伐浦 海戰) 전망대에 올라 -충남 서천군 장항읍 장항산단로34번길 74-45(장항읍 송림리 산 58-48)


201966일 수요일.


초여름의 날씨는 오랜 가뭄에 굶주렸던 물줄기를 만난 메마른 땅처럼 온몸에 상큼함을 안겨준다.


가벼운 차림으로 문을 나선다. 해마다 음력 420모래의 날이라고 해서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들이 수십 리 새벽길을 열어 가던 바로 장항송림백사장을 향한다.


밭이며 논이며, 집안 살림이며 지친 삭신을 모래로 찜질을 하면 효험이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송림백사장의 모래는 고려시대 정 2품 평장사 두영철이 이곳으로 유배를 와서 모래찜질로 건강을 되찾았다고 하지 않는가.


이곳의 백사장 모래는 염분과 철분, 그리고 우라늄 성분이 많아 각종 질병에 효험이 있다 한다. 특히 한해 중 모래의 날에 모래찜질을 하면 만병에 좋다는 풍속이 있다.



송림백사장의 사구를 이루고 있는 곳은 곧바로 흑송의 숲길에 이른다. 수령 40~50년 된 흑송(일명 곰솔) 13만여 그루가 하늘로 치솟아 이룬 그림자 밑으로는 싱싱한 맥문동이 바닷바람에 쉬지 않고 온몸을 흔들어대는 맥문동 밭이다.


그 흔들어대는 모습은 흑송의 상큼한 치톤치드의 맛과 더불어 푸르다 못해 짙푸르러버린 솔숲의 향기와 함께 진 흑송의 성의 보리 이곳에는 서천의 명물인 장항 스카이워크가 놓여있다.


장항스카이워크는 높이 15m, 길이 약 250m 길이, 매표소 옆 91개의 나선형 계단을 걸어 올라가서 바닷가 키 큰 해송의 숲 위로 가로질러 바다로 이어져 있다.



바닥은 나무 데크 부분과 구멍이 송송 뚫린 철판으로 돼 있고, 난간은 강화유리와 철판으로 돼 있어 안전을 도모하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스릴 넘치는 발걸음의 촉감을 느낄 수 있다.


바다 안쪽까지 나간 부분은 물이 빠졌을 때는 갯벌 위를 걷는 기분이 들지만, 물이 들어왔을 때는 바다 위를 걷게 되는데, 흑송의 무리로부터 풍겨오는 솔향기를 맡으면서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는 기분은 힐링의 참맛을 맛보기에 충분하다.


스카이워크의 발밑으로 푸르다 못해 검푸른 해송이 이루어놓은 100m시인의 하늘길그리고 철새들이 하늘 위로 훨훨 날아가는 철새 이야기를 이루어주는 철새 하늘길’ 100m, 그리고 출렁이는 푸른 바닷물결을 굽어보면서 빠져드는 착각을 불러일으켜주는 바다 하늘길등으로 이루어 놓고 있거니와 온통 하늘길이란 이름이 붙여진 장항 스카이워크에 오르면 해송 숲과 탁 트인 하늘과 바다와 함께 역사의 숨소리까지도 고스란히 모을 수가 있다. 이보다 어찌 더 시원하고 아찔한 재미가 있을 수 있겠는가.



장항스카이워크는 또 다른 이름에는 기벌포 해전 전망대라는 이름도 있다. 이 기벌포(현 장항 금강하구 일원)에서 과거 7세기 중반 백제와 일본, 신라와 당나라가 한반도의 패권을 놓고 동북아시아 최초의 국제전을 벌였던 곳이다.


특히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한반도 지배야욕을 드러낸 당나라 군대를 신라가 백제유민과 더불어 격퇴함으로써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룰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하여 한반도 내에서 진정한 의미의 민족의 통일을 이룩하는 계기를 이룬 곳이 이 기벌포이기도 하다.


기벌포의 위치에 대해서는 약간의 이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백강(白江)은 곧 지금의 금강이고, 금강의 하구가 곧 기벌포라고 알려져 있다.


고구려·신라·백제가 서로 자국의 발전을 노려 싸우던 중 553년에 신라·백제 공수동맹(攻守同盟)이 와해되어 더욱 상호 항쟁이 격화된다.



이에 648년에 신라는 당나라와 군사동맹을 맺은 후 6607월 나당연합군을 결성하여 백제를 침공할 때 기벌포를 지키지 못한 백제는 나당연합군에게 사비성을 쉽게 점령당하였던 바, 당나라 장군 소벙장은 산둥반도를 출발하여 덕적도에 도착한 다음 기벌포로 들어왔는데, 해안이 진흙탕이어서 빠지므로 다닐 수 없어 버들자리를 펴 군사를 나오게 하였다고 한다.


기벌포 백제 수군들은 당나라 장수 소정방을 맞이하여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결국 패배한다. 그 후 소정방은 백제 의자왕과 신하 93, 군사 2만인을 이곳 기벌포를 경유하여 당나라로 떠나고 말았으나 백제인의 가슴은 얼마나 쓰리고 아팠을 것인가.


그러나 668년에는 나당연합군은 고구려를 멸망시킨다. 이에 따라 당나라는 백제와 고구려 지역을 직접 지배하고 신라까지 복속시키려 하면서 신라의 자주성을 빼앗은 것은 물론 고구려의 평양 이남과 백제 땅을 신라에 주기로 약속한 영토분할 약정을 위배하니, 이에 격분한 신라는 당나라에 선전포고를 하고 대당전쟁(對唐戰爭)을 감행하기에 이른다.


신라의 대당전쟁은 670년부터 676년까지 7년간 지속된다. 신라는 북쪽 경계로 남하하는 당나라 군대를 맞아 675년 천성(泉城)과 매소성(買肖城)에서 크게 이긴다.


이에 당은 육로로 신라의 한강방어선을 돌파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하고 67611월 금강 하구 기벌포에 설인귀(薛仁貴)가 지휘하는 당 함대를 침입시켜 신라의 측면을 공격한다.


기벌포는 백제의 수도인 부여 방어를 위해 중시되던 지역이다. 이곳은 강의 하구라기보다 바다의 만()이라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지역으로 기벌포를 장악하면 서해를 남북으로 양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서해의 제해권과 관련해서도 아주 중요한 군사 요충지였다.


앞서 신라는 673년에 함선 1백 척과 해군을 서해에 배치시켜 방비하고 있었다. 676년 설인귀의 당나라 해군이 기벌포로 내려오자, 사찬(沙飡) 시득(施得)이 함선을 이끌고 기벌포에서 설인귀군과 싸웠으나 패배하였지만, 크고 작은 전투 22번에 걸쳐 결국 당나라의 수군 4천여 명의 목을 베고 승리하고 만다.


이 기벌포 전투에서 결국 당나라가 한반도에서 물러감에 따라 신라는 삼국통일을 이루게 되었고, 한 민족이라는 민족개념이 생성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셈이다.


장항스카이워크에 올라 옛 기벌포의 격전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면서 출렁이는 바닷물결을 바라본다. 멀리로부터 밀려오는 물결이 흰 거품을 토해내면서 끊임없이 해안으로 몰려온다.


그리고 산산히 부서져 어떠한 흔적을 남겨놓지 않는다. 짙푸른 흑송림을 집어삼킬 듯하다가 스스로 사라지는 물결, 마치 평화를 앞세워 피를 부르는 전쟁의 모순처럼 거침없이 밀려왔다가 덧없이 묻혀버리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사실을 나선형 계단을 타고 내려온다.


송림백사장의 사구에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흑송 밑에서 헤살거리는 맥문동의 푸른 잎이 물결처럼 출렁거린다.


뿌리줄기에서 뭉쳐 나온 짙은 녹색으로 당당히 맞서고 있는 맥문동은 흑송의 그늘아래에서도 거침이 없다. 끈질긴 그 생명력에 가슴을 열어 맞는다.

 


기벌포伎伐浦에서

                                 구재기

참된 전쟁은

물결의 거품을 꿈꾸지 않는다

다만 바람으로 가득한

물결 소리를 불러 모을 뿐이다

 

바람 속에서

평화도 화합도 설하지 않는다

그렇다, 전쟁은

다만 도덕을 설하지 않는다.

 

도덕은 전쟁 뒤에

저절로 나타나는 것

 

항상 중심에

머물 것을 가르친다

푸르다 못해 검은 솔숲은

그늘처럼 타오르던 웅지를 접고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러서야

평화는 과거의 전쟁을 부르고

현재의 물결을 뛰어넘고서야

비로소 미래를 꿈꾸게 한다

 

무엇이든 외칠 수 있다

목청을 높여 노래할 수 있다

발 아래로 굽이치는 물결은

예나 지금이나

긴 시간이 지나도 꺼지지 않는다

연기와 불꽃은 하늘을 붉게 타오르고

바닷물마저 핏빛으로 물들인다

 

이제는 하늘 높이에서

굽어볼 수 있는, 저기 저, 기벌포

푸른 바다 물결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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