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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얼마 전 어느 분이 특별한 추석 선물을 보내 주셨습니다. 720 페이지짜리 벽돌 책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벽돌 책이란 500페이지를 훌쩍 넘는 두꺼운 책을 말합니다. 책 제목은 [BOOK of the DEAD]입니다. 한국말로는 [뉴욕타임즈 부고 모음집]입니다.

이 책은 1851년 9월 18일, 뉴욕 타임즈 창간일부터 2016년 5월 31일, 이 책의 편집일까지 뉴욕타임즈 부고 기사 중 업적, 명성, 그리고 사회에 미친 영향을 기준으로 선택된 인물에 대한 부고 기사 모음집입니다.

저는 이 책을 훑어보다가 우리나라도 이런 책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우리나라 어느 일간지 간부에게 이 책을 소개하며 우리나라 언론사도 이런 책을 만들면 좋겠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이런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서양 신문은 obituary를 중시해온 전통이 있어요. 뉴욕타임즈엔 obituary 전문기자가 몇 사람 있어요. 심지어 특정인 obituary를 쓰기 위해 그 사람을 수십 년 지켜본대요. 우리도 부고 기사를 많이 쓰지만 문화와 역량이 크게 달라요."

이 문자를 보고 다시 이 책을 보니 목차 다음 페이지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obituary / 訃告 / 부고 / 사람의 죽음을 알림, 또는 그런 글 / 이 페이지를 열면 당신은 사자(死者)의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문장들로 응축된 어떤 이의 삶 속으로"

서문을 읽어보니 뉴욕타임즈의 부고 기사가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20세기 초반 들어서였다고 합니다. 특히 유려한 문체의 부고 작성자로 명성을 얻은 올던 휘트먼은 망자의 주변 인물을 만나기 위해 먼 곳까지 직접 찾아다니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아침 햇살이 소박한 시골집 입구를 넘어 임종을 기다리는 가족들 위에 머물렀다." 서문에 소개된 1885년 미국 18대 대통령 율리시즈 S 그랜트 대통령의 부고 기사 일부입니다. 어느 소설의 한 대목 같습니다.

추석 선물로 이 책을 보내 주신 뜻은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그분에게서 수십번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 강의에서 배운 내용 중에 늘 저의 머리에 머무는 구절이 있습니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번역하면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로마의 개선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가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외쳤다는 말입니다. 아마 선물로 주신 "BOOK of the DEAD"는 제가 인생 행진을 할 때, 매일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쳐주어야 할 'Memento mori'를 대신해 줄 것입니다.

저는 몇 인물의 obituary를 읽고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이 인물들의 정보는 그들의 전성기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뿐입니다. 출세 전이나 은퇴 후의 삶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 인간의 인생은 출생부터 사망까지이고, 그 전 생애를 가로지르는 길(road) 같은 것이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오래전에 읽은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의 명저 [인간의 품격 The road of character]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최근 나는 이력서에 들어갈 덕목과 조문에 들어갈 덕목에 어떤 차이가 있을지 줄곧 생각해 왔다. 이력서 덕목은 일자리 구하고 외적인 성공을 이루는데 필요한 기술들을 말한다.

조문 덕목은 그보다 더 깊은 의미를 지닌다. 장례식장에 찾아온 조문객들이 고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오는 덕목들로 한 존재의 가장 중심을 이루는 성격들이다. 그이가 용감하고, 정직하고, 신의가 두터운 사람이었는지, 어떤 인간관계를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는지 하는 것들 말이다."

그러면서 데이비드 브룩스는 "우리 대부분은 깊이 있는 인격을 기르는 방법보다 성공적인 커리어를 성취하는 방법에 대해 더 분명한 전략을 갖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인격을 연마하는 길'이라는 'road to character'를 자신의 책 제목으로 삼습니다.

결국 누군가의 obituary를 읽으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obituary를 생각하게 되고, 누군가의 obituary에 나타난 그의 삶의 길 road를 살피다 보면 저절로 자신의 지나온 길 road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흔히 그 road의 종착역이 [성공]인 줄 알고 살지만 나이가 들면 그 종착역은 [성공]이 아니라 [인격]임을 뒤늦게 알게 됩니다. "Road to character"

추석날 아버님에 대한 추도 예배를 드리면서 아버님을 회고하였습니다. 그분이 평생에 이룬 일이 아니라 그분이 어떠한 분이셨는지, 우리가 그분에 대한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는지 등을 생각하면서 아버님에 대한 obituary를 마음속으로 써 내려갑니다.

추석은 아마도 우리가 기억하는 조상들의 obituary를 마음으로 다시 읽어보는 시간이 아닐까요? 제가 죽고 맞이하게 되는 추석에는 제 가족들이 저에 대한 어떤 obituary를 마음에 써 내려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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