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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탐방】“화선지에 묵을 세월로 녹여내다”...서천 화양면 '리강미술관' 강계정 관장

적묵법으로 그리며 자연의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느낌 전해
“나를 받아준 금강에게 고맙다” 공직생활 접고 작가로 제2의 인생 도전
강 관장, “서천에서의 삶, 재능기부도 하고 그림 그리며 행복하게 살 것”


[sbn뉴스=서천] 나영찬 기자 = 자신을 ‘소박하게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 칭하는 리강미술관의 강계정 관장을 만났다.

지난 2016년 개관한 충남 서천군 화양면 옥포리 금강변에 자리 잡은 리강미술관은 강계정 관장과 그녀의 남편 이한상 씨의 성씨를 따 이강, 이를 부드러운 발음으로 변환해 ‘리강’이라고 이름 지어졌다. 다른 한편으로는 옥포리의 ‘리’ 자와 금강의 ‘강’ 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강 관장은 “옥포리 주민으로서 주민들과 함께하는 소박한 삶, 스며드는 삶을 살기 위해 이렇게 미술관 이름을 짓게 됐다”고 말했다.


강 관장은 부산 출신으로, 공직에 들어선 후 서울과 대전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살면서 서천을 모르고 살아왔던 그녀는 어릴 적 배웠던 교과서에 나온 장항제련소를 보고 장항은 알았지만 서천은 몰랐다고 한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서천에 오게 되었고 금강을 보게 됐다. 황금빛 갈대, 억새와 푸른 물결이 어우러진 금강을 보고 마음이 너무 편해져 서천의 매력에 푹 빠졌다.

장항 송림리도 가보라는 친구들의 말에 그녀는 송림리 솔밭을 찾게 되었는데, 송림리 소나무의 초록빛과 맥문동의 보랏빛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풍경에 ‘지상에 이런 곳이 있을까’라며 다시금 서천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지금도 송림리 솔밭을 서천의 경치 중 최고로 꼽고 있다.

강 관장은 “‘송림리와 금강 때문에라도 서천에 살아야겠다’ 해서 남편을 졸라 서천에 귀촌했다”고 전했다.


서천에 귀촌하기 전, 강 관장은 서울 조달청 총무과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15년 간 비서실에 근무하는 동안 정부대전청사에 가게 됐다.

대전에 갈 때도 그녀는 싱글이었는데, 대전에 가는 것이 낯설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낯설지 않은 대전에서 남편 이한상 씨를 만나게 되었다.

몇 차례 만나지 않았지만, 남편의 순수한 모습이 마음에 들어 금방 백년가약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이한상 씨가 57세, 강계정 관장이 44세로, 늦깎이 부부의 결혼은 당시 언론에서도 큰 화제가 됐었다.

강 관장은 “남편은 박사까지 하며 강의하고 하느라 때를 놓쳤고, 나 또한 삶의 대한 고민이 많아 결혼이 늦어졌다”며 “외국에 가서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외국어도 배우고 저축도 하고 있던 찰나에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됐는데 큰 행운”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가던 중 그녀의 그림재능에 대해 남편이 ‘아깝다’는 말 한마디를 했는데, 이 말이 그녀에게 크게 다가왔다고 한다.


강 관장은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원서를 가지고 와서는 미대를 가지 않겠냐고 권유해 고민 끝에 2군데 지원했다. 모두 떨어졌다고 생각했지만 두 군데 다 합격했고, 그 중 한남대학교 미술학과에 입학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직장에서 더 열심히 살 것이냐, 재능에 도전해 제 2의 인생을 살 것이냐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지만, 남편도 그림을 택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늦게라도 꿈을 이루고 싶어 모시던 조달청 청장님께 ‘제가 이번 학기부터 공부를 해야겠습니다’하고 대학에 입학하게 됐다”고 전했다.

청장도 그동안 그녀의 재능이 아까웠다며 강 관장의 작가로서의 제2의 인생길에 행운을 빌어줬다고 한다. 45세 만학도지만, 그녀는 열심히 공부해 장학금도 받으며 다녔다. 그동안 채우지 못했던 예술에 대한 갈증을 채우며 대학원까지 진학해 석사 학위까지 얻어냈다.


재능이 출중하다 보니 예술길도 평탄대로였다. 미국 보타닉 가든의 한국화 대전에 교수님들과 단체전에 가게 됐고, 출품을 했는데 ‘한국의 진정한 정서적인 풍경이다’, ‘훌륭하다’와 같은 찬사를 받았다. 당진 대나무 숲의 풍경을 그린 출품작은 포스터로도 만들어지며 여러 매체에 소개됐다고 한다.

이렇게 파란만장하게 작가의 길을 걷게 된 강 관장는 대전, 서울, 강릉에 이어 이곳 서천 리강미술관까지 4번의 개인전과 서울의 롯데호텔갤러리에서 1번의 초대전을 가졌다.

향후 계획에 대해 그녀는 “부산이 고향이다 보니 부산에서 개인전도 하고 싶고, 외국에서 개인전을 열어 한국화를 알리는 것도 꿈이지만, 비용도 만만치 않고 사치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은 세우지 않고 있다”며 “서천에서의 삶이 행복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재능기부도 하고 작품 활동도 하며 즐겁게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많은 작품을 알고 예술을 아는 사람들보다 모르는 분들과 같이 하고 알려주는 게 더 행복하다는 그녀는 미술관을 찾는 손님들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2층에서 차 한 잔을 꼭 대접한다. 자연을 닮은 그녀는 자연의 꾸밈없음을 따라 평소에 화장도 잘 하지 않는다고 한다.

강 관장은 “나에 대한 지원과 믿음을 아끼지 않은 남편과, 재능을 주신 부모님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이다. 나를 받아준 금강에게도 고맙다”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서천에 와 농사짓고 하는 소박한 모습들을 보며 내가 미술관 지으면 저런 분들 초대하면서 차도 대접하고 해야지 마음먹었는데 실현해 행복하다”며 “한 어르신은 ‘살다 이렇게 예쁜 잔에 차 마시는 건 처음이오’라고 말씀 하셨는데 너무 감동받았다. 그래서 어르신들이 오시면 최고로 예쁜 잔에 대접하고 있다”고 전했다.


리강미술관은 상설전시관으로, 평일에는 열려있지만 주말에는 강 관장이 남편과 함께 연로하신 시댁 부모님을 찾아뵙기 때문에 닫혀 있다.

강 관장은 “조금이라도 건강하실 때 식사라도 같이하자는 마음에 시댁을 찾아 토요일에서 월요일까지는 미술관이 열려있지 않다”며 “행사나 모임이 있을 때도 열려있지 않을 수 있으니 찾는 분들의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강계정 관장은 서천 주민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금강의 하늘과 건너편 오성산의 풍경을 보며 소박하게 지내는 게 좋습니다. 주소지도 서천인 화양면 옥포리 주민이니, 주민 분들이 어려워 말고 방문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라도 오시면 차 한 잔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들어오셔서 차 한 잔 드시라고 해도 일 하느라 옷이 지저분해 미안하다고 꺼리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개의치 않으니 편히 들어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주민 분들을 대상으로 작품해설과 그림지도를 할 계획인데 어렵다고 생각해 주저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림은 어렵지 않습니다.

단순히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바로 그림입니다. 우리 미술관의 턱은 높지 않으니 언제든지 오셔서 문화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인다고 말씀 드리고 싶고, 다시 한 번 어려워 말고 언제든지 오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강계정 작가의 4번째 개인전 - ‘삶의 여정’


작년 6월 열린 강계정 작가의 4번째 개인전 ‘삶의 여정’에 전시된 작품들을 소개한다. 강계정 작가는 굳이 작품의 이름을 만들지 않는 편이다. 이는 작품의 제목에 얽매이지 않고 각자의 관람자가 그들의 마음을 통해 자유롭게 볼 수 있도록 한 강 작가의 배려라고 볼 수 있다.

강 작가의 작품들은 작더라도 지역의 상징적인 것들을 그리며 살아가겠다는 마음이 담겨 따듯하다. 전체적인 자연의 흐름을 그리는 강 작가의 작품들은 완성되기까지 적게는 1년에서 길게는 4년까지 걸린다. 작품들은 모두 적묵법으로 그려져 자연의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느낌을 전한다. (적묵법 : 동양화에서 먹을 운용하는 방법 중 하나로, 먹의 농담을 살려 순차적으로 쌓아가듯이 그리며 온화하고 윤택한 먹의 운치를 형성한다.)

아래부터는 강계정 작가의 작품과 그녀의 설명이다.


강 작가의 작품 설명 : 3년 전 집을 짓고 이주하게 되면서 주변 풍경을 보게 됐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매료되어, 서천의 아름다운 금강 주변 풍경을 그려보고자 했는데 마침 가창오리 떼가 날아와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됐다.

때를 지어 암수가 날아오르는 정겨운 모습을 그리게 되었고, 갈대는 시든 때였지만 은은한 금빛의 움직임을 포착해 이를 세밀하게 표현했다. 금강의 물결이 비치는 여유로운 모습은 채색된 물을 제외하고는 수묵으로만 그려졌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반짝이는 황금빛을 볼 수 있다.

갈대의 금빛을 표현하기 위해 금분(金粉)을 먹에 섞어 작업한 것으로 작품에 최대한의 생명을 불어넣었다. 갈대 속 물 비치는 것도 처음부터 진하게 한 것이 아닌 계속 쌓아져 만들어진 색채다.


강 작가의 작품 설명 : 작년에 환갑이 되며 왜 그림을 그릴까, 어떤 화가여야 할까, 나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고민을 많이 하게 됐다. 결정적으로 이 작품을 그리게 된 계기는 친정어머니가 3년 전 돌아가셨는데, 사람이 만나서 같이 살다 헤어지는 데 무상함을 느껴 모든 것을 내려놓으며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대나무 숲속 사계절의 흐름이 작품의 왼쪽에서부터 봄·여름·가을·겨울로 이어진다. 하늘은 해가 떠오르는 여명과 오후, 그리고 저녁까지 표현했다. 새는 화자를 표현한 것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고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삶의 희망이 없었지만, 그 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고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살게 된 것이 그림에 녹아있다. 자유로움의 상징인 새도 흐름에 따라 높이 날아간다.

백로와 대나무는 이면적인 삶을 상징한다. 이 그림은 앞뒤로 그린 작품으로 새와 대나무는 뒷면에서 작업했다. 색을 만들고 작업하느라 먹과 나와의 싸움이 계속됐다. 가장 큰 종이 2매를 사용해 리강미술관에서 만들어진 이 작품은 1년 반 정도 소요됐다. 


강 작가의 작품 설명 : 어머니가 병상에서도 내가 그림 그리는 것을 행복해하셨다. 어머니께서 살아계실 적에 어머니의 고향인 강원도 강릉에서 어머니에게 바치는 3번째 개인전 전시를 했다. 이번 4번째 개인전에서도 어머니에게 바치는 작품을 볼 수 있다.

어머니께서 쓰시던 장롱을 선물해주셨는데, 돌아가시고 나니 내가 ‘어머니에게 드릴게 뭘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어머니의 장롱이 떠올랐고, 어머니가 곁에 계시다면 장롱을 디자인해 선물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이 작품은 장롱의 형상으로 만들어 졌고, 사이즈도 그대로 재현했다. 거북이, 소나무 등 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과,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전깃줄에 앉아있는 참새 등의 새가 오방색으로 날아들었다.

또 남편이 텃밭에서 키우는 상추, 파, 부추에 핀 꽃들도 작품에 녹여냈다. 또 고니가 노는 모습과 기러기의 모습을 금강을 배경으로 해 담아냈다.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보여드릴 수 없는 그림을 그리며 많이 울었었는데, 이제는 어머니께 전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