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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용의 뉴스창

【신수용 칼럼】기업인의 피의사실공표,알권리보다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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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쯤 일이다. 당시 한 신문사 대표이사. 발행인일 때다. 어느 날 대전지검 검사장이 전화를 해왔다. 내용인 즉, 전직 군 최고 수뇌부를 수사 중인데 보도를 자제해달라는 요청이다.


취재와 보도는 편집국장이나 법조출입기자가 있기에 대화를 주선한 것 같다. 왜냐면 검사장의 요청은 흔치 않은 얘기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검사장의 생각은 바르고 감동적이었다.


검사장은 ‘누구를 불러 조사 하네 하고 매스컴을 타게 하는 일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실적, 성과주의에 찌든 대개의 수사기관들이 ‘누구를 조사하네’하며 공표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검·경 수사기관의 대개는 자신들의 실적과 결과가 대문짝만하게 실리기를 바란다. 보도자료는 내지 못해도, 기자들에게 귀띔이라도 해서 취재한 듯 크게 보도해주길 바라는 게 이들 기관이기 속성이다.


그러나 그 검사장은 그와 정반대였다. 검사장은 검사가 수사 중인 사건을 ‘기소 전에’ 보도되면 조사받는 이가 곤란해진다고 했다. 보도 때문에 전직 장성의 신분이 드러나면 그의 삶과 명예는 누가 책임을 질 거냐는 게 요지다.

그는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는 군 장성 가족을 검사장실로 불렀다. 그리고는 “당신네 아빠는 훌륭한 군인이었다. 퇴임 후 살길이 막막한 것을 보고 직속 부하들이 만든 이권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을 뿐이다. 이 일로 아빠의 존경심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위로했다.


대한항공의 고위층인사를 며칠 전 만나 저녁을 함께 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법치국가냐, 언론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느냐는 취중 울분에 부끄러웠다. 그의 얘기는 이렇다. 한진 그룹은 지난해 4월 ‘물 컵 사건’ 이후 1년 동안 11개 정부기관에서 동시에 수사를 받고 있다.


경찰 검찰 관세청 법무부 국토교통부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등 힘 있는 기관이 모두 나서 18차례 압수수색을 당했다.


오너 일가가 포토라인에 선 횟수만 14차례라고 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피의사실이 공표됐다. 회사의 기밀은 국내외 다 노출됐다. 여기에 지난 4월에는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이 유명을 달리했다. 결과는 어땠을 까.


정작 ‘물 컵 사건’은 불기소됐다. ‘땅콩 회항’ 항로 변경은, 그것은 무죄가 확정됐다. 심지어 관세청 일각에서 나온 고 조 회장 자택에 대형금고와 비밀의 방이 있다는 의혹 역시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사실이 아니거나 소문과 다른 게 밝혀졌지만 여론이 들쑤신 지금 어떤 가. 그 기업은 씻기 어려운 불량기업이 돼 버린 것이다. 뿐만 아니다. 여러 기업들이 마치 패륜 집단처럼 매도되는 것도 조사 중인 사건이 사실처럼 공표되기 때문이다.


 세계가 부러워하던 ‘글로벌 초일류기업’ 삼성도 마찬가지다. 삼바(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도 수사가 진행 중이다. 한데 확인이 안 된 ‘가짜뉴스’와 ‘루머’만 부풀려지고 있다.


삼성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성 의혹이 국내외를 넘나들고 있다. 그중에는 ‘최고위 경영자가 증거 인멸에 관여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통화 녹음 파일이 복원됐다’, ‘이부회장의 인수 합병 관여 정황이 포착됐다’는 식의 미확인 내용들이다. 한결같이 무차별적이다. 여기에는 ‘분식회계’가 확정된 것처럼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 1, 2심에서 증권선물위원회의 ‘삼바 대표 해임권고’ 조치 집행정지를 결정했다. 이처럼 분식 여부는 확정되지 않은 것이다. 사실처럼 유포되는 내용의 상당수는 작년 2월 이후 19차례의 압수수색에서 비롯됐다. 이때 확보된 자료의 짜깁기로 의심받고 있다.


그렇다면 법원 증거로도 채택되기 곤란하다는 게 전문가의 예상이다. 이렇게 조사 중인 사항들이 적나라하게 노출되다보니 해당기업은 물론 많은 기업들이 범죄 집단처럼 보인다. 이들 만이 아니다. 숱하게 많은 이들이 재판을 통해 무죄를 받고 풀려난다. 하지만 이미 그에게는 씌워진 범법자라는 이미지 훼손과 멍에는 쉽게 씻을 수 없다. 소명과 항변은 적극 반영되지 않은 채 피의 사실이 신문과 TV를 타고 공표됐기 때문이다.


최근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검·경)수사기관의 불법적 피의사실 공표가 너무 잦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도적 장치마련도 주문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다. 여기에 검·경찰의 위법한 수사내용 유출에 맞서는 반론권을 보장할 것도 주문했다.


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마련도 요구했다. 지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접수된 피의사실 공표 사건은 347건이다. 그러나 단 한 건도 기소되지 않았다. 우리 형법 126조는 이를 명문화하고 있다.


수사기관이 기소 전에 피의사실을 공표할 경우 엄벌에 처하도록 말이다. 이를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로 처벌하게 규정된 것이다.


그런데도 검·경찰은 법무부 훈령에 불과한 ‘수사공보준칙’에 근거, 피의사실 유포 차단에 소극적이었다. 죄의식 없이 검·경 수사기관 발(發)의 피의자의 혐의가 무차별 보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검·경은 여론 악화에 편승 수사를 확대하여 ‘여론재판’으로 몰아간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혐의 사실이 공표는 법관이나 배심원들에게 자칫 예단을 줄 수 있어 위험하다. 공정한 재판이 위협받게 된다. ‘알 권리’ 등을 명분삼아 혐의를 흘리고, 이를 보도하는 행위는 자제되어야한다. 당연히 언론도 알권리만을 외칠게 아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억울하지 않게 인권을 지켜줘야 바른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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