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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탐방】서천 장항읍 아픔과 추억이 공존하는 곳...‘일본식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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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탈의 전초기지였던 ‘장항읍’...‘일본식 가옥’ 유난히 많아
장항 거리가 한눈에...언덕 위 별장 같은 ‘미야자키 농장가옥’
근대 역사 살아있는 장항읍...‘항만축항공사 사택촌’ 등 볼만

[sbn뉴스=서천] 남석우 기자 = 일제 강점기 충남 서천군 장항읍은 우리나라 쌀을 일본으로 보내는 항이었다.

이에 더해 1931년 장항선이 개통되자 충남, 경기 일대의 쌀이 장항읍으로 집결되며 일제의 우리나라에 대한 쌀 수탈의 대동맥 역할을 했다.

또한, 일제의 수탈은 쌀에서만 멈추지 않고 국내의 금, 은, 동 등 비철금속 수탈로도 영역을 넓혔는데 1936년 세워진 장항제련소는 광복 74년째를 맞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에게 일제 수탈의 상징처럼 인식되고 있다. 

이같이 일제의 간섭과 수탈이 유난히도 거셌던 장항읍에는 그래서였는지 그 당시 일본인들의 거주가 많았는데 지금도 장항읍에는 지역 곳곳에 일본식 가옥이 많이 남아있다.


이번 장항탐방에서는 sbn뉴스에서 장항읍에 남아있는 일본식 가옥을 찾아보았다.

먼저 장항읍 화천리 303번지 인근 옛 정의여고 뒤편에 있는 ‘미야자키 농장가옥’을 찾았다. 

이곳은 일제 강점기 50만 평에 달하는 장항읍 간척지 사업을 주도한 일본인 미야자키의 가옥으로 대농장 지주의 집이라고 하기에는 그 규모가 생각보다 그리 크진 않다.


하지만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어 그 당시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을 조망 가치를 생각한다면 외적 화려함 이상의 호사를 누렸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일상거주 목적보다는 별장의 느낌이 더 크다.

하지만 가는 세월을 피할 수는 없는 일.


한때는 많은 이들의 부러움과 집주인의 사랑을 받았을 이곳은 현재 건물이 전체적으로 허물어지고 깎이고 떨어져 나가 지난 세월의 흔적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sbn서해신문기자는 가옥 내·외부를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건물을 감싸듯 덮고 있는 넝쿨을 피해 현관 쪽으로 들어섰다.


현관에 들어서기 전 현관 오른쪽으로 일본식 가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로 만든 붉은 칠을 한 창살이 눈에 들어왔다.


이어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상호 연결된 목조트러스로 정교하게 이어 만든 일본식 건물의 전형적인 지붕틀도 보였다.

가옥 내·외부를 가볍게 돌아보고 나와 마당에 섰다.



거리풍경이 한눈에 시원하게 들어왔다. 

이와 함께 마치 가옥의 정원처럼 붙어있는 솔숲에서는 새들이 연신 지저귀며 날아다녔고 솔 향기 가득한 바람마저 더해 몸과 마음에 상쾌함을 전해주었다. 


미야자키 농장가옥을 돌아본 후 sbn뉴스 기자는 신창리 51번지에 있는 ‘항만축항공사 사택촌’으로 향했다.

이곳은 1930년대 장항항과 장항부잔교 건설을 하던 직원들을 위해 지어진 사택촌으로 과거 장항 지역 내 일본인들이 거주하던 주거단지였다.


사택촌은 현재는 사람이 살지 않아 집이 비어있는 상태지만 일본식 가옥의 표본으로는 그 보존상태가 상당히 양호한 편이다. 

장항읍에는 이 외에도 읍내 곳곳에 아직도 일본식 가옥이 많이 남아있다.

근대 역사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면 장항읍을 찾아보자.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장항읍은 더없이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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