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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80년대 서천 제일의 양조장...장항읍 ‘대동 양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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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갈증·애환·배고픔을 달래주는 고마운 우리 술, ‘막걸리’
술지게미 먹인 돼지...“술 취해 온종일 먹고자 살이 잘 올랐다”
‘대동 양조장’...현재 양조장·돼지 막 등 옛 모습 잘 보존돼있어



[sbn뉴스=서천] 남석우 기자 = 20여 년 전 sbn서해신문 기자가 강원도 어느 산골에서 군 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딱 이맘때의 어느 날, 기상 시간인 오전 6시도 안 된 이른 새벽에 기상나팔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 소리에 곤히 자던 sbn서해신문 기자와 전우들은 정신없이 일어나 연병장에 모였다. 그리고 새벽 어스름에 세찬 눈보라를 맞으며 산 위에서부터 산 아래, 마을 입구까지 눈을 쓸었다. 

그렇게 눈을 쓸며 한참을 내려가 마을 입구에 다다르니 그곳에 조그만 구멍가게가 있었다. 

우리는 이른 시간에 아직 열지도 않은 가게 문을 허세 좋게 두드려 인심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께 막걸리 몇 병과 요기할 만한 안주를 부탁했다.

잠시 후 아주머니는 막걸리와 물에 데친 두부 그리고 묵은지 한 포기를 가지고 나오셨다.

그때 전우들과 살얼음이 언 묵은지에 두부를 싸서 입안 가득 넣고 막걸리를 들이켜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미소를 짓게 된다.

이번 ‘장항탐방’에서는 sbn서해신문 기자의 군 생활 추억이 깃든 술, 막걸리의 흔적을 따라 충남 서천군 장항읍 성주리 ‘대동 양조장’(이하 양조장)을 찾았다.

양조장을 둘러보기에 앞서 예전 이곳이 활발히 운영되던 시절, 양조장 집 며느리로 시집와 일을 거들었다는 이현숙(82)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82세라는 연세가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우셨는데 성주 2리 주영신 이장의 말에 따르면 할머니가 젊으셨을 적에는 미스코리아 못지않게 예쁘셨다고 한다.

이 할머니는 “이 집으로 시집올 때 남편 선을 보기에 앞서 시아버지 선부터 보고 결혼했다”라며 “부잣집에 시집오니 할 일이 말도 못 하게 많았는데 아버님께서 워낙 부지런하셔서 그분 앞에서는 쉬지도 못하고 무슨 일이라도 찾아서 해야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양조장 일 대부분은 인부들이 해서 내가 할 일은 별로 없었지만 날마다 20명이 넘는 인부들 아침 점심 밥해주는 게 제일 힘들었다”라고 그때를 회상했다.



이때 곁에서 듣고 있던 마을 한 주민은 “그 시절 ‘대동양조장’은 서천군에서 제일 큰 규모의 양조장이었다”라며 “양조장 규모 자체도 컸지만, 매일 술지게미가 나오다 보니 돼지 수십 마리를 키웠는데 돼지들이 술지게미를 먹고 술에 취해 이리 비틀 저리 비틀대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온종일 잠만 자기도 했다. 돼지들이 그렇게 매일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다 보니 살이 잘 올랐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양조장에 얽힌 어린 시절 추억 한 토막을 꺼내놓기도 했는데 “그 시절에는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아 배고프던 시절이었다”라며 “양조장에서 찐 술밥을 말리려고 창고 안에 널어놓으면 동네 친구들과 열린 창고 문으로 몰래 들어가 술밥을 훔쳐 먹고는 했다”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sbn서해신문 기자는 이 할머니의 허락으로 양조장을 둘러볼 수 있었다. 



양조장 마당에 들어서니 마당 한켠에 겨울 한낮 햇살을 가득 머금은 장독대가 정겨웠다.

마당을 지나 양조장 건물로 들어가니 그곳은 햇볕이 들지 않아 조금 어두웠다. 

하지만 이 할머니와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양조장 안 모든 것이 명확하게 눈에 들어왔다.



목욕탕 욕조만큼이나 커다란 쌀 씻던 독, 술밥을 찌던 아궁이, 술밥 말리던 창고 등 모든 시설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지금 당장이라도 막걸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양조장을 나와 예전에 술밥을 먹여 돼지를 키웠다는 돼지 축사를 둘러보았다.

축사는 상상했던 것보다 규모가 상당히 컸는데 술 취한 돼지 수십 마리가 이곳에서 지냈을 걸 생각하니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돼지의 모습이 떠올라 혼자 실없이 웃었다.

아무렇게나 막 걸러 만들었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술, 막걸리. 

막걸리는 값도 싸고 배고플 때는 요기(療飢)도 할 수 있어 예로부터 서민의 갈증과 애환과 배고픔을 달래주는 고마운 우리 술이다.

sbn서해신문 기자에게 이번 대동양조장 탐방은 화려하진 않지만 수수함이 담긴 서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값지고 귀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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