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 흐림서산 3.5℃
  • 대전 3.3℃
  • 홍성(예) 3.6℃
  • 흐림천안 2.7℃
  • 흐림보령 3.0℃
  • 흐림부여 3.0℃
  • 흐림금산 4.4℃
기상청 제공

오피니언

[칼럼] 귀촌 3년

URL복사


판교 산자락에 자리 잡은 지 3년이 되었다. 3년이면 훈련병도 군복을 벗는다. 집을 짓기 전에 주민등록부터 옮겼으니 서류상으로는 4년이다. 이제 잉크는 말랐지만 시골사람 행세하려면 아직 멀었다.


나의 시골행에 대해 지인들은 대개 부러워했지만 몇은 시큰둥했다. 지금은 시골과 사랑에 빠져있어도 3년을 못 버티고 올라올 것이라고 웃으며 악담한 이도 있다. 그 예언은 다행히 빗나갔다. 그러나 못 견딜 만큼의 고난을 겪으리라는 예측은 맞았다.


지난 3년은 고난의 행군이었다. 시행착오를 오로지 몸으로 감당했다. 한옥을 배우러 가서 손가락을 잘린 것을 시작으로 통나무 옮기다가 허리에 금이 가고, 들깨 베다가 인대가 끊어지고, 장작불 피우다가 화상을 입었다. 평생 겪지 않던 부상을 3년 사이에 해치웠다. 그러나 몸이 다쳤다고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


도시에 남았다면 나는 공원을 산책하거나 인터넷을 뒤지며 지낼 것이다. 퇴직한 선배들의 일상이 그랬다. 그들은 여행 몇 번 다녀오고는 쳇바퀴 도는 다람쥐 신세가 되었다. 규격화된 도시 환경은 서서히 끓는 물처럼 사람을 길들이고 개구리를 삶는다. 절박한 막막함이 퇴직을 앞둔 내게 닥쳐왔다.


그동안 사회에 나를 맞춰가며 살았다. 인내와 조화와 균형, 그리고 성공을 향하여! 그런데 어느 날, 깊은 의문이 찾아올 때가 있다. 나는 무엇인가?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 그때가 삶의 변곡점이다.


그렇게 나는 마흔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예순에 시골로 옮겨 앉았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삶의 기준을 내가 만들고 적용한다는 뜻이다. 자신을 고집하려는 선인들이 자연으로 돌아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러나 귀촌은 사회적 이민이다. 기존의 사회적 유대가 끊어지고 낯선 상황과 대면한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낮아짐을 의미한다. 제2의 인생이란 처음으로 돌아가 작은 몸으로 배워야 하며 그게 장밋빛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


어쨌든 3년이 되었다. 이제 요령이 생겨 밭을 무작정 일구지 않는다. 몸이 허락하는 한이 아니라 마음이 동하는 만큼만 가꾼다. 좋은 사람도 많아졌다. 가장 좋은 사교법은 이해관계에 묶이지 않는 것이다. 햇볕을 향해 뛰지 않아도 해바라기는 핀다.


넉넉한 것은 나를 들여다볼 시간이고 부족한 것은 돈이다. 푸성귀 값만 빼고 시골에서도 들 돈은 다 든다. 전에는 아끼며 살았고 지금은 부족한 대로 산다. 그 둘의 차이는 채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만 만족한다면 우주가 돌아앉아도 견디는 곳이 시골이다.


서울에서 30년, 천안에서 30년을 살았다. 이제 서천에서 30년을 살다 갈 참이다. 시간의 밀도는 뒤로 갈수록 짙어진다. 그 길은 서쪽으로 뻗어있다. 내게 서천은 서쪽의 천국이다. 노을 지는 그 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려 한다. 시 한 편에 마음을 담아본다.



몇 천원 아끼려고
격을 팔지 말아야겠다
몸이 허락하는 만큼 일하지 말고
마음이 동하는 만큼 움직여야겠다


늦가을 햇볕만한 희망을 좇아
고속도로를 달리기보다
작은 것도 크게 보이는
오솔길을 걸어야겠다


밖을 둘러쌀 것은
산과 들로 충분하고
나를 채울 것은
가성비로 판단하지 않으리라


남의 시선과 규격화된 의무와
나를 고수해온 울타리를 헐어
산기슭 냇물에 띄워보내야겠다
그동안 고마웠다


버킷리스트를 지운 자리에
채송화와 토마토를 심어야겠다
개구리의 합창과 뻐꾸기의 독창을 넣고
천천히 노을로 걸어가는 사람을 그려야겠다


<귀촌 / 강석화>




포토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