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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문학 시대의 서천, 박물관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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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인문학의 시대다. 5~6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바람이 이제는 태풍이 되었다. 각종 강연과 책 제목에 인문학이란 꼬리표를 다는 게 유행이다. TV에도 인문학 강연과 토크쇼의 비중이 이른바 식방으로 불리는 음식 프로그램에 버금가는 비중을 차지하는 추세다.


인문학의 영역은 이른바 ‘문사철’로 대표되는 문학·역사·철학을 중심으로 예술·고고학·언어학 등을 망라한다. 넓게 보자면 자연과학이 아닌 영역은 모두 인문학에 점령되고 있다. 최근에는 자연과학자 마저 인문학을 외치면서 텃밭 지키기에 힘쓰고 있다.


인문학의 본질이 인간정신을 탐구하는 것이라지만 최근의 유행은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왜 우리는 갑자기 인문학이 필요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인문학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별로 실감나지는 않지만 우리는 국민소득 3만 불을 자랑하는 부자 나라에 살고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먹고 사는 게 최우선이던 사람들이 삶의 질을 따지게 되었다. 매슬로의 동기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생존의 욕구가 채워지고 나면 사회적 인정과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생존의 위협이 사라지면서 우리는 다른 세계에 진입한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한 지식은 이제 지식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이 시대의 지식인이란 교양을 갖추고 문화를 이해하며 균형 잡힌 사고를 가진 자를 뜻한다. 지식인의 이러한 특성들은 폭넓은 인문학적 지식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얻어진다. 배고픔의 단계를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 헛헛함을 느끼게 되었고, 새로운 세상을 이해하는 길을 인문학이 열어준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과학은 지식을 주고 인문학은 지혜를 준다. 그래서 우리는 목마르게 묻는다. 삶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인문학은 그렇게 우리에게 질문하는 법을 가르치고 대답을 찾도록 도와준다. 또한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도록 이끌어준다.


사회 구성원의 의식 수준이 향상된다는 점에서 최근의 인문학 열풍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결코 강제할 수 없는 이러한 풍조가 자발적으로 일어난 것은 우리 민족의 저력을 보여주는 일이다. 그만큼 사회가 건강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다만 인문학의 습득이 아직까지는 개인의 능력에 달려 있다는 점은 아쉽다. 각자 알아서 찾아다니고 공부해야 한다. 지역 차원에서 이를 지원할 제도와 장치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인문학을 배양하기 위한 대표적인 시설을 꼽자면 박물관과 도서관을 빼놓을 수 없다. 박물관은 살아있는 백과사전이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 풍습과 인물, 유물과 기록을 모두 모아 체계적으로 보여준다. 이 땅에서 오래전에 사랑하고 투쟁하던 사람들의 숨결이 깨어진 유물 어딘가에 깃들어있다. 박물관에서 우리는 우리를 재발견한다. 과거에서 현재로 연연히 이어져 미래로 갈 우리의 모습이다.


서천에는 미흡하나마 도서관은 갖춰져 있지만 아직 박물관은 없다. 전시할 자료가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사업에 비해 우선순위에서 뒤져있기 때문일 것이다. 눈앞의 표가 아쉬운 정치인들이나 민원에 시달리는 공무원들은 돈을 달라는 사람이 많은 곳에 먼저 투자하기 마련이다. 이는 누구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지방자치의 한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박물관은 지역문화의 발전과 관광자원의 확충 차원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므로 서천에도 언젠가 지어질 것이라 믿는다.


만약 박물관이 생긴다면 어떤 것들이 전시될 지를 미리 꿈꾸어보는 일은 흥미롭다. 아마도 장항 장암리 패총을 비롯한 선사시대 유물로 시작해서 백제의 유적을 거쳐 일제시대의 흔적들이 담기게 되지 않을까 싶다. 한산모시와 소곡주는 따로 한 자리를 차지할 만 하다. 서해안 시대의 관문으로서 기벌포를 재조명하거나 장항의 제련소와 미곡창고, 도선장 등의 아릿한 추억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활용한 테마관광의 주제도 선명해질 수 있을 것이다.


박물관은 그 지역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서천이 어떤 지역이냐는 질문에 총괄적으로 답해줄 수 있는 곳은 박물관이 유일하다. 우리 지역의 역사와 철학과 문학, 그리고 우리의 예술과 미래 비전이 그곳에 담길 것이기 때문이다. 백제는 공주와 부여에만 있지 않았고 근대 유산은 군산에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다. 철새는 서산을 지나 날아오고 갯벌은 보령에 못지않게 찰지다. 그것을 정리하고 드러내며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서천 군민이 인문학을 찾아 스스로 공부하듯이 서천군도 지역의 정체성을 정립하기 위한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인문학의 열풍이 서천으로도 불어와 열매를 맺기를 바란다. 서천 경제의 미래의 먹거리는 무엇일지, 어디에 투자해야 군민 전체의 행복도가 높아질 것인지를 인문학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흥미로움이 가득한 박물관으로 가는 길이 그중에 하나가 되기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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