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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독서를 위한 독서 : 나를 위한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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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책을 잘 안 읽는다고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5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하루에 23분씩, 1년에 9.1권의 책을 읽는데 이는 OECD 평균보다 낮은 수치이며 매년 하락하고 있다고 한다. 책을 많이 사고 많이 읽는 사람이 늘고 있는 반면에 전혀 읽지 않는 비율이 25%를 넘고 있어 독서에서도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도서관 이용률이 계속 하락하는 점도 우려스럽다. 

독서율이 하락하는 이유 중에는 스마트폰의 보급과 인터넷의 생활화로 정보 습득의 통로가 다양해진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에 의한 단편적인 정보에는 한계가 있다. 독서율 하락에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독서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의무적으로 책을 읽어온 것이 아닐까? 공부하기 위해, 교양을 쌓기 위해 억지로 책을 읽어야 했던 기억이 나에게도 분명히 있다. 그것은 즐거움이 아니라 노동이었다.

청소년 시기에는 지식을 위한 독서법이 필요하다. 노력을 해서라도 책을 많이 읽어야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어른이 된 후의 독서는 달라져야 한다. 특히 중년 이후, 삶의 이면을 바라볼 정도의 나이가 되면 더 이상의 지식 쌓기는 무의미할 수 있다. 게다가 지금은 정보의 시대! 어지간한 정보는 인터넷에서 따올 수 있다. 중년이라면 지식을 암기해서 시험을 쳐야 할 상황도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책을 읽어야 한다면 온전히 나를 위한 독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독서법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독서가 주는 즐거움의 하나는 ‘발견의 희열’이다. 청소년 시기의 독서가 주는 발견이 ‘앞서 간 자의 지식’이었다면 성인의 독서는 ‘같은 대상에 대한 다른 관점’이 될 것이다. 이는 의미의 재발견을 뜻한다. 책을 통해 나의 사고체계로 들어온 그 발견물에 대해 내 안에 있던 그 어떤 것 B가 문득 일어나 반응한다. 그것이 공감이다. 

공감을 이룬 A와 B가 손잡고 새로운 C를 만들어낸다. 그것이 깨달음 또는 새롭게 창조된 의미가 된다. 그것은 새로운 관점을 동반한다.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태도나 선입견이 깨어지고 다른 것이 만들어진다.  새로운 관점은 새로운 생각을 낳고 행동을 바꾼다. 나는 변화되고 그때마다 다시 태어난다. 성인의 독서가 지식의 발견이 아니라 의미의 발견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성인은 육체적으로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계속 성장해야 한다. 성장하지 않으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로버트 풀검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아무리 양보한다 해도 지식의 범위에서만 유용할 수 있다. 필요한 지혜를 유치원에서 다 배우려면 대단한 현자가 대단한 스승을 만나기 전에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성인에게 필요한 독서법은 ‘의미의 발견을 위한 독서’가 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공감을 얻고 내 관점을 변화시켜 성장해가는 것이다. 우리는 의무감으로만 책을 대해오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이른바 ‘속독법’에서 시작하여 요즘 유행하는 ‘3P 바인더 독서법’ 등에 이르기까지 그 본질은 독서를 위한 독서법이 아닌가 싶다. 

나는 전에는 책을 다 읽은 후에 간단한 독후감을 쓰곤 했다. 대부분 밑줄 그어놓은 글귀를 모아놓거나 그에 대해 간단한 코멘트를 부기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매우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글을 읽으며 처음 느꼈던 공감이 나중에 글을 쓸 때까지 남아있지 않는다. 대부분 희석되거나 휘발되어 사라진다. 흔적만 남은 것을 억지로 주워 담듯 쓰게 된다. 

이를 피하려면 공감이 일어날 때마다 즉시 적어두는 습관이 필요하다. 발견한 것과 그것이 왜 내게 의미가 있는지를 간단히 적어둔다. 가능하다면 내 관점의 변화까지 남겨두면 더욱 좋다. 다 쓰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개요만이라도 남겨두자. 진정 책을 통해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이런 식으로 ‘읽으며 반응하고 글쓰기’를 반복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독서의 방법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의 모든 업적은 '보는 법'을 알았기 때문이다”라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말했다. 독서를 위한 독서는 이제 버리자. 의미의 발견을 위한 독서법에 속도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요약정리도 쓸모없다. 여기저기 밑줄 칠 필요도 없다. 어차피 다음에 다시 보지 않을 것이 아닌가? 다시 본다면 원래의 책을 읽는 게 백 배 낫다. 요약하거나 밑줄 쳐 놓은 것은 새로운 발견을 방해할 뿐이다.

책 한 권에서 단 한 구절만 건질 수 있다면 충분하다. 그 한 구절을 통해 새로운 생각을 얻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글쓰기를 통해 그것들을 남겨둘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 나머지는 심지어 읽지 않아도 된다. 진정 어른이라면 책을 부담스럽게 여길 필요가 없다. 읽히는 대로 읽되 얻은 것이 있다면 확실하게 내 것으로 만들자. 그것이야말로 나를 위한 독서법이며 책을 대하는 진정한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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