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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의심이 생긴 그 밤의 사건이 슬픈 영화 ‘기억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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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밤>은 서로 다른 기억을 말하면서 서로를 의심하는 두 형제에 대한 이야기다. 보기에도 좋은 2층 단독주택으로 이사 온 날, 진석은 낯익은 집이라고 생각한다. 만성 신경쇠약으로 약을 복용중인 진석은 수재에 운동 잘하고 성격도 좋은 완벽한 형 유석을 존경한다. 

이사 온 날 밤에 형이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한 장면을 목격한 진석은 매일 밤 환청과 환각에 시달린다. 19일 만에 돌아온 형은 그동안의 기억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하지만 돌아온 형은 예전과 달라진 것 같고 매일 밤 어딘가로 가는 형을 뒤쫓던 중 형의 또 다른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이를 두고 신경쇠악인 진석의 꿈이라고 말하는 형과 부모님, 그러나 형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의심하는 동생의 엇갈린 기억 속에서 진실을 찾아야만 한다. 

<기억의 밤>은 2막으로 구성된 연극 무대 같다. 1막이 누가 의심을 하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라면 2막은 그 의심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서로 믿고 있는 관계와 대상이 산산조각 나기 전을 보여주는 1막은 그 믿음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정형화된 연극 무대에서 배우들이 연기를 하는 것 같은 장면을 연출한다. 

뒤에 가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2막부터는 믿음이 산산조각이 난 그 파편들을 맞추면서 의심이 무엇인지를 드러낸다. 이 과정이 어떤 이에게는 과잉 친절로 다가올 수 있겠지만 전반부의 꽉 짜인 긴박감이 오히려 뒤에서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것으로 느껴져 추리소설을 읽는 것 같은 몰입을 선사한다. 

세련된 플롯을 통한 지적인 즐거움을 주기보다는 20년 전 1997년 IMF를 선언한 그 시기를 배경으로 한 아날로그적인 향수와 플롯으로 인해 살인사건이 일어난 그 밤에 생긴 의심이 오히려 가슴 아프기도 하다. 

영화는 곳곳에 몇 가지 트릭을 깔아놓고 있다. 전반부에 보여주는 복선이나 암시도 후반부에 접어들면 예측 가능한 정도여서 영화는 보는 내내 머리를 쥐어짤 필요는 없다. 

영화의 스타일이나 이야기는 친숙하게 만들었지만 영화는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갈 수 있도록 비밀을 하나씩 숨겨놓아 그걸 쫓아가는 재미가 있다. 이야기는 뻔하지만 뻔하지 않게 만들어놓은 반전과 배우들의 야누스적인 연기로 탄탄했다. 1997년 국가부도를 선언한 그 해 겨울, 우리가 겪었던 가족의 해체, 삶의 무게를 보여주는 <기억의 밤>은 마지막 두 배우의 연기에서 진한 슬픔으로 다가온다.  

<기억의 밤>, 장항준 감독, 2017.11. 29 개봉. 15세관람가. 1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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